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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3

     제국의 암살자들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마법을 사용하고 싶어도 마법에 재능있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노스트럼에서 마법에 재능있던 이가 제국으로 넘어와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제국 암살자가 되더라도 마법을 주력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모체가 되는 여성이 마법에 재능이 있었다면, 제국으로 넘어갈 일도 없이 노스트럼 왕국에서 귀족이 되었을테니.

     그런 의미에서, 저들은 지금 제국의 암살자를 사칭하기를 포기했다.

     “하.”

     마른 하늘에 불벼락이 떨어진다.

     잠시 협곡을 향해 쏟아지던 그 포격이 떠올라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그 특유의 불꽃과는 다른 마법의 불꽃에 금방 정신이 되돌아왔다.

     “씁.”

     정신이 맑아진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동시에, 머리가 맹렬히 돌아가며 결론을 내린다.

     “이것들이.”

     생각한 순간,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서걱!

     검을 크게 수평으로 휘두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뎅겅 날아가는 감촉이 손에 남는다.

     “!!”

     깔끔하게 잘려 날아가는 암살자의 머리는 놀란 얼굴로 나를 거꾸로 바라보고, 나는 바로 옆으로 뛰어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서걱.

     또 다시, 하나.

     일검에 한 명을 베어 죽이겠다는 의지를 담아, 검날의 끝에 오러를 형성하여 벤다.

     “크어ㅡ”

     비명을 지를 새도 없다.

     보통의 기사나 검객에게 베였다면 몸에 치명상을 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마스터의 검을 상대하는 이는 각오를 해야 한다.

     푸화ㅡㅡㅡ악!

     유언조차 남길 새도 없이, 몸이 반으로 갈라져 죽는 각오.

     엄밀히 따지면 정확하게 반은 아닐 것이다.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수직으로 잘라도 딱 절반이 되지는 않을테니까.

     “무, 무슨…!”

     하지만 시각적인 두려움은 이야기가 다르다.

     

     “사, 사람을 고깃덩이처럼 썰어버린다고…?”

     “너희가 나를 그렇게 불렀잖나. 마스터라고.”

     한손으로 검을 움켜쥐고, 다른 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를 붙여 코등이부터 검날의 끝까지 마나를 흘린다.

     “오러 소드를 상대하는 건 처음인가?”

     “오러를…!”

     “지브롤터의 장남이 오러를 쓰는 게 대수인가.”

     “세상을, 속였구나!”

     “그래.”

     나는 완벽하게 검의 양쪽에 깃든 회색빛의 오러를 암살자들에게 겨눴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지금까지 힘을 보여주지 않은 건 오러를 쓰지 못하는 마스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착각에 빠진 너희같은 쓰레기들이 이렇게 달려들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지.”

     나는 검을 크게 옆으로 뻗은 다음.

     “그리고 그런 놈들을 보면, 나는 항상 이렇게 하고 싶었어.”

     그대로 부메랑을 던지듯 검을 수평으로 내던졌다.

     부ㅡㅡ웅!

     검이 부메랑처럼 회전하며 허공을 가르기 시작한다.

     손잡이를 제외한 부분이 오러를 그리며 날아가고, 그 속도는 히포그리프가 먹이를 낚아채는 것보다 빨랐다.

     푸ㅡ욱.

     검이 회전하는 궤적에 있던 암살자 하나의 복부가 사라졌다.

     정확하게 오러의 검날이 지나가며 몸통을 베었고, 암살자는 놀란 눈 그대로 앞으로 몸이 고꾸라졌다.

     푸화ㅡㅡㅡㅡ악.

     그리고 그건 한둘이 아닌, 여럿.

     “이, 미친!”

     가장 말을 많이 하던 대장으로 보이던 자가 나를 향해 뛰었다.

     이미 검은 그의 뒤에 있던 부하까지 갈라버렸으나, 그는 부하들을 구하는 게 아닌 나를 죽이러 오는 길을 선택했다.

     “죽어라, 매국노!”

     “제국 암살자라더니, 그러면 안 되지 않나?”

     나는 빈 손을 옆으로 뻗었다.

     허리에는 무기를 차지도 않았고, 손에도 무기가 없다.

     “그런데, 그건 황금여명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나보군.”

     

     파ㅡ앗.

     “마스터에 이른 자는 몸 그 자체가 무기라는 것을.”

     “!!”

     암살자 조장의 눈이 내 손을 향한 순간, 나는 바로 손을 앞으로 검을 찌르듯 찔러넣었다.

