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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3

       어차피 생각해도 바꿀 수 없는 우울한 일이라면 그냥 그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렇다고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그 일로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껴온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뿐.

        

       그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내가 죽인 크로우필드 백작이나, 전장에서 상대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이런 시대고, 이런 세계다. 애초에 사람이 대놓고 죽는 장면이 나오는 게임 속 세상에 살면서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쪽이 오만이었다.

        

       “실비아?”

        

       문득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깜빡였다.

        

       샤를로트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혹시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아닙니다.”

        

       나는 곧장 대답했다.

        

       그냥, 어제 앨리스와 나누었던 대화가 잠깐 떠올랐을 뿐. 먹은 음식이 맛이 없어서 할 말을 잊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음식은 맛있었다.

        

       아카데미나 황궁에서 먹는 음식도 맛있는 편이다. 아무리 그 인터넷의 ‘영국 음식’ 밈을 바탕으로 한 제국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귀족들마저 음식 같지 않은 음식을 입안에 욱여넣으며 살지는 않는다.

        

       잘 구운 스테이크라든가, 영국식 아침 식사라든가. 티타임에 먹는 많은 종류의 디저트라든가.

        

       그리고 제국이라고 해서 언제나 제국 정통음식만 먹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살면서 매일 한식만 먹지 않고 여러 나라의 음식들을 먹듯, 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음식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샤를로트가 왜 종종 아카데미 음식에 불만을 나타내곤 했는지, 대체 벨부르 음식이 얼마나 맛있기에 그런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맛있기는 정말 맛있었다.

        

       뭔가 결정적으로 ‘아, 이건 너무 맛있어서 다른 건 다시 못 먹겠다’하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랄까, 세세한 부분에서 조금씩 달랐다. 고기의 질감이라든가, 배어 있는 향이라든가. 소스의 달콤함이나 점도라든가.

        

       그 세세한 부분이 전부 합쳐지니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아주 맛있습니다.”

        

       “그런가요?”

        

       내 대답에 샤를로트는 그저 예의상 대답하는 귀족처럼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을 내비치진 않았지만, 그 시선이 아주 잠깐 앨리스를 향했다.

        

       앨리스는 조금 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 평가 하나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내가 뭐 대단한 미식가도 아니고.

        

       음, 어쩌면 평소에 무표정을 유지해오던 내 기술이 빛을 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쟤 표정을 조금이라도 깰 수 있다면 그곳의 음식은 엄청나게 맛있다!’ 같은 척도라도 생긴 것일까?

        

       솔직히 내 표정을 깨기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앞에 장어 젤리를 가져다 두는 것이긴 하지만, 굳이 말해주지는 말기로 했다.

        

       테이블에는 나, 앨리스, 샤를로트만 앉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레어, 레오, 미아, 레나, 소피아도 함께 앉아있었다. 제이크와 로티는 둘이 따로 식사하겠다는 모양이다. 일행 중 자신을 제외하면 유일한 남성이 따로 식사하겠다는 말을 듣고 레오의 표정이 잠시 무너졌지만 어쩌겠는가. 친구가 죄다 여성뿐인데.

        

       클레어는 눈을 반짝이며 식사를 하고 있었고, 레나는 평소처럼 침착하게 칼과 나이프를 움직이고 있었다. 소피아는 평소와 거의 비슷한 표정이긴 했지만, 이따금 레오의 얼굴을 흘끗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미아는 입 안 가득 음식을 넣고 행복한 표정으로 씹고 있었다.

        

       ……나도 미아처럼 저렇게 먹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먹고 나서 시간을 돌리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금방 포기했다.

        

       어차피 스테이크야 평소에도 먹던 음식이니까. 여기서 시간을 돌려가며 식사를 하면, 앞으로 샤를로트가 소개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죄다 그렇게 해야 할지 모른다.

        

       안 그래도 샤를로트는 뭔가 단단히 준비한 표정이니까. 기왕이면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간을 돌리고 싶다.

        

       앨리스를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샤를로트와, 그런 샤를로트를 분하다는 듯 바라보는 앨리스를 한 차례씩 보고, 나는 내 앞에 놓인 접시에 집중했다.

        

       *

        

       “언니, 언니, 이것 봐!”

        

       식사를 마치고 길가로 나와 걷는데, 클레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쨘!”

        

       그렇게 말하며 클레어가 꺼내 보인 것은 카메라였다.

        

       물론 내가 살던 세상의 디지털카메라와는 상당히 다르게 생긴, 척 봐도 엄청나게 골동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디자인의 카메라였다.

