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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

       아무리 서로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긍정적인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감정’은 긍정적이기에 친구로 있을 수 있는 거겠지만.

        

       친구 사이에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은 보통 그 긍정적인 감정을 덮기에는 미묘하게 작은, 굳이 말로 하면 좀생이처럼 느껴질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서로 다른 나라 출신인 친구 두 사람이 축구 시합을 보고 있다고 하자.

        

       아무리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축구 시합의 팀이 각각 그 사람들의 나라의 국가대표라면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들은 각각 자기 나라의 대표 응원단장이 된다.

        

       축구 시합에서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진다고 해서 뭐 대단한 걸 잃어버리거나 얻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지금 앨리스가 난 ‘짜증’은 그런 의미의 짜증이었다.

        

       “아, 분해! 분하다고!”

        

       음.

        

       그래도 어릴 때 떼쓸 때에는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앨리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나를 흘겨보았다.

        

       “왜. 뭐. 내가 이러는 거 처음 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떼쓰는 앨리스는 자주 봤다. 어린 시절부터 나한테 여러모로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끼는 앨리스였고, 그래서 내가 황제한테 이런저런 명령을 받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보고를 올리거나 할 때면 자기도 알현실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곤 했으니까.

        

       나는 그럴 때마다 최대한 앨리스를 돕는 선택지를 골랐고. 내가 할 말을 얼른 끝내고 앨리스를 들여보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도 앨리스는 바닥에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지는 않았다. 황녀로서의 체통이 손상되기 직전 아슬아슬한 선 위에서 떼를 썼지.

        

       게다가 앨리스가 그렇게 떼를 쓰는 건 다른 귀족들이 주변에 없을 때뿐이었다. 내가 루테티아로 가던 기차에도 다른 귀족이 있기는 했지만, 다들 다른 칸에 있었으니까.

        

       “…….”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앨리스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 그랬던가?”

        

       “적어도 팔다리를 버둥거리셨던 적은 없습니다. 혹시 방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마다 그러고 계셨습니까?”

        

       내 그 말에 앨리스는 곧장 침대에 다시 엎드렸다.

        

       앨리스는 주먹과 발로 침대를 몇 번 정도 때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켜 나를 노려보았다.

        

       “어디 다른 데 가서 말하기만 해. 그랬다가는 네 진짜 모습을 다른 사람들한테 다 말하고 다닐 테니까.”

        

       “제 진짜 모습은 지금의 저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허.”하고 소리를 내더니 다시 침대에 엎드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얼굴을 침대에 묻은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서 내 쪽을 보는 채였다. 저러면 목 안 아픈가?

        

       “어릴 때는 네 앞에서 떼를 자주 썼던 것 같은데.”

        

       “그리고 저는 그 떼를 잘 받아주었죠. 사실 누가 언니인지 동생인지 따지자면 제가 더 언니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매우 객관적으로 상황을 정리해서 앨리스한테 말해보았지만, 앨리스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그래? 그럼 지금부터라도 내가 언니라고 불러줄까? 클레어처럼?”

        

       그렇게 물었다.

        

       “…….”

        

       나는 잠시 앨리스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금방 ‘차라리 지금 상태가 더 낫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고개를 젓자, 앨리스의 미간이 모였다.

        

       “……애초에 네가 그렇게 해달라고 해도 언니라고 부를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그런 반응을 보니까 열받네. 이유가 뭐야?”

        

       “클레어의 ‘언니’와 앨리스의 ‘언니’는 분위기 차이가 크게 날 것 같습니다.”

        

       “…….”

        

       내 말에 앨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지 않은가.

        

       클레어는 솔직히 ‘동생 같은’ 분위기이기는 했다. 잘 웃고, 활발하고, 행동도 어느 정도 딱 그 나이대 같고.

        

       만약 원작의 클레어가 나한테 언니라는 말을 쓴다면 조금 소름 끼쳤겠지만, 지금의 클레어가 나를 부를 때 쓰는 ‘언니’라는 말은 클레어와 무척 어울렸다.

        

       반면에 앨리스는…….

        

       음, 애 같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동시에 황녀답게 머리를 굴리고, 다소 오만한 모습도 있었다. 그런 앨리스가 나한테 언니라는 말을 써봐야 억지로 연기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으리라.

        

       이미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벨라한테도 언니라는 말을 안 쓰는 앨리스인데, 사실상 동갑인 나한테 언니라는 말을 쓰면—

        

       “—으꺅!?”

        

       내가 혼자 상상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데, 얼굴에 커다란 베개가 날아들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에 정통으로 맞아버린 뒤, 앨리스 쪽을 보았더니—

        

       “……왠지 열받아.”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쪽을 보며 돌아누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마음을 터놓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네.”