     “커, 커헉…!”

     “마나만 충분하면 맨손에서 오러 소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마스터다.”

     회귀 전의 매국노 그레이는 종종 손끝에 오러를 만들어 상대의 심장을 찌르고는 했지만-

     “영광으로 알도록. 검날에 씌운 오러가 아닌 순수한 오러로 빚은 검에 찔려 죽는 경우는 잘 없으니.”

     암살자의 등 뒤로 검날이 툭 튀어나와있다.

     효율을 생각하면 수도로 심장을 찌르고 뜯어버리는 것이 제일이겠지만, 등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누아르에게 보여주면 안 되지, 그런 잔인한 살인은.’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는 이미 진작 보여줬다.

     중요한 건 어떤 자를 죽이느냐.

     또한 어떻게 죽이느냐.

     어렸을 때는 나보다 힘이 더 강한 적을 상대하느라 급소를 노리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는 했다.

     “어딜.”

     “크아악!!”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심장이 찔리고도 칼을 움직이려고 하다니. 음, 좋아. 기개는 인정하지.”

     “야, 양손에…!”

     “지브롤터에 쌍검술이 없는 건 아니거든.”

     나는 심장을 찌른 검을 든 손이 아닌, 그의 어깨를 찌른 검을 든 반대쪽 손을 가리켰다.

     “좋은 거 보고 간다. 그렇지?”

     내 손에서 각각 뻗어나온 회색의 오러 소드.

     전력을 다하는 순간이라면 각각 외날로서 오러 블레이드가 되었겠지만, 아직은 전력을 보일 때가 아니다.

     “마스터의 오러 검기에 죽는다. 기사로서는 최고의 명예 아닌가? 아. 아니지. 암살자로서는 최악의 죽음인가?”

     “크, 크흐흐…!”

     암살자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비웃는다.

     “정신이 나갔구나…! 열차는, 불에 타고 있는 것을…!”

     

     화르륵.

     열기가 등 뒤에서 느껴진다.

     특등실을 정확하게 노린 불의 비는 어느새 열차의 끝까지 번지기 시작했고, 열차 내부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상급 마법사다! 불꽃의 결까지 펼쳤으니, 네 동생과 황녀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

     “네 동생이 죽어 네 아버지는 너를 문책할 것이며, 황녀가 죽었으니 제국은 너를 처형하려고 할 것이다! 크흐흐…!”

     “그런 생각으로 죽으러 온 거라면, 내가 조금 미안해지는데.”

     정말로.

     “열차를 불태워서 안에 있는 사람을 태워죽인다거나, 열차 자체를 불태워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다거나. 뭐, 그런 것 자체로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도록 하지.”

     나는 암살자의 복부를 발로 밀어내며 오러 소드를 뽑아냈다.

     “그리고 누가 죽었대.”

     

     나는 뒤를 가리켰다.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고 멀쩡히 셋 다 살아있는데.”

     “어….”

     기사는 뒤로 밀려나며, 피를 뿜어내며 내 뒤-열차를 바라봤다.

     “어떻, 게…?”

     “뭘 어떻게긴. 당연한 걸 묻고 있어.”

     등 뒤를 돌아보니, 불에 뒤덮인 열차에서 원형의 보호막 하나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제국 황녀에 지브롤터의 차기 후계자가 이런 테러 위험에 자기 몸 지키지 않을 방책 하나 없이 돌아다니겠어?”

     “…….”

     푹.

     암살자는 그대로 나자빠졌다.

     “크윽, 조장!”

     “물러나! 이, 일단은…!”

     진짜로 대장이었던 건지, 내가 죽인 이가 쓰러지자 바로 부하들이 서로 좌우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 너희는 도망쳐도 상관없어.”

     나는 검 하나를 바닥에 꽂은 다음, 오른손으로 검을 크게 빙글빙글 돌렸다.

     “잔챙이들 잡느라 숲을 돌아다니면서 난리치는 것도 귀찮으니까. 너희들, 그냥 돌아가서 너희 대가리한테 전해라. 애꿎은 부하들 죽이기 싫으면, 사나이답게 직접 오라고.”

     “큭…!”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남자가 18살이 무서워서 부하들이나 계속 보내는 꼴이란.”

     “철수한다!!”

     다른 기사가 급히 외치며, 암살자들이 모두 등을 돌린 채 달려간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들고 있는 오러 소드를 던지거나 ‘타고 가서’ 전부 죽여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선 순위라는 게 있으니.”

