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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

       “커헉!”

         

       아라미스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강한 충격과 함께 일어났다.

         

       “해가 중천이야. 언제까지 잘건데?”

         

       고개를 돌리자, 혀를 차며 타박하는 제이나가 보였다.

         

       한참동안 눈을 끔뻑거리던 아라미스는 머리에 생긴 혹을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크기가 심상치 않다. 스태프로 후려치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 전에 제이나가 왜 여기에…….

         

       “너 또 뭔 생각하냐? 뒤질래?”

         

       제이나가 위협하듯 주먹을 쥐자 아라미스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변명을 내뱉었다.

         

       “……딱히 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막 일어난 탓에 정신이 몽롱하여 그랬을 뿐이다.”

       “너, 우리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르지.”

         

       ……우리?

         

       옷매무새를 다듬던 아라미스가 방 한복판에 멈칫 섰다. 방에 있는 사람은 제이나 뿐만이 아니었다. 하이얀 로브를 눌러쓴 남자. 로 페르난디가 그가 애용하는 소파에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집무실 의자 위에는 글레이시아가 날카로운 뱀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탑주 셋, 성체 드래곤 하나.

         

       생판 모르는 남들이 봤을때는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다가도, 그들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라미스가 입을 벌렸다.

         

       “……아.”

       “와, 진짜로 이제서야 기억한거냐?”

         

       제이나가 혀를 찼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글레이시아 또한 거들었다.

         

       “등신. 은혜도 모르는 머저리같은 인간 새끼.”

       “미안해 아라미스. 방금 건 나도 커버 못 쳐주겠다.”

         

       일제히 쏟아지는 타박에도 아라미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청탑주로서 ‘스승’의 마법을 복원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밤잠을 세워가며 진행한 탓이기는 하지만, 저 폭급한 괴물들은 그런 사정 따위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정오는 진작에 지났어. 천천히 해.”

        “……최대한 빨리 하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몇 번 흔들고 허공에 차가운 기운를 쏘아보내자 잠이 확 깼다. 본래 정갈함에 신경쓰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더더욱 옷매무새를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연결음이 이어진다.

         

       “잠시 외출하겠다. 회의는 2시간 뒤로 미루도록.”

       “4시간. 무슨 2시간이야 2시간은. 가는데만 1시간은 걸리겠다.”

        “……4시간 뒤로 미루도록.”

         

       아라미스는 입맛을 다시며 통신구를 내려놓았다. 어쩌다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비루해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번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면박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더럽고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마. 네 업보니까.”

       

       제이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무실 내부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공간 이동 마법. 마법진에는 익숙한 좌표가 새겨져 있었다.

         

       복잡한 좌표였지만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매년 한 번씩, 벌써 일곱 번이나 들른 장소였으니까.

         

       스팟!

         

       의식이 점멸하는 듯한 느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온통 눈으로 가득 덮인 황량한 벌판이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아라미스는 고개를 숙여 대지에 상흔처럼 새겨진 절벽을 내려다보았다. 대전쟁 때 검성 키엘이 남겼던 검격. 그때도 굉장하다고 느꼈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지금 보아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냥 날아가면 안 돼? 한참 걸어가야 되잖아.”

       “그러면 우리는 걸어가리?”

       “……내가 등에 태워주면 되잖아.”

       “그러면 모양이 안 살잖아. 엄숙해야 된다고. 엄숙 몰라 엄숙?”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일행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마법을 사용해도 되지만, 그들이 굳이 걸어가기를 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안되냐?”

       “안 돼.”

       “그러게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했어야지.”

         

       일행은 금세 목적지에 도달했다. 한 때, 글레이시아의 레어였던 장소. 그들이 ‘스승’ 밑에서 수학했던 장소.

         

       대전쟁 이후로, 글레이시아는 레어의 위치를 동쪽으로 바뀌었다. 맛있는 것도 많고, 살기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이나는 묵묵히 앞을 보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던 곳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 있는 것은 자그마한 묘비 뿐이다.

         

       “……스승님. 저희 왔어요.”

         

       제이나는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손수건을 꺼내 묘비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눈은 생각했던 것 만큼 많이 쌓여있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방문했기 때문이리라.

         

       몇 겹의 결계로 둘러싸인 이곳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기껏해야 제자인 자신들과, 스승님의 옛 동료들 뿐이다.

         

       제이나와 로는 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그들은 백탑의 수습 마법사였을 때부터 빛의 신도였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안식하시길.”

