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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3

       인권이란 무엇인가.

        

       분명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응당 주어지는 권리라고 하여 인권, 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사실 돌이켜보면……그 시절 학교는, 인권의 효용보다는 그 한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우는 현장이기는 했더랬다.

        

       반수 이상의 문제를 틀린 이상 너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금수가 된 것이니, 이제부터는 언어가 아닌 몽둥이로 소통하겠노라는 선생님들도 있었고……아무튼.

        

       그러니까, 학교란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툭툭 건드려지는 일을 예습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교과서에 적힌 바와 달리, 현실 사회에서는 인권이라는 것이 결코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과 함께.

        

       그러나 때로 한없이 잔혹했던 학교에서도, 모두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연출하는 기적적인 시간이 있었으니- 바로 부외자인 가족이 학교에 방문하는 시간이었다. 참관 수업이라거나, 학부모 면담이라거나.

        

       아름다운 우리네 유교 문화상,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이런, 잔악무도한 짓은, 이 나라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어떤 흉악범에 대해서도 과한 처벌이지 않나.

        

       “그리고……아! 이건 대회에서 아따먹님이 대활약한 영상인데요. 진짜 장난 아니었어요. 프로게이머 머리를 날려버렸다니까요?”

        

       “……제발 그만…….”

        

       “다들 뭐 매너니 뭐니……헛소리들 많이 했는데, 전쟁에 그런 게 어딨어요. 바로 머리 잘라서 적진에 투척- 아, 여기 나오네요. 사람들 표정 장난 아니죠?”

        

       “편집 잘 하셨네요.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러게요. 솔직히 우리 앜집자 초창기 편집보다도 잘 한 것 같은데요? 진짜 잘했네.”

        

       “헤헤, 감사합니다! 제가 원래 영상편집쪽 지망이기도 하고, 아따먹님 진짜 찐찐찐팬이어서요. 아, 여기! 여기 이렇게, 대검으로 자세 잡고, 지튜브 썸네일 각 뽑아주는 거 보세요. 크으……진짜, 기사 로망 그 자체.”

        

       …… 내 인권이 너덜너덜해.

        

       대체 어떤 흐름에서 이런, 이런 극악무도하고 비인간적인 상영회가 열리게 된 건지. 도저히 맨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고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벌써 20분째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가거나, 하다못해 수치심 감소의 물약이라도 한 병 빠르게 들이켜고 싶었으나……읽기 힘든 표정으로 화면과 나를 번갈아가며 한 번씩 보는 이예리와 눈이 마주할 때마다,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니, 이쯤 되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제지를 해야 하지 않나.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맞은편에 앉아서 태평하게 ‘아- 저 때. 커뮤니티에 아따먹 얘기밖에 없었던 시기네요.’ 따위의 추임새를 넣고 있는 레반에게 강력한 항의의 눈빛을 쏘아보냈다.

        

       네 동생 좀 말려보라고. 제발 어떻게 좀 해줘.

        

       -톡톡

        

       여기를 조금 봐달라는 의미에서 테이블을 다시금 몰래 두들겨 보았으나- 간절한 구원 요청은 벌써 몇 번째고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당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쯤 되면 일부러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 

        

       소원권, 이미 없어졌다 이거지.

        

       역시 핵무기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었는데. 협박수단이 없어지자마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동맹을 저버릴 줄이야.

        

       어디까지 무시하나 보자고.

        

       최대한 조용히 부츠를 벗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들 집중……하고 있었으니.

        

       이어서 테이블 아래로 발을 길게 뻗어서-

        

       -툭툭!

        

       아무 일 없다는 양, 이쪽을 외면한 채 영상이나 감상하고 있는 나무꾼의 정강이에 강렬하게 노크했다.

       

       한 번으로 부족하면, 다시-

        

       -툭툭!

        

       감정은 거의 안 실었다. 거의.

        

       그러자 드디어, 처음으로 반응이랍시고 보이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양 뻔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부츠 벗지 말고 그냥 걷어찰 걸 그랬나.

        

       아무리 봐도 웃음 참는 표정인데.