        

       내가 앨리스의 베개를 주워 들고 다시 앨리스 얼굴에 던져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앨리스가 굉장히 뜬금없이 그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대답하면서 생각해보니 실제로 그런 것 같긴 했다.

        

       내가 앨리스와 함께 루테티아에 갔던 것이 불과 작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앨리스와 이렇게 단둘이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

        

       주로 앨리스가 떼를 쓰고, 나는 그런 앨리스의 떼를 받아주는 역할이었지. 루테티아에 오게 된 것도 앨리스가 기차에 함께 타겠다고 떼를 썼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때 둘이 마주 보고 앉아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우리 두 사람이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뭐, 그렇지. 이런 식으로 대화하게 된 건 그때 이후니까…….”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때부터였던 것 같긴 하다.

        

       앨리스가 다짜고짜 내 방에 찾아오고, 시험 이야기나 공부 이야기로 말을 걸고, 심지어 내 방에서 나온 모르핀을 보고는 머리끝까지 화가 내던 것도 그때 이후의 일이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그렇게 솔직한 사람은 아니지만.”

        

       앨리스는 몸을 돌려서 천장을 보고 누워 말했다.

        

       “그래도 느끼고는 있었거든.”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나한테 이것저것 챙겨주던 거.”

        

       “…….”

        

       음…….

        

       아무리 챙겨줘도 틱틱거리고 떼를 쓰길래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야?”

        

       “어떻게냐고 물으셔도.”

        

       그냥 원작에서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 중 하나라서 챙겨줬을 뿐이다. 미래의 앨리스를 바꿔보려고 했다거나,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거나 하는 깊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엄밀히 따지면 주변 사람한테 공평해야 하지만, 괜히 마음에 드는 애가 있어서 떡 하나 더 챙겨주는 거. 그런 감각이었다.

        

       그리고…….

        

       “아직 어리셨기 때문입니다.”

        

       “너도 동갑이었으면서.”

        

       앨리스는 그렇게 대답하며 피식 웃은 뒤,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긴, 클레어한테 들어보니 너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더라. 고아원에 있을 때도—”

        

       말을 하던 앨리스의 목소리가 한순간 끊어졌다.

        

       아마 ‘고아원’이라는 말 때문이겠지.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그렇게 긍정적인 말은 아니었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더한 말이었으니까.

        

       “그냥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그곳에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요.”

        

       “……그곳에 있을 때도, 애들한테 이것저것 나눠줬다면서.”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알고 있다니, 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미 내 능력을 짐작하고 있는 앨리스한테라면 말해도 괜찮겠지.

        

       “그 고아원의 아이들이 모두 그런 운명을 맞이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냥 다 포기하고 마지막 순간에나마 상냥한 사람이 곁에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고. 기껏해야 내 앞으로 나온 작은 빵 덩어리나 식은 포리지 정도였으니까.

        

       들려준 옛날이야기도 거의 다 대충 지어낸 거라서 내용도 이상했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런 와중에도 전부 구했고.”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응?”

        

       “몇 명, 구하지 못한 아이가 있습니다.”

        

       내가 온 직후에 ‘입양’된 아이가 있다. 원래는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대장이었던 애.

        

       애들한테 평가가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말 안 듣는 애들을 때렸다던가.

        

       하지만…… 그래도 애는 애였다. 게다가 그 아이 말고도 몇 명 더 있었고.

        

       그 애들을 떠올린 것은 내가 황궁으로 가고 나서 며칠 뒤였다. 탈출할 당시에는 여러모로 신경 쓸게 많고 나도 정신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했지만, 조금 안정이 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자 분명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을 그 애가 생각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내가 클레어를 만난 건 그 이후의 일이었으니까. 클레어랑 탈출한 것도 그날이었기에 가능했던 거니까.

        

       시간을 돌려 그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황궁으로 갈 수 있었을까? 클레어는 팔려 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돌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 아이들과 클레어 중 클레어를 고른 것이다.

        

       “…….”

        

       내 말을 들은 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도 더 할 말이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감사는 금방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컨티스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쩌다보니 ts물을 연속해서 쓰고 있습니다만, 가끔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앞으로 예정되어있는 작품은 거의 ts물이고, 저도 그 장르를 좋아해서 앞으로 쓰는 대부분의 소설이 ts일 것 같기는 합니다. 좋아하는 장르가 장르이다보니 백합과 노맨스를 주로 쓰고 있기는 합니다만… 암타물에 대해서도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읽는 소설 중 몇 개는 암타물이었으니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기는 한데… 우선은 먼저 떠오른 구상부터 써두고 천천히 생각해볼까 합니다. 제가 쓴 글에 이렇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가져주실 수 있도록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200화 축하 감사드립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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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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