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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

     누아르 지브롤터는 아침부터 대비를 했다.

     무언가, 일어난다고.

     이미 사건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났으며, 자신은 어쩌면 가장 안전할지도 모르는 곳에 머무르고 있는 거라고.

     안전할지도.

     안전하기는 하지만, 결코 위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테르시안 제국이 지금까지 지브롤터의 성벽을 수도 없이 공격했던 것처럼, 열차 특등실에 무언가 위협이 들어올 수 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오늘 아침부터, 형인 그레이 지브롤터가 어딘가 날카로워보였으니까.

     표정은 침착하고, 아스타시아 황녀를 대할 때는 여느때처럼 부드러웠으나, 개인적인 생각에 잠겨있을 때는 어딘가 짜증이 난 것처럼 초조함을 드러냈다.

     계속, 지팡이를 붙잡고 있더라.

     연기를 할 필요도 없는데 지팡이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었고, 누아르는 그 모습에서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과거.

     오크 무리가 죽어 시체가 붉은 황야를 넘어가 제국으로 굴러가는 바람에 클레이돌 후작이 병사들을 이끌고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 크림슨 변경백이 자리를 비웠을 때, 제국의 암살자가 집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비록 그 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워보였지만, 누아르는 그 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암살자가 오거나.

     혹은 암살자에 대비하기 위해 자신을 훈련시켜주거나.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이 낫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다.

     후자는 자신이 몸이 좀 고생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누군가가 죽는 꼴을 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전자라면.

     만일 진짜로 암살자가 나타난다고 한다면.

     

     그 때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누아르는 궁금했다.

     -이제는 암살자 정도는 네가 대처할 수 있지?

     형이 자신에게 암살자를 상대하게 하지 않을까?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마라. 지금까지 네가 수련한 결과를 보여라.

     지브롤터의 남자라면 이 정도 암살 위협은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암살자를 1:1로 상대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틀렸다.

     암살자는 찾아왔지만, 누아르의 역할은 그저 하나.

     “이쪽으로!”

     뒤에서 웬즈데이가 외치는 소리에 누아르는 바로 몸을 돌렸다.

     지브롤터 저택에서 어렸을 때부터 학습된 움직임, ‘긴급상황에 따른 대처 요령’에 따라 몸이 절로 움직였다.

     그것은 흡사, 가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이상한 건 아니다.

     지브롤터가 있는 자리가 곧 협곡이라고 한다면, 이 열차라는 협곡의 주인은 그레이 지브롤터였으니.

     “형!”

     

     세이프룸에 들어가기 전, 누아르는 밖을 바라봤다.

     

     “잘했다, 누아르.”

     밖으로 느긋하게 걸어나가는 그레이 지브롤터는 뒤돌아보지는 않았으나, 왼손을 가볍게 뒤로 흔들며 열차 밖으로 나섰다.

     “도련님.”

     끼이익.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경계하십시오.”

     패닉룸의 문이 닫히며, 웬즈데이가 치마 아래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 때문에 도련님께서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웬즈데이…!”

     “다쳐도 제가 다칩니다. 도련님.”

     

     웬즈데이는 허벅지에 숨겨둔 대거를 한 손으로 들고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여차하면….”

     “그렇게까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둘 다.”

     누아르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레이가 셋이서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그레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야.”

     “황녀님…?”

     “응. 농담하는 거 아니야.”

     누아르는 잠시,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자신이나 웬즈데이보다 더 걱정어린 눈으로 밖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사람이, 두 사람보다 더 태평하고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있었으니까.

     “혹시, 이미 알고 계셨…?”

     “올수도 있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지금 이 순간에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아스타시아 황녀는 캔의 뚜껑을 능숙하게 한 손으로 열어젖혔다.

     “진짜 와버렸네. 으음, 이러면 내기에서 패배한 건가.”

     “내기요?”

     “응. 나는 밤에 우리가 자고 있을 때 습격할 거라고 생각했고, 그레이는 저쪽 사람들이 생각이 짧고 다혈질이라서 참을성 없이 오후에 사람이 비어버리면 낮에도 암살하러 올 거라고 했거든.”

