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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


    혹시나 리안이 구출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여, 공작은 리안의 초상화를 발 빠르게 제국 측에 보냈다. 만약 이렇게 생긴 남자를 찾으면 반드시 보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
    ​
    평민 따위를 찾는 일에 제국이 귀를 기울일리 없어 공작은 리안을 제 아들이라는 거짓말을 은근히 퍼뜨렸다.
    ​
    ​
    이런 사실만 늘어놓고 보면 그들이 목소리 높여 리안을 배신자라 욕할 필요는 없었다. 자칫 공작가와 척질 수 있기 때문이다.
    ​
    ​
    그런데도 그들이 눈이 돌아간 것처럼 화를 내는 건 전부 노아때문이었다.
    ​
    그녀는 자신을 무어라 욕하든 일절 무시했지만, 리안을 무시하는 말 만큼은 참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리안에게 반감을 가지고 온갖 모욕을 쏟아냈다.
    ​
    ​
    …그러다 노아에게 살해당할 뻔한 이후 리안에 대한 욕은 그만두었지만, 분노를 꺼뜨리지 않았다.
    ​
    ​
    하얀 가면이 노아가 그리도 싸고돌던 ‘리안’이라는 사실은 한 치의 틈도 완벽하게 전장을 지배하던 노아를 끌어내릴 만한 건수였다.
    ​
    ​
    귀족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노아를 깎아내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
    ​
    “목을 베어 걸어둡시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겁니다!”
    ​
    ​
    그들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리안의 목을 베어 적군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장식해두자는 잔혹한 말을 즐거운 얼굴로 입에 담았다.
    ​
    ​
    모든 이들이 과격한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다.
    ​
    ​
    “흑마법에 당했을 수 있습니다. 적군의 병사들처럼 말이죠.”
    “자칫 공작과 척질 수 있습니다. 그녀가 언제든지 이곳으로 달려올 수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
    ​
    누군가는 리안이 무고한 희생자일 수 있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눈이 돌아간 공작가를 걱정했다. 이에 귀족들은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
    ​
    지휘관은 말없이 두서없이 떠드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
    ​
    “당장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으니, 가장 먼저 조사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
    ​
    진중한 지휘관의 눈빛에 귀족들은 몇 마디 꿍얼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들의 회의가 막을 내릴 그 시점, 노아는 멍한 얼굴로 시체가 되어버린 리안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휙 돌려 제 곁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
    ​
    진지한 얼굴로 미동도 없는 제 육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머리의 리안이 노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
    ​
    노아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리안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덮었다. 그러자 제 육체를 내려다보던 리안의 시선이 부드럽게 그녀를 향했다.
    ​
    ​
    리안은 익숙지 않은 스킨쉽에 얼굴을 붉히면서 슬쩍 노아의 손을 잡았다. 깍지까진 아직 용기가 부족해 도전하지 못했다. 
    ​
    ​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응…”
    ​
    ​
    분위기도 얼굴도 딴판이었지만, 말투부터 작은 습관까지 노아가 알고 있는 리안이 눈앞에 있었다.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절망과 나락을 뒹굴 정도는 아니었다. 
    ​
    ​
    노아는 리안이 붙잡아 준 손을 내려다보며 빈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리안의 손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
    그녀가 머릿속에 부드러운 털가죽으로 덮인 수갑 따위가 둥둥 떠다녔다. 사색에 잠긴 노아의 모습은 꽤 안정적으로 보여, 리안은 다시 시선을 돌려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
    ​
    제 본래의 몸이 눈앞에 있는데도 무슨 고민이 필요할까 싶지만, 미묘한 불안감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할 수 없었다.
    ​
    ​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더 깊은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가슴을 옥죄었다.
    ​
    ​
    ‘도대체 왜?’
    ​
    ​
    머릿속을 더듬어 어디서부터 시작된 두려움인지 찾아보려 했지만 실마리 조차 찾을 수 없었다.
    ​
    ​
    리안이 사색에 잠겨있던 그때, 펄럭하는 소리와 함께 천막 입구 천을 들치는 소리가 들렸다. 
    ​
    ​
    시선을 돌리자, 새하얀 옷자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노아의 숙소 안으로 성큼 들어온 이들은 모두 새하얀 신관복을 입은 신관들이었다.
    ​
    ​
    그들은 마치 이곳이 자신들의 구역인 양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리안과 노아를 바라보았다.
    ​
    ​
    “다들 나가주십시오.”
    ​
    ​
    가장 앞에선 금발 머리의 신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신관이 빠르게 하얗게 질린 리안의 시체에 다가왔다.
    ​
    ​
    “..! 지금 뭘 하려는 겁니까!”
    ​
    ​
    그들이 리안의 몸을 가져가려 하자 노아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처럼 사나운 얼굴로 막아섰다. 리안은 이게 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만 도륵도륵 굴릴 뿐이었다.
    ​
    ​
    “그건 내가 설명하지.”
    ​
    ​
    신관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이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노아를 배신자라 소리치던 귀족 중 한명이었다.
    ​
    ​
    “지금부터 하얀 가면의 시체는 빛의 신전의 대신관께서 관리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곳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도록.”
    “그게 무슨..”
    ​
    ​
    노아가 곧바로 반론하려 했지만, 귀족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끊어내며 말을 이었다.
