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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3

       

       

       

       

       

       

       용사와 드래곤, 황실 기사단의 합작으로 자이언트 앤트는 신속하게 정리되었다. 

       

       ‘이 멤버면 신속하게 정리가 안 되는 게 이상하긴 하지.’

       

       자이언트 앤트가 분명 강력한 마물은 맞지만, 상대가 워낙 좋지 않았다. 

       

       레키온은 용사답게 전투가 끝나자마자 마을 사람들의 안위부터 살폈다. 

       

       “사람들은 괜찮습니까?”

       “덕분에 대부분 무사히 대피했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용사님!”

       

       작은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노인은 연신 허리를 숙여 우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습격 초기에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희로서는 그 점에 감사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노인의 목소리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도가 묻어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레키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전부 구했어야 했는데.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내가….”

       “그만둬, 레키온.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데보라는 자책하는 레키온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황실 기사단의 소대장, 커트 브륀도 입을 열었다. 

       

       “데보라 님의 말이 맞습니다. 우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소대장님….”

       “용사님은 살아남은 이들의 감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

       역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뭔가 말도 멋있게 하는 것 같고 멘탈도 강해 보였다. 

       

       ‘그렇지. 저게 맞는 말이긴 해.’

       

       레키온이 워낙 정의감이 투철해서 그렇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을 전체가 박살이 날 뻔한 걸 구하고 사상자를 최소화한 것이니 칭송을 받아 마땅한 행동이었다.

       

       “알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데비, 너도 고마워.”

       “그래. 꼭 넌 잘 하다가 한 번씩 이렇게 멘탈 터지고 그런다니까.”

       “하하….”

       

       일을 마무리하고 여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임시로 한 방에 모여서 자이언트 앤트 사건에 대해 회의를 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커트 브륀이었다.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자이언트 앤트는 마을을 선제 습격하거나 하는 공격적인 습성이 없거든요.”

       

       그러자 다른 황실 기사단원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기사 생활 삼십 년, 자이언트 앤트가 아무 짓도 안 한 민간 사람들을 습격해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

       “나도 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 자이언트 앤트는 검이나 마법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일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은둔자들이니까.”

       

       역시 황실 기사단원들이라 내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개괄적인 부분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라도 마을 사람들 중에 자이언트 앤트를 화나게 할 만한 행동을 한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게. 예를 들면 자이언트 앤트의 알을 훔쳐 왔다든지….”

       “이런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에 자이언트 앤트의 서식지까지 제 발로 들어가서 알을 꺼내 올 만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래.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긴 해.”

       “흐음. 그럼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정말 그냥 사고라고 봐야 하는 건가.”

       

       기사단원들이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레키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자이언트 앤트와 싸울 때 뭔가 이질적인 기운을 느꼈습니다.”

       “이질적인 기운 말입니까?”

       

       커트의 물음에 레키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시다시피 저는 오러와 다른 힘인 신성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꼈다는 이질적인 기운은, 정확히 이 신성력과 반대되는 기운이었죠.”

       “신성력과 반대되는 기운이라면….”

       “그 농도가 짙지 않아 확신하기 어렵습니다만, 제가 느끼기에는 ‘마기’ 같았습니다. 하무트교와 싸울 때 느꼈던, 악마의 기운이죠.”

       

       마기라는 말에 황실 기사단원들의 눈이 커졌다. 

       

       “자이언트 앤트들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악마에 관해 저도 알고 있는 게 많지는 않아서…. 그저 이번 전투에서 그 기운을 느낀 것뿐이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좋아, 이제 내가 나설 차례가 왔군.

       사실 조금 전에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마침 레키온이 마기를 느꼈다고 말을 해 준 덕분에 장황하게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마기 어쩌고 하는 것보다 용사가 직접 ‘전투하다가 느꼈습니다’ 하는 한 마디가 더 황실 기사단 쪽에는 와 닿을 테니까.

       

       나는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레키온 단장님이 말씀하신 게 맞을 겁니다. 왜냐하면, 일부 악마의 능력 중에는 마기를 이용해 마물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죠.”

       “마물을 조종한다고?”

       “그게 가능한 건가?”

       “마물은 종마다 습성이 다르고 저들끼리도 싸울 정도로 독립성이 강한 놈들인데….”

       

       놀라는 걸 보니 이 사람들, 진짜 마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

       

       ‘하긴, 마지막으로 마신이나 마왕들과 전투를 벌였던 게 천 년 전이니 모른다고 해서 이상한 건 아니지.’

       

       게다가 마신, 마왕들과 정면에서 맞서 싸우고 그들을 봉인한 건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다. 

       

       악마와 드래곤의 싸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우 등이 터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피난을 가고, 숨어 지냈을 터. 

       

       그 싸움을 목전에서 보고 기록으로 남겨 둘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으며, 그렇게 남겨진 기록이 지금까지 보존되었을 가능성은 더 낮다. 

       

       ‘그리고 그런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건 대부분 유적지나 히든 맵 같은 곳이었지.’

       

       그러니 황실 기사단이라고 해도 악마에 대한 건 잘 모를 법했다. 

