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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루테티아 성은 이미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다.

        

       제국의 황성은 겉보기에는 중세 시대 성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부는 그냥 돌벽이 아니라 황제가 사는 궁전답게 제대로 개수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소 투박했다.

        

       하지만 루테티아 성은…… 사실 ‘성’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모습보다는 ‘궁전’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벨부르라는 나라의 모티브 중 하나가 프랑스이기 때문일까. 궁전의 모습만 보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르는 화려한 모습이었다.

        

       이건 아마 두 나라가 가진 ‘공성’의 개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리라.

        

       한때 대륙 혼돈의 중심에서 온갖 국가와 전쟁을 하며 버텨내야 했던 제국과, 그 중심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힘을 비축하던 벨부르의 차이라고 하면 될까.

        

       팬그리폰 가문이 온갖 전쟁을 벌이며 관심을 끌고 있는 사이, 벨부르는 루테티아를 통째로 감싸는 장벽을 건설했다. 도시의 확장이 다소 제한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왕도 전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와서는 그런 장벽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공중에서 전함포를 쏘아댈 수 있는 세계에서 ‘장벽’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지상군의 점령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유용하긴 했지만.

        

       “…….”

        

       “긴장되십니까?”

        

       말없이 걷는 앨리스에게 그렇게 물었다. 앨리스는 그저 나를 흘겨볼 뿐이었다. 조금 전 객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에 대해 분이 아직 덜 풀린 모양이었다.

        

       지난번에는 샤를로트가 앨리스를 직접 찾아갔다고 했던가. 우리가 머물고 있던 곳은 호텔이었으니 앨리스가 궁전까지 들어오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하아.”

        

       말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앨리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자, 결국 앨리스도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긴장되긴 하네.”

        

       우리 옆에는 제국 기사 몇 명과 벨부르 기사 몇 명, 그리고 집사 복장을 한 하인 몇 명이 함께 걷고 있었다.

        

       일단은 다른 학생들과 같이 학생 신분으로 방문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나 앨리스를 외국에서까지 ‘같은 신분’으로 취급하기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괜찮다고 해도 제국 정부와 왕국 정부가 기겁했으니까.

        

       학생 대표로서 환영받은 것과 별개로 이렇게 국왕을 만나러 가는 것도 우리 두 사람이 황녀 신분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궁전이야. 지난번에 왔을 때 멀리서 본 모습도 훌륭했지만, 역시 안쪽도 휘황찬란하네. 제대로 된 식민지도 없으면서 이 정도로 꾸밀 수 있다는 점에서 벨부르가 얼마나 비옥한 곳인지 알만해.”

        

       황금빛의 궁전 천장을 올려다보며 앨리스가 솔직하게 말했다. 기분 탓인지 벨부르 기사들의 어깨가 조금 으쓱한 것 같다.

        

       “인테리어만 보면 제국보다 한 수 위네.”

        

       “벨부르는 예술의 나라라고들 하니까요.”

        

       설정상 벨부르에는 이름난 예술가들이 많았다. 화가뿐만이 아니라 음악가, 조각가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길거리에선 지나가던 행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는 길거리 화가라던가, 바이올린이나 기타를 들고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음악가들도 많았다.

        

       “…….”

        

       앨리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질투하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하긴, 아무리 뿜어져 나오는 증기와 매연, 그리고 황동관이 인류의 미래를 나타내는 훌륭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예 대놓고 예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언가와 비교하면 다소 초라하고 투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괜히 뭔가 말해도 앨리스의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그 이후로 별다른 말 없이 앨리스 뒤를 따랐다.

        

       *

        

       “알리스!”

        

       알현실에는 이미 샤를로트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는 말은 이미 들었기에 옷도 드레스 같은 것으로 갈아입고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샤를로트는 도착했을 때처럼 교복을 입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기 전에 앨리스와 옷을 갈아입을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역시 그대로 입고 나온 것이 정답이었다.

        

       “앨리스 황녀.”

        

       “벨부르 국왕 폐하.”

        

       샤를로트만큼 환하게 웃지는 않았지만, 벨부르 국왕도 우리 쪽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앨리스는 나와 다르게 폐하라는 호칭을 쓰긴 했지만, 무릎을 굽혀 인사하지는 않았다. 그저 양손으로 스커트 끝을 살짝 잡아 올렸을 뿐이다.

