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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하얀 가면은 날렵하게 앞으로 뛰어들어 노아의 검을 내리쳤다. 노아는 공격을 흘린 후, 미끄러지듯 움직여 검을 쳐냈다.
    ​
    ​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전장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하얀 가면은 곧바로 방향을 바꾸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노아는 몸을 틀어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
    ​
    하얀가면의 공격이 끼긱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아의 갑옷을 스치고 지나갔다. 노아의 검이 날카롭게 빛나며 하얀 가면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
    ​
    하얀 가면은 놀라운 민첩성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는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며, 빠른 연속 공격으로 노아를 압박했다.
    ​
    ​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공격에 노아는 이를 악물었다. 공격 한 방, 한 방이 묵직하고 날카로웠다.
    ​
    ​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겨냥했다. 노아는 능숙하게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막아냈고, 틈을 노려 반격을 시도했다.
    ​
    ​
    그들의 싸움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유려하면서도 치열했다. 하얀 가면은 틈을 노려 검을 튕겨내려 했지만, 노아가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켜 그의 검을 피하며 반격의 찬스를 잡았다.
    ​
    ​
    노아는 온 힘을 다해 빈틈을 파고들었다. 하얀 가면은 허리를 뒤로 휘며 순식간에 목으로 지쳐 드는 공격을 피했다.
    ​
    ​
    툭.
    ​
    ​
    노아의 검 끝이 하얀 가면의 끝을 두드리며 지나갔다.
    ​
    ​
    쩌적, 투둑.
    ​
    ​
    마력이 실린 강한 공격에 가면이 반으로 쪼개져 양쪽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
    ​
    “어…?”
    ​
    ​
    노아는 처음 전장에 나선 병사처럼 멍한 얼굴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실크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멸망하는 세계의 태양처럼 찬란하지만 동시에 탁한 색을 품은 금안이 그녀를 꿰뚫어 볼 듯 직시했다.
    ​
    ​
    잡티 하나 없는 고운 얼굴 위에 자리 잡은 생기 없는 입술이 일자를 그리며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았다. 막연한 예상이 확신이 되어 노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
    ​
    “리안…?”
    ​
    ​
    노아가 넋을 놓은 채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순간,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코앞까지 검이 다가옴에도 그녀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
    ​
    어설프게 들려있던 검이 강한 힘에 옆으로 밀려 나갔다.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은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었다.
    ​
    ​
    재차 그녀의 목을 노린 공격이 품을 파고드는 순간.
    ​
    ​
    챙!
    ​
    ​
    눈앞에 붉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
    ​
    “뭘 하는 거야!”
    ​
    ​
    으르렁거리는 듯한 거친 호통에 노아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
    ​
    “노아!”
    “…!”
    ​
    ​
    다시 전투 자세를 잡기도 전에 그녀는 영혼이 울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시간이 실타래처럼 길게 늘어지고 숨이 천천히 뱉어졌다. 시선이 미끄러지듯 향한 곳에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
    ​
    “리..안?”
    ​
    ​
    찬란한 금안 대신 탁한 검은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리안을 몸속 깊이 받아들인(?) 경험이 그대로 남아 본능적으로 리안의 영혼을 알아본 것이다.
    ​
    ​
    제스와 짭리안(?)의 싸움은 그 어떤 싸움보다 격해, 주변의 땅을 가를 정도였다. 리안은 날아오는 공격을 검으로 쳐내며 제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
    ​
    “아..”
    “노아! 정신 차려!”
    ​
    ​
    짭리안과 리안 사이에서 대혼란에 빠져있던 노아는 겨우 정신을 추스른 후 리안과 함께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
    ​
    “크하하학!”
    “사냥! 사냥이다!”
    ​
    ​
    제스를 따라 전장으로 뛰어난 수인들이 사정없이 적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
    ​
    “퇴각하라!”
    “후퇴해!”
    ​
    ​
    같은 적을 뒀다는 점에서 수인들과 제국은 아군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제국군은 빠르게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그들이 물러난 자리를 수인들이 차지했다.
    ​
    ​
    그들은 날 선 이빨을 드러내며 날렵한 움직임으로 적군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
    ​
    ***
    ​
    ​
    ‘젠장, 젠장! 열등한 것들에게 밀리다니!’
    ​
    ​
    리안의 몸을 차지한 외신은 속으로 연신 욕설을 내뱉었지만, 리안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움직일 줄 몰랐다.
    ​
    ​
    개그 권능 때문에 관람객이 된 것처럼 그저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
    그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이리 쉽게 밀리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
    ​
    ‘도대체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
    ​
    그는 몇 번이고 리안의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마치 갓난아기가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려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
    ​
    말이 좋아 몸을 얻었다지, 상황을 따져보면 봉인 당한 거나 다를 바 없었다.
    ​
    ​
    눈앞에서 날 선 손톱이 스쳐 지나가고, 서늘한 공격이 목을 노려왔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목이 꺾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
    ​
    ‘안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
    ​
