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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스물과 하나.

         

       그들 사이의 널따란 공간이 긴장으로 채워지고 있던 찰나.

         

       “가게 두어라.”

         

       난데없이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 하나에 모든 것이 사그라들었다.

         

       백우진이 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를 둘러싸고 있던 무사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천마였다.

         

       십만대산 내에 그녀의 감각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그녀는 천마신교 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백우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그녀의 무덤덤한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마경으로 가려는 것이냐.”

         

       말투 또한 조금 더 위엄있게 변했다.

         

       주변의 인물들을 신경 쓰는 모양.

         

       그들의 시선을 어느 정도 신경 쓴다는 것은 쓰임새를 생각해두고 있다는 것일 텐데.

         

       ‘넌 대체 뭘 꾸미는 거냐.’

         

       그녀는 이들로 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

         

       백우진은 궁금한 속내를 감추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깐 볼일이 좀 있어서.”

       “죽은 땅에 볼일이 있다라….”

       “당장 도망칠 생각은 없으니 좀 내보내줘.”

         

       백우진이 당당하게 요청하자, 천마는 미소 지었다.

         

       “최소 사흘에 한 번은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녀가 그리 말하자, 백우진도 따라 웃었다.

         

       “그래.”

         

       천마의 시선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무사들에게로 향했다.

         

       “철혈보위대는 듣거라.”

         

       철혈보위대.

         

       그들이 속한 무력 단체의 이름이었다.

         

       총 천 명으로 이루어진 천마신교 내의 수호를 담당하는 무력 단체.

         

       남문 수호를 담당하는 스무 명은 그중에서도 고수로 평가받는 이들이었다.

         

       “이자에게 남문 출입의 권한을 내릴 터이니, 그의 출입을 허하도록 하라.”

       “명을 받듭니다!”

         

       그들은 어떤 의문도 품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백우진이 보기에 비정상적인 행동이지만, 그들의 관점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있어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어느 날 자기가 믿는 신이 찾아와 지시를 내리는데 이를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그들간의 불화를 말 한마디로 불식시킨 천마의 시선이 재차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거라.”

         

       백우진은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잠시지만 오로지 두 사람만이 가능한, 남들은 조금도 알 수 없는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 * *

         

         

       애증(愛憎).

         

       사랑과 증오를 아울러 이르는 말.

         

       어린 시절의 그녀는 이 단어만큼 불가해한 단어는 또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말 그대로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는 것이고, 증오는 상대방이 미워 무엇도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아닌가.

         

       사랑하는 거면 사랑하는 거고, 미워하면 미워하는 거지.

         

       어떻게 한 사람에게 극과 극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강인한 여기사를 꿈꾸며 하루의 대부분을 검과 함께 보내는 탓에 인간관계에 서투른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어째서….”

         

       이안 발데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빛을 받으면 푸른빛이 감도는 흑청색의 머리카락, 온기를 머금은 다정한 눈빛.

         

       자신이 좋아해 마지않던 그의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깨달았다.

         

       애증은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 사람에게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그때.

         

       그가 만약 자신이 이안 발데스가 아님을 털어놓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답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을 알았더라면 아마 그 순간 그와 맺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털어놓은 마음은 그가 아닌, 자신의 추억 속 이안 발데스에게 향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결과적으론 그와 맺어졌으리라 확신했다.

         

       그만큼 그는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래서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만약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한 데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다시 고백한다면 그와 평생을 함께하리라.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실의에 빠졌다.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랑이었던가.

         

       아팠다.

         

       옆구리를 크게 베여 내장이 쏟아졌던, 제 인생 최악의 고통을 겪었던 그때보다도 훨씬.

         

       그녀의 인생은 망가졌다.

         

       문고리를 잡고 돌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온갖 영예와 영광을 누릴 수 있음에도, 그녀는 제 방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더욱 깊은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어린아이인지.

         

       그보다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존재.

         

       단 하나, 만변하는 얼굴 속에서 유일하게 불변했던 조소만이 기억에 남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그는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제안을 건넸다.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면 그 또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처음엔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뒤이어 내뱉어진 말이 그녀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다.

         

       그곳에, 그가 있다는 말.

         

       그녀는 궁금했다.

         

       어째서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는지, 정녕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얕은 사랑이었는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대신 겪어온 그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고작 그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기에.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제가 살던 세상에서 벗어나, 이곳에 왔다.

         

       천마(天魔).