        

       다만 내 기준으로 골동품처럼 생겼다는 소리지, 이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최신기술이다. 무려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카메라니까. 게임사에서는 ‘라●카’라는, 현대에도 존재하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카메라를 만드는 회사의 디자인을 참고했다고 했다.

        

       “해외여행 간다고 해서 준비해왔지! 어때?”

        

       “상당히 비싸다고 들었습니다만.”

        

       평소에 카메라에는 별로 관심 없는 나였다. 그럼에도 내가 그 최신식 카메라의 존재나 가격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유는, 그런 것이 있으면 기밀을 파고드는 데 좀 써볼 만할까 고민해봤기 때문이었다.

        

       디지털카메라처럼 손쉬운 후처리로 어두운 곳의 사진을 밝게 만들거나, 메모리카드에 넣어서 보관하기 용이하거나, 작아서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거나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하거나…… 그런 기능이 전혀 없는 필름 카메라는 쉽게 활용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관심을 끊었지만.

        

       필름에서 사진을 인화하려면 어두침침한 암실에서 현상액으로 직접 인화해야 했다. 기밀인 만큼 다른 사람한테 시키기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그렇게 번거롭게 얻은 사진 모두 시간을 돌리면 죄다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저 카메라에는 당연히 자동초점 기능도, 손떨림 방지 기능도 없고.

        

       뭐, 그래도 추억 남기기용으로 쓰기는 좋겠지만.

        

       “후후.”

        

       클레어가 순간 샤를로트가 빙의한 것이 아닌가 싶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당당하게 가슴을 쫙 펴며 말했다.

        

       “이렇게 보여도 열심히 사냥을 했거든. 나한테 꼭 필요한 마르마로스 몇 개 빼고는 죄다 정리했으니까.”

        

       생각해보면 이런 것도 게임과는 다른 면이었다.

        

       게임에서는 아무리 물건을 정리하고 돈을 벌어도, 회복용 요리나 포션, 방어구나 무기 등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물건들 외에는 살만한 것이 이벤트성 아이템들뿐이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물건을 구입하는 주체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샤를로트의 시선이 한순간 클레어 손에 있는, 제국에서 만든 것이 분명한 카메라를 향했다가 앨리스에게 돌아갔다.

        

       앨리스는 무척 자랑스럽다는 듯 웃고 있었다.

        

       샤를로트의 표정이 아주 잠깐 분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 왜 너희들 물건도 아닌 것으로 그렇게 기 싸움을 하는 거냐고. 조금은 어른스럽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여전히 이 둘은 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 기왕 이렇게 나온 거, 추억을 확실하게 남기고 싶어서.”

        

       클레어의 그 말에는 다른 사람 모르게 서로 노려보던 앨리스와 샤를로트의 표정도 조금 흔들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였으니까.

        

       “훌륭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 말이 그 분위기의 결정타가 되어서, 결국 샤를로트와 앨리스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카메라에는 당연히 셀카 기능 따위 없었다. 거리계부터 초점까지 죄다 수동으로 맞춰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길 가는 사람 중에서 카메라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도 없었고.

        

       하지만 다행히 클레어는 그 상황도 예상을 했는지, 아침부터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에서 카메라용 삼각대를 꺼냈다.

        

       가벼운 신소재가 개발되지 않은 이 시대 기준으로는 무거운 쇳덩어리였을 텐데, 클레어는 ‘검이랑 무게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는다’라면서 웃어넘겼다.

        

       ……확실히 여기 있는 아이들 모두 각자 무기를 휘두를 줄 아는 전투원이기도 했으니까.

        

       사진 찍을 장소는, 저 멀리 떨어진 루테티아 궁전이 잘 보이는 대로변이었다.

        

       루테티아 궁전을 등지고 서서 다 같이 열을 지어서 서서, 클레어가 만지작거리는 카메라 쪽을 바라보았다.

        

       “좋아, 찍는다!”

        

       클레어는 그렇게 외치더니, 카메라 앞쪽의 어떤 손잡이 같은 것을 아래쪽으로 당겨두고 검사다운 발놀림으로 얼른 달려왔다.

        

       그리고 나와 앨리스 사이를 파고들더니 그대로 내 팔에 팔짱을 끼워버렸다.

        

       “아—”

        

       앨리스가 불평하기도 전에, 찰칵, 카메라 셔터가 내려왔다.

        

       그날 저녁에 현상된 카메라 사진에선, 클레어 한 명만 카메라 쪽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들 나와 클레어 쪽을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뭐, 그래도 다들 얼굴은 확실하게 나왔고, 유쾌하게 찍혀서 오히려 좋은 사진이었다.

        

       사진 구석에 슬쩍 나온 누군가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최대한 빠르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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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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