    ​
    ​
    “죽었다고는 하나 마왕군의 간부 중 한명으로 추정되는 하얀가면이다. 놈이 사악한 흑마법으로 죽음을 위장했을 수도 있으니, 대신관께서 관리하는 게 옳은 일이다.”
    ​
    ​
    그는 조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
    ​
    “이건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다. 만약, 대신관의 허락 없이 하얀 가면에게 접근했다간 저놈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거다.”
    ​
    ​
    그의 시선이 하얀가면의 시체, 리안의 몸을 향했다.
    ​
    ​
    “인간을 배신하고 마왕군에 붙은 ‘배신자’라고 불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조심하도록.”
    “..! 리안은 배신자가..!”
    “허? 설마 제국군 병사들을 학살한 하얀 가면을 옹호하는 건가?”
    ​
    ​
    몸에 남아있는 ‘개그 필터’로 인해 짭 리안이 상처입힌 병사들은 겉보기에 아파보이는 상처가 생길 뿐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다치거나 죽은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
    ​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하얀가면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건 위쪽에 퍼진 정보였다. 
    ​
    ​
    노아가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당당하게 반론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평민’이었기에 정보가 부족했다. 
    ​
    ​
    하얀 가면을 옹호하는 건 그의 말대로 ‘인류의 배신자’라 불려도 손색없는 말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
    ​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노아는 깊게 분개했다.
    ​
    ​
    노아가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 거친 행동을 보이려는 순간, 리안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
    ​
    “잘 알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
    ​
    리안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귀족은 뒤늦게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리안을 인지했다. 
    ​
    ​
    퇴폐적이면서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리안의 모습은 정의의 편이라기보단 ‘악’에 가까워 보여 귀족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내 그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더러운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리안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
    ​
    리안은 곧바로 노아의 손을 잡아끌어 천막을 빠져나왔다.
    ​
    ​
    “잠..! 리안!”
    ​
    ​
    그녀는 리안을 불러세우려 했지만 단호한 손길에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천막 앞에는 성기사 두 명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
    ​
    경계가 가득한 시선이 리안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은 리안이 그저 ‘검은 머리’라는 이유로 경계하고 있었다. 
    ​
    ​
    그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노아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
    ​
    꽈악.
    ​
    ​
    그런 그녀를 저지하듯 혹은 위로하는 듯 단호하면서도 따스한 손길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아 내렸다. 살살 손바닥 안쪽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분노로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있던 노아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
    ​
    오싹하면서도 간지러운 감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
    ​
    리안은 그런 노아를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이끌었다.
    ​
    ​
    ***
    ​
    ​
    10분 정도 걸어, 제국군의 주둔지와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리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노아는 곧바로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질문을 입에 담았다.
    ​
    ​
    “리안 어째 -…”
    ​
    ​
    그녀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
    ​
    타닷!
    ​
    ​
    땅을 박차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붉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리안을 덮쳤다.
    ​
    ​
    “억…!”
    ​
    ​
    연약하기 짝이 없는 몸을 가지고 있던 탓에 리안은 일주일 만에 돌아온 주인을 만난 것 같은 제스의 몸통 박치기에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
    ​
    다행히 뒤에 서 있던 노아가 쓰러지는 리안의 몸을 받쳐주었다.
    ​
    ​
    “히히히!”
    ​
    ​
    제스가 귀엽게 웃음을 터뜨리며 리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문질렀다. 페로몬이 얼마나 자극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리안은 가마에 실려 이동하던 중에 페로몬 기관을 없애버렸다.
    ​
    ​
    그 덕분에 목덜미에선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지만, 제스는 습관적으로 페로몬이 흘러나오던 곳에 볼을 문질렀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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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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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리안이 구출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여, 공작은 리안의 초상화를 발 빠르게 제국 측에 보냈다. 만약 이렇게 생긴 남자를 찾으면 반드시 보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평민 따위를 찾는 일에 제국이 귀를 기울일리 없어 공작은 리안을 제 아들이라는 거짓말을 은근히 퍼뜨렸다.

