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1

   이번에 도전을 하러 온 곳은 민첩성을 시험하는 곳이다.

   

   저 멀리서 날아드는 마력탄을 피하는 게임.

   

   맞더라도 아프진 않다만 모두 다 피하지 못하면 실패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걸려있기에 맞아선 안 되지.

   

   평소 두터운 갑옷과 내 몸을 가리는 거대한 방패. 거기에 할배까지 들고 다니며 내달리던 나다.

   

   그 때에도 아서를 비롯한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배려해 속도를 늦추어야 했는데 그 모든 짐을 내던진 데다 도핑을 통해 신체능력까지 끌어올린 나의 민첩성이 어찌 부족하겠는가.

   

   그 어떤 궤상한 궤적으로 날아든다 한들 그 모든 걸 피할 자신이 있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 외침과 함께 날아드는 마력탄을 바라보던 난 그 즉시 승리를 확신했다.

   

   이 패턴.

   

   내가 게임에서 보던 것과 똑같아.

   

   난 과거 축제의 학살자 퀘스트에 집착했던 적이 있었다.

   

   왜 그랬냐고?

   

   꼴받잖아.

   

   내가 아무리 잘해도 승리할 수 없는 퀘스트라니.

   

   어디까지나 보너스에 불과하기에 굳이 깨지 않아도 되는 걸 알았지만 합리성이란 단어와 거리가 멀었던 난 이를 악물고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개같이 멸망했다.

   

   운이라는 변수는 한낱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예전에는 미친 짓을 하다 시간 낭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그 때의 노력에 보답을 받게 될 줄이야.

   

   오른 쪽으로 한 걸음 걸은 후에 왼 쪽으로 두 걸음.

   

   그 후에 위로 뛰면서 뒤로 구르기.

   

   그리고…

   

   <미래를 보기라도 하는 게냐?>

   ‘그럴지도요.’

   <그래도 주신께서 도움을 주시긴 하는가 보구나.>

   

   과거 내가 했던 노력이 주신의 은혜가 되는 것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순 없었다.

   

   모니터 바깥에서 이 패턴을 외웠다고 어떻게 이야기하겠는가.

   

   아. 전향 마렵다.

   

   내가 하는 일이 개허접 변태 쓰레기 주신의 위업이 되는 게 너무 싫어.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내 몸은 과거의 기억을 충실히 이행했고 그렇게 난 아무런 상처도 없이 이번 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완벽하게 파훼당하리라곤 생각지 않은 것일까.

   

   노점의 주인은 승리했다는 말을 전하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아저씨. 끝났죠?’

   “거기. 콧수염. 왜 말을 안 해? 끝났잖아.”

   

   “…축하드립니다. 이번 대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설마 충격 받은 거야? 이 따위 허접한 패턴으로 날 맞출 생각을 했다니. 우스꽝스러운 수염만큼이나 허술한 어른이네. 쪽팔리지 않아?”

   

   실수했다. 딴 생각을 하다 무의식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해버렸어.

   

   얼굴이 벌게진 노점주인의 얼굴을 본 나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거기에 더 있어 봐야 노점상의 혈관에 부담을 줄 뿐이었으니까.

   

   하아. 이걸로 이제 두 번만 노점에서 더 승리하면 되는 건가.

   

   도핑을 끝마치고 난 후부터 나는 쉬지 않고 수많은 노점을 돌아다녔다.

   

   언제 도핑의 효과가 떨어질지 모르기에 계속해서 전력질주를 했지.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페이비와 버프와 도핑, 거기에 빙의 전 축제를 공략하던 때의 지식이 합쳐진 덕에 여러 노점에서 연승을 거두었거든.

   

   몸을 움직이는 쪽은 피지컬과 내 지식으로 해결을 봤고,.

   

   운의 영향이 큰 녀석 셋은 혹시 모를 변수의 제거를 위해 팔찌로 넘겨버렸고.

   

   암기를 요하는 노점에서는 로그 기능을 활용해서 손쉽게 통과했지.

   

   그 때에 나는 흐름을 탔다고 생각했다.

   

   며칠 간 앓아누울 각오를 한 것으로 개허접 주신의 수작질을 분쇄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 허

   

   나 예상외의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퀴즈를 내는 노점이었다.

   

   <틀렸다. 당시 그 녀석의 별명은 수호왕이었다. 수도 공성전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맹렬히 싸운 덕분에 얻은 별명이지.>

   ‘네? 그치만.’

   <네 기억이 정확하겠느냐. 그 때 함께 공성을 했던 내 기억이 정확하겠느냐.>

   

   과거 암기한 대로 퀴즈의 정답을 적어내던 나였지만 중간에 할배가 태클을 걸었다.

   

   그게 아니라고. 정답은 다른 것이라고.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나였지만 할배가 너무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했던 나머지 내가 잘못 기억했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됐지.

