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1

        

         손에 카드를 쥔-테이블에 덮어놓은 채 끄트머리만 살짝살짝 들추는 것도, 쥔다는 행위에 포함한다면- 플레이어들 사이에 은근한 시선이 오고 갔다.

         

         그러나 비슷한 건 시선 처리뿐, 공교롭게도 ‘나 이외의 모두가 적’이라는 철저한 개인전 성향 강한 홀덤 포커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은 극명하게 갈렸다.

         

         이런 식으로 나누는 게 아직 어색하긴 하다만.

         나와 사샤의 여자조는 옆에 둔 간식거리와 음료를 홀짝이며 긴장을 같이 흘려 넘겼고, 중후한 멋을 과시하듯 알프레드 씨와 슈거 씨는 입가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냉정 침착을 고수했다. …뭔가 성별에 따른 정신 안정제 선호도를 보는 것 같아서 조금 웃기네.

         

         “레이즈, 400만.”

         “으으음… 이 아저씨는 레이즈 타이밍이 이상하단 말이야? 일단 콜.”

         “……받고, 추가로 100만 더 얹지!”

         

         십만 단위로 나눠 떨어지던 블루 칩이 앞선 몇 라운드 동안 소모되다가 전부 내 수중에 굴러 떨어지고 난 뒤로는 그 이하의 베팅조차 없었다.

         

         그래도 자칫 누군가가 고집이라도 부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수천만짜리 싸움이 되고, 거기서 지기라도 하면 자본금이 꽤 묵직하게 깎여 나가는 만큼. 아무래도 길게 놀고 싶은 그들은 적당히 액수를 조절했으나.

         

         “체크 레이즈, 천만! …쫄리시면 지금이라도 방 빼십쇼.”  

         

         “크흠…!”

         “아~ 정말. 얘 좀 봐!”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올 거냐는 듯, 못마땅한 눈초리가 이쪽에 우르르 꽂혔지만…… 뭐, 어쩌라고요.

         꼬우면 직접 쇼다운까지 따라오시면 됩니다? 싫으면… 말고.

         

         기실 베팅이라는 건 무작정 세게 부른다고 좋은 게 아니거늘.

         포커의 투자 대비 효율(Pot odds; 걸린 판돈과 플레이어가 매몰하는 비용 사이의 상관 관계) 따 위는 정말 개무시한 내 막무가내 레이즈에 모두가 긴가민가한 기색을 내비쳤다.

         

         당한 게 있어서 독이 바짝 오른 블러핑? 아니면 승부수를 띄울 정도로 강한 핸드?

         안타깝지만 첫 패배가 워낙 충격적이었던 나는, 확신을 가지고 덤벼드는 게 아니라 머리를 처박고 보겠다는 악바리 정신으로 중무장한지 오래다.

         

         최초의 라운드에서 나는 승산을 의심한 탓에 스스로 이길 기회를 걷어찼다. 그럼 저들은 내 기세등등한 표정이나 막 나가는 베팅을 보고 어떤 의심을 할까?

         

         수립한 전략이나 상황을 읽히지 않도록 감추는데는 무표정이 유리하기에 포커 페이스라는 명칭까지 따로 붙은 건 틀림없다. 하지만 꼭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게 나쁘냐 하면… 아까 전의 나처럼 고민하는 알프레드 씨의 모습을 보니 괜찮은 측면도 있는 것 같은 걸?

         

         “…….”

         “에이씨…!”

         

         슈거 씨는 별다른 말도 없이 내 칩이 나온 걸 보자마자 일찌감치, 사샤는 느낌이 쎄하다고 판단했는지 한 박자 늦게 손패를 내던졌다. 딜러가 조용히 네 장의 카드를 쓸어갔으니 저건 이제 죽은 핸드, 폴드다.

         

         반면 앞선 라운드에서 이미 여러 차례 나한테 골탕을 먹은 노인은, 이번에야말로 첫 게임의 감정적인 복수를 하러 왔다고 짐작했는지 거침없이 올라타셨고.

         

         “콜!”

         

         “허면, 순서대로 핸드 오픈하겠습니다!!”

         

         무슨 바둑알이라도 되는 것 마냥 박스에 내리 찍힌 블랙 칩을 갈무리한 직원 분이 다급하게 손짓하셨다. 중앙에서 핸드를 공개할 테니 어서 제출해달라며 말이다.

