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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2

    <202 – 순위가 밀리는 이유>

     

    카시아는 강을 건너기 전에 물었다.

     

    “왜 그런 이상한 계약을 걸었어?”

    “100명을 먼저 통과시키기 전까지 기승시합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

    “응. 그거.”

    “혼자만 통과하면 성적이야 잘 받겠지만 그게 함정이거든!”

    “함정?”

    “교장의 가르침 강의는 특별히 무슨 시험을 본다고 얘기가 없었던 거 기억해?”

    “기억해.”

    “그거, 실은 상급반 체력단련이랑 같이 치러!”

    “…시험 하나에 강의 두 개의 성적이 동시에?”

    “응. 그것도 자기랑 같은 조 사람들의 성적순위도 계산하고, 같은 그룹 학생들의 성적도 계산해! 그래서 변방출신은 혼자만 딸랑 지나가면 성적이 나빠져.”

     

    카시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의문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늘어났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남의 말 엿듣기를 잘하는 친구가 있거든!”

     

    다른 교수도 아니고 그 교장의 말을 엿들어?

    곱씹을수록 황당한 대답이다.

     

    “그래서 안 지나갈거야?”

    “성적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아이린도 같이 지나가요. 용사가 좋은 성적 받게 두지는 않을 거죠?”

    “…그럴 수는 없지. 견제라면 내게 맡겨줘.”

     

    이로써 선두주자는 모두 강을 건넜다.

    덕분에 오크노디도 시름을 덜었다.

     

    “헤헹. 날로 먹었당.”

     

    혼자서 학생대군을 틀어막는 장판파 메타를 충족시킬 모든 요소가 완성됐다.

    강력한 경쟁자들을 먼저 보내고.

    신언으로 공증을 받아 적대관계의 NPC가 다시 돌아와 깽판을 못 치도록 방지하고.

    강 밑에 마목을 숨겨두어 방심시킨다.

    이제부터 강에 진입하는 학생은 내 의지에 따라 건널 수 있는가, 건널 수 없는가가 정해진다.

     

    ‘포인트야 조금 아깝지만 대신 다른 방향으로 뽕을 뽑으면 되지!’

     

    마목들의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강 속을 헤엄치는 수중몬스터들을 잔뜩 잡았다.

     

    건드리면 먹물을 쏟아내는 문어 몬스터 먹물문어.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오징어 몬스터 끈끈징어.

    움직이는 물체를 향해 빙글빙글 날아와서 몸통박치기를 날리는 불가사리 몬스터 오각사리.

     

    전부 불에 구워서 먹을 수 있는 해산물이다.

     

    단단히 찍힌 제국출신 학생들도 혼쭐을 내주고.

    변방출신 학생들도 챙겨주고.

    겸사겸사 시험점수도 챙기고.

    도감수집도 동시에 한다.

    잘하면 부서진 우리로 탈출한 탑승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한 선발대 100인이 고전하는 사이에 먼저 골렘을 타고 골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상급반 시험 두 개를 동시에 날로 먹는다.

    한 번에 수많은 이득을 거두니 이것이야말로 고인물의 풍모가 아닐까.

    우쭐한 기분에 취한 오크노디의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갔다.

     

     

    * *

     

     

    아카디아는 소용돌이 사이에서도 흔들림 없이 편안한 마목의 승차감에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맞나…?”

     

    변방출신의 학생들을 이끌고 후발대를 인솔하며 시험을 치르던 아카디아.

    2학년 본대에게 쫓기며 “먼저 가십시오, 공녀님!”,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제가 은혜를 갚을 차례입니다.” 따위의 소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시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히 막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맞은편에서 마찬가지로 상당한 희생을 치르고 탈출한 안데르센 대공자 일파도 만신창이기는 마찬가지.

     

    “아카디아. 꼴이 말이 아니군.”

    “흥. 그러는 안데르센 공자님도 머리에서 피 엄청 흐르고 있거든요? …진짜 너무 많이 흐르는데? 치, 치료 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고작 이 정도 출혈량인가? 괜찮다. 강의시간에도 늘 있는 일이니.”

     

    대체 이 사람은 무슨 강의를 듣고 다니는 거야.

    잘 보니 안데르센 대공자의 곁에 남은 남학생들은 전부 그와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뿐이다.

