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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렘버리 캠프, 2일째 점심.

     “식사는 어떻게 좀 개선되었나?”

     “전혀요.”

     

     나는 잠시 밖으로 빠져나와, 어느 한 백발의 제국 유학생과 접선했다.

     “황녀님께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특등실이 조금 불편해도 잘 지내고 있지. 적어도 여기 야외에 널브러진 캠프에 비하면.”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여기, 진짜 불편합니다.”

     제국 유학생 2학년, 유학생 기숙사 305호의 주인 스칼렛은 자신의 허리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림자양성소의 침대에서 자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 정도라고?”

     “예. 바닥에서 한기는 올라오지, 텐트는 얇고 구멍이 많아서 우풍이 들어오지, 이불과 요는 여름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얇기 짝이 없습니다.”

     “…….”

     “저희 팀원들은 공교롭게도 왕국의 귀족들로 전부 이루어져있는데, 지난 밤 저와 함께 잠을 잔 남작 영애는 저에게 안겨서 같이 이불을 덮고 자기도 했습니다.”

     “추울 때는 사람 온기를 바탕으로 견뎌내는 경우가 있고는 하지. 조금…심하긴 심하군.”

     아무리 땅을 잘 고르고 평평하게 만든다고 해도, 그 위에 몸을 뉘일 장소가 부적절하면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 법.

     “하루만 더 참을 수 있겠나? 3일째에는 ‘그것’이 오기로 해서 말이야.”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저희들에게 좋은 소식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좋은 소식일 거야. 원래 사람이 제일 힘들 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마음이 쏠리는 법이거든.”

     “…….”

     스칼렛은 눈을 반짝이며 기대하는 눈치를 보였다.

     아무래도 정말로 추워서 버티기 힘든 것 같은데, 분명 내일 오전에 도착할 것-‘황금마차’는 스칼렛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최소한 편안하게 잠을 자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침 식사는?”

     “먹었습니다. 딱딱한 빵과 스프였습니다.”

     “학생들 반응은?”

     “귀족 학생들은 대놓고 질색을 하지만, 평민 학생들은 익숙해보이는 눈치였습니다. 오히려 가르쳐주더군요. 톱밥을 섞은 것 같은 빵을 스프에 적셔먹는 방법에 대해서.”

     “스프도 걸죽하다기보다는 맑은 국에 가까웠을텐데. 고생이 많군.”

     “뭐….”

     나와 아스타시아, 누아르와 웬즈데이가 보온 마법이 유지되는 특등실 소파에 반듯하게 누워 자고 아침으로는 냉장고에 마련해둔 보존식을 먹는 동안, 학생들은 진짜로 소위 개고생을 하고 있었다.

     “점심은?”

     “…나리아 공주가 그러더군요. 이 또한 고난이리라. 나라에 역병이 들고 기근이 들었을 때, 이러한 음식도 어쩌면 사치가 될 수 있다.”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군.”

     “네.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으면 내일은 달라질 것이다. 오늘 아침과 점심은 주어진대로 먹고, 당장 교수진에게 찾아가서 생활환경의 개선을 요구하겠다. 그러더군요.”

     “말만 지껄이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문제의 개선 의지를 보인다. 좋아. 학생들의 호감도를 올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군.”

     그저 가만히 앉아서 주면 주는대로 받고 앓으면 앓는 것도 ‘이 또한 시련이리라’라고 넘어가는 게 아니다.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달라질 것이다.

     학생들은 그 희망 한 줄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앞에 닥친 문제를 참고 견뎌낼 것이다.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때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될테지만.

     “확인해줘서 고맙군. 오후 훈련은 저기 행군훈련이었나?”

     “예. 저녁 늦게 돌아올 거라고 교관이 말했습니다.”

     “중간에 이탈해서 캠프로 돌아오지 않도록 해.”

     “……?”

     “캠프로 돌아오면 자칫 잘못 엮여서 위험해질 수 있거든. 아니면 위험에 빠지기를 바라는 녀석을 열외시켜서 캠프로 보내도 좋고.”

     

     시각은 오후 1시 30분.

     하늘에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먹구름이 하늘에 짙게 껴있다.

     “캠프에 피바람이 불 거야. 상대는 낮도 밤도 가리지 않는 미친놈들이거든.”

     * * *

     

     오후, 2시.

     “무기와 짐을 챙겨라! 오와 열을 맞추어, 롤랜드 후작령 경계까지 숲을 가로질러 행군한다!”

     “대열을 흐트리지마라! 앞뒤 간격에 맞추어 이동하라!”

