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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그렇게 ‘마법의 주문’으로 기자회견을 잡은 료스케는 추레한 차림으로 그들의 앞에 나왔다.

         

       추레하다는 말로는 표현을 못 할 정도로 낡고 볼품없어 보이는 옷.

       헌 옷을 주워다 입은 것이 아닐까, 노숙자의 옷을 빼앗아 입고 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냄새가 풀풀 풍기고 해져서 언제 찢어질지 모를 것 같은 옷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옷이 추레하면 사람 역시 추레해지는 법.

       살이 쭉 빠진데다가 눈 밑에 그늘이 목까지 닿을 정도로 짙고 길게 자리 잡은 료스케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저 사람이 진짜 정치인인가’하는 의문이 떠오를 정도였다.

         

       “얼굴이 왜 저래?”

       “마음고생이 심해서 그런가?”

       “아니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해도 그 짧은 시간이 사람이 저렇게 변해?”

       “저거 내가 미국에 유학 갔을 때 본 마약 중독자랑 똑같….”

       “야야야야야야, 입 다물어. 그런 말 함부로 꺼내면 어떻게 해?”

       “큼, 아니. 내가 한 말은 그게 아니라.”

       “그게 문제야? 저 사람 정치 가문 사람이야. 기자 생활 오래 하고 싶으면 입을 조심하라고.”

       “…그래야겠지.”

         

       그 충격적인 모습에 기자회견장에 모였던 기자들은 놀라서 저들끼리 쑥덕거렸다.

       그 과정에서 료스케를 마약 중독자와 연관시킨 사람 역시 나오긴 했으나, 료스케가 아직은 정치 가문의 사람이라는 점,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일반 사람들과는 명확하게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기자들은 료스케의 몰락을 특종이라며 기꺼워하면서도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기자들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단숨에 깨져버렸다.

         

       “여러분.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쿠웅!

       

       료스케가 다짜고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무릎이 박살이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기자들의 얼굴을 눈에 담고는 이마가 깨질 기세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손을 바닥에 대었다.

         

       훌륭한 도게자(土下座) 자세의 완성이었다.

         

       기자들은 미사여구나 설명 없이 다짜고짜 도게자부터 박고 시작하는 료스케의 모습에 경악하면서도 기자의 본능에 따라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하지만 그렇게 손가락을 정신없이 놀리면서도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싶어 불안감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하기도 했다.

         

       ‘저 사람 속 좁고 국민 무시하기로 유명한 사람 아닌가?’

       ‘원한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나중에 힘을 되찾으면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찍었던 우리한테 복수할 것 같은데.’

       ‘생각이 있다면 전원에게 복수하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여기서 웃는 놈은 저놈한테 찍힌다. 혹시나, 혹시나 저 사람이 다시 힘을 얻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보복당한다.’

       ‘안타까운 표정, 안타까운 표정, 안타까운 표정.’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은 듯한 비굴하기 짝이 없는 모습.

       하지만 기자들은 역으로 그 모습에 더더욱 공포를 느꼈다.

         

       어설픈 사람보다는 저런 사람이 오히려 다시 힘을 찾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어설프게 대처하기에 동정표도 사지 못하고, 비호도 받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동정표를 얻어 죄가 가볍게 되고, 죄 때문에 얻은 동정표를 자신의 힘으로 흡수해서 반드시 다시 날아오르곤 했었으니까.

         

       게다가 자존심을 완전히 버릴 수 있는 사람은…어떻게 말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원한을 산다면?

       자신의 단단한 에고를 쓰레기처럼 바닥에 집어 던지고 자존심마저 다 집어던지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사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하려고 한다면?

         

       그 미래는 분명 끔찍할 것이 분명했다.

         

       『 이제 일어서는 거야. 』

       『 너는 할 수 있어. 』

         

       하지만 기자들에게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료스케는 와신상담(臥薪嘗膽)도 기꺼이 감내하는 간웅(奸雄)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리어 속삭임을 자기 생각이라고 따르며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이나, 비척비척 힘이 빠진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가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을 본다면….

         

       보이지 않는 실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에 가까울 것이다.

         

       “여러분.”

         

       꼭두각시 인형은 입을 열었다.

         

       “저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생각’이 말하는 대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폭탄과도 같은 말이 나오자 기자들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눈을 멀게 만들 것 같은 플래시가 빗발치기 시작했고, 수많은 기자가 바쁘게 손과 입을 놀리며 특종이라며 보고를 올렸다.

         

       “생명의 위협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산사태가 일어났던 쿠로츠루기미네의 태양광 시설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입니까?!”

