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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생각보다 일찍 일을 마무리한 나는 바깥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도시 곳곳에서는 할로윈을 위한 치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시에서 고용한 인부들이 가스등 위에 호박 모양의 장식물을 씌웠다. 그리고 그 아래에 커다란 박쥐와 거미 모형을 배치했다.

         

       처음 그들을 봤을 때, 나는 친숙함을 느꼈다.

       그들이 입고 있는 복장 때문이었다.

         

       직접 몸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뼈다귀가 그려진 작업복에 두개골 형상의 안전모를 쓰고 있었고, 일을 감독하는 상급 공무원들은 붉은 가죽의 뿔 달린 악마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 서커스단의 광대와 막내 곡예사를 떠오르게 했다.

         

       준비한 시설물의 규모도 그렇고, 공무원들의 복장도 그렇고, 시에서는 이날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커스 그랑프리 덕에 관광객들도 잔뜩 모인 참에 시는 이번 축제를 도시의 인상을 깊게 남길 기회로 삼은 것 같았다.

         

       나는 거리를 거닐며 그 정경을 즐겼다.

         

       트릴 트릴로2.

       그것의 공간적 배경은 6대 극장이 있는 도시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시간적 배경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4년 뒤인 할로윈 축제 기간이었다.

       이제야 도시가 내가 아는 모습에 가깝게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클라라와 약속한 장소를 지나치고 말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근처 시장의 놀이마당이었다.

         

       1인 혹은 소규모의 곡예사들이 자리를 깔고 재주를 선보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경탄이 번갈아 터져 나왔다.

         

       나는 관중들 사이에 끼어 그들의 공연을 구경했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똑같은 정장을 차려입은 두 명의 남자가 펼치는 코미디 무대였다.

         

       “내 구두에 뱀이 들어있다!”

       “놓치지 마! 우린 사흘을 굶었단 말이야!”

       “하지만 무섭잖아! 이놈을 어떻게 잡지?”

       “구두째 삶아버리자!”

         

       그러나 미처 구두를 냄비에 넣기도 전에 뱀이 안에서 튀어 나왔다. 구두가 워낙 낡아서 발가락 위치에 구멍이 뚫려 있던 탓이었다. 그들은 뱀을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넘어졌다 엎어졌다 슬랩스틱을 벌였다.

         

       뱀과 두 사람의 호흡이 절묘했다. 저건 분명 그들과 같이 다니는 뱀 조련사의 솜씨일 것이다.

         

       사방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일부는 크게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확실히 그들의 실력은 루즈에서보다 상당히 발전했다.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대본이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뱀 한 마리에 벌벌 떨면서 그와 관련된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알렌과 거기에 어눌하게 태클을 거는 조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원작에서 그들은 배우로 데뷔하고 3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박수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큰 무대는 아니지만, 관객들에게서 긍정적인 호응을 얻고 있었다.

         

       나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에 의해 미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연의 하찮고 중함을 가리지 않고 바뀌고 있었다.

         

       알렌과 조는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나는 그들이 갈채를 받으며 사방으로 허리를 넙죽넙죽 숙이는 모습을 보고 미소지었다.

         

       언젠가 떠날 나에게 있어 이런 작은 변화들은 반가운 것이었다.

       내가 단순히 퀘스트라는 레일을 따라 달리는 게 아니라, 그래도 이곳에 무언가를 남기고 간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내가 다음으로 찾은 무대는 어느 줄타기 곡예사의 1인 공연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줄 대신 다른 것 위를 걷고 있었다. 바로 커다란 작두의 날 위였다.

         

       “진짜 날이야? 설마……. 가짜 아냐?”

       “진짜 맞아! 아까 두꺼운 무도 덜컥 썰려 나갔다고!

       “어떻게 저 위에 서 있지? 그것도 맨발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확실히 놀라운 일이었다.

       곡예사는 발가락 사이로 그것을 짚고 걸을 뿐만 아니라, 발바닥을 딱 펼치고 그 위에 서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곡예사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곡예를 펼쳤다. 흔한 자기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복면을 쓰고 있어 얼굴조차 알 수 없었다.

       몸매로 보아 여자라는 것만 간신히 드러날 뿐이었다.

         

       그녀는 날카롭게 날이 선 세 개의 작두 위를 번갈아 타며 아슬아슬한 묘기를 이어나갔다. 다들 손에 땀을 쥐고 그녀의 곡예를 지켜봤다.

       그녀가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칼날 위에 안착했을 때는 사방에서 갈채가 쏟아졌다.

         

       이런 어수선한 환경에서도 실수 한 번 하지 않다니.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그녀와 눈동자가 마주쳤다.

         

       “어?”

         

       그것은 그녀가 두 번째 공중제비를 돌고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만 칼날 위에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녀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붉은 피가 칼날을 적시며 솟구쳤다.

         

       “꺄악!”

       “사, 사람이 죽었다!”

       “우아악!”

         

       구경꾼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금방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곡예사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뺨이 살짝 베인 것뿐이었다.

       그나마도 상처는 그렇게 깊지 않았다. 피가 좀 나긴 했지만,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다.

       관객 중 한 명이 그냥 지레 호들갑을 떤 것뿐이었다.

         

       다들 민망함에 서로 눈치를 볼 때, 나는 이미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복면의 곡예사는 다쳤음에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나는 그녀 바로 앞에 서서야 간신히 그녀가 신음을 흘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제가 상처를 좀 살펴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거친 숨을 한 번 토하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내 손이 그녀의 뺨에 닿자 그녀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내 손가락이 스치는 상처마다 피가 멎고 새살이 차올랐다.