        

       입꼬리 씰룩거리는 거 다 보인다고.

        

       그러나, 울컥하는 마음에 한 소리를 하자니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구성원들이- 지금, 지금은 아니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간, 이 고통의 시간이 더욱 연장되고 말겠지.

        

       손을 뻗어 회를 한 점 입에 밀어 넣고, 울분과 함께 씹어삼키며- 마음 속 ‘면죄부 대상자’의 최상단에 레반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반드시 복수할 거야.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반은 딴청을 피우듯 다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방송의 역사가 담긴 영상들이 흘러나오는 화면이다.

        

       그 동생이 과도하게 성심성의껏 해설을 덧붙이고 있어서, 고통이 배가되는.

        

       ……이유나, 라고 했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예리에게 저……영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 그 자체인데.

        

       막상, 당사자에게는 도저히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알아서 수익창출 하라고 했는데도 광고 하나 안 넣은 팬튜브를 운영하며 나를, ‘아따먹’을 응원해온 데다가……‘법무법인 로그’ 따위의 가벼운 장난에 놀라서 한참을 마음고생했던 장본인 아닌가.

        

       나로서도 떠올리고 있노라면 죄악감이 느껴지는 사건이다.

        

       그래도, 그래도.

        

       “아, 1등런 편집영상도 보실래요? 이거 진짜 멋있어요. 재료가 너무 좋아서 편집 할 것도 별로 없다 라는 느낌이어서, 진짜. 특히, 마지막에-”

        

       사람의 낯뜨거운 행적을 가족 – 그것도 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인인 가족 – 에게 하나하나 전시하는 건, 조금……조금, 과한 보복 아닌가.

        

       악의가 없는 보복이어서 더 괴로워.

        

       제네바 협약……아니, 무슨 협약인진 몰라도 분명 뭔가 협약이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게 허용될 리가 없어.

        

       “제가 나오나를 잘 모르긴 하는데, 저 상대들이 다 프로게이머라는 거죠?”

        

       “네! 솔직히 사람들이 뭐, 프로들이 솔로랭크는 대충 하니 어쩌니 하거든요? 근데 절대 노노예요. 이 날은 진짜 절대 아니었어요. 누가 봐도 진심인 느낌이었거든요? 그걸 우리 아따먹이 다 깨부수는데- 진짜, 소름이! 여긴 0.5배속으로 다시 보여드릴게요. 여기, 이거 보이세요? 이게 진짜-”

        

       소름은 내가 돋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

        

       옆에 앉은 진희에게라도 도움을 청해보려 했으나, 여긴 이미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 상태에 들어가버린지 오래고.

        

       아리는…….

        

       “이 날 진짜 대박이었어요. 아, 이게 진짜- 저 방송도 다 휴방하고 처음부터 다 봤거든요? 제 방송 역사상 가장 가치있는 휴방이었어요.”

        

       “어? 언니 계셨어요? 제 플러그인에 안 잡혔던 것 같은데. 채팅을 안 치신 거예요?”

        

       “아, 부계정으로 보고 있었어요! 그, 채팅창에서 헛소리하는 애들이랑 조금……언쟁, 해야 해서.”

        

       어째서인지, 함께 신을 내고 있었더랬다. 아주 그냥 어렸을 적 생이별한 자매라도 만난 분위기로.

        

       “아! 알죠, 알죠. 진짜, 아따먹님 방송 다 완벽한데! 딱 하나 유일한 오점이 있으면, 그 채팅창이라니까요? 관리 좀 해야 돼요, 진짜. 경찰서 가야 될 놈들이 한 둘이 아니에요. 솔직히 제가 무료로 고소장 써드리고 싶다는 메일 보낼까 100번은 고민했었는데, 아따먹님께서 쥐흔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서 겨우 참았다니까요?”

        

       이예리의 후배라고 하는 변호사와 함께, 셋이서.

        

       삼총사라도 결성할 기세야 아주.

        

       “맞아요……제가 영상에서는 기분 나빠서 다 잘라버렸는데, 진짜 심해요. 아. 원본 영상이-”

        

       원본, 이라하면 어떤 원본 영상이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알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유나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티어 사칭 불문에 부칠게요.”

