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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 ***

         

       ‘길었다.’

         

       여일예는 향에 불을 붙이며 생각했다. 원수들을 쫒아다닌 세월은 반년에 불과했지만 진정 산장 식구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새순이 올라오고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한 계절이었지만 아직 날씨는 차가웠다. 여일예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산장의 식솔 여러분. 오래간만입니다.”

         

       여일예는 눈을 감고 올해의 여정을 떠올렸다. 사천을 떠난 이래 흑묘에게 정보를 받으며 온 천하를 누비고 다녔다. 소문을 듣고 원수들을 잡아 둔 협객들도 몇 있었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살고자 도망친 원수들도 있었으며 숨죽이며 자신의 본거지에서 은거를 택한 이들도 있었다.

         

       21명.

         

       그들을 모두 찾아내 죗값을 치르게 만들었다.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던 소녀는 이제야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여일예는 생각했다. 누군가 복수는 달콤하다 말했고 누군가 복수는 허망하다 말했지만 그건 다 틀린 말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러분들…”

         

       여일예는 그저 그리울 뿐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포근히 안아주던 어머니가 그리웠고 큰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아버지가 그리웠다. 나무를 타고 벽을 탈 때마다 아래서 안절부절 못하던 하인들이 그리웠고 어머니와 아버지 몰래 단 것을 입에 넣어주던 하녀들이 그리웠다.

         

       “이 못난 계집이 이제야 여러분들을 위한 도리를 바로 세웠으니. 저승에서 조금이라도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아직은 차가운 대지와 조금은 따뜻한 바람. 앙상한 나무들과 피어나는 새싹. 계절의 경계에 서 있는 기온을 느끼며 그렇게 여일예는 머릿속에 사람들을 되새기고 추모하며 시간을 보냈다.

         

       향이 다 타면 향을 새로이 올리며 여일예는 계속해서 시간을 보냈다. 원수들의 악다구니로 찌든 마음의 때를 흘려보내고 어렸을 적의 추억을 되살리고 떠나간 자들의 그리움을 달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며칠.

         

       마지막으로 남은 향이 모두 타오른 것을 본 여일예는 마지막으로 무덤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소녀는 이만 떠나보려 합니다. 원수를 갚았으니…이제 은혜도 갚아야지요.”

         

       봄이 찾아오는 시기.

         

       여일예는 사천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도착했군.”

         

       익숙한 성문이 보이자 반사적으로 봇짐을 뒤졌다. 안 쓴지 제법 된 탓에 먼지먹은 흑립을 털어내고 있자니 흑묘 역시 흑립을 써야 함을 깨닫고 봇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후후, 엄청 오래간만에 써 보네요.”

         

       “그러게 말이야.”

         

       사천낭인에 대한 취급은 여전한지 흑립을 눌러쓰고 성문에 다가가자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아아 이 역병 취급 받는 이 서늘한 감각. [사천낭인 호천안]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사천성 전체는 활기가 넘쳤다. 봄이 시작되며 얼어붙은 길이 녹기 시작하니 농민 사람들이 겨우내 집에서 만들어낸 가내수공품들을 싸들고 장사를 위해 사천성을 방문하는 시기.

         

       그렇게 번 돈으로 또 한해 농사를 위한 농기구를 사거나 종자를 보충하기도 하니 자연히 활기가 넘칠 수밖에 없었다.

         

       “하읍.”

         

       익숙한 소리가 들려 옆을 바라보니 흑묘가 쌀튀김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흑묘가 배시시 웃어보이며 말했다.

         

       “어쩐지 여기 오니까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나도 한 줌 줘라.”

         

       그렇게 쌀튀김을 오물거리며 말을 타고 사천성 거리를 나아가고 있자니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굿간에 말을 매어놓고 정문 앞에 섰다.

         

       벌컥!

         

       “이몸 등장!!!”

         

       힘차게 문을 열어젖히며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봐라! 일류검법을 대성하신 미래의 무신 호천안님의 등장이시다!

         

       그러나 돌아오는 호응은 없었다.

         

       싸늘한 정적.

         

       “….”

         

       갑자기 웬 소란이냐는 듯이 주방에서 얼굴을 내민 숙수와 눈이 마주쳤고 숙수는 그냥 가볍게 손을 한번 휘저어 주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다들 어디에 간 걸까요.”

         

       “그러게.”

         

       나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월복당에 머무르는 동안 그래도 동향(?)사람이라 할 수 있는 전후담과 꽤 어울렸다. 당연히 공통된 주제인 사천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전후담은 그때마다 직접 가서 경험해보라는 말만 할 뿐 영 정보를 풀지 않았다.

         

       나 역시도 캐묻지는 않았고.

         

       낙양에 갈때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던 사천성. 사천성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전후담의 입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

         

       “아직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걸까요. 낙양에 떠날 때만 해도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바쁠 계절이 아니잖아.”

         

       춘절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지금은 어느 문파나 내부 단속에 심혈을 기울일 때였다. 겨울 내내 늘어난 수련생들이 다들 생업에 복귀할 시기이기 때문. 일반인들도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이기에 낭인들 고용해 봐야 효과가 적은 때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길래 이렇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싹 사라진 걸까.

         

       “뭐 저녁이 되면 다들 들어오겠지.”

         

       “태수님이나 만나러 갈까요.”

         

       “그래, 사마염 태수님에게도 경과 보고는 해야지.”

         

       “음.”

         

       현 사태 파악도 할 겸, 사마염 태수의 얼굴도 볼 겸 관아로 향했다.