         

       “뭐지, 포션인가?”

       “설마. 최상급 포션 한 병을 사려면 석탄 몇 톤은 필요하다고.”

       “이것도 쇼의 일부분 아니야?”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위험했습니다. 하마터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어요……레이나 양.”

         

       내 말에 복면이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억지로 목소리를 걸걸하게 내려는 그녀의 노력이 가상했다.

       나는 바로 음향실을 작동시켰다.

         

       -거짓말이 서투시군요.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부축해서 놀이마당 구석으로 데려갔다.

       관객 중 일부는 우리의 뒤를 쫓았지만, 우리가 구석에 앉아 그냥 쉬고 있자 곧 다른 공연을 보러 떠났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와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요즘 들어 그녀로부터 단원 퀘스트가 오지 않았다.

       대화를 요청하지도, 몰래 골목에서 만나 달라 하지도, 아빠 역할을 해달라 하지도 않았다.

         

       지난번 신입생 환영회 이후로 그녀는 나와 접촉하는 걸 꺼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감사합니다.’라고 해야겠죠? 레이나 양은 저한테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는데요?”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좀 더 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나도 마찬가지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2주 만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답답할 때면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나와서 혼자 공연을 하곤 해요. 안에서 하면 아버지가 항상 지적하니까요.”

       “그랬군요. 하지만 이런 위험한 공연을 혼자 하는 건 위험합니다.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죠.”

         

       우리는 끝까지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작두에 묻은 피가 거의 굳어갈 무렵, 시장 구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거기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대회가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레이나는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여전히 칼에 베인 피투성이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걸 계속 쓰고 가실 건가요?”

       “어차피 할로윈 의상으로 알 거예요.”

       “그래도 진짜 피를 묻히고 다니는 건 좀 그렇군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침 근처에 가면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 가서 가면 하나를 골랐다.

         

       TT2에는 주인공과 서포터 캐릭터마다 할로윈 의상이 하나씩 있었다. 가게에서 파는 수십 개의 가면 중에 마침 그녀가 쓰던 것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사서 그녀에게 건넸다.

         

       “얼굴을 보이는 게 부담스러우면 차라리 이것을 쓰고 가세요.”

         

       섬뜩한 형상의 가면이었다.

       이마 양쪽에 난 두 개의 뿔은 다른 가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표정이 어딘가 소름 끼쳤다.

         

       어떻게 보면 우는 것처럼 보였고, 어떻게 보면 화난 것처럼 보였다.

       부릅뜬 눈동자와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쩍 벌어진 입은 슬픔에 차 울분을 토하는 것 같기도 했고,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우는 여자(La Llorona)의 가면이군요.”

       “우는 여자요?”

         

       설마 이것에 특별한 이름이 있는 줄 몰랐다.

       플레이어들은 그냥 ‘레이나 할로윈 가면’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내민 가면을 받아들었다.

         

       “카스티유 지방의 전설이에요. 못 들어보셨나요?”

         

       그녀는 가면에 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한 남매에 관한 것이었다.

         

       가만히 그녀의 말을 경청하던 나는 그 이야기를 일전에 들은 적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예전에 루즈의 호텔에서 유라크네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차를 마시며 잡지에 읽은 내용을 교환하곤 했는데, 그때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두 쌍둥이 남매는 그래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매년 생일날 하루만 만난대요.

         

       그것은 별이 되어버린 두 남매에 관한 것이었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내가 첨언을 했었는데…….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하자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 별에 얽힌 전설이지요. 그 쌍둥이별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제가 말한 것이에요. 그 이름이 ‘우는 여자’고, 그 경우 다른 한쪽의 이름을……웃는 남자(El Reidor)라고 부르지요.”

         

       웃는 남자.

       나는 가면 가게를 돌아봤다.

       혹시나 그곳에 그 남자 쪽 가면도 있나 싶어서.

         

       레이나는 내 기대를 바로잡아 주었다.

         

       “저기는 없을 거예요. 그건 주로 웃기는 용도로 쓰니까요.”

         

       다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어느새 내가 선물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우는 여자.

       그 사정을 알고 나니 가면은 무섭기보다 서글퍼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가면 가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가면 하나를 사 들고 왔다.

         

       “저도 하나 샀어요. 단장님 것을요.”

         

       그것은 까마귀 형상의 가면이었다.

       나는 이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성 빅터의 가면이에요.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왠지 단장님께 잘 어울리지 않나요?”

         

       그녀는 장비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떠났다. 그녀와 마주친 사람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우는 여자 가면에 피 묻은 작두를 들고 다니는 꼴은 확실히 무섭긴 했다.

         

       가면을 품에 넣은 나는 이만 클라라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사람들이 거리 한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았다. 아까 무슨 대회가 열린다고 하던 곳이었다.

         

       “무슨 일이래?”

       “아니, 글쎄 첫 시합에서 괴물 같은 애가 나왔어. 받침으로 쓰던 테이블이 가루가 되고 상대는 구석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뭐야? 잠깐 애라니……. 몇 살인데?”

         

       뭔가 사건이 터진 모양이었다.

       나는 사람들 뒤를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대회인지 뭔지는 일시 중단된 듯했다.

       사회자도, 다른 참가자들도, 관중들도 모두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으아앙!”

         

       그곳에는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클라라가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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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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