     “노스트럼의 건아들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힘을 내라! 도중에 쓰러지는 자는 낙오자로 선정되어, 나중에 행군 거리만큼 아카데미에 돌아가서 경룡장 트랙을 행군하게 될 것이다!!”

     교관들의 외침에 학생들은 울상을 지었다.

     배는 고프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도 못했다.

     

     “으아아….”

     그렇다고 의지와 정신 하나만으로 행군을 하기에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 퍼진 ’20km’행군이라는 것이 몇몇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빠질까? 저기 아드리아 영애는 다리 아프다고 빠졌던데.”

     “그거 다 꾀병이야. 기사들이 몰라서 빼준 것 같아? 알면서 빼준거야.”

     “그러면 우리도 빠질 수 있으려나?”

     “퍽이나 빼주겠다. 귀족 영애가 더 심하게 다치면 귀족가에서 따지고 드는 게 두려워서 빼주는 거지.”

     “쳇, 우리도 뒷배가 있었으면….”

     누군가는 투덜거리며 대열에 합류하고, 또 누군가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대열에서 벗어난다.

     600명의 학생 중 행군에 참여하는 이의 수는 약 540명.

     학생 중 1/10이 2일째 오후 훈련부터 빠지기 시작했지만, 교관들이 빠진 숫자에 비하면 그다지 많이 빠지지도 않았다.

     “야. 교관들 얼굴 바뀐 것 같지 않아?”

     “투구랑 페이스마스크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목소리가 달라. 특히 황금여명 기사단 쪽 사람들.”

     “왕실 기사단이잖아. 뭐 국왕전하 모시느라 바쁘겠지. 아니면 교대했거나.”

     “그렇겠지? 간밤에 이상한 소문이 있던데….”

     “소문?”

     “어. 기사들에게 호출을 받아서 렘부르 군터 자작성으로 갔던 영애들이 있었는데, 그 영애들이 막상 갔더니 아무것도 차려진 것 하나 없이 돌아가라고 했다더라. 렘부르 군터 자작이 얼굴이 시뻘게졌다던데?”

     “…쓰읍. 뭔가 냄새가 나는 이야기인데.”

     

     훈련 자체가 너무 힘들고, 행군을 하다보면 지루해지기 마련.

     행군 자체도 그다지 속도가 빠르지 않아, 학생들은 하나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생회장님.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행군의 선두에서 오로솔 아카데미의 교기를 건 창대를 들고 걸어가는 나리아는 앞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오로솔 아카데미 전체가 심상치 않아.”

     “예?”

     “롤랜드 경. 그대는 어제와 오늘의 달라진 점이 뭔지 모르겠는가?”

     “어제와 오늘…. 밥이 더럽게 맛이 없어졌다는 것?”

     팰우드 롤랜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옅게 웃었다.

     “또.”

     “혹시 기사들이 바뀐 부분을 말씀하시고자 한다면, 일단 주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

     “황금여명은 학생회장님…공주님의 편이 아니니까요? 저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건지는 모르지만, 분명 좋은 의도는 아닐 겁니다.”

     “……음.”

     나리아는 팰우드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 대상이 ‘이쪽’은 아닐 거야.”

     “공주님?”

     “행군으로 최소 2시간만 걸어가도 많으면 8km…아니지. 10km는 거리가 벌어질 거야. 남녀가 섞여있고 10대 후반 학생들이라고는 하지만, 다들 어느정도 체력 자체는 있으니까.”

     말이 행군이지, 누군가에게는 조금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나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 팰우드 경.”

     “롤랜드 경이라고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대는 경계기는 하지만 고향으로 가는 건데, 기분이 어떤가?”

     “고향이라고 해도, 후작성까지는 거리가 제법 됩니다. 공주님.”

     “우리가 가는 경계에는 ‘아빌레스’라는 마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공주님?”

     팰우드 롤랜드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나리아는 계속 앞만 보고 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좋을대로 해. 하지만 이건 명심하도록. 내가 왕위에 오르면, 나는 사람을 가려서 뽑을 거라는 걸.”

     “가린다고 하시면….”

     “현왕처럼은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지.”

     나리아의 말에 팰우드는 물론이거니와, 그 뒤에 있는 이들도 몇몇이 표정이 굳었다.

     “귀족으로 태어났다고 본인이 진짜로 귀한 줄 알고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것들에게 톱밥 섞인 빵을 쑤셔박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않겠나.”

     “그, 학생회장님?”

     “귀족이라고 일을 맡아서 진행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과 능력을 보여줘야지. 안 그렇나?”

     “그, 그게.”