         

         체크 레이즈는 상대의 베팅 금액을 수용한 후에 추가로 칩을 들이붓는 행위.

         

         그에 따라 훅 부풀어오른 팟 크기와 상금에 신경이 분산될 법도 하건만, 노인은 쇼다운을 위해 카드를 내밀면서도 이쪽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니… 이게 손님 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질까 봐 염려하는 게 뻔히 보였다.

         

         하지만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아시나 몰라, 카드 게임 류에서 한 번 바닥에 던진 패는 절! 대! 물릴 수 없다는 오랜 격언 되시는데 말이지.

         

         “흐흠…♪”

         

         굳히고 있던 입가를 느슨하게 풀고 씨익 웃어 보였다.

         이것 참 딜러 씨가 괜한 걱정을 하시네~ 세상에 누가 카드 게임 좀 졌다고 그렇게 열을 낸다는 말인가?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먼저 이상한 장난질로 자극해 놓고, 그냥 웃어넘기자고 한 것도 아닌데.

         

         아, 알프레드 씨? 그렇게 집요하게 쳐다 보셔도 전 모릅니다?

         나라고 뭐 구체적으로 승산이니 확률이니 따지고 냉철하게 승부하는 게 아니고, 거의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해서 플레이하는 거라 쇼다운이 끝나기 전까지는 함부로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플레이어 알프레드, Q와 8의 투 페어입니다.”

         

         제출된 핸드에서 Q 한 장을, 그리고 바닥에 깔려 있던 공통 카드에서 8 두 장과 나머지 Q 한 장을 플레이어들 쪽으로 내밀어 완성된 족보를 강조했다.

         

         당연히 각자의 사이버웨어가 가능한 조합쯤은 확인했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직접 보여주는 게 일종의 양식미리라.

         

         ……상대 패를 보고도 태연한 걸 보니 혹시 이겼냐고? 어허, 당연히 이겼지!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해??

         

         “…플레이어 아나스타샤가 K와 8의 투 페어로 이기셨습니다. 이거 접전이었군요.”

         

         “지랄!?”

         “아하핫! 그럼 어디, 잘 먹겠습니다~”

         

         거 나이도 있으신 분이 건강 걱정되게 왜 큰소리를 내신대?

         하여간 손바닥만 가볍게 부딪히는 무음 박수를 치느라 바쁜 나 대신 움직인 제로가 밀려온 칩을 재빠르게 정리. 영롱한 블랙 칩의 소유권이 또 하나 이쪽으로 넘어왔음을 재차 강조했으니.

         

         아슬아슬한 패로 이기나, 압도적으로 높은 패로 이기나 어차피 상금이 변하는 것도 아닐진대 왜 전자가 더 기분이 좋은 걸까? 그건 설령 무지성으로 박은 결과라 할지라도 마치 심리전을 압도한 것처럼 느껴져서 가산점이 붙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이게 다 얼마야? 부피로만 보면 슬슬 다른 사람들이나 비슷해진 것 같은데.

         

         – 현재 보유 중이신 칩은 총 8642만으로, 아무래도 보유하신 블루와 레드 칩이 많으셔서 그런지 실질 자산은 약간 모자라십니다. …그렇지만 이 기세대로면 곧 역전하실지도 모르겠군요. –

         

         “이게 모자라? 아쉽네….”

         

         초반에 내 흥미를 끌기 위함인지, 세 사람 모두 너그럽게 베팅을 받아 주셔서 여러 번 크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억에 달하기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조금만 더 땄으면 제로 동생(?)이나 예비 의체 정도는 거뜬하게 일시불로 나왔을 텐데… 안타깝다 안타까워.

         

         어? 대체 얼마나 이겨댔길래, 잠깐 사이에 지갑이 이렇게 비대해졌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쉬웠다.

         당당하게 ‘꽤 많이’ 승리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 물론 전승은 아닙니다? 칩이 가장 적었던 두번째 라운드가 가장 힘겨웠고. 감히 말하건대 전체 승률로만 보면 두들겨 팼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중간중간에 겪은 패배가 뼈아팠다.

         

         그야 자기가 강한 패를 쥐었을 때만 크게 걸어서 이기고, 약하면 바로 내리는 속편한 방식으로는 계속 이길 수 없는 법이니까.

