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02

       ‘어? 이름……?’

        

       새카만 정장에 하얀 블라우스를 갖춰 입은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 진행을 돕고자 분주히 움직이던 진희는, ‘예나’라는 2음절을 듣자마자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예나가 이름을 공개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과, 그럴 리가 없다는 답변이 떠오르는 건 거의 동시였다. 애초에, 조금은 어색할 정도로 스스로를 감추던 사람 아닌가.

        

       그녀의 방송은 의외로 오디오가 제법 들어찬 방송이었지만, 자신의 신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가족관계는 물론, 다니거나 다녔던 학교에 관한 이야기 한번 한 적 없었을 정도였으니- 그녀의 오랜 팬을 자처하는 이들조차 ‘아따먹’이 현실에서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하다못해 나이를 이야기한 것조차 방송을 시작하고 한참 지난 후, 진희가 대놓고 물어보았을 때였지 않나.

       

        

       학교를 다니기는 했는지가 최대 의문이라는 도네이션이 흘러나왔을 때, 저도 모르게 끄덕인 사람은 결코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물론, 사회화가 안 되었다는 취지가 담긴 중의적인 도네이션이었지만.

        

       아무튼, 그리 신상을 꼼꼼히 숨기던 그녀가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공개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다시 말해- 지금 예나의 앞에 꼿꼿한 자세로 선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묘한 위압감과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여자는 그녀의 현실 지인일 터였다. 믿기 어려웠지만.

        

       ‘안 좋은데.’

        

       얼굴도, 옷도, 화장도, 분위기도- 지튜브 정도나 가끔 챙겨 보는 일반인의 느낌이 물씬 나는 사람이었다. 아니, 지튜브조차도 안 볼지도 모른다.

        

       최소한 인터넷방송의 심연을, 그 시청자들에게 사생활이 노출되는 위험을 모를 것은 분명했다. 당장 방금도, 서슴지 않고 실명을 부르지 않았나.

        

       ……그러나 일반인이야 그렇다 쳐도, 예나는 경각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지. 팬미팅이 끝나고 나면, 예나에게 스트리머로서 의도치 않게 흘러나가는 신상 정보 갈무리의 중요성에 관하여 한소리를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얼굴도 공개하기로 했으니- 어쩌면, 이름도 더는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것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 이 사람도 예나가 직접 초대한 현실 친구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진희는 자연스레 시선을 예나에게 향했다. 그 와중에 이름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사탕부터 권하는 걸 보면, 언제나와 같이 아무 생각 없는 것이 분명했지만- 괜찮은 건지 확인은 해야 할 터였으니.

        

       그리 생각한 진희의 눈에 들어온 건, 경직되어 전에 없이 긴장한 티가 역력한 얼굴과 사정없이 떨리고 있는 동공. 그리고 홍삼 캔디를 잡은 채, 파르르 떨리는 손이었다.

        

       도망치고 싶다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 했으니-

        

       순식간에 달려든 진희가 딱딱한 미소와 함께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듯 몸을 들이민 건, 본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아따먹 친구분 되실까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멘트였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일단 예나를 등 뒤에 숨기는데는 성공했으니.

        

       급작스레 나타난 인간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여자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덤덤했다.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에 서린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침묵 속에서 천천히 움직여, 진희의 얼굴을 향했다. 

        

       ‘조금 전까지, 저런 눈으로 예나를…….’

        

       가까이에서 보자니, 의외로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눈을 마주하고 있자면 키 차이 따위는 체감되지도 않았지만.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그 앞에서 쭈그러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슬며시 치민 분노가 앞선 덕분이었으리라.

        

       “친구셔도-”

        

       우리 예나가 불편해하는 것이 보이지 않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친구셔도 지금은 팬미팅 중이니 조금만 배려해달라’고 말하려던 순간.

        

       “친구는 아니고, 언니네요.”

        

       여자치고는 제법 낮은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언니, 언니라. 하기야, 동안이어서 그렇지, 예나와 또래라기엔 표정이나 분위기에 은근한 연륜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아, 그러시군요. 저도 우리 아따먹 친한 언니예요. 그런데 지금은 저희가 팬미팅 진행 중이고, 시청자 분들도 계시니, 조금 양해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사정이신지 몰라도, 개인적인 대화는 다음 기회로 부탁드려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장 위협적인 외관의 창출을 위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진희는, 광장 한 켠에 서있는 경찰들을 향해 은근슬쩍 턱짓하며 말을 이었다.

        

       “싫으시면, 뭐. 부를까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친한 언니, 라고 하셨나요?”

        

       “네. 그쪽은, 그렇게 편한 언니는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요.”

        

       진희의 머릿속에선 온갖 망상이 오가고 있었다. 눈에 띄게 예쁜 이들은 선배로부터의 학폭에 휘말리는 일도 잦으니- 혹,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 예나를 괴롭혔던 선배는 아닐까. 만만치 않은 외모인 만큼, 새로이 등장한 예나에게 쓸데없는 라이벌 의식을 가졌던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설령 그렇더라도,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이상한 짓을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어찌되었든, 예나는 저 얼굴을 보자마자 굳어버리지 않았나.