    외신이 리안의 몸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묶여있는 상태에선 자칫 리안의 몸이 사망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혼도 불타 사라질 수 있었다.
    ​
    ​
    본능적으로 이를 알아차린 외신은 팽팽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
    ​
    ​
    그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를 굴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자 발악했다.
    ​
    ​
    “….!”
    ​
    ​
    그런 그의 노력에 ‘그분’이 미소를 지어주신 걸까?
    ​
    ​
    ‘찾았다!’
    ​
    ​
    탐욕스러운 시선이 검은 머리를 한 리안을 향했다. 무뚝뚝하게 일자를 그리던 짭리안의 입술이 움찔 떨렸다. 표정의 주도권을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격한 환희를 느낀 탓이었다.
    ​
    ​
    찰나의 순간 어떠한 계획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제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외신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
    ​
    그는 모든 의지, 얼마 없는 인과율까지 끌어와 10초 정도 리안의 몸에 대한 주도권을 뺏었다. 주도권을 얻은 외신은 곧바로.
    ​
    ​
    스윽.
    ​
    ​
    달려드는 제스의 손톱에 목을 내밀었다. 자살이나 다를 바 없는 행위에 제스는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힘을 빼버리고 말았다.
    ​
    ​
    다른 존재가 리안의 몸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나게 되는 건 그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
    ​
    촤악! 우드득!
    ​
    ​
    “커헉!”
   “…!”
    ​
    ​
    끝에 힘을 뺐다고 해도, 그 안에 실려 있던 모든 파괴력까지 사라지지는 건 아니었다.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긴 상처가 그어졌다. 피가 뚝뚝 떨어져 익숙한 혈 향이 훅하고 터져 나왔다.
    ​
    ​
    “허억,헉…크으윽!”
    ​
    ​
    짭 리안은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이다가 이내 상처가 난 팔을 다른 손으로 꾹 눌렀다. 
    ​
    ​
    주도권을 놓치기 직전, 외신은 리안의 몸을 그대로 멈춰버렸다. 숨을 쉬는 것부터, 심장이 뛰는 것까지 일제히 멈춰버리자, 당연한 수순처럼 리안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
    ​
    “…!”
    ​
    ​
    제스는 반사적으로 쓰러지는 리안의 몸을 안아 들며 털을 삐죽 세웠다. 예민한 감각은 리안의 심장 소리와 숨소리가 죽어가는 걸 적나라하게 느꼈다.
    ​
    ​
    ‘이건… 이건 주인님이, 리안이 아니야.’
    ​
    ​
    알고 있음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스는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하는 리안의 몸을 번쩍 안아 든 채 몸을 휙 돌려 주둔지를 향했다. 
    ​
    ​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리안을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
    ​
    제스가 전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히든카드인 짭 리안의 패배를 뒤늦게 확인한 마왕군이 철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
    “어이! 어딜 가는 거냐!”
    “거기서!”
    ​
    ​
    잔뜩 흥분한 수인들이 그들을 추적하려 했지만, 강력한 마법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
    ​
    결국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싸움의 막이 내렸다.
    ​
    ​
    ***
    ​
    ​
    새롭게 등장한 강한 아군, 하얀 가면이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적의 죽음.
    ​
    ​
    제국군 입장에선 손뼉을 치며 즐거워해야 할 상황이지만,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무겁고 차가웠다.
    ​
    ​
    갈색 머리카락에 파란 눈을 가진 지휘관은 입을 꾹 다문 채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쉼 없이 입을 열어 ‘하얀 가면’에 대해 떠들었다.
    ​
    ​
    하얀 가면 그러니까 짭 리안은 온갖 전장에서 무수히 많은 공을 세웠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국군을 쓸어버리고 다녔다는 말이다.
    ​
    ​
    악명이 얼마나 높은지 그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말에서 떨어진 지휘관이 있을 정도였다. 
    ​
    ​
    그런 무시무시한 놈을 무려 그들의 군대가 잡았다!
    ​
    ​
    직접적으로 하얀 가면을 쓰러뜨린 건 수인 무리의 대장 제스였기에 그들에게 공이 있다고 말하긴 무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수인들을 숲속에서 뛰쳐나온 짐승과 비슷한 취급을 하고 있었기에 하얀 가면을 쓰러뜨린 공은 그들이 꿀꺽할 계획이었다.
    ​
    ​
    그들이 목소리 높이고 있는 건 이번에 얻은 공을 어떻게 잘 나눠 가질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
    ​
    “처음부터 배신한 게 틀림없습니다!”
   “마왕성에 납치되었다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그 평민 놈도 마왕군과 한패일지 모릅니다!”
    ​
    ​
    노아는 물론 리안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가 터져 나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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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면은 날렵하게 앞으로 뛰어들어 노아의 검을 내리쳤다. 노아는 공격을 흘린 후, 미끄러지듯 움직여 검을 쳐냈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전장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하얀 가면은 곧바로 방향을 바꾸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노아는 몸을 틀어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얀가면의 공격이 끼긱거리는 소리를 내며 노아의 갑옷을 스치고 지나갔다. 노아의 검이 날카롭게 빛나며 하얀 가면의 옆구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하얀 가면은 놀라운 민첩성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는 다시 공격 자세를 취하며, 빠른 연속 공격으로 노아를 압박했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른 공격에 노아는 이를 악물었다. 공격 한 방, 한 방이 묵직하고 날카로웠다.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겨냥했다. 노아는 능숙하게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막아냈고, 틈을 노려 반격을 시도했다.