        

       “앗.”

        

       영상과 영상의 공백. 제법 큼지막한 룸 안에 아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회유할 수도 있겠는데.

        

       참지 못하고 불쑥 던진 말의 임팩트가 생각보다 컸던 걸까. 거침없이 영상을 꺼내던 고문기술자가 망설이는 손길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하기야, 내 방송을 제법 오래 봐온 친구 아닌가. 티어 사칭이 얼마나 중죄인지는 잘 알고 있을 터다.

        

       이 고문실에서 나간 후의 일을 떠올리는 지금- 지금이 타이밍이겠지.

        

       “자. 그러면-”

        

       “음. 괜찮아요, 유나님. 티어 사칭, 이 그러니까……우리 예나가 사람을 게임 실력으로 많이 차별해서, 혹시 말도 못 붙이게 할까봐 잠시 여기, 오빠분 아이디 빌리셨다는 거잖아요?”

        

       “네? 아, 네……아니, 그건 제 잘못이 맞아요. 티어 차별은 당연한 거고…….”

        

       “그런가요? 그래, 예나야?”

        

       ……흐름, 흐름이 이상하지 않나.

        

       -띵동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젓고, 호출벨을 눌렀다.  

        

       “……오리지날……빨간 뚜껑 있나요. 1병만 주세요.”

        

       “어, 아직 낮인데요? 밖에 해가 쨍쨍해요!”

        

       “……제 마음은 밤이에요.”

        

       도저히, 더는 맨 정신으로는 못 있겠어.

        

       * * * *

        

       [작성자: ㅇㅇ]

       [제목: 갤주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 ㄷㄷㄷㄷㄷㄷㄷ]

       [갤주는 사실 연예인급 미녀였고

        

       갤주 언니는 변호사였음ㄷㄷㄷㄷㄷㄷ

        

       게다가 갤주가 오늘 팬미팅에서 나눠준 초콜릿은 사실 수제라고 함ㄷㄷㄷㄷㄷ]

       –     ??지랄 자제좀

       –     ?? 2번이 팩트면 그냥 지금 자살하는게 나은 아붕이는 개추

       –     ㄴ ㄱㅊ

       –     ㄴ ㄱㅊ

       –     ㄴ 솔직히 3이 더 안 믿김

       –     ㄴㄴ 근데 그건 ㄹㅇ 진짜임 ㅇㅇ 인증도 올라왔더라 (링크)

       –     ㄴㄴ 4등상은 홍삼 정관데 3등은 수제초콜릿이었다고? 너무하잖아……

       –     언니 사진도 있음?

       –     ㄴ 있는데 무서워서 못 올림

       –     그걸 어케 앎? ㄹㅇ 스토커신가

       –     ㄴ 오늘 팬미팅 막바지에 갤주 언니 왔었음

       –     ㄴㄴ 뭐 이마에 변호사라고 써붙이고 옴?

       –     ㄴㄴ 아니 근데 같이 온 사람이 변호사님이라고 부르는 거 들었음

       –     ㄴㄴ 언니인 건 어케 아는데

       –     ㄴㄴ 아크랑 얘기할 때 말했음ㅇㅇ

       –     ㄴㄴ 허언 ㄴㄴ

       –     ㄴㄴ 내가 관리자 하느라 가까이 있어서 들은 건데 이걸 뭐하러 거짓말을 하냐; 혹시 뭐 찔리는 거 있음?

        

       [작성자: ㅇㅇ]

       [제목: 클리너 어디서 받냐]

       [급함

        

       지울 글 많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병신새끼

       –     응~~~ 우리 킹따먹 까거나 성희롱하는 글? 이미 다 PDF따놨어~~~지워봤자 소용 없다~~~~

       –     무슨 떡밥임? 아따먹 고소 선언함?

       –     ㄴ ㄴㄴ 근데 본인이 선언할 필요 없겠던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클리너: 특정 사이트에 작성한 자신의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삭제 매크로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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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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