         

       관아에 가서 소식을 전하고 사마염 태수를 만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래간만이로군요. 대협. 낙양에서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마염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사람도 관의 사람이었지. 혁기린이 유야 공주로서의 삶을 마주보기로 한 결정을 반길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가벼운 포상이나 받을 줄 알았던 일이 이리 커질줄은 몰랐습니다. 유야 공주님께서 큰 결심을 하시고 대협께서는 금의위 외부고문이 되었다고 했을 땐 정말 놀랐습니다.”

         

       “그런가요.”

         

       결과적으로 혁기린이 황실에 복귀했으니 사마염 입장에서는 잘 풀린 일이라 할 수 있으려나. 글쎄. 당장은 혁기린이 완전히 유야 공주로 돌아간 듯 보였지만 급한 불을 끄고 나서는 다시 혁기린으로서 사마염 앞에 나타날 텐데 그때의 표정도 꽤 궁금하군.

         

       “그나저나, 오늘 낭인객잔에 복귀하니 사람이 하나도 없더군요. 혹시 사천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허허. 요새 사천성에 일이야 매일 발생하지요.”

         

       그런 말을 하는 것 치고는 사마염의 표정은 평온했다.

         

       “혹시 바깥에서 사천의 소식을 전해 들으셨습니까?”

         

       “한적한 곳에서 수련만 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야기를 드려야겠군요….기념비가 세워지고 한창 황금가의 부지가 비무장으로 탈바꿈되던 시기에 이 사천을 떠나셨었지요.”

         

       그러고보니 비무장이 완성되면 빈 플레티넘 문파 자리를 두고 대전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돌았었는데. 스카우터들도 장난 아니었고.

         

       “황금가의 부지를 이용한 비무장은 금방 완공되었지만 현판의 색이 문파의 성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모든 문파들이 알아버린 상황에서 어찌 손쉽게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사마염은 그때가 생각난다는 듯이 팍삭 늙은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관아에서 중재를 해 달라고 아주 난리였지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십 년은 늙는 기분입니다. 그렇게 가을 내내 방법을 찾았고…결국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지요.”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론이라 흥미롭군.

         

       “바로 개인순위전의 도입이었습니다.”

         

       “….예?”

         

       뭐요? 개인랭크요?

         

       “문파원들의 개인 순위에 따라 백금문파를 선별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백금 무인 100명. 금색 무인 400명. 은색 무인 500명. 동색 무인 2000명. 3천개의 광물패를 제작했지요.”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일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초기에는 아주 난리였지요. 허허. 처음에 3천명의 계급이 정해질 때까지가 아주 하루하루가 난리였습니다. 백금 무인이나 금색 무인들은 금방 정해졌는데 은색이나 동색 무인들은 사실 실력차이가 크지 않아서 문제였지요. 강철 등급을 없앤 것도 말이 많았습니다.”

         

       “…그러게요 왜 없애셨습니까?”

         

       “강철 등급이라도 엄연히 산적 토벌 시 활약한 문파들인데 어쩐지 조롱의 상징으로 쓰이는 것 같아서 폐지했지요.”

         

       그래. 아이언은 없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순위전 운영회도 새로이 수립했지요. 호 낭인님께서 잘 아시는 유사연 님께서 현재 순위전 운영회의 회주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허허허…”

         

       쏟아지는 정보에 정신을 차리질 못하겠다. 사마염이 내 충격을 배려하여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고 나는 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천성이 이렇게 변해버렸다니 정신을 못 차리겠군.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사마염이 허허 웃었다.

         

       “대협께서 제시하신 생각이 사천에 너무 많은 변화를 일으킨 것 같아 부담감이 드십니까?”

         

       “…뭐 여기까지 내다본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본디 세상이 그런 것이지요. 어찌 사람이 천하의 모든 변화를 다 예측하고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대협께서 제시하신 생각이 사천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긍정적인 영향이라.

         

       “사천낭인들 역시 순위전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아십니까?”

         

       “..그들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사실 사천낭인들의 행동양식은 양지라기보다는 음지에 가까웠지요. 그렇지만 이번 광물전의 대두로 사천낭인들은 낭인이라기보다는 좀더 승부청부사에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낭인들도 개인전에 참여해서 공식적인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낭인분들도 더 이상 시장에서 행패를 부리거나 타 문파원을 습격하는 일을 줄이고 개인전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요.”

         

       “허허허허.”

         

       결국에는 낭인들도 랭크전에 뛰어들었다는 말일까. 기가 막혔다.

         

       사마염은 그런 나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오늘 낭인객잔에 아무도 없다 하셨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은 작년의 광물패를 반납하고 올해의 광물패를 지급받는 날이거든요. 사천낭인들은 빠짐 없이 순위전에 임하고 있으니 아무도 없을 수밖에요.”

         

       랭크 게임도 모자라서 시즌제라니!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천성 개인랭크(시즌제) 오픈!

    *
    [도둑고양이]님께서 [2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늘 유쾌상쾌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랜선으로나마~ 짠~ 하겠습니다. 200화 축하 코인이 술대신 목에 싹 스며드네요!

    후원 감사합니다.

    [크리슴]님께서 [1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200화 기념 코인 후원을 해주신 것 같군요! 저번주에 후원해주실 때 200화 기념 후원여부를 고민하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리 후원을 해주시다니 따흐흑…감격입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허허 예약연재를 건다는 것이 또 그냥 업로드를 해 버리고 말았군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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