그들의 싸움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유려하면서도 치열했다. 하얀 가면은 틈을 노려 검을 튕겨내려 했지만, 노아가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켜 그의 검을 피하며 반격의 찬스를 잡았다.

노아는 온 힘을 다해 빈틈을 파고들었다. 하얀 가면은 허리를 뒤로 휘며 순식간에 목으로 지쳐 드는 공격을 피했다.

툭.

노아의 검 끝이 하얀 가면의 끝을 두드리며 지나갔다.

쩌적, 투둑.

마력이 실린 강한 공격에 가면이 반으로 쪼개져 양쪽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어…?”

노아는 처음 전장에 나선 병사처럼 멍한 얼굴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실크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멸망하는 세계의 태양처럼 찬란하지만 동시에 탁한 색을 품은 금안이 그녀를 꿰뚫어 볼 듯 직시했다.

잡티 하나 없는 고운 얼굴 위에 자리 잡은 생기 없는 입술이 일자를 그리며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았다. 막연한 예상이 확신이 되어 노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리안…?”

노아가 넋을 놓은 채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순간,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코앞까지 검이 다가옴에도 그녀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어설프게 들려있던 검이 강한 힘에 옆으로 밀려 나갔다.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은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발악이었다.

재차 그녀의 목을 노린 공격이 품을 파고드는 순간.

챙!

눈앞에 붉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려버렸다.

“뭘 하는 거야!”

으르렁거리는 듯한 거친 호통에 노아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노아!”

“…!”

다시 전투 자세를 잡기도 전에 그녀는 영혼이 울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시간이 실타래처럼 길게 늘어지고 숨이 천천히 뱉어졌다. 시선이 미끄러지듯 향한 곳에는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리..안?”

찬란한 금안 대신 탁한 검은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리안을 몸속 깊이 받아들인(?) 경험이 그대로 남아 본능적으로 리안의 영혼을 알아본 것이다.

제스와 짭리안(?)의 싸움은 그 어떤 싸움보다 격해, 주변의 땅을 가를 정도였다. 리안은 날아오는 공격을 검으로 쳐내며 제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아..”

“노아! 정신 차려!”

짭리안과 리안 사이에서 대혼란에 빠져있던 노아는 겨우 정신을 추스른 후 리안과 함께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크하하학!”

“사냥! 사냥이다!”

제스를 따라 전장으로 뛰어난 수인들이 사정없이 적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퇴각하라!”

“후퇴해!”

같은 적을 뒀다는 점에서 수인들과 제국은 아군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제국군은 빠르게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그들이 물러난 자리를 수인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날 선 이빨을 드러내며 날렵한 움직임으로 적군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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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열등한 것들에게 밀리다니!’

