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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1

    불길한 달빛이 내리쬐는 마포구 한복판,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조그마한 원룸이 있었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과 아기자기한 가구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불길한 밤거리와 대조적인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조명은 차분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벽지는 부드러운 색으로 그 램프의 빛을 반사했다.

    방안에는 충분한 온기가 돌고 있는데도, 푹신한 소파 위에는 담요를 잔뜩 끌어안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야말로 담요의 요새를 만들어서, 그 안에 틀어박힌 여자는 시끄럽게 떠드는 TV 앞에 앉아서 따뜻한 음료를 조금씩 마셨다.

    TV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여자는 TV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과자와 황금색 오브젝트에게만 신경 쓰고 있었다.

    “따뜻하지?”

    여자는 조그맣게 만든 니트를 황금 사신에게 입혀주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황금 사신도 즐겁게 웃는 여자를 보며, 행복한 표정으로 마주 웃어주었다.

    TV에서는 황금 사신이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으니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황금 사신의 위험 행동이 계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기분 나쁜 모양으로 녹아내리고 있거나, 적의를 가득 품은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호적인 오브젝트가 이제까지와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신호이니,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황금 사신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며,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송이었다.

    여자는 황금 사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도, 이런 방송만 보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불안해하는 여자를 보자, 황금 사신은 여자의 손가락을 꼭 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여자는 불안한 기분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는 황금 사신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렇게 귀여운 애들인데, 왜들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여자는 황금 사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과자를 하나씩 먹이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한 작은 몸으로 잔뜩 과자를 먹는 황금 사신이 신기해서 계속 먹이고 있던 도중, 탁자 위에 무언가가 올라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뚜방뚜방.

    조금 무표정하지만, 니트를 입은 황금 사신과 똑같이 생긴 황금 사신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니트 황금 사신은 또 다른 황금 사신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탁자 위로 뛰어내린 뒤, 황금 사신과 마주 보고 섰다.

    갸웃.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니트 황금 사신은 얼굴에 궁금증을 가득 품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지?’

    ‘미니 사신 정원에서도 본 적이 없어.’

    니트 황금 사신이 궁금증을 가득 품고 움직일 때마다, 새로 나타난 황금 사신도 거울처럼 행동을 따라 했다.

    “와, 정말 똑같이 생겼어.”

    똑같이 생긴 황금 사신 둘이 똑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며, 여자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니트 황금 사신은 ‘누구?’라고 계속 의지를 뿜어내고 있었지만, 새로 나타난 황금 사신은 마치 의지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저 행동만을 따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행동을 따라 하기만 하던 황금 사신은 인간을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니트 황금 사신은 그 황금 사신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마치 ‘너는 못 가!’라고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 황금 사신이 독점욕이 꽤 강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같은 황금 사신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여자는 다른 황금 사신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던 황금 사신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혼내는 것처럼 말했다.

    황금 사신은 여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책망하는 듯한 느낌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자, 이리 온!”

    소파에 앉은 여자는 짝짝 박수를 치며, 양팔을 벌리고 새로운 황금 사신이 뚜방뚜방 걸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던 황금 사신은 고개를 숙이고, 기쁜 것처럼 웃었다.

    입꼬리가 귀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찢어진 기괴한 미소였다.

    ‘뭔가 이상해!’라고 느끼기 무섭게, 기괴한 미소의 황금 사신은 빠른 속도로 여자를 향해 뛰어들었다.

    황금 사신의 손에는 불길한 노란 빛을 흩뿌리는 광선검이 들려있었다.

    “!”

    하지만 그 순간, 니트를 입은 황금 사신이 폴짝 뛰어올라, 광선검에 대신 찔렸다.

    화르륵.

    고열의 광선검에 관통당한 니트는 순식간에 불타오르고, 심장을 관통당한 황금 사신은 ‘빨리 도망쳐!’라고 말하는 것 같은 다급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포구 어디에서든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하지만 인간을 지키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들어간 광채였다.

    털썩.

    빛을 잔뜩 뿜어낸 황금 사신은 마치 시체처럼 바닥에 떨어져 축 늘어졌다.

    가짜 황금 사신은 자신의 기습이 실패하자, 호두처럼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아… 안돼. 사신아.”

    여자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축 늘어진 황금 사신을 들어 올렸지만, 황금 사신은 죽은 것처럼 눈을 꼭 감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황금 사신의 반란인 건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죽은 것처럼 눈을 꼭 감고 있었더니, 푸른 사신이 오히려 더욱 당황해서 문자열을 잔뜩 늘어놓기 시작했다.

    <상처, 빨리 나아주세요.>

    <우리들을 보호해 주세요.>

    문자열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치유의 물안개가 내 몸에 내려앉고, 물방울이 나를 찌른 황금 사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성공하면 혁명!’

    붉은 사신은 내가 매일매일 귓가에 속삭이던 의지를 똑같이 따라 하며, 당당한 표정으로 붉은 의지를 뿜어냈다.

    물론 표정은 너무 해맑아서,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내가 이 정도로는 절대로 안 죽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붉은 망치와 낫을 들고서 황금 사신과 대치를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자세히 황금 사신을 살펴보자, 조금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심장의 불꽃은 장작과 유사한 느낌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리고 저 황금 사신에게서는 나와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가짜네.

    하지만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라서, 황금 사신이들은 쉽게 속아버릴 것 같았다.

    가짜라면 거리낄 게 없지. 