이런 사실만 늘어놓고 보면 그들이 목소리 높여 리안을 배신자라 욕할 필요는 없었다. 자칫 공작가와 척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눈이 돌아간 것처럼 화를 내는 건 전부 노아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무어라 욕하든 일절 무시했지만, 리안을 무시하는 말 만큼은 참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리안에게 반감을 가지고 온갖 모욕을 쏟아냈다.

…그러다 노아에게 살해당할 뻔한 이후 리안에 대한 욕은 그만두었지만, 분노를 꺼뜨리지 않았다.

하얀 가면이 노아가 그리도 싸고돌던 ‘리안’이라는 사실은 한 치의 틈도 완벽하게 전장을 지배하던 노아를 끌어내릴 만한 건수였다.

귀족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노아를 깎아내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목을 베어 걸어둡시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리안의 목을 베어 적군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장식해두자는 잔혹한 말을 즐거운 얼굴로 입에 담았다.

모든 이들이 과격한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다.

“흑마법에 당했을 수 있습니다. 적군의 병사들처럼 말이죠.”

“자칫 공작과 척질 수 있습니다. 그녀가 언제든지 이곳으로 달려올 수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누군가는 리안이 무고한 희생자일 수 있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눈이 돌아간 공작가를 걱정했다. 이에 귀족들은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지휘관은 말없이 두서없이 떠드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장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으니, 가장 먼저 조사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진중한 지휘관의 눈빛에 귀족들은 몇 마디 꿍얼거리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회의가 막을 내릴 그 시점, 노아는 멍한 얼굴로 시체가 되어버린 리안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휙 돌려 제 곁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진지한 얼굴로 미동도 없는 제 육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머리의 리안이 노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노아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리안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덮었다. 그러자 제 육체를 내려다보던 리안의 시선이 부드럽게 그녀를 향했다.

리안은 익숙지 않은 스킨쉽에 얼굴을 붉히면서 슬쩍 노아의 손을 잡았다. 깍지까진 아직 용기가 부족해 도전하지 못했다.

“금방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응…”

분위기도 얼굴도 딴판이었지만, 말투부터 작은 습관까지 노아가 알고 있는 리안이 눈앞에 있었다.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절망과 나락을 뒹굴 정도는 아니었다.

노아는 리안이 붙잡아 준 손을 내려다보며 빈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리안의 손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머릿속에 부드러운 털가죽으로 덮인 수갑 따위가 둥둥 떠다녔다. 사색에 잠긴 노아의 모습은 꽤 안정적으로 보여, 리안은 다시 시선을 돌려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제 본래의 몸이 눈앞에 있는데도 무슨 고민이 필요할까 싶지만, 미묘한 불안감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할 수 없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더 깊은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이 가슴을 옥죄었다.

‘도대체 왜?’

머릿속을 더듬어 어디서부터 시작된 두려움인지 찾아보려 했지만 실마리 조차 찾을 수 없었다.