   

   그게 실수였다.

   

   고이다 못해 썩은 내 기억이 틀릴 리가 없음에도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실수.

   

   <…어? 왜지? 왜 저 녀석의 별명이.>

   ‘할아버지이이이이이!’

   

   믿고 있던 할배의 배신에 화가 나 소리를 지르던 나였지만 진정한 후 할배의 설명을 들으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단순했다.

   

   할배의 기억은 왕이 살아있던 당시의 일.

   

   문제가 물은 것은 후대에 어떻게 명명 되었는지.

   

   이백에 달하는 세월이 만들어 낸 괴리는 할배를 오답으로 이끌었다.

   

   <미안하구나. 여아야. 내가 이런 실수를.>

   ‘괜찮아요. 할아버지. 근데 그거 아세요? 파트란 가문의 마굿간이 참 크더라고요. 거기에서 나오는 거름의 양도 무척이나 많겠죠?’

   <미안하다! 미안하다 여아야! 그것만큼은! 그것만큼은 봐다오!>

   

   흐름이 끊어져버린 탓일까.

   

   비교적 운의 영향이 작다 판단 내렸던 노점에서 두 번의 패배를 적립했다.

   

   솔직히 억까였어.

   

   아무리 운이 안 따라줘도 정도가 있지.

   

   그 정도면 다이스 갓이 주사위 끝으로 내 뚝배기를 두드려 팬 수준이었다고.

   

   이거 아무리봐도 허접 주신이 무슨 짓을 한 거 아냐?

   

   가만 내버려 두면 내가 이길 거 같으니까 일부러 나한테 악운을 몰아준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시험을 모두 다 찍어도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내가 운으로 억까를 당하다니!

   

   세 번의 연패 끝에 남은 코인을 모두 다 날려버린 나는 낭떠러지 앞까지 몰려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남은 노점의 수가 단 둘이라는 것, 그리고 그 두 개 모두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라는 거겠지.

   

   어느 쪽이건 내가 잘 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녀석이지만 자신감의 차이가 있으니까.

   

   제일 자신 있는 걸 뒤로 미루자.

   

   그리 결정을 내린 나는 즉시 발을 움직였고, 그 곳에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을 발견했다.

   

   프레이.

   

   훗날 차기 검성이 될 재능을 지닌 검사.

   

   나 때문인 것 같긴 한데 게임에서보다 한결 유해진 녀석.

   

   그녀는 한 손에 검을 든 채 노점에서의 대결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노점에서 펼쳐지는 대결은 날아드는 물건들을 모두 베어 넘겨버릴 것.

   

   날아오는 속도도. 크기도. 단단함도. 저마다 제각각이기에 귀찮은 대결이지만 검을 든 프레이는 너무도 여유로웠다.

   

   ‘할아버지. 쟤 검술이 달라진 거 같은데요.’

   

   검술에 관한 소양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알 수 있다.

   

   아카데미 1학기 내내 프레이와 대련을 했던 나다.

   

   그녀의 검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빠르고 거세며 제멋대로이며 이기적인 검.

   

   전적으로 자신의 재능에 의존한 폭력에 가까운 검술.

   

   허나 지금은 다르다. 프레이가 지닌 검술의 근간은 그대로이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깔끔해졌다고 해야 할까. 정제되었다고 해야 할까.

   

   <요 두 달간 한 걸음 더 나아갔구나.>

   

   분명 켄트 영지로 돌아가서 검술을 배울 거라고 했었지.

   

   무언가를 깨달았나보네.

   

   하여간 프레이 쟤도 어마어마한 재능충이라니까.

   

   2학기가 되면 더 상대하기 어려워지겠어.

   

   “축하드립니다.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쉬웠어. 엄청.”

   “…역시 켄트 영애시군요.”

   

   헛웃음을 흘리는 노점상을 뒤로 하던 프레이는 이내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즉시 내 쪽으로 달려왔다.

   

   “오랜만.”

   

   ‘안녕하세요. 프레이.’

   “그래. 바보 검사.”

   

   프레이의 표정은 여느 때처럼 무표정했지만 바보라 불린 순간에는 미세하게나마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보라는 호칭이 그리도 좋은 걸까.

   

   “루시도 여기에 참가해?”

   

   ‘네.’

   “보면 알지 않아?”

   

   “경쟁이구나.”

   

   나를 쓰러트리겠다며 프레이가 결의에 찬 것마냥 주먹을 꼭 쥐었지만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얘 피지컬로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니면 모두 다 실패할 테니까.

   

   “나중에 봐.”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종걸음으로 떠나가던 그녀는 이내 갑자기 멈춰서더니 다시금 내 앞으로 되돌아 왔다.

   

   ‘뭔가요?’

   “뭐야. 바보 검사.”

   

   “바이바이.”

   

   그리곤 힘빠지는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전하곤 다시 달려가 버렸다.