     아스타시아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 모습에서 누아르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덕분에 부탁 들어주게 생겼네. 끙.”

     “저, 저기. 황녀님….”

     “누아르. 네 형은, 네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란다.”

     강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여유가 넘친다는 것.

     사람의 성향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지만, 누아르는 아스타시아의 태도에서 어딘가 아버지의 편린이 살짝 스쳤다.

     “어머?”

     순간, 아스타시아가 눈을 반짝였다.

     “너, 보였구나?”

     “어, 그, 그게…?”

     “후후, 그레이가 돌아오면 기뻐하겠는걸. 그래도 지켜봐. 그레이가 그러더라고.”

     아스타시아 황녀가 유리창 밖을 가리켰다.

     “누아르가 오직 검만을 익히면서 산다면, 20살의 나이에 어쩌면 아버지조차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강자가 될 거라고.”

     “형이…그런 말을 했어요? 정말로?”

     “그럼. 아. 큰일났다.”

     아스타시아는 아차싶은 얼굴로 입술을 오므렸다.

     “누아르 어깨에 힘들어간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

     “방금 이야기한 거, 비밀이야. 알겠지?”

     “……예.”

     

     누아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언젠가….”

      

     * * *

     과거, 그러니까 회귀 전.

     황금여명 기사단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처형에 따라 해체되었고, 기사단장을 비롯한 많은 관련자들이 곧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그러나 모두 죽지는 않았다.

      

     황금여명의 말단 기사들은 바로 ‘제국만세’를 외치며 제국주의자로 전향했다.

     이미 대세가 기울기도 했고, ‘무능왕런’을 보고 마지막 남은 충성심도 사라지기도 했고, 왕국이 멸망하기도 했고, 자기가 죽으면 가문의 대가 끊어질 수도 있기도 했고.

     뭐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은 제국주의자가 되기 이전부터 부패했던 사람들이었다.

     회귀 전은 지금보다 더 심했다.

     지금이야 제국의 눈이 어느정도 왕국에 들어왔으니 눈치를 보고 있는 거고, 나리아가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니 왕권 문제로 인해 쉬쉬하고 있으나.

     그 때는 지금보다도 더 심한 짓을 일삼았다.

     왕국이 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자들이 살아남아서 어디로 향했을까?

     누아르의 근처에 모였다.

     누아르의 아래 자기들끼리 ‘골든 샤워’라거나 ‘골든 서클’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사조직을 만들었다.

     누아르가 그 많은 여자들을 어디에서 안을 수 있었을까.

     살아남아 제국의 편이 된 황금여명의 말단 기사들은 누아르의 옆에 붙어있던 기생충들이었고, 누아르를 여자와 술의 품에 잠기게 만든 원흉이었다.

     누아르가 변했으니, 그들에게 직접적인 단죄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저들 스스로 죽을 이유를 제공한다면.

     ‘개인적인 사심을 좀 넣어서 베어도 상관없겠지.’

     서걱.

     가볍게, 앞으로 한 걸음.

     그와 동시에 검을 수평으로 휘두르고, 손을 가볍게 비틀어 옆으로 찌른다.

     “커, 커헉…!”

     “상대의 실력을 봐가면서 암살해야지.”

     네 번째 암살자를 죽인다.

     목을 찔러 말하지 못하게 한 번 성대를 긋고, 그대로 심장에 칼을 박아넣고 비튼다.

     “경룡장에서 하늘을 날면서 너희 수장의 검을 받아친 게 요행인 줄 알았나. 실망인데.”

     “큭…!”

     “아니면 패거리로 몰려오면 어떻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눈에 보이는 암살자의 수는 약 서른.

     중간중간 상급 기사도 여럿 보이는 걸로 보아, 황금여명 기사단 중에서도 나름 정예 부대가 온 모양이다.

     “조심해라! 상대는…마스터다!!”

     “그걸 이제서야 눈치를 채다니. 아니지. 인정하지 못하는 거였나.”

     마스터에게 직접 칼침을 맞아봐야 상대가 마스터인줄 안다니.

     ‘이러니까 망했지.’

     회귀 전의 아버지가 지나가는 말로 그랬다.