         순차적인 베팅 기회가 네 번이나 있는 이 커뮤니티 포커라 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임해서야 아무도 승부해주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웠다.

         

         결국 방금처럼 상대가 달려들 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비교적 싸게 알아낸 셈이다.

         단순히 게임 AI를 상대로 마우스 딸깍이는 것과, 현장에서 백만장자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이 헤이븐 홀덤에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무엇보다도 역시 첫 게임에 느꼈던 감각이나 흐름을 대강이나마 익힐 수 있던 게 높은 승률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플레이어의 최종 대기를 결정짓는 리버 카드가 오픈 되었을 때의 직감.

         그걸 바탕으로 마지막 액션을 정하려는 순간 가슴 언저리를 간지럽히는 묘한 예감.

         

         논리나 확률을 따지기 이전에 저 두 가지 요인만 존중했음에도 여태까지 있던 대부분의 쇼다운을 이겼으니, 여기서 더 설명이 필요한가? 200만을 거의 9천만 가까이 불린 내 실력으로 칭찬해도 좋다. 흐흠.

         

         ……뭐, 다른 말로 하면 앞선 세 번의 베팅 단계 동안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집중하다가 운이 안 좋으면 그대로 넣은 칩을 다 읽어 버리기도 한다는 게 문제지만!

         

         “쯧쯧… 한동안 머니 파워로 찍어 누르기만 하다가, 정작 중요한 포커 실력이 녹슬은 거 아니야?”

         “에에잇!! 시끄럽네! 따지고 보면, 못해도 저 아가씨 칩 지분의 60%는 네 년인데 뭘 남일처럼 떠드나!”

         

         “……프하.”

         

         정말 간발의 차이로 진 게 어지간히 신경 쓰이셨는지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알프레드 씨와, 그를 놀리느라 바쁜 사샤를 구경하다가… 마시던 음료수가 어느새 바닥났기에 빨대를 뱉어 버렸다.

         

         확실히 승부처에서 장렬하게 패배한 건 알프레드 씨였지만 그 칩의 출처를 들여다보면, 승패에 큰 미련을 가지지 않고 마구 지르는 사샤의 칩이 라운드를 거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들어 지금에 와서는 눈에 띄게 적어진 게 보였다.

         

         구체적으로 내 수익의 지분을 나누자면 사샤가 6할, 알프레드 씨가 4할 정도 아닐까? 슈거 씨는 야금야금 잃으시다가도 이때다 싶은 타이밍에 다른 두 사람으로부터 손해액을 메꿔내서 큰 변동이 없었고.

         

         그래도 다들 아직 나보다는 보유 칩이 많기는 한데 아무튼.

         

         과연 하이 플로어 손님이다~ 라고 감탄하기엔 이 테이블에 있는 세 사람이 유별나게 칩이 많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들 돈을 잃는다는 사실에 딱히 미련이 없어 보인 것도 한몫 거들었고.

         

         무욕無欲이라는 건 수도자에게도 뒤지게 어려운 경지 아니었던가? 사업체 하나씩 끼고 있는 재력가들이라 좀 더 소액 결제에 초탈한가?

         

         아니면 그 한 번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까지 받았던 ‘악질적인 취미’에 대한 욕구가 크레딧에 대한 욕심을 넘어선 걸지도 모르겠다.

         

         그 증거로, 이렇게 네 명이서 돌리는 포커도 슬슬 지겨웠는지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으니까.

         

       

       

         “크흠! 그냥 일상이 너무 권태로워서 놀러 온 아가씨인 줄 알았더니, 이건 암사자가 따로 없구먼? 내 잠시 밑에 가서 더 초대할 손님이 있나 보고 올 터이니 잠시 셋이서 즐기고 있게!”

         

       

       

         “…네, 뭐 편하신 대로 하세요.”

         “가능하면 귀여운 남자애로 데려와 줘 영감님!”

         

         거기에 새로운 플레이어-희생양-도 몸소 찾아오겠다고 선언하신 건 덤이었고 말이다.

         

         다른 사람이 오는 걸 막을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데, 이럼 괜히 나까지 악질 도박꾼으로 싸잡아 묶이는 게 아닌가 몰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온다. ‘파산 위기’가 온다…!

    머리깨진사람 님의 530코인 후원!? 관대한 개인 후원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다행이네요.

    내일은 예비군으로 인한 휴재입니다. 그런데 장마 시작이라던데… 으에엑.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