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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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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제스의 모습에 노아는 욱하여 다급히 둘을 떼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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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위험하게 뭘 하는 거야! 다칠 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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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라는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아이를 혼내듯 다그치자 제스가 입술을 삐죽이며 떨어졌다. 
    ​
    ​
    노아가 안도하기 무섭게 제스는 몸을 빙글 돌려 리안의 팔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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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살살 안았으니까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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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말에 노아는 말문이 막혀 입술만 벙긋거리다 이내 지금까지 잡혀있는 리안의 손을 슬쩍 깍지 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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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각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온갖 분홍빛 이벤트에 리안은 고장이 난 채 그저 “어?”, “에?”같은 말만 반복해서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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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이 목을 낚아채기 딱 좋아 보이는 맹한 사냥감의 모습에 제스는 입맛을 다시다가 리안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갔다. 입술을 맞출 듯 가까워지는 거리감에 노아가 다급히 제스를 떼어놓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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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의 몸, 뺏겼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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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총명하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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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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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의 감각은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작은 바람의 움직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미세한 소리까지도 그들의 귀에는 뚜렷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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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고 조용했으며 멀리 있는 사물들까지 눈앞에 둔 것처럼 선명하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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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민하게 귀를 세우면 10분 거리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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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인들이 가장 먼저 빠르게 친 제스의 텐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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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확연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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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그들이 리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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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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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악무는 소리가 살벌하게 텐트 안을 채웠다. 제스는 머릿속에 떠오른 불쾌한 목소리에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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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님의 목을 걸어두고, 노아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죽이려 했어. 다행히 노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전력이 없어서 기각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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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은 곧, 노아가 약했거나 그녀를 대신할 전력이 있었다면 리안의 목과 노아의 목이 사이좋게 걸렸을 거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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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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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참모진에서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리안의 목을 내걸려 했다면 이해라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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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리안의 무고를 주장해도, 제국군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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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추가로 들려준 정보에 따르면, 이번 참모진의 결론은 그런 단순하면서도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내려진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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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리안이 하얀 가면으로써 제국군을 공격했다고 해도, 그는 무려 ‘공작’이 찾고 있는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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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제대로 된 후계자가 없었던 공작가의 진정한 후계자를 이리 쉽게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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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싹을 자르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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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신자라는 이유로 리안의 목을 매달게 되면, 공식적인 공작가의 후계자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곧, 날로 커지는 공작의 권력을 잘라내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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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난세에 나타난 영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노아가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기 전에 싹을 자르고, 노아의 공을 가로챌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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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이 부족한 귀족은 딱 여기까지 결론을 내리고 움직였지만, 정치 생활에 능숙한 이들은 그보다 더 멀리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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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물은 두둑이 먹여놓은 신관을 통해 리안의 몸을 얻은 후, 공작과 거래를 할 때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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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로 ‘인류의 배신자를 옹호한다.’라는 말로 난세의 영웅이라 불리는 노아의 기를 죽여 놓으려 했다. 만약 노아가 거기서 더 반박했다면 며칠 동안 포로를 감금하는 시설에 가둬두려 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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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반항하여 검을 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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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를 비롯한 그녀의 동료들을 ‘반란군’으로 묶어 즉결 사형 처분을 내릴 것이다. 노아 혼자서 주둔지에 있는 모든 병사와 참모진을 베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 전에 동료들의 목이 먼저 떨어질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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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를 인질로 잡힌다면 노아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그제야 아량을 베풀어 사형처분을 거둬들이고 노아 일행을 ‘노예’로 신분을 격하시켜 전쟁 노예로 사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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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덤한 제스의 설명에 노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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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리안이 그녀를 잡아끌지 않았다면 제스가 덤덤히 늘어놓은 미래가 그대로 펼쳐졌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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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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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자 리안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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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들을 이곳으로 빼돌려야겠어. 