   

   어… 음. 저건 또 뭐야?

   

   방학 사이에 프레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음 분!”

   

   멍하니 프레이가 떠나간 자리를 보고 있으려니 노점상이 나를 불렀다.

   

   “알른 영애. 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괜찮아요.’

   “이런 허접한 노점에서 노는데 설명이 필요할 리가 없잖아.”

   

   노점상은 딱딱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손에 검을 쥐어 주었다.

   

   <검을 쥐는 게 서투르구나.>

   ‘당연하죠. 저 검 수련은 한 적 없으니까요.’

   

   곁눈질로 배운 건 있지만 그 뿐.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검과 관련된 스킬도 없다.

   

   <할 수 있겠느냐?>

   ‘물론이죠.’

   

   그렇지만 괜찮다.

   

   이건 목숨을 건 전투가 아닌 놀이일 뿐이고. 여기서 승리하는 데엔 민첩성. 힘. 반사신경. 그리고 날아오는 물건의 종류와 궤도까지 기억하는 썩은물의 두뇌 정도면 충분하니까.

   

   *

   

   베기 노점에서 가볍게 승리를 거둔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노점 쪽으로 발을 옮겼다.

   

   하아. 할배가 이상한 소리만 안 했어도 지금쯤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너무 아쉽다.

   

   <언제까지 그걸 가지고 늘어질 셈이냐.>

   ‘평생요.’

   <그럴 바엔 그냥 벌을 내려라!>

   ‘싫은데요.’

   

   이렇게 명백한 할배의 잘못이 또 언제 생길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평생 우려먹을 거에요.

   

   할배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이 일을 언급할 거라고요.

   

   <독하구나. 독해.>

   

   한탄 어린 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음 짓고 있으려니 저 앞에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노점 근처니까 사람이 모여드는 건 당연하다만 그 구성이 이상했다.

   

   병사에 기사. 귀족으로 보이는 이 여럿. 거기에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은.

   

   1 왕자.

   

   르네 솔라딘.

   

   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일단 잠시 도망치자.

   

   어차피 노점에서 대결하고 나면 물러설 테니까 다른 데서 시간 떼우다가.

   

   “알른 가문의 루시 영애 아니신가.”

   

   1왕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선이 내 쪽으로 닿는다.

   

   젠장. 늦었다.

   

   “축제는 잘 즐기고 있나?”

   

   ‘네. 물론입니다!’

   “전 누구랑 달리 햇빛을 좋아해서요. 잘 즐기고 있죠.”

   

   “허. 그래?”

   

   1왕자의 미간이 좁아지는 게 보인다.

   

   하아. 이래서 만나기 싫었던 건데.

   

   “궁금하군. 몇 개의 노점에서 승리했지?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그대이니 분명 많은 곳에서 승리했을 터.”

   

   ‘13개입니다.’

   “13개입니다. 음침한 외톨이 왕자님께선 당연히 저보다 많으시겠죠?”

   

   “…쯧. 동률인가.”

   

   그 사이에 13개 노점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누구는 도핑에 아이템에 치트 수준의 지식까지 써먹어서 겨우 13개인데.

   

   역시 최종보스는 최종보스인가. 대단하네 진짜.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다만 그대도 이 곳이 마지막인가?”

   

   감탄하다 무의식 중에 고갤 끄덕인 나는 뒤늦게 1왕자가 한 말을 이해했다.

   

   그대도 라는 건 분명.

   

   “그렇단 말이지. 마침 잘 됐군. 본인도 이 곳이 마지막인데 말이야.”

   

   그리 이야기한 1왕자는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제안을 하나 하지. 피차 이 곳에서의 결과로 승부가 날 터인데 대결을 하지 않겠나?”

   

   날 내려다보는 검은 색의 눈이 보인다.

   

   그 눈에 담긴 의지는 분명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친히 날 박살내겠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지닌 것도 많은 이의 처사치고는 치졸하고 비겁한 제안이었지만.

   

   ‘그럴까요?’

   “음침한 외톨이 왕자님께서 그토록 부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를 수락했다.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노점의 대결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었으니까.

   

   가상 던전 공략.

   

   노점 측에서 주는 조건을 가지고 공략법을 내어 놓는 것.

   

   야. 1왕자.

   

   아니 르네 솔라딘.

   

   너 잘못 걸렸어.

   

   네 상대는 아카데미 1학년에 불과한 꼬맹이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던전 공략법을 외우고 있는 썩은물이거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가 200화였죠.
원래는 언급하며 감사인사를 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작품을 올리느라 정신이 없어 잊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한 화가 지난 지금 다시 인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사랑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즐거운 이야기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초도님 2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꾸준히 관심을 보여주심은 물론이고 응원의 후원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노력하는 작가 되겠습니다!

파페포포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작품이 시작될 무렵부터 계속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말이 날 때까지 재밌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