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시간이 되었다.
– 라하!
– 용하용하
– 용하예요!
– 하이용!
– 라하!
– 라하라하라하
“반갑구나 아이들아.”
언제나처럼 방송이 열리자, 수많은 시청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 지금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할 때가 아니었던가?
물론 ‘한국’ 한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한국 시청자들이 내 방송에 들어오는 것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제 말했던 대로, 오늘은 특별한 콘텐츠를 해볼 거란다.”
– ㅠㅠㅠ
– 아앗…
– 우주선 이야기 계속해주는 줄 알았는데…….
– 흙흙흙.
“…….”
그건 나중에 해준다고 했는데도 참…….
나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시청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카메라의 각도를 한 번 수정했다.
– 어라?
– 그러고 보니 여기 어디예요?
– 늘 보던 그곳이 아니네요?
– 방송실 아니네?
“흠. 이제 좀 정신을 차리는구나.”
계속 옛날이야기 해 달라고 징징거렸으면, 바로 매니저들에게 처리하라고 하려고 했다.
다행히(?) 시청자들이 정신을 차렸기에, 나는 오늘의 방송실로 사용하기로 한 이곳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이곳은 적당히 만들어 낸 또 다른 방송실이란다. 보다시피 넓지?”
– ㅋㅋㅋㅋㅋ
– 적당히 만들었다닠ㅋㅋㅋ
– ㅋㅋㅋ
–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 아! 장소 따위는 만들면 그만임!!
– 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재미있어한다.
이곳은 밤 동안 고민해서 만들어 낸 두 번째 방송실이다.
기존의 내 방송실이 일반적인 잡담 방송을 위해 존재한다면, 이 넓은 방송실은 첫 번째 방송실에서는 할 수 없는 활동적인 콘텐츠를 위해 준비한 곳이다.
– 활동적인 컨텐츠?
– ???
– 활동적인이요?
– 드래곤님의 활동적은 도대체 무슨….
– 비상!!!
“…….”
그런 거 아니다 이놈들아.
반쯤 장난으로(장난 맞겠지?) 호들갑을 떠는 시청자들을 한심하게 바라봐준 후, 천천히 옆을 보며 손짓했다.
그리고 오늘의 특별 콘텐츠를 위해 섭외된 특별 손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따각! 따각!
“안녕하세요 인간 여러분!”
– ???
– 눈나?
– 헐? 아라크네아님?
– 거미 눈나다!
– ㅎㄷㄷ
– 허미.
– 마망이다!!
청류의 등장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반은 거대한 거미의 형태를 한 청류의 하반신에 놀라고, 반은 인간 모습을 한 청류의 상반신을 보며 놀란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오늘의 카메라맨이 되어 준 도화가 천천히 카메라를 움직이며 청류의 전신을 자세히 찍어 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간다.
……점점 감탄사가 늘어나는 것 같은데?
– 눈나!!
– ㅗㅜㅑ
– 입가 옆에 점 너무 섹시해요!
– 세쿠시해요!!
“섹시? 섹시가…… 아하! 제가 좀 요염하죠?”
한국어 사전을 뒤적거리던 청류가 허리와 가슴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그런 청류의 자세에, 채팅창이 더욱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이고…….
딱!
“아얏?!”
“요놈!”
나이를 먹어도 한심한 청류의 머리에 딱밤을 날려주었다.
물론 내 아바타로서는 키가 닿지 않으니 쇠구슬을 날렸다.
청류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선정적인 것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너도 이제 1,400살이지 않으냐? 나잇값을 해야지.”
“넹…….”
에휴.
이 아이가 30살일 때부터 거두어들여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를 훈계하듯 해버렸다.
이젠 이 아이도 성년이 훌쩍 지났는데…… 더 이상의 훈계는 그만둬야겠군.
– 1400살?
– 헐.
– 할모니?
– 라나님에 비하면 어린아이 아님?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
“큼큼.”
잠시 소동이 있었지만, 나는 그냥 아무런 일도 없었던 셈으로 쳤다.
방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헛기침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 후, 나는 청류를 모두에게 소개했다.
“소개하마. 이 아이의 이름은 청류. 이 게이트에서 ‘인연의 실잣기’라는 의류점을 운영하고 있단다.”
“안녕하세요 인간 여러분!”
– 오오오!!
– 아티스트!
– 패션 디자이너?!
– 디자이너 눈나!!
– 와!!!!!
오. 생각보다 시청자들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환호성이 울려 퍼지는 채팅창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오늘의 콘텐츠를 공개했다.
“오늘의 콘텐츠는 간단하단다. 지금부터 시청자들의 의견을 받겠다.”
받는 의견은 간단하다.
바로 ‘방송인 라그나에게 어울리는 의상’이다.
– 오?
– 설마?
– 마사카?
– 두근두근
– 큰 거 오나?
“그리고 받은 의견들 중 몇 가지를 투표로 뽑고, 그 의견에 따라 여기 청류가 솜씨를 부릴 것이다.”
“오호호호!!”
휘리리릭!!
내가 가리키자, 청류는 솜씨 좋게 자기 거미줄을 뽑더니 순식간에 그럴듯한 옷 한 벌을 만들어냈다.
물론 좀 급하게 만드는 바람에, 속이 비쳐 보이는 티셔츠였지만 말이다.