리안의 몸을 차지한 외신은 속으로 연신 욕설을 내뱉었지만, 리안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움직일 줄 몰랐다.

개그 권능 때문에 관람객이 된 것처럼 그저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이리 쉽게 밀리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도대체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그는 몇 번이고 리안의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마치 갓난아기가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리려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말이 좋아 몸을 얻었다지, 상황을 따져보면 봉인 당한 거나 다를 바 없었다.

눈앞에서 날 선 손톱이 스쳐 지나가고, 서늘한 공격이 목을 노려왔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목이 꺾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안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외신이 리안의 몸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묶여있는 상태에선 자칫 리안의 몸이 사망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혼도 불타 사라질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를 알아차린 외신은 팽팽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

그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를 굴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자 발악했다.

“….!”

그런 그의 노력에 ‘그분’이 미소를 지어주신 걸까?

‘찾았다!’

탐욕스러운 시선이 검은 머리를 한 리안을 향했다. 무뚝뚝하게 일자를 그리던 짭리안의 입술이 움찔 떨렸다. 표정의 주도권을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격한 환희를 느낀 탓이었다.

찰나의 순간 어떠한 계획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제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외신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그는 모든 의지, 얼마 없는 인과율까지 끌어와 10초 정도 리안의 몸에 대한 주도권을 뺏었다. 주도권을 얻은 외신은 곧바로.

스윽.

달려드는 제스의 손톱에 목을 내밀었다. 자살이나 다를 바 없는 행위에 제스는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힘을 빼버리고 말았다.

다른 존재가 리안의 몸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나게 되는 건 그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촤악! 우드득!

“커헉!”

“…!”

끝에 힘을 뺐다고 해도, 그 안에 실려 있던 모든 파괴력까지 사라지지는 건 아니었다.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긴 상처가 그어졌다. 피가 뚝뚝 떨어져 익숙한 혈 향이 훅하고 터져 나왔다.

“허억,헉…크으윽!”

짭 리안은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이다가 이내 상처가 난 팔을 다른 손으로 꾹 눌렀다.

주도권을 놓치기 직전, 외신은 리안의 몸을 그대로 멈춰버렸다. 숨을 쉬는 것부터, 심장이 뛰는 것까지 일제히 멈춰버리자, 당연한 수순처럼 리안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

제스는 반사적으로 쓰러지는 리안의 몸을 안아 들며 털을 삐죽 세웠다. 예민한 감각은 리안의 심장 소리와 숨소리가 죽어가는 걸 적나라하게 느꼈다.

‘이건… 이건 주인님이, 리안이 아니야.’

알고 있음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스는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하는 리안의 몸을 번쩍 안아 든 채 몸을 휙 돌려 주둔지를 향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리안을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제스가 전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히든카드인 짭 리안의 패배를 뒤늦게 확인한 마왕군이 철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이! 어딜 가는 거냐!”

“거기서!”

잔뜩 흥분한 수인들이 그들을 추적하려 했지만, 강력한 마법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싸움의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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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등장한 강한 아군, 하얀 가면이라 불리던 무시무시한 적의 죽음.

제국군 입장에선 손뼉을 치며 즐거워해야 할 상황이지만,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무겁고 차가웠다.

갈색 머리카락에 파란 눈을 가진 지휘관은 입을 꾹 다문 채 회의실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쉼 없이 입을 열어 ‘하얀 가면’에 대해 떠들었다.

하얀 가면 그러니까 짭 리안은 온갖 전장에서 무수히 많은 공을 세웠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국군을 쓸어버리고 다녔다는 말이다.

악명이 얼마나 높은지 그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말에서 떨어진 지휘관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무시무시한 놈을 무려 그들의 군대가 잡았다!

직접적으로 하얀 가면을 쓰러뜨린 건 수인 무리의 대장 제스였기에 그들에게 공이 있다고 말하긴 무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수인들을 숲속에서 뛰쳐나온 짐승과 비슷한 취급을 하고 있었기에 하얀 가면을 쓰러뜨린 공은 그들이 꿀꺽할 계획이었다.

그들이 목소리 높이고 있는 건 이번에 얻은 공을 어떻게 잘 나눠 가질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배신한 게 틀림없습니다!”

“마왕성에 납치되었다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그 평민 놈도 마왕군과 한패일지 모릅니다!”

노아는 물론 리안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가 터져 나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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