    나는 관통당한 상처를 순식간에 치료하고, 감았던 눈을 뜨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일어서자, 미니 사신들은 굉장히 즐거운 표정으로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가짜 황금 사신은 굉장히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는데, 순식간에 당황을 지워버리고 광선검을 들어 올렸다.

    마치 자신이 나보다 강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설마 내가 황금 사신들이랑 투닥거리던 걸 참고한 건가? 

    격투기, 칼싸움, 달리기, 숨바꼭질. 

    마포구에 있는 동안 심심풀이로 여러 가지 놀이를 했지만, 내가 이긴 것은 손에 꼽을 정도긴 했다.

    그래서 내가 약해 보였나?

    그럼 알려줘야지. 

    아이들과 싸울 땐 봐주고 있었다는 걸!

    나는 양손을 검게 물들이며 손을 뻗어 ‘뀩’을 날렸다.

    막대한 장작을 태워서 만든 검은 구체가 허공에 나타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가짜 황금 사신은 제1 검의 검술을 그대로 옮겨 넣은 것 같은 유려한 검술을 펼치며 검은 구체를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공간을 가르는 검술이라고 해도, 검은 구체에 들어간 장작을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개미가 아무리 권투를 익혀봤자, 코끼리를 이길 수는 없는 거라고!’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베어 물면서, 가짜 황금 사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엄마 강해!>

    붉은 사신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고, 푸른 사신은 작게 손끝으로 짝짝 박수를 치고 있었다.

    간단하군.

    ‘그나저나 다른 황금 사신들은 괜찮으려나?’

    가짜 황금 사신이 생각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라서, ‘다른 황금 사신들이 속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마포구 곳곳에서 황금빛 광채가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이 위험해!’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황금 사신들의 구조 요청이었다.

    마치 지면에 태양이 여럿 떨어진 것처럼 빛이 사방에서 번지는 가운데, 거리의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실루엣이 질량을 가지고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따뜻한 마음을 담은 황금빛과 달리 음울한 느낌을 풍기는 검은색 그림자.

    그 거대한 그림자는 내가 다른 황금 사신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내 앞을 가로막듯이 불쑥 솟아올랐다.

    주변 건물에서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의 모습은 가짜 황금 사신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다만 그 크기가 건물만큼 거대했고, 불길한 검은색을 띠고 있다는 점만이 달랐다.

    매끈한 그림자로 만들어진 것 같은 얼굴에서 황금색 빛이 두 개 솟아올랐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은 황금 사신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황금 사신과 달리 불길한 느낌을 강렬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부분은 두 눈밖에 없는 가짜 사신이 나를 천천히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

    뀩.

    검게 물든 주먹이 거대 가짜 사신을 향해 쥐어지자, 검은 구체가 나타나서 상반신을 흔적도 없이 먹어 치워 버렸다.

    주먹을 움켜쥐고 주변 건물들을 향해 휘두르려던 거대 가짜 사신의 시도는 그렇게 실패해 버렸다.

    위험해. 

    거대 사신의 주먹이 건물을 향해 가볍게 휘둘러지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죽을 테니까, 너무 위험했다.

    한 명이라도 죽는 순간, 7일을 다시 세야 했으니까.

    게다가 지금 실패하면 다음 7일은 더욱 힘들 것이다.

    저 끔찍한 가짜 사신들이 첫날부터 나타난다면 7일을 제대로 버틸 자신이 없었다.

    끼이이익!

    순식간에 상반신을 재생한 거대 가짜 사신은 칠판을 금속으로 긁는 것 같은 끔찍한 포효를 질렀다.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소리.

    게다가 그 소리에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정신 오염이 섞여 있었다.

    굉장히 효과적인 정신 오염이었다.

    저 비명이 한번 울릴 때마다, 사람들의 공포와 절망이 나에게 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두려워할수록, 저 가짜 사신들은 점점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금 사신과 판박이였던 모습이, 이제는 황금 사신을 모방했었던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기괴하게 벌어진 입. 

    듬성듬성 삐죽하게 돋아난 이빨.

    피부는 썩어들어가서 갈비뼈가 돌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모습이 될수록, 더욱 빠르고 튼튼하고 강해졌다.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노란 달의 능력은 사람들의 공포를 먹고, 그것을 구현하는 능력을 가진 오브젝트였다.

    어떡하지?

    사람들을 죄다 미니 사신 정원으로 옮겨야 할까?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희생자로 삼을 사람이 없다면, 노란 달은 설원의 달처럼 자리를 옮겨버리겠지.

    ‘뀩’을 너무 많이 써서 장작 소비가 너무 심했다.

    그리고 황금 사신들도 한계에 가까웠다.

    황금 사신들이 겹치기로 가짜 사신들을 지워버리고 있었지만, 죽고 나서 바로 투입되기에는 마포구는 상당히 넓었다.

    내 발밑에서 다급한 표정의 황금 사신들이 뿅뿅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황금 사신이 아무리 빨라도 마포구로 퍼져나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틈을 채우는 것이 제1 검을 필두로 한 용사 황금 사신들.

    하지만 너무 많이 혹사당한 광선검은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처럼 깜빡였고, 광선검이 필요 없는 제1 검은 한 명뿐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마포구의 인간이 한 명도 죽지 않은 게 기적에 가까웠다.

    포기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와 감정이 느껴졌다.

    “사신아, 힘내!”

    익숙한 연구복을 입은 실루엣.

    봉쇄된 마포구로 몰래 숨어든 예린이었다.

    ‘왔구나, 내 배터리!’

    나는 예린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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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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