       “태양광 시설에 손을 댄 것이 자의가 아니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폭력단이나 야쿠자가 개입한 것입니까!”

       “산사태에 피해를 본 마을 사람에게 살해 위협을 받은 것은 아닙니까?!”

         

       특종이다.

         

       기자들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미친 듯이 료스케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찍히면 죽는다’라는 생각 자체는 머리에 콱 들어박혀 있던 덕분에 질문의 수위 자체는 높지 않았다.

         

       “저는 제 목을 강렬하게 조이는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통석의 염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비통과 슬픔이 제 몸에 차오르는 느낌이며, 보잘것없는 한 사람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고만 있습니다.”

         

       료스케는 자신에게 쏠린 관심 속에서 슬픈 듯 말했다.

         

       “법은 멀다고 하여도 칼은 가까이에 있는 법입니다. 기개가 있다면 그 칼날을 받고도 능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도리어 목을 내밀었을 것이나, 참으로 슬프게도 저의 기개는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제 나이처럼 다 차지 않은 자세는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였으며, 흉흉하게 솟구치는 기세는 제 마음에 한 줄기의 공포를 심어놓기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칼날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무인이 개입되어 있습니까?!”

       “물론 저도 나름의 저항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촘촘하게 둘러싼 그물을 저는 빠져나갈 수가 없었고, 도리어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방 안의 무언가가 반듯하게 잘려있는 것을 보며 점차 공포에 잠식되어갈 뿐이었습니다.”

       “협박을 당하신 겁니까!”

       “누가 감히 정치인을 협박한 것입니까?!”

         

       료스케가 말을 꺼낼수록 분위기가 점점 과열되었다.

         

       “하지만 저도 명색이 나라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사명을 받은 몸. 그들에게 무리한 요구가 뒤따른다면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것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열된 분위기에 열기를 더하고자 잠시 말을 멈추었고, 뜸을 들인 만큼 타오르는 듯한 기자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들의 요구는 꽤 간단했습니다. 네, 저에게 가해진 행위에는 걸맞지 않은 요구, 단순히 태양광 사업에 어떤 공사 업체를 끼워달라는 부탁이었기 때문입니다.”

         

       찰칵찰칵찰칵찰칵.

         

       료스케의 입이 열리자 기자들이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미친 듯이 셔터를 눌렀다.

         

       “물론 그 의도는 뻔했습니다. 아니, 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정한 업체를 끼워서 자재를 빼돌리거나 이중장부를 만들어서 이득을 얻고자 하는 행동. 네, 단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갉아 먹히는 정신, 언제 내 목을 자를지 모르는 칼날을 단지 그것 하나를 들어주는 것으로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료스케는 그 말을 멈추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리곤 다시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럴 수는 없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재해를 안겨주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목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지가 잘리고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눈을 감지 않았을 겁니다! 잠깐 눈을 감으면 편해진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러한, 이런!”

         

       울며 소리치는 료스케의 모습에는 분명히 진정성이 있었다.

         

       『 울어야 해. 그러니 눈물을 흘리게 해줄게. 』

       『 크게 소리를 쳐야만 해. 목이 찢어져서 크게 소리 지르기 어려울 테지만 고통을 잊게 해줄 수 있어. 』

       『 잘못을 인정해서는 안 돼. 주어는 모호하게 만들고 책임은 최대한 회피해야 해. 』

       『 생명의 위협을 가한 상대방에게 관심을 모조리 쏟아버리고 그 뒤로 숨어야만 해. 』

       『 책임은 남에게 줄 수 있으면 줘야만 하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가볍게 만들어야만 해. 』

       『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나름의 기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만 해. 』

       『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이는 거야. 』

       『 지역민에게 공감대를 만들어. 그렇게 약간의 잘못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는 모습으로 꾸미는 거야. 』

         

       료스케는 진심을 담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저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마나를 칼에 씌우고 저를 협박했던 그들을!”

         

       그 외침에는 분명한 분노가 담겨있었다.

       억울하게 당한 사람의, 그리고 정의가 불의에 갖는 정당한 분노가.

         

       『 이제 됐어. 』

         

       그 분노는 제 주인을 역으로 잡아먹을 정도로 격정적으로 보여서.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과 정신력을 양분 삼아 타오르는 것만 같아서.

         

       털썩.

         

       그래서 료스케가 소리치다가 그대로 쓰러져버렸어도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 * *

         

         

         

       “아니, 이게 무슨?”

         

       불똥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쿠로츠루기미네와 연관된 유파 중 유일하게 마나를 사용하는 곳.

         

       야태도아랑류(野太刀餓狼流)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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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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