– 오오오오?!
– 오오!
– !!!!
– 와아아아!
– 라그나! 라그나!
– 서, 설마?!
“그리고 그 의상을 내가 입어보고, 가장 반응이 좋았던 사람에게는 치킨 기프티콘이었나? 그것을 주도록 하마.”
– 와아아아아아!!
– 아ㅏㅏㅏㅣㅏㅏㅏ!
– 이거지!
– 캬! 이게 방송이지!
– 인형 놀이 시간이다!!
– 모델 라그나님!!!
채팅창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좋은 반응에,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진짜로 좋아하는군.’
‘대박 콘텐츠입니다!!’라며 나에게 아이디어를 건네주었던 매니저의 말이 맞았다.
그 매니저에게 성과금을 지급해야지.
* * *
갑자기 선언된 아이디어 모집이었기에, 내 의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 좀 미리 공지라도 해주시지.
– 힝.
– 의상 아이디어라면 그림도 그려야 하나요?
– 첨부 자료 구해야 하나?
– 큿! 포기.
– 코스프레도 가능?
시청자들의 질문이 연속적으로 쏟아진다.
그런 질문에, 나는 미리 매니저, 청류와 상의한 내용을 공지해주었다.
큼직큼직한 내용만 꼽자면…….
1. 아이디어 제안에는, 별다른 서식이나 제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잊었느냐? 내 능력이라면, 너희들이 어떤 의상을 원하는지 다 읽을 수 있단다.”
– 아.
– 앗아아..
– 그러네?
– 헐.
– 시청자 마음을 읽겠다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 라나님.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뭐, 싫은 사람은 그냥 신청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생각을 읽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어야 한다.
당연히 그것에 동의도 해주어야 하고 말이다.
2. 신청은 한 사람당 한 번, 의상 역시 하나뿐.
“즉, 한 사람당 한 가지 의상만 딱 한 번 신청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아하.
– 그건 이해되네요.
– 넹.
– 아항.
물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대리 신청해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신청을 받게 되면 그것도 힘들겠지?
딱히 노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다.
3. 선정적인 의상이나 저작권에 걸리는 의상은 안 된다.
“인간들의 법에 저촉되는 의상은 모두 불허한다. 다들 명심하도록 하거라.”
– 아쉽.
– 쩝.
– 코스프레도 안 되나?
– 힝.
– !투표
– ㅠㅠ
– 코스프레 방송을 생각해 보면, 코스프레까지는 될 듯?
이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과, ‘코스프레’라는 단어와 함께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코스프레라면…… 아마 인간이 만들어 낸 창작물 속 캐릭터의 의상을 나에게 입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모두 말한 후, 의견 모집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의견 수집이었으나, 뜻밖에 의상 아이디어는 제법 많은 양이 모이기 시작했다.
딱히 전문가처럼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주요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동안, 나는 청류를 바라보았다.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시간도 나의 방송 시간인데, 그냥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는 법.
“시간이 좀 남으니, 그동안 청류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면 해 보려무나.”
– 오!
– 눈나!
– 애인있어요?
– 첫사랑 이야기해주세요!
– 패션 디자이너가 원해 꿈이셨나요?
– 사랑해요!
내 말에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하는 채팅창.
이런 인터넷 방송이라는 문화 자체가 처음인 청류는 당황하는 얼굴로 나와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았다.
“주, 주인님?”
“쯧쯧. 당황하지 말거라. 내가 도와줄 터이니.”
청류의 거미 다리를 톡톡 토닥여 준 후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질문을 확인하고, 그중 가장 종류가 많은 것들만 몇 가지 추렸다.
어차피 아이디어 모집이 다 될 동안만 하는 잡담 시간이니, 질문 몇 가지라면 충분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흠. 청류야. 네가 본래 패션 디자이너가 장래 희망이었냐는 질문이 있구나.”
“패션…… 뭐요?”
“…….”
아,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이쪽 차원의 단어에 대해서 잘 모르지?
나는 이마를 탁 치며 단어를 바꾸었다.
“네가 지금의 직업을 본래부터 꿈꾸었냐는 질문이란다.”
“아하! 재봉사요?”
“음…… 비슷하지.”
사실 청류의 직업을 따져 보자면 ‘패션 디자이너’보다는 ‘재봉사’에 더 가깝긴 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의상을 디자인’하기보다는, ‘일상복 제작’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패션 디자이너’는 ‘레이첼’이…….
“주인님. 지금 그년 생각하셨죠?”
“???”
어떻게 알았지?
휘둥그레진 얼굴로 청류를 바라보자, 청류가 뾰로통한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레이첼과 묘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의 앞에서 실수한 건가?
내가 당황하는 사이, 청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큼큼! 본래부터 재봉사를 목표로 하지는 않았답니다. 전 그냥 평범한 ‘인면지주’였거든요.”
– ????
– 뭐임?
– 갑자기 무림 드리프트임?
– 아닠ㅋㅋㅋ
– 아라크네가 아니라 인면지주였엌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이 뭐죠?”
청류가 채팅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드래곤님의 패션쇼가 시작됩니다.
여기선 삽화가 있으면 최고인데…. ㅎㅎㅎㅎ
죄송요! (호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