그래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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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귀족들에게 목줄이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노아는 제 동료들을 빼돌려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제스에게 의견을 묻자 그녀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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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그들은 ‘리안의 몸을 상처 없이 빼돌릴 방법’이나, ‘수인을 이용하려는 귀족들을 역 이용하는 방법’ 등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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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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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점, 마왕성 한 구석에 자리한 숨겨진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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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 벽을 차지한 책장엔 오래된 두루마리와 고서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방 가운데 자리 잡은 널찍한 테이블 위로 촛불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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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위에는 대륙의 지형이 선명하게 그려진 지도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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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스러운 방법으로만 오갈 수 있는 문을 제외하면 모두 단단한 돌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의 시선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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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주변엔 고풍스러운 의자 다섯개가 놓여있었는데, 두 자리가 비워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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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 재미있게 잘 놀고 있는데 왜 부르고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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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넘겨 껄렁한 자세로 앉아있던 사천왕 지소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턱을 괸 채 하품하던 사천왕 라니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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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 너희 구역 털렸다며?”
    “하? 무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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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리안과 아이리스가 무너뜨린 구역을 콕 집어 비웃어주자 지소가 욱한 얼굴로 몸을 테이블 위로 숙이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쿵 하고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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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색에 잠겨있던 마왕의 오른팔이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천왕 에르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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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다면 더 떠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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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의 자리는 목이 떨어져야만 내려올 수 있는 자리였기에 라니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뒤로 뺏고, 지소는 혀를 차며 고개를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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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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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무심한 표정의 마왕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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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느리게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후, 의자에 앉기도 전에 폭탄을 투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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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지금부터 마신을 토벌할 것이다.”
    “예?”
    “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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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은 제 존재를 대외적으로 내보이진 않았지만, 간간이 마왕성을 가득 채우는 아득한 격으로 인해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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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성에 머무는 이들은 영혼이 오싹하게 떨릴 정도로 아득한 격을 몇차례 느껴야 했고, 마왕은 이를 ‘마신’이란 말로 설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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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존재를 토벌하겠다는 말에 사천 왕들은 당황스러운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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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벌이라니… 그게 가능한 존재인가?’
    ‘아아… 자살 방법으론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데.’
    ‘마왕님께서 변하셨군.’
    ​
    ​
    표정도 반응도 전부 달랐지만 그들의 의견은 ‘마신을 토벌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라는 말로 통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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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외신의 만행과 앞으로 남은 미래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
    “아아아… 짜증나.”
    ​
    ​
    기생충 같은 존재에게 몸이 빼앗길 수도 있다는 말에 라니아는 짜증을 내며 얼굴을 쓸어내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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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내 구역의 절반이나 삼켜진 거잖아?”
    ​
    ​
    지소가 신뢰하던 마족들이 외신에게 몸을 빼앗겨, 그의 구역이 절반이나 집어삼켜졌다는 사실에 지소는 얼굴에 혈관이 흉하게 튀어나올 정도로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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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하하…, 이 내가… 놀아났다는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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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걸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기만 했었던 마왕군의 두뇌는 마신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장난감처럼 놀아났다는 사실에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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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분노나 신념에 눈이 먼 불나방들이 아니었기에, 분노에 이를 갈면서도 이성적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
    ​
    아무리 짜증 나는 상황이더라도 종착지가 죽음이라면 그들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마왕이 선뜻 그들에게 계획을 늘어놓은 건 명확한 이유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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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망칠 방법이 없다.’
    ‘맞서지 않으면 결국 죽음뿐인 거잖아?’
    ‘하… 그나마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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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말대로라면, 여기서 도망쳐봤자 그 끝은 잔혹한 죽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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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신’이라 불리고 있는 외신의 힘이 아득하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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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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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그들이 도망칠 수 없도록 제 처지를 이해시킨 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하나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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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선택지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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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내가 구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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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아득한 나락에서 자신을 끄집어 올려준 존재를 떠올리며 덤덤히 죽음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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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에르보안 -> 마왕의 오른팔, 똑똑이, 원작 흑막
지소 -> 아이리스가 노예로 잡혀있던 콜로세움의 주인, 리안 납치범
라니아 -> 초반에 나왔던 가슴큰 사천왕다음화 보기