        

       그것만으로도 접근을 차단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하여 정신을 가다듬으며, 날카로운 시선을 교환하는 사이.

        

       -쿡쿡.

        

       뒤에서, 무언가가 등을 찔러대는 감각이……예나겠지. 걱정이 됐나.

        

       진희는 한쪽 손을 뒤로 돌려, 괜찮다는 의미로 가벼이 휘저어주었으나-

        

       -쿡쿡쿡.

        

       대체 어떻게 이해한 건지, 찌르는 강도만 한층 더 올라가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뒤로 돌아 뭐하는 짓이냐고 혼을 내야겠으나……지금은, 눈을 돌릴 타이밍이 아니다.  

        

       버텨야 했다.

        

       “……그러게요. 편한 언니……는, 아니었는지도-”

        

       그리 힘겹게 견디는 사이,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먼저 눈에서 힘을 살짝 뺀 여자가 조금은 씁쓸하게 읊조리던 순간.

        

       “1등! 1등이죠 이거? 와아악! 1등! 1등 상품 뭐예요? 미정? 제가 정해도 되는 거예요? 어디까지 돼요? 듀오? 듀오도 돼요?! 아니, 아니, 포옹? 아니, 오카리나 매수권 가능한가요? 네?”

        

       광장이 쩌렁쩌렁 울리는 데시벨의 기쁨섞인 비명이 울려 퍼지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 출처에 집중됐다.

        

       한때 길었던 줄의 최선두.

        

       짙은 회색의 여성용 정장 위에 후드라는 괴이한 옷을 걸쳐 입은 사람이, 한없이 신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아이처럼 폴짝거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제법 뜨겁게 끓어오르던 분위기의 맥이 턱 끊겨버리는 느낌이었다.

        

       -하아아…….

        

       그러한 느낌은 피차 마찬가지였을까. 고개를 반쯤 뒤로 돌려 1등 당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고-

        

       “대체 어디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런 기분 진짜 오랜만이예요.”

        

       조금 이해하기 힘든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녀는, 작게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 옆에 두고……사랑받고 있는 거 같긴……해서. 바로 귀 잡고 끌고 나가지 않기는 잘 한 것 같아요. 솔직히 고민했는데.”

        

       기묘할 정도로 예나와 닮은 미소와, 말투였다.

        

       * * * *

        

       “죄송합니다! 그, 정말 죄송해요! 진짜, 죄송-”

        

       “……아까부터 말씀드렸지만, 진짜로 사과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오히려 고맙죠. 혼나야 되는 건 예나고.”

        

       “아니에요. 제가 조금 더 알아봤어야……아니, 예나가 혼나야 하는 건 맞는데요……. 아, 저희는 사실 이거 시위 자체도 다같이 말렸어요.”

       

       

       “아. 그래요.”

       

         

       억울해.

        

       차마 억울하다고 말도 할 수 없어서 더 억울했다.

        

       이예리가 등장하고, 약 10분 후.

        

       시위대는 빠르게 강제 해산당했다. 야유와 함께 연장을 요구하던 몇몇 용기있는 충신들은, 어째서인지 이예리와 짧은 면담 이후 조용히 물러났고.

        

       무슨 말을 한 건지 궁금한데, 안 궁금해.

        

       가장 마음에 걸린 건 마지막으로 줄을 서있던 5명이었다. 소중한 가챠 기회를 박탈당하고, 홍삼 캔디 서너 개를 받아 든 채 터덜터덜 물러나게 되었으니.

        

       그나마 얼굴은 기억해두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나중에라도 뭔가 챙겨줄 수 있겠지. 인증……을 요구해야 하긴 하겠지만.

        

       물론 지금은, 내 코가 석자긴 한데.

        

       “레반님.”

        

       “……언니가 있었어요?”

        

       “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소원권 쓸 테니까, 대신 혼나주면 안 되나요.”

        

       “댁 소원권 저번에 썼잖아. 술 사오라고 해서 아크한테 나랑 우결 생각 없는지 물어본 날.”

        

       “사실 이자가 붙었을 수도 있잖아요. 하루에 1/5 소원권 정도씩.”

        

       표정, 표정이……조금. 아까까지 동생을 혼내다 와서 그런 거겠지.

        

       .

       .

       .

        

       시위의 강제 종료가 선언된 후에도 거리를 두고 어슬렁거릴 뿐, 온전히 흩어질 기미는 안 보이는 사람들을 피해 도착한 식당. 이예리와 그 후배라는 변호사, 진희, 아리, 그리고 카나리아 남매와 나까지 7명이 앉은 자리는, 제법 독특한 분위기였다.

        

       특히,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고- 내가 숨을 쉴 수 없다는 점에서.

        

       “저는 먼저 가봐도 될까요. 급한, 어……일정이 있어요.”

        

       아니, 그렇게 볼 것까진 없잖아.

        

       

       ……술, 술이 필요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필스 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의 독자님, 3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