       

       “정확히는 마왕 바할라크가 주로 사용하던 능력이었죠. 다른 마왕들도 바할라크가 쓰는 걸 보고 비슷하게 따라했다던데, 원조는 못 따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하무트는 그 능력을 이용해 자이언트 앤트를 폭주시킨 걸 겁니다.”

       

       내 말에 주변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으응? 마왕…?”

       “바할…뭐라고 했지?”

       “아니, 그보다 레온 님은 어떻게 이런 걸 알고 계신 거지…?”

       “용사님, 레온 님이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

       

       갑자기 정보가 쏟아지자 황실 기사단은 당황했고.

       

       “네. 사실 저보다 악마에 대해서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여기 계신 레온 님입니다. 이제야 말씀드려서 죄송하지만, 이게 저희가 동행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용사의 인증까지 받자, 커트 브륀은 나에게 물었다. 

       

       “대체 레온 님은 정체가 무엇입니까? 아까 전투에서는 여러 속성의 마법을 전부 엄청난 숙련도로 쏘아 내시던데….”

       “맞아, 나도 봤네.”

       “마법의 위력이 심상찮더군.”

       “마법을 연구하는 자들 중에 지식욕이 왕성한 자가 많다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나는 일단 웃으며 얼버무리기로 했다. 

       

       “하하. 제가 유적지나 대륙 탐험에 관심이 좀 많았어서요. 알고 있는 잡지식이 좀 많습니다.”

       

       딱히 거짓말도 아니다. 

       「레키온 사가」를 할 때 많이 찾아다니긴 했으니까.

       

       “그냥 잡지식이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닌데….”

       “뭐, 제 정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일이 다 끝나면 더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죠.”

       

       어차피 하무트랑 한 판 제대로 붙고 아르가 천 년의 힘을 쓰고 나면 정체는 자연스럽게 드러날 거다. 

       

       ‘그래서 좀 수상해 보이더라도 마왕에 대한 정보를 좀 풀어 놓은 거지.’

       

       수상해 보이면 어쩔 건가.

       바로 옆에 우리의 신원과 신뢰도를 증명해 줄 용사 하이패스권이 있는데.

       

       “평범한 테이머 용병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걸 숨기고 있었구먼….”

       “알고 보니 저 와이번도 뭐 있는 거 아니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가 순간 제 발 저려서 삐꾹, 하고 딸꾹질을 했지만, 다행히 아무도 신경쓰진 않았다.

       

       ‘그나저나 설마 하무트가 바할라크가 쓰던 방법으로 자이언트 앤트를 조종해서 마을을 습격하게 만들 줄이야.’

       

       하무트가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마 단순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시간 끌기. 하무트는 저희가 이전 지부를 토벌했을 때, 곧 이쪽으로 향할 거라는 걸 짐작했을 겁니다. 그래서 용사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마물을 조종해 마을을 습격하게 한 거죠.”

       “고작 그런 이유에서 자이언트 앤트를…!”

       

       사실 ‘고작 그런 이유’는 아니다. 왜냐하면 놈들은 하무트의 부활 의식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안 그래도 패닉 상태인 황실 기사단 앞에서 부활 의식까지 언급하기엔 좀 그렇지.

       

       “어쨌든, 저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마을의 안전을 위해서 하무트가 마기를 불어넣은 마물들을 전부 정리하면서 천천히 진격할 것인지. 아니면 마물을 전부 무시하고 빠르게 쳐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 결정은 용사 레키온이 내릴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전부 레키온에게로 옮겨갔다. 

       

       ‘결론이야 뭐, 사실 뻔할 뻔 자지만.’

       

       정의감 투철한 용사 레키온이 무슨 결정을 내릴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다. 

       

       레키온은 우리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격이 늦어지더라도, 저희는 위험한 마물을 모두 처리하며 나아갈 겁니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건, 제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니까요.”

       

       ***

       

       우리는 그렇게 자이언트 앤트의 서식지로 향했다. 

       

       “서식지는 또 어떻게 아신 겁니까…?”

       

       다행히 내가 아는 맵이었어서 위치를 지도에 찍으니 황실 기사단원들은 다시 한번 놀라워했다. 

       

       “제가 마물 생태계에 관심이 좀 많아서요.”

       

       얼버무리며 넘어간 나는 배고파하는 아르에게 간식을 꺼내 주었다. 

       

       “뀨우.”

       

       마을에서 사 온 신선한 샌드위치와 우유를 해치운 아르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뚠뚠한 배를 젤리로 두드렸다. 

       

       “뀨우?”

       

       뀨 소리를 내며 콧노래를 부르던 아르는, 문득 레키온 쪽을 바라보았다. 

       

       “쀼.”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온. 삼쵼이 몬가 이상해. 표정이 안 조아.’라고 말했다.

       

       ‘음, 그러네? 항상 활기찬 레키온이 웬일이지?’

       

       보통 이 타이밍에 ‘아유, 우리 아르 샌드위치 맛있게 먹었어? 귀여워라.’라며 호들갑을 떨어야 할 레키온은 가만히 마차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 하나?’

       

       하지만 다들 마차에서 조용히 있는데 갑자기 침묵을 깨며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이상한데.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걸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좀 지켜보자, 아르야.’

       

       나는 아르에게 뜻을 전달하며 뚠뚠한 배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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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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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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