        

       벨부르 국왕이나 샤를로트 모두 그 행동을 두고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고.

        

       지난번에 방문했던 내가 기대치를 좀 지나치게 낮춰버렸던 걸까.

        

       “언제 한번 초대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초대하게 되었군. 왕족으로서 초대한 것이 아니라 학생으로서 초대하게 된 점은 미안하네.”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가벼운 목적으로 방문하는 쪽이 저희 쪽에서도 더 편하게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음.”

        

       벨부르 국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내 쪽을 흘끗 보았다.

        

       한순간이지만 벨부르 국왕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조금 지워졌다. 뭐, 나한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기는 어려울 테니까.

        

       아니면 내가 뭔가 꾸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조금 억울하다. 이번 방문은 내가 밀어붙인 것도 아니고, 생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샤를로트가 제안한 것이니까. 내가 샤를로트를 꼬드긴 것도 아니었고.

        

       “이번 만남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니 인사는 가볍게 해 두는 것이 좋겠지. 그대들도 한동안 루테티아에 체류할테고, 분명 서로 친분을 나눌 기회는 앞으로도 몇 번 더 있을 테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혹시 체류하며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근처의 기사에게 말하도록 하게. 내가 최대한 도와줄 수 있을 테니.”

        

       “벨부르에 방문한 이상,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은 벨부르 법을 따르는 것이 순리겠지요. 되도록 준비된 것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운 말이군.”

        

       앨리스의 말에 벨부르 국왕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음.

        

       어쩌면 지난번에 내가 그렇게 오만하게 나가는 것이 정답이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앨리스가 추가 점수를 먹고 들어가잖아.

        

       물론 앨리스한테 그런 말을 했다가는 꿀밤이라도 한 대 맞겠지만.

        

       *

        

       “알리스, 어떤가요?”

        

       알현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샤를로트는 우리가 밖으로 나올 때 함께 나왔다.

        

       “어떻다니?”

        

       샤를로트의 질문에 앨리스가 새침하게 되묻자, 샤를로트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루테티아 궁전 말이에요! 아름답지 않은가요?”

        

       한 손 손바닥을 펼쳐서 앞으로 내밀어 보이며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를 보고, 앨리스는 다시 새침하게 “흥.”하는 소리를 냈다.

        

       “황궁도 충분히 멋진 곳이거든.”

        

       “아, 물론 황궁도 멋진 곳이긴 하죠. 제도 어디서 보아도 위로 우뚝 솟은 훌륭한 성이 보이니까요. 하지만 멋지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닌가요?”

        

       샤를로트한테는 절대로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앨리스는 계속 말을 돌리고, 샤를로트는 생글생글 웃으며 앨리스에게 대답을 유도했다.

        

       우리 곁을 따르던 기사 중 하나의 갑옷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얇게 뚫린 슬릿 사이로 표정을 알아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기사가 순간 웃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벨부르 기사 중 한 사람이었다.

        

       하긴, 아까 앨리스와 내가 나란히 걸으며 나누던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까. 이제 와서 부정하는 앨리스가 귀엽게 보였을 것이다.

        

       앨리스가 그 기사를 흘겨보자, 기사는 정색했는지 다시 소리 없이 걷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고도 앨리스가 그렇게 대답하지 않으려고 해서, 결국 내가 대신 대답했다. 앨리스는 이번에는 내 쪽을 흘겨보았다.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나는 앨리스에게도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래.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것이 곧 부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훌륭한 기술력을 가지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구를 부양하던 전성기의 국가라도, 군사력이 부족하면 다른 국가에 유린당하곤 하니까.

        

       물론 그 말을 지금 샤를로트에게 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국이 벨부르 왕국을 공격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정말이지 지독하게 평화로웠다.

        

       슬슬 뭔가 대단한 일이 있을 거라는 전조가 보여야 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전조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건 폭풍 전의 고요일까? 아니면 나라는 존재 덕분에 있어야 했을 거대한 비극이 사라진 걸까?

        

       “그렇죠?”

        

       앨리스 대신 대답한 나를 보며 샤를로트가 환하게 웃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아직 보여드릴 것이 많으니까요. 여기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벨부르를 소개해드리죠!”

        

       엣헴, 하는 소리라도 낼 것 같은 샤를로트를 보면서, 나는 내가 그 미래를 막아낸 것이기를 강하게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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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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