     “빵은 텁텁하고, 고기는 썩은 걸 향신료로 어떻게든 얼버무리려고 하고, 채소는 시들어서 정량도 아니야. 심지어 물도 정화마법을 쓸 줄 아는 마법사 학생이 없었으면 마시지도 못했을 것이야.”

     “…….”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급히 공수해온다고 말은 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 기억해두게, 롤랜드 경.”

     나리아는 창대를 꽉 움켜쥐었다.

     “오늘 점심에 씹은 돌빵은 잊지 않을 것이야.”

     

     * * *

     스칼렛과 만나고 곧장 열차의 특등실로 돌아온 뒤.

     “그러고보니 누아르. 요즘 검술 수련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응…?”

     제국산 마들렌을 막 입에 넣으려고 하던 누아르가 당황하며 나를 바라본다.

     “호, 혹시 수련하자고 그러는 거야?”

     “일단 입에 넣든 말든, 확실하게 하고 난 뒤에 말을 하는 건 어때.”

     “읍.”

     누아르는 입 앞에 둔 마들렌을 다시 그릇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고는 통로에 섰다.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틀째에 이렇게 될 줄이야.”

     “뭐라고?”

     “좋아. 형. 밖에 나가지 않겠다면, 여기에서 내 전력을 보여주겠어.”

     누아르가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린다.

     나한테 이기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자신을 증명해보겠다는 그 특유의 승부욕 가득한 눈빛에 잠시 헛웃음이 나왔지만, 누아르는 그런 내 헛웃음을 비웃음으로 인식한 건지 눈썹이 찌푸려졌다.

     “확인 안 한다.”

     “어?”

     “확인하려고 했다면 밖에서 확인했겠지. 아스타시아와 웬즈데이를 옆에 두고 칼질을 한다고? 위험하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니었어?”

     “아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뭐냐면, 상대가 어떤 적이 와도 네 한 몸 지킬 수 있냐는 거였다.”

     “당연하지. 나 뿐만 아니라, 웬즈데이도 지킬 수 있어!”

     “그래? 그렇다면, 저기 아스타시아와 웬즈데이를 데리고 저 안으로 들어가 있어라.”

     “…형?”

     내가 가리킨 곳, 누가봐도 ‘세이프룸’처럼 보이는 곳을 본 누아르의 표정이 굳는다.

     “형, 혹시….”

     “제국 암살자들이 오기 딱 좋은 환경이지. 윈체스터 총장을 비롯하여 기사들은 전부 학생들과 같이 행군을 나섰고, 캠프에는 다친 학생들만 남아있….”

     쿵쿵쿵.

     밖에서, 거친 노크 소리가 울린다.

     

     “형, 내가-”

     “아니. 나를 찾아온 손님이다.”

     나는 나서려는 누아르의 어깨를 누르며, 특등실의 문을 열었다.

     “누구지?”

     “저, 배, 배가…!”

     복부를 움켜쥐고 있는 제복의 여학생.

     “이름이…아드리아?”

     “살려…주…!”

     “살려달라.”

     나는 내 복부를 향한 아드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내가 죽어야 그대가 살거나 뭐 그런가본데, 한 가지 알려주지.”

     “익…!!”

     아드리아 영애, 였던 것이 나를 향해 살기를 드러낸다.

     “암살을 하려면 좀 더 확실하게 하도록.”

     퍼ㅡ억.

     나는 암살자의 명치에 지팡이를 꽂아 기절시킨 뒤, 누아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아르. 아무래도, 칼 들어야 할 것 같다.”

     “혀, 형…!”

     “유리 조심하고.”

     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와장창!!

     특등실 유리창이 깨지며, 숲의 색과 비슷한 위장색으로 칠해진 옷을 입은 남자들이 특등실을 습격했다.

     “……!”

     “이것 참. 하긴. 나도 그 말, 좋아하긴 해.”

     나는 지팡이의 끝을 당겨, 칼을 뽑아냈다.

     “들키지만 않으면 암살 맞지. 음.”

     “죽여라ㅡㅡ!”

     억울하지는 않다.

     따지고 보면 선공은 내가 했으니까.

     하지만.

     ‘들키지도 않았는데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건 하나 뿐.’

     저들의 행동원리에 ‘우리 황금여명 기사단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한다’라는 건 없다.

     ‘너희들도 사칭이냐.’

     황금여명 기사단이 제국 암살자를 사칭하여, 그레이 지브롤터를 죽이려고 든다.

     사칭에, 사칭을 이은 암살의 연쇄.

     “그래. 끝까지 가보자고.”

     푸ㅡ욱.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거든.”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암살자를 향해, 정확하게 그 심장에 칼을 쑤셔박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때, 작가의 연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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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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