     나는 계속 회전시키던 검을 꽉 움켜쥔 뒤, 몸을 크게 돌리며 뒤로 던졌다.

     하늘을 향해.

     새애애액ㅡㅡㅡ!!

     사선으로 던진 검이 하늘을 향해, 투석기로 쏘아올린 것처럼 빙글빙글 날아간다.

     그냥 검이 아닌 오러로 빚어낸 검을 그대로 날리는 거라, 내 몸으로부터 떨어질수록 회색 마나가 잿가루처럼 떨어지며 서서히 오러의 결속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엄청난 마나 낭비다.

     저 오러 소드만큼의 마나를 충전하려면 솜누스 다섯 포대는 생으로 씹어먹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커헉!”

     “남의 열차를 불질러놓고, 어딜 도망치려고.”

     오러 소드는 사라지기 직전, 하늘을 날아 도망가던 비룡 탄 마법사의 등에 정확하게 꽂혔다.

     캬아악…!

     마법사는 그대로 추락하고, 비룡은 등에 태운 기수의 추락에 아래로 향하려고 했다.

     펄럭.

     캬악…?!

     그러나 비룡은 곧바로 위를 쳐다보더니, 그대로 날개를 접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녀석.”

     펄럭, 펄럭.

     “안 와도 됐는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달려온 건 아마도 뭔가 직감이라도 있었던 게 아닐까.

     참 별 것 아니지만, 뭔가 가슴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아니면.

     ‘오랜만에 이 감각을 느껴봐서 그런 걸지도.’

     사람을 죽이는 감각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다.

     무언가를 베는 감각이, 때때로 사람을 고양감에 들게 만들 때가 있다.

     “…후.”

     호흡을 가다듬는다.

     백은은 없지만-

     “그레이.”

     “…공주님.”

     “조금, 피곤해보이네요.”

     아스타시아가 내게로 다가와, 나를 그대로 껴안는다.

     “수고하셨어요. 잠시, 쉴까요?”

     “……잠깐, 숨 좀 골라도 되겠습니까?”

     “눈도 붙이고 한 숨 자도 되는데.”

     “그렇게까지는. 1분, 아니….”

     나는 아스타시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3분만, 신세지겠습니다.”

     

     * * *

     

     내가 아스타시아의 품에서 살기를 억누르고 들끓는 마나를 정제하는 5분 사이.

     “활활 타오르네.”

     열차에 번진 불의 비는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열차에만 불이 붙어있고, 렘버리 역 주변이 전부 황무지로 개간되어서 불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게 아니면 옮겨붙을 일은 없다는 것.

     “누아르. 선로는?”

     “잘라놨어. 크게 잘랐으니까, 선로를 따라 불이 옮겨붙는 일은 없을 거야.”

     “좋아. 그러면…열차로 캠프파이어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너무나도 활활 타올라서 저기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라는 장작을 던질 필요도 없을 정도.

     “그런데, 형.”

     “응?”

     “그게….”

     

     누아르가 복잡한 얼굴로 아스타시아를 바라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는 듯.

     “누아르 지브롤터.”

     “으, 응!”

     “남자는 말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비밀을 지켜줄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나는 누아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사랑하는 여자의 이면에 어떤 모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조차 품고 사랑할 줄 알아야하지.”

     “형, 그게, 저기….”

     “그래. 열차밖에도 암살자가 그렇게 많았는데, 나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방향 쪽으로 암살자가 들어왔을 수도 있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

     “불을 지르고 뛰쳐나오려던 너희를 암살하려고 정예병이 들어왔겠지만…누아르. 기억하지? 예전에 네가 납치당했을 때.”

     “아, 그거라면….”

     “만일 그런 암살자들이 있었다면.”

     “…내가 죽인 걸로 하면 돼?”

     “…….”

     나는 누아르의 머리를 가볍게 손으로 헝클였다.

     “웬즈데이한테도 마찬가지다.”

     “……알았어. 그런데 형. 아스타시아 황녀님이랑 싸우면…누가 이겨?”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다.

     “당연히.”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레이?”

     “…별 거 아닙니다. 그보다, 슬슬 오는군요.”

     지평선 너머, 검은색으로 통일된 비룡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윈체스터 총장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응?”

     뒤를 돌아보니, 누아르가 경악하고 아스타시아가 키득거리고 있었다.

     “아스타시아. 무슨 말을 한 겁니까?”

     “아, 별 말 안 했어요.”

     아스타시아가 나를 향해 윙크를 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낮에는 이긴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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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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