그런 제스의 모습에 노아는 욱하여 다급히 둘을 떼어놓았다.

“제스! 위험하게 뭘 하는 거야! 다칠 뻔했잖아!”

‘질투’라는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아이를 혼내듯 다그치자 제스가 입술을 삐죽이며 떨어졌다.

노아가 안도하기 무섭게 제스는 몸을 빙글 돌려 리안의 팔을 끌어안았다.

“제스!”

“살살 안았으니까 괜찮잖아!”

그 말에 노아는 말문이 막혀 입술만 벙긋거리다 이내 지금까지 잡혀있는 리안의 손을 슬쩍 깍지 껴 잡았다.

심각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온갖 분홍빛 이벤트에 리안은 고장이 난 채 그저 “어?”, “에?”같은 말만 반복해서 뱉어냈다.

짐승이 목을 낚아채기 딱 좋아 보이는 맹한 사냥감의 모습에 제스는 입맛을 다시다가 리안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갔다. 입술을 맞출 듯 가까워지는 거리감에 노아가 다급히 제스를 떼어놓으려는 순간.

“주인님의 몸, 뺏겼어?”

“…!”

“…!”

제스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총명하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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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의 감각은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작은 바람의 움직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미세한 소리까지도 그들의 귀에는 뚜렷하게 들렸다.

그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고 조용했으며 멀리 있는 사물들까지 눈앞에 둔 것처럼 선명하게 포착했다.

예민하게 귀를 세우면 10분 거리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수인들이 가장 먼저 빠르게 친 제스의 텐트 안.

노아는 확연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정말, 그들이 리안을…”

으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살벌하게 텐트 안을 채웠다. 제스는 머릿속에 떠오른 불쾌한 목소리에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의 목을 걸어두고, 노아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죽이려 했어. 다행히 노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전력이 없어서 기각되었지만.”

그 말은 곧, 노아가 약했거나 그녀를 대신할 전력이 있었다면 리안의 목과 노아의 목이 사이좋게 걸렸을 거란 말이었다.

‘망할 놈들.’

만약, 참모진에서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리안의 목을 내걸려 했다면 이해라도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리안의 무고를 주장해도, 제국군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스가 추가로 들려준 정보에 따르면, 이번 참모진의 결론은 그런 단순하면서도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내려진 게 아니었다.

아무리 리안이 하얀 가면으로써 제국군을 공격했다고 해도, 그는 무려 ‘공작’이 찾고 있는 ‘아들’이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후계자가 없었던 공작가의 진정한 후계자를 이리 쉽게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싹을 자르려는 거야.’

배신자라는 이유로 리안의 목을 매달게 되면, 공식적인 공작가의 후계자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곧, 날로 커지는 공작의 권력을 잘라내는 것과 같았다.

동시에 ‘난세에 나타난 영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노아가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기 전에 싹을 자르고, 노아의 공을 가로챌 생각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귀족은 딱 여기까지 결론을 내리고 움직였지만, 정치 생활에 능숙한 이들은 그보다 더 멀리 바라보았다.

뇌물은 두둑이 먹여놓은 신관을 통해 리안의 몸을 얻은 후, 공작과 거래를 할 때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추가로 ‘인류의 배신자를 옹호한다.’라는 말로 난세의 영웅이라 불리는 노아의 기를 죽여 놓으려 했다. 만약 노아가 거기서 더 반박했다면 며칠 동안 포로를 감금하는 시설에 가둬두려 했을 터였다.

이에 반항하여 검을 든다면?

릴리를 비롯한 그녀의 동료들을 ‘반란군’으로 묶어 즉결 사형 처분을 내릴 것이다. 노아 혼자서 주둔지에 있는 모든 병사와 참모진을 베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 전에 동료들의 목이 먼저 떨어질 터였다.

동료를 인질로 잡힌다면 노아는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그제야 아량을 베풀어 사형처분을 거둬들이고 노아 일행을 ‘노예’로 신분을 격하시켜 전쟁 노예로 사용했을 것이다.

덤덤한 제스의 설명에 노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만약 리안이 그녀를 잡아끌지 않았다면 제스가 덤덤히 늘어놓은 미래가 그대로 펼쳐졌을 터였다.

“…고마워 리안.”

노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자 리안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동료들을 이곳으로 빼돌려야겠어. 그래도 괜찮을까?”

