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03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황제의 눈을 마주한 순간, 리브가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세월의 때가 탄 수준을 넘어 흐릿해진 눈동자는 외양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쳐다보고 있으면 빨려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치, 올리비아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 마신이 사라진 후, 대륙에는 특별한 일이랄 것이 없었다. 사소한 분쟁 따위는 있었지만, 전쟁은 커녕 그 근처까지도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전쟁 당시, 회귀자들의 무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지휘관들과 병사들이 온 대륙에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 탓이다. 각국의 수장들이 눈치를 보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무슨……일을 겪으셨길래…….”

         

       리브가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7년을 겪은 눈동자가 아닌 것 같았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주로 한 것은 연구였느니라. 아, 말투가 이런 건 양해를 구하겠노라. 습관이 된 탓도 있지만……무엇보다 황족이라는 직위를 내려놓은 것은 짐이 아니었거든.”

         

       황제는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황제의 고개가 살짝 흔들렸다.

         

       “오랜만이에요. 리브가 성녀님.”

       “……황녀님?”

       “황녀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저는……더 이상 황실에 속한 몸이 아니니까요.”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황제와는 그 눈동자의 깊이부터 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위기가 덜한 것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지막에 만났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총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내뿜는 존재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리브가는 알았다.

         

       “끝에 닿으셨군요.”

         

       아리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온전히 제 능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 아닌걸요.”

         

       당연히 황제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대마법사의 제자라고 해서 모두 다 대마법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아리아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고는 죄책과 부채(負債), 그리고 끝없는 자기 혐오뿐이었다.

         

       “…….”

         

       리브가는 그런 아리아에게 연민을 느꼈다. 한 걸음 물러나 묘비로 향하는 길을 터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리아는 곧바로 묘비를 향해 나아가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느릿한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춰섰다.

         

       “…….”

         

       아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올리비아의 묘비를 마주한 그 순간에도 그녀의 눈빛은 망설임으로 가득했다.

         

       입 안에서는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 맴돌았다.

         

       왜 자신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냐며 추하게 매달렸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멍청했다. 미련했고,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난 줄만 알았다.

         

       진심으로 올리비아를 죽일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회귀자를 여섯씩이나 보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올리비아가 예상 외로 선전하더라도, 절대로 여섯은 상대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기절시켜서 데려온 다음에는, 물어볼 생각이었다.

         

       13년이라는 시간동안 함께 했던 네가, 왜 우리를 배신한 것인지. 우리만 너를 존중하고 아꼈던 것인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해명을 듣고, 사과를 받아낸다면.

         

       조금이지만, 용서할 수 있을 것도 같았었다.

         

       하지만 모두 자신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일이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른 후였다.

         

       [하지만 저들은 아니다.]

         

       그제서야 이해했다. 왜 황제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인지.

         

       암주가 히드라의 독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에리야스가 올리비아를 씹어 삼키려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리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들은 올리비아를 용서하기는 커녕, 대화를 지속할 생각조차 없었다. 아니, 솔직히 그 당시에는 저 병신같은 말에서조차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아니.’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서…….

         

       외면했다.

         

       자신답지 않은 실수를 해버렸다.

         

       물론 이제는 알고 있다. 아우렐리아와 황제가 자신의 생각을 둔하게 한 것. 제대로 된 사고를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럴지라도 아리아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거둘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통찰, 모든 지식을 총체한 지성.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현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올리비아]

         

       이름이 새겨진 부분을 향해 다가가던 손이 멈칫, 굳어진다. 갈 곳을 잃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손은 애꿎은 허공을 휘저었다.

         

       용서받아서는 안된다. 설령 올리비아가 용서했더라도, 스스로에게 생기는 혐오를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올리비아가 마신으로서 죽었던 그 때의 일만 생각하면…….

         

       숨이, 숨이 턱 막혀와서……목에 칼날이 박힌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미친듯이 뜨거워진다.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 따위에게 삶이 허락되어도 좋은지. 물론 매순간이 고통이고, 과거를 되새길 때마다 현실이 지옥으로 뒤바뀌지만…….

         

       그래도 진짜 지옥에 비하면 이곳은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7년.

         

       7년이라는 세월동안 방황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

         

       아리아가 툴툴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이곳에서는 답을 못 찾겠더라.”

       

       의학을 수백 년 진보시켜 수천 만의 목숨을 살려낸다고 해도, 올리비아는 살리지 못한다. 그래봐야 의미가 없다. 결국 사죄는 얼굴을 맞대고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했다. 올리비아의 무덤에 찾아온 이유 또한 그것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이곳에 찾아오지 못할테니까.

         

       “가시려고요?”