    같은 강의를 듣다가 도주한 이탈자가 80%를 넘을 정도로 빡센 강의만 골라서 들었다더니, 남은 정예들은 눈빛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앗, 아카디아! 언제 오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얼른 지나가세요!”

    “오크노디!? 아직까지 이런 곳에 머무르고 있다니 뭘 하고 있는 건가요!”

    “에이. 아카디아를 두고 제가 혼자 지나갈 리가 없잖아요?”

    “오크노디…!”

    “안데르센 공자님은 음, 머 선심 썼다. 겸사겸사 같이 지나가는 걸로!”

     

    시장터에서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덤이라도 얹어주듯이 하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 강에서 오크노디가 지닌 권력을 보면 농담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당장 항전의지도 상실한 채 멀뚱멀뚱 쳐다보며 시간만 축내는 제국진영 학생들과 2학년들을 보면 오크노디의 배려는 달게 받을 수밖에.

     

    “오는 길에 즈앙이랑 싱은 못 봤어요?”

    “계속 달리고 있지 않을까?”

     

    저 안에서.

    원형으로 짜인 계단 밑의 둥근 숲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길이야 정말로 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회오리 치듯이 조금씩 안쪽으로 굽어지니 언젠가는 계단에 도달하고 강에 오겠지.

    하지만 정석대로 길을 다 따라오면 시간이 말도 안 되게 소모된다.

    힘이 아닌 지혜를 높이 치는 시험.

    체력단련이라고 정말 체력만 쓰는 바보들은 성적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변방그룹 전체의 고득점을 위해서는 바보들도 상위권으로 득점해야 한다.

     

    “어쩔 수 없네요. 몇 시간만 더 기다리는 수밖에!”

    “오크노디. 설마 변방학생들이 전부 건널 때까지 여길 지킬 셈이야?”

    “당연하죠!”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다.

     

    ‘바보 같은 아이. 왜 늘상 손해 보는 짓만 이리 자처하는 건가요?’

     

    소속감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재단에서는 정을 붙이고 자라지 못해서.

    서로 죽고 죽이지 않아도 맺어지는 유대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고 필사적으로 시험에 응하는 걸까?

    아카디아는 결심했다.

    이 바보같이 순수한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먼저들 가세요. 전 여기서 오크노디를 돕겠어요.”

    “아카디아는 냐한테 갈비맛통조림캔도 주고 랍스타맛통조림캔도 주고 가리비맛통조림캔도 줬다냐! 두고 갈 것 같냐!”

    “벽력성천신교의 가르침에 은혜를 은혜로 갚으라는 말은 없지만 사람 된 도리로서 돕고자 합니다. 그것마저 말리시지는 않으시겠죠?”

     

    수인격투가 제냐와 벽력성천신교 수녀 니세.

    두 사람을 시작으로 대공자를 따르던 남학생들도 이에 질세라 조력의사를 드러냈다.

     

    “그렇게 됐어요, 디. 저희 조력을 받아주실거죠?”

    “음… 싫어요!”

     

    오크노디는 해맑게 웃으며 거부했다.

    멍한 얼굴의 학생들.

    그들의 배후.

    수중에서 튀어나온 마목들이 나뭇가지를 뻗어 학생들을 기둥 위에 태웠다.

    이어지는 결과는 보트피플마냥 강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건너편에 도달하는 신세가 되는 것!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교관이 채점표를 꺼내들고 부산히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카디아는 제발 저게 감점만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 *

     

     

    <정보전달 – 탑승물의 위치>

    <학점투자금 1000p 소모>

     

    “젠장. 아까워 죽겠네.”

    “아서라. 그거 아끼다가 탑승물 찾느라 시간 다 털린다 야.”

     

    <제네거의 전술학> 강의 중간고사.

    무려 전문도박꾼 출신 교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도박판이나 다름없는 패널에 떠오르는 정보들을 보며 기가 질렸다.

     

    선택된 강의에서 [예측대상]을 한정짓고 [예상순위]를 기록하여 배당률에 따라 학점을 습득한다.

     

    예측대상이 많을수록 예상종합순위는 뭉뚱그려 추측할 수 있지만 예측대상이 적을수록 예상종합순위는 더욱 정밀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보다 우수한 점수를 얻으려면 배당률이 높은 도박에 임하거나 하나라도 더 많은 사항을 맞춰내야만 한다.

     

    이 같은 고민거리에 3학년들은 성향에 따라, 배당에 따라 대상과 범위가 마구 갈라졌다.