언제 귀족들에게 목줄이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노아는 제 동료들을 빼돌려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제스에게 의견을 묻자 그녀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뒤이어 그들은 ‘리안의 몸을 상처 없이 빼돌릴 방법’이나, ‘수인을 이용하려는 귀족들을 역 이용하는 방법’ 등의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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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점, 마왕성 한 구석에 자리한 숨겨진 방안.

한쪽 벽을 차지한 책장엔 오래된 두루마리와 고서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방 가운데 자리 잡은 널찍한 테이블 위로 촛불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대륙의 지형이 선명하게 그려진 지도가 놓여있었다.

비밀스러운 방법으로만 오갈 수 있는 문을 제외하면 모두 단단한 돌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의 시선을 차단했다.

테이블 주변엔 고풍스러운 의자 다섯개가 놓여있었는데, 두 자리가 비워진 채였다.

“아아 -… 재미있게 잘 놀고 있는데 왜 부르고 난리야?”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넘겨 껄렁한 자세로 앉아있던 사천왕 지소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턱을 괸 채 하품하던 사천왕 라니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지소, 너희 구역 털렸다며?”

“하? 무슨 소리?”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리안과 아이리스가 무너뜨린 구역을 콕 집어 비웃어주자 지소가 욱한 얼굴로 몸을 테이블 위로 숙이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쿵 하고 내리쳤다.

사색에 잠겨있던 마왕의 오른팔이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천왕 에르보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사천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다면 더 떠들어보시죠.”

사천왕의 자리는 목이 떨어져야만 내려올 수 있는 자리였기에 라니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뒤로 뺏고, 지소는 혀를 차며 고개를 휙 돌렸다.

달칵.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무심한 표정의 마왕이 등장했다.

마왕은 느리게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후, 의자에 앉기도 전에 폭탄을 투하했다.

“우린 지금부터 마신을 토벌할 것이다.”

“예?”

“뭣…?”

“….!”

외신은 제 존재를 대외적으로 내보이진 않았지만, 간간이 마왕성을 가득 채우는 아득한 격으로 인해 존재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마왕성에 머무는 이들은 영혼이 오싹하게 떨릴 정도로 아득한 격을 몇차례 느껴야 했고, 마왕은 이를 ‘마신’이란 말로 설명해왔다.

그런 존재를 토벌하겠다는 말에 사천 왕들은 당황스러운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토벌이라니… 그게 가능한 존재인가?’

‘아아… 자살 방법으론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데.’

‘마왕님께서 변하셨군.’

표정도 반응도 전부 달랐지만 그들의 의견은 ‘마신을 토벌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라는 말로 통일 할 수 있었다.

마왕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외신의 만행과 앞으로 남은 미래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아아… 짜증나.”

기생충 같은 존재에게 몸이 빼앗길 수도 있다는 말에 라니아는 짜증을 내며 얼굴을 쓸어내렸고.

“하… 내 구역의 절반이나 삼켜진 거잖아?”

지소가 신뢰하던 마족들이 외신에게 몸을 빼앗겨, 그의 구역이 절반이나 집어삼켜졌다는 사실에 지소는 얼굴에 혈관이 흉하게 튀어나올 정도로 분노했다.

“하…하하…, 이 내가… 놀아났다는 말이군요.”

모든 걸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놀기만 했었던 마왕군의 두뇌는 마신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장난감처럼 놀아났다는 사실에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그들은 분노나 신념에 눈이 먼 불나방들이 아니었기에, 분노에 이를 갈면서도 이성적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아무리 짜증 나는 상황이더라도 종착지가 죽음이라면 그들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마왕이 선뜻 그들에게 계획을 늘어놓은 건 명확한 이유가 존재했다.

‘도망칠 방법이 없다.’

‘맞서지 않으면 결국 죽음뿐인 거잖아?’

‘하… 그나마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인가?’

마왕의 말대로라면, 여기서 도망쳐봤자 그 끝은 잔혹한 죽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신’이라 불리고 있는 외신의 힘이 아득하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방법이 있다.”

마왕은 그들이 도망칠 수 없도록 제 처지를 이해시킨 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하나 제시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선택지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내가 구할 차례다.’

마왕은 아득한 나락에서 자신을 끄집어 올려준 존재를 떠올리며 덤덤히 죽음을 결심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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