리안이 사색에 잠겨있던 그때, 펄럭하는 소리와 함께 천막 입구 천을 들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새하얀 옷자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노아의 숙소 안으로 성큼 들어온 이들은 모두 새하얀 신관복을 입은 신관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이곳이 자신들의 구역인 양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리안과 노아를 바라보았다.

“다들 나가주십시오.”

가장 앞에선 금발 머리의 신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신관이 빠르게 하얗게 질린 리안의 시체에 다가왔다.

“..! 지금 뭘 하려는 겁니까!”

그들이 리안의 몸을 가져가려 하자 노아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처럼 사나운 얼굴로 막아섰다. 리안은 이게 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만 도륵도륵 굴릴 뿐이었다.

“그건 내가 설명하지.”

신관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이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노아를 배신자라 소리치던 귀족 중 한명이었다.

“지금부터 하얀 가면의 시체는 빛의 신전의 대신관께서 관리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곳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도록.”

“그게 무슨..”

노아가 곧바로 반론하려 했지만, 귀족은 그녀의 말을 가볍게 끊어내며 말을 이었다.

“죽었다고는 하나 마왕군의 간부 중 한명으로 추정되는 하얀가면이다. 놈이 사악한 흑마법으로 죽음을 위장했을 수도 있으니, 대신관께서 관리하는 게 옳은 일이다.”

그는 조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건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다. 만약, 대신관의 허락 없이 하얀 가면에게 접근했다간 저놈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거다.”

그의 시선이 하얀가면의 시체, 리안의 몸을 향했다.

“인간을 배신하고 마왕군에 붙은 ‘배신자’라고 불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조심하도록.”

“..! 리안은 배신자가..!”

“허? 설마 제국군 병사들을 학살한 하얀 가면을 옹호하는 건가?”

몸에 남아있는 ‘개그 필터’로 인해 짭 리안이 상처입힌 병사들은 겉보기에 아파보이는 상처가 생길 뿐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다치거나 죽은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하얀가면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건 위쪽에 퍼진 정보였다.

노아가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당당하게 반론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평민’이었기에 정보가 부족했다.

하얀 가면을 옹호하는 건 그의 말대로 ‘인류의 배신자’라 불려도 손색없는 말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노아는 깊게 분개했다.

노아가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 거친 행동을 보이려는 순간, 리안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잘 알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리안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귀족은 뒤늦게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리안을 인지했다.

퇴폐적이면서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리안의 모습은 정의의 편이라기보단 ‘악’에 가까워 보여 귀족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이내 그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더러운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리안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리안은 곧바로 노아의 손을 잡아끌어 천막을 빠져나왔다.

“잠..! 리안!”

그녀는 리안을 불러세우려 했지만 단호한 손길에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천막 앞에는 성기사 두 명이 차가운 표정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경계가 가득한 시선이 리안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은 리안이 그저 ‘검은 머리’라는 이유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노아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꽈악.

그런 그녀를 저지하듯 혹은 위로하는 듯 단호하면서도 따스한 손길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아 내렸다. 살살 손바닥 안쪽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분노로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있던 노아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오싹하면서도 간지러운 감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리안은 그런 노아를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이끌었다.

***

10분 정도 걸어, 제국군의 주둔지와 약간 떨어진 장소에서 리안의 발걸음이 멈췄다. 노아는 곧바로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질문을 입에 담았다.

“리안 어째 -…”

그녀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타닷!

땅을 박차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붉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리안을 덮쳤다.

“억…!”

연약하기 짝이 없는 몸을 가지고 있던 탓에 리안은 일주일 만에 돌아온 주인을 만난 것 같은 제스의 몸통 박치기에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다행히 뒤에 서 있던 노아가 쓰러지는 리안의 몸을 받쳐주었다.

“히히히!”

제스가 귀엽게 웃음을 터뜨리며 리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문질렀다. 페로몬이 얼마나 자극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리안은 가마에 실려 이동하던 중에 페로몬 기관을 없애버렸다.

그 덕분에 목덜미에선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지만, 제스는 습관적으로 페로몬이 흘러나오던 곳에 볼을 문질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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