       “네. 그동안……죄송했어요.”

         

       리브가는, 마법진 너머로 사라지려는 아리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등은 유독 작고 초라해보였다. 곧 먼 곳으로 사라질 사람처럼.

         

       그래서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어디, 어디로 가시계요?”

       “제가 속죄할 수 있는 곳으로요.”

       “다시……만날 수 있는거죠?”

         

       아리아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브가는 그런 아리아를 멍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츠츠츠츠츠츳!

       

       다음 순간, 빛이 점멸하며 아리아의 신형이 자취를 감추었다.

         

         

       *****

         

         

       아리아가 다시 나타난 곳은 대륙 정반대였다.

         

       남부 최하단, 대륙 유일의 화산지대. 사시사철 용암이 흐르고 화산재가 날리는 탓에, 사람이 살기는 커녕 동물들조차 접근하기를 꺼리는 극한의 오지.

         

       아리아의 결연한 눈빛을 읽은 황제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완전히 결심을 내렸나 보구나.]

         

       아리아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이 화산지대에 거주하는 드래곤 로드, 에리야스를 만나 담판을 짓기 위함이었다.

         

       [짐과 아우렐리아도 기억을 일부 봉인했다가 해제한 것이 전부이거늘. 미움받을 결심이 선 것이더냐? 그도 아니라면 이미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으니 하나쯤은 더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다. 매듭을 묶어버렸으니, 푸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정말 그게 전부더냐?]

       “…….”

         

       개인적인 감정이 전혀 없었다고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아리아는 망설임 없이 레어 입구에 새겨진 결계를 해체했다.

         

       ‘……미움받을 결심이라.’

         

       올리비아가 이미 용서한 자들을, 자신이 벌해도 되는 걸까.

         

       아니, 애초에 그걸 ‘용서’라고 봐도 되는 것일까? 정작 용서받은 당사자들은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최소한.

         

       죄책감은 가지고.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를 되새기며 후회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시늉이라도 해야, 용서받았다고 봐야 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뒷짐을 지었다.

         

       에리야스는 무엇을? 이라고 묻고 싶었다.

         

       다짜고짜 레어를 침범해 놓고는, 맘 편히 동면하던 자신의 육체를 속박해놓고서는, 뭐?

         

       어떻게 생각하냐고?

         

       [황녀……! 네가 정녕 미쳐버렸구나!]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작금의 저는 정상이 아니니까요.”

       [……뭐?]

       “그러니까, 제가 당신들의 작태를 심판해도 뭐라 하지 마십시오.”

         

       배가 뒤집힌 채로 묶여 있는 굴욕……에리야스는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아리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정말, 회까닥 돌아 버린 사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리아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혼자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이 맘 편히 동면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더욱 참을 수 없게 됐습니다. 아마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서 무언가를 뽑아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진득한 덩어리.

         

       [아…….]

         

       자신도 모르게 경악을 내뱉고, 스스로의 입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경악한다.

         

       덩어리가 가까워질수록, 전신의 감각이 뻣뻣해진다. 사고 또한 그만큼 느려진다.

         

       [나……날 죽일 셈이냐?]

       “아니요. 그저 기억을 되살려 주는 것 뿐입니다.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수한 과거의 기억들을.”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주저 없이 덩어리를 에리야스의 머릿속으로 밀어넣었다. 그곳에는 그동안 에리야스가 기억하지 못했던 수많은 ‘죽음’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수천 번의 회차동안, 에리야스는 과연 몇 번이나 죽었을까.

         

       [아아……끄아아아아악!!]

         

       레어 내부에 고통 어린 비명이 울려퍼진다. 단순히 기억을 재생하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기 때문이리라.

         

       아마 이 순간에도 죽음의 고통 속에서 헤엄치고 있겠지.

         

       [그르륵……! 그그그극……!]

         

       눈물, 콧물……온 몸에서 온갖 액체를 질질 흘려대는 그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의 종주로서의 위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덩치만 클 뿐인 도마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산산히 찢어질 듯한 비명 가운데서, 아리아는 싸늘한 조소를 뱉어냈다.

         

       광룡(狂龍)이라는 칭호와 썩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Ilham Senjaya님!

    -AI를 이용해서 일러스트(몰살비아, 우는 리브가를 몰살비아가 쓰다듬어주는 장면)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거하게 실패했습니다. 못해도 1000장은 뽑아본 것 같은데 맘에 드는걸 한 장도…건지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그렇다고 외주를 넣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감이 ㅠㅠ. 늦어도 2월중에는 완결이 날 것 같은 탓에…죄송합니다.

    -홀나붐은 온다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첫 후원이라는 귀한 걸 제게 해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진 완결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ygon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