         

       그야말로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의 마왕이나 다름없는 이가 되었다.

         

       이 몸으로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그녀가 평생토록 갈고 닦은 가치관과는 정반대되는 일.

         

       그러나.

         

       “…상관없다.”

         

       그러한 것들은 금세 빛이 바랬다.

         

       그와 헤어진 이후,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녀는 때가 되면 아무 거리낌 없이 일을 행하리라 결심하며, 천마로서의 삶을 받아들였다.

         

       “슬슬 다가오고 있구나.”

         

       그리고 마침내.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

         

       천마는 제 감각 속에서 노니는 그의 기운을 느꼈다.

         

       그는 십만대산 곳곳에 숨어 있는 연구실을 전부 부수고 있었다.

         

       “진미연이었나….”

         

       충성심이 하도 깊어 기억하고 있는 이름.

         

       그러나 천마는 그녀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마인인지, 뭔지.

         

       인간을 그 이하의 존재로 영락시키고, 그것을 또 개량하겠다고 연구하고 있는 꼴이 역겹다.

         

       어찌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몸에서 썩은 내가 났다.

         

       마음 같아선 베어버리고 싶지만, 그녀의 밑에서 천마신교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장로 및 호법들이 그녀를 총애하기에.

         

       연구소란 연구소는 죄다 부순 그가 향한 곳은 마경으로 향하는 남문이 있는 곳이었다.

         

       “흐음…?”

         

       실랑이가 벌어졌다.

         

       남문을 수호하는 이들과 이를 지나가려는 백우진 간의.

         

       평소 같았으면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그냥 두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기와 이에 잠식당한 마인이 전부인 땅에 그가 가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래서 곧장 날아가 그들을 중재했다.

         

       그리고 짧은 문답 속에서 그녀는 그의 목적이 무엇인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너도 느꼈나.”

         

       그는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그러나 그의 본성은 어렴풋이 깨달은 것 같다.

         

       누구 하나 마음을 꺾지 않는다면 언제고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될 것임을.

         

       “발버둥이라도 쳐볼 셈인가?”

         

       그가 이안 발데스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마경은 수련을 위해 찾아갔을 확률이 높다.

         

       그는 조급할 때마다 더욱 제 몸을 갉아먹으며 수련에 박차를 가하는 경향이 있다.

         

       마경 또한 이를 위해서일 터.

         

       “으음.”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느껴진다.

         

       마경을 헤매는 그의 모습이.

         

       어두운 보랏빛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다가 어느새 기척이 끊겼다.

         

       자신의 권역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기척이 끊기기 전, 마지막 그를 느낀 천마는 몹시 애달파졌다.

         

       “아프다….”

         

       대체 무슨 요술을 부리는지 몰라도 그는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빠른 속도로 제 몸을 갉아먹었다.

         

       마기에 짙게 물들어버린 그의 기운은 과거 사경을 헤매던 그를 연상케 했다.

         

       당장에라도 그를 데리러 가고 싶었으나, 참아야 했다.

         

       이곳에서 그와 자신은 어디까지나 적이기에.

         

       그리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선 제 손으로 직접 그를 베어야만 하기에.

         

       “익숙해져야겠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그녀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해야만 한다.”

         

       이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그녀는 조용히 제 가슴에 품은 칼을 갈고 닦았다.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 * *

         

         

       마경으로부터 넘어오는 마기를 막아내기 위해 온갖 진법으로 무장한 남문을 넘어서는 순간.

         

       백우진은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진짜 최악인데….”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숨을 들이마시고 있는데도 온몸이 산소가 부족하다며 비명을 내지른다.

         

       허공에 흐르는 공기에 짙은 마기가 녹아 있는 탓이었다.

         

       “후우….”

         

       천천히 숨을 고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씩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수록, 주변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맹수와도 같은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다가오는 존재들.

         

       온갖 기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 마인, 마물들이었다.

         

       지금껏 상대해온 그 어떤 마인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녀석들을 보며.

         

       백우진은 미소 지었다.

         

       “찾았다.”

         

       흐흐흐흐!

         

       절체절명의 상황에도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귀여운 녀석들.”

         

       그의 눈에는 그것들이 흉측한 괴물이 아닌, 걸어 다니는 영약으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얼떨결에 자꾸 오전 연재가 되고 있네요,,,

    낮에 글이 잘 써지고 밤에 잠 좀 잤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힘찬 하루 보내십시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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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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