     

    “정배인줄 알았던 용사가 고전을 하다니, 역시 오크노디도 보통이 아니야.”

    “흥. 그래봤자 제 꾀에 제가 넘어간 바보지. 3학년들이 자기 학점투자금을 소모해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한테 간섭할 수 있다고는 예상도 못했잖아?”

    “그렇긴 해.”

     

    정배 중의 정배.

    배당률이 가장 낮은 용사에게 건 3학년들은 1위로 골인한 용사의 모습을 보며 크게 안도하였다.

     

    “역배에 걸면 뭐해? 그 많은 학점 다 얻지도 못하고 날려먹을 텐데.”

    “맞아. 오크노디를 보라고. 정말로 100명을 먼저 보낼 때까지 안 지나갔잖아.”

     

    오크노디 1위에 배팅한 3학년들의 입에서는 “낙제? 어째서? 낙제? 어째서?” 따위의 고장 난 소리만 반복해서 나왔다.

    본래 오크노디의 배당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는데 한 학생이 그녀의 실력을 좋다고 평가하면서 줏대 없는 이들의 학점투자금이 쏠린 탓이었다.

     

    “어이, 펠리스! 네가 오크노디는 믿을 수 있는 우량주라고 했잖아. 어쩔 거냐고, 이거!”

     

    이미 낙제가 확정된 학생들 중 한 명이 오크노디에 대한 호평을 했던 학생에게 항의했다.

    노골적으로 수상한 검은로브를 뒤집어쓴 자.

    지나가던 이단심문관도 게슴츠레 쳐다보며 가시가 잔뜩 달린 메이스를 꺼내 쥐고 싶게 만드는 이.

     

    “틀림없다. 저 아이는 가장 우수한 자질을 지녔다.”

    “그럼 왜 1위를 못하고 10위권까지 내주게 생겼냐고!!”

    “가장 우수한 ‘암흑사제’가 될 자질을.”

     

    오크노디와도 인연이 생긴 3학년 선배.

    빨간이빨버섯 비밀사육장 오너.

    암흑사교회 정규회원 펠리스.

    파멸적인 화법으로 수많은 시험 탈락자를 양산해낸 그는 오크노디의 기록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가장 우수한 ‘학생’의 자질은 안 보이는군.”

    “야, 이 쓰레기 새끼야!! 잘도 날, 잘도 날 속였겠다아아아!!!”

     

    상남자처럼 오크노디가 1위를 할 것이다, 안전빵으로 오크노디가 3위 안에 들 것이다에 배팅한 자들은 모조리 줄지어 탈락한 지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극한의 안전빵으로 오크노디가 50위 안에는 들 것이다에 배팅하고 다른 파산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학점이수를성공할 계획을 세웠던 펠리스.

    암흑사교회의 정규회원다운 실로 귀축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긴 그였지만, 잘 나가던 계획에도 문제가 하나 생겼다.

    오크노디가 제2구간에서 100명을 앞서 보내려는 움직임을 취하는 것.

    이대로는 순위가 한도 끝도 없이 밀릴지도 모른다.

    조급함을 느낀 다른 3학년들이 각자 자기가 미는 학생들에게 탑승물의 위치정보를 넘겨주어서 골라인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도 오크노디가 서두르도록 돕지 않으면 다른 얼간이들과 같은 꼴을 당하게 생겼다.

     

    “동기부여를 해야겠군.”

     

    펠리스가 마법시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오크노디가 기다리고 있는 두 학생.

    즈앙과 싱의 위치정보를 넘겨준다.

     

    “?”

     

    펠리스는 헛것을 보았나 싶었다.

    눈을 깜빡였다.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손으로 뺨을 때려보았다.

    그래도 마법시계에 출력된 위치정보가 이상했다.

     

    “…이번 1학년은 이상한 학생들이 많군.”

     

    즈앙과 싱의 위치는 황당하게도 남들 다 빠져나온 숲의 중반.

    심지어 근처 2학년들의 신호가 감지하기도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마구 꺼진다. 새빨간 신호로 가득했던 숲이 엄청난 속도로 침묵하고 있다.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뿐이었다.

    먹이사슬이 뒤집혔다.

    뭘 해서 늦나 싶었더니 길을 헤매서 늦은 것도 아니고, 1학년들이 역으로 2학년들을 사냥해서 쓰러뜨리느라 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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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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