     

     아무리 지브롤터가 반역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지브롤터 빼고 노스트럼 전체가 제국군을 막아내지 못하는 거냐고.

     

     맞는 말이다.

     고작 변경백 가문 하나가 사라졌다고 적국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그냥 멸망하는 게 맞다.

     심지어 그 변경백 가문이 국가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육성한 결전병기라거나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도 아니잖는가.

     “대낮부터 시체 치우기 귀찮고, 잠시 뒤에 숲을 산책하려고 하는데. 슬슬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지? 시체 치우고 가고.”

     “…….”

     “그레이 지브롤터가 사실은 마스터였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할텐데?”

     “…그레이 지브롤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네가 죽어야, 우리 주인께서 제국의 황태자가….”

     “제국의 후계자 싸움으로 몰고가려고? 그거, 속아줄 것 같나?”

     “…….”

     “수작을 부려도 좀 그럴듯하게 부려야지.”

     “하.”

     기사가 복면 너머로도 보일 듯이 헛웃음을 흘린다.

     “그러면 너야말로, 제국검법으로 암살자인척 하면서 황금여명 기사들을 죽인 개수작을 우리가 모를 것 같나?”

     “아, 그래?”

     나는 가볍게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브롤터의 검밖에 모르는 사람이라서. 내가 제국검법을 안다고? 내가 제국인이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일까.”

     “조국의 배신자가…!”

     “뭐라고 하는지 당췌 영문을 모르겠군. 왕국의 쓰레기들이.”

     “……!”

     “어차피 내가 황금여명을 죽였든 안 죽였든, 너희들은 나를 죽이러 왔잖나. 그러면 얌전히 입 닥치고 죽이러 와야지.”

     사실은 죽였지만.

     “그게 아니면, 막상 여기까지 와서 죽이기 두려워졌나? 예상보다 더 강해서?”

     “…….”

     “뭐, 이해는 한다만….”

     “지금이다!!”

     기사가 외치자, 나는 등 뒤의 감각에 바로 몸을 돌렸다.

     타ㅡㅡ앙!

     “호.”

     “큭…!”

     “비룡을 통한 공중기습이라. 심지어 제국산 머스킷까지…아니군.”

     날카로운 화살과도 같은 무언가가 날아온 궤적을 찾아 시선을 뒤로 돌려보니, 하늘에 무언가가 은폐마법을 펼친 채 날고 있었다.

     “마법사가 쏜 매직 미사일이군. 아니다. 포이즌 애로우인가?”

     푸쉬이이.

     극독의 기운을 가진 마나 화살이 바닥에 튀어 흙바닥을 녹인다.

     염산을 땅에 흩뿌린 것처럼.

     만일 저걸 그대로 맞았다면, 그대로 몸이 녹아내리지 않았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주 그냥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 아, 그래. 황금여명 기사들이 죽었다는 것도 너희들이 한 자작극이지? 죽인 척 사람들을 몰래 빼낸 다음, 그 다음 타깃으로 나를 잡은 거야.”

     “이…!!”

     저쪽에서는 답답하겠지만, 나는 황금여명 기사단을 살해한 범인이 아니다.

     그건 제국의 암살자니까.

     “왜. 내 말이 틀렸나? 사람이 죽은 척 위장하는 것 정도야….”

     “닥쳐라, 이 매국노!”

     “정곡이 찔린 모양이군.”

     “크아아…!”

     그러니까 이 추측은 ‘가만히 있다가 암살당하게 생긴 그레이 지브롤터’로서는 정당한 추측.

     “상관없다. 너희들은-”

     “달란 경!! 계획대로!!”

     “…달란?”

     가명?

     아니다.

     저 이름, 분명 제국 역사서에 나오는 마법사 중 한 명으로-

     “젠장.”

     나를 저격하려고 한 마법사를 지칭하는 이름이었구나.

     하지만 앞뒤로 나를 포위하고 있다고 해서 나에게는-

     “태우시오!”

     “……?”

     

     화륵.

     “아.”

     하늘에서, 불의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저.”

     렘버리 역에 정차 중인 열차를 향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 명, 더 나타났다

    오늘 연참은 여기까지

    다른 거 쓰러 가야하거든요

    그럼 이만

    자정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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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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