         

       아라미스와 글레이시아는 기도하는 대신 고개를 숙여 묵념했다.

         

       “그 때는 더럽게 힘들었는데. 신기하지 않아?”

         

       어느새 돗자리를 펴고 앉은 글레이시아가 말했다. 감회에 젖은 얼굴로, 한 때 자신들이 수학했던 공간을 보고 있었다. 아라미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는 추억이 되기 마련이지.”

         

       솔직히, 올리비아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으니까.

         

       그리웠다.

         

       올리비아의 기일이 가까워지면 유독 그리움은 더 거세졌다. 항상 당당했던 스승의 미소가.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이.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아득바득 보채던 그날의 추억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눈가에 그리움을 덧칠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침울하게 가라앉았지만, 처음에 비하면 엄청나게 나아졌다. 그때는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누가 왔다 가신걸까?”

         

       한참 동안 묘비를 매만지던 제이나가 말했다. 북부에서는 맑은 날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동굴 내부라고 한들, 묘비에 눈이 이만큼밖에 쌓이지 않았다는 뜻은 명료했다.

         

       “멜리나 님 아닐까?”

       “글쎄. 살아는 계시려나 모르겠네.”

       “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제이나는 글레이시아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아니, 그……그렇잖아. 인간치고 나이가 많으시기도 하고, 그 뭐냐. 상심도 깊으셨을 거 아니야. 당장 우리도 5년 넘게 만나보지도 못했잖아.”

         

       그 말에 모두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싸해진 분위기를 감지한 글레이시아가 입을 달싹거렸다.

         

       “그……미, 미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아라미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아계실거다. 그 분이라면 분명…….”

         

       저벅.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흠칫 놀라 본능적으로 스태프에 손을 가져갔다.

         

       “다들 여기 계셨군요.”

         

       옛 레어의 입구에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 서 있었다. 일행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제가 놀라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리브가가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방긋 웃었다. 일행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스태프로부터 떼어놓았다.

         

       “아, 아니에요! 그……당연히 저희가 잘못한거죠.”

         

       제이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리브가가 묘비를 향해 다가오자, 그들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리브가는 새삼스레 그 광경을 보았다. 티격태격 하면서도 친근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입가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잘 가르치셨네요.”

         

       리브가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여전히 성국의 성녀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다. 제국의 탑주라는 자리에 올랐음에도, 저들이 저런 완만한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는 올리비아의 영향이 다분했을 거라고.

         

       “죄송해요.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올리비아가 죽은 지 7년이 지났다.

         

       7년은 긴 시간이었고, 그렇기에 여러 일들이 일어났다.

         

       아리아가 스스로 황녀 자리에서 내려와 잠적한 일. 키엘과 멜리나가 자취를 감춘 일. 에스티와 무왕이 비경(祕境)으로 여행을 떠난 일…….

         

       리브가의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말없이 비석을 쓰다듬었다. 비석 주변에 새겨진 수많은 흔적들.

         

       그것은 표식이었다.

         

       벽에 새겨진 주먹 자국은 무왕이, 물결 자국은 에스티가, 검격은 키엘이, 손자국은 카인이, 글귀는 아우렐리아가…….

         

       모두 그새 다녀간 것이다.

         

       마음 속에서 떠나보냈다고 했으면서, 아직 잊지 못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잊겠는가. 그들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멜리나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리브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레어 구석으로 향했다. 올리비아의 비석이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 곳. 그곳 바닥에, 선명한 눈물 자국이 새겨져 있다.

         

       멜리나는.

         

       이 자리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주저 앉아, 펑펑 눈물을 쏟아냈을 것이다.

         

       하루를, 어쩌면 이틀을. 어쩌면 그보다 더. 매일매일이 고통과 후회로 가득할텐데도, 살아 있다.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리브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

         

       리브가는 새빨개진 눈가를 문지르며 비석을 보았다.

         

       보고 싶었다.

         

       하루만, 딱 하루라도 좋으니 만나보고 싶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후후. 아무래도 짐이 제일 늦은 듯 하구나. 다들 뭐 이리 급한지. 아니지, 짐이 늙어버린건가?”

       

       황녀 아리아. 아니, 황제.

         

       “……!!”

         

       7년간 자취를 감췄던 그녀의 등장에, 리브가가 눈을 부릅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뚜알기가 조아님 2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 항상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작품이 완전히 완결되는 그때까지 열심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지나가던 누렁이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완결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랙베리0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본편 완결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익명으로 후원해주신 독자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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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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