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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3

   처음 노점에 들어와 종이를 받았을 때에는 잔뜩 긴장을 한 상태였다.

   

   반쯤 강제로 1왕자와 대결을 하게 된 상황이니까.

   

   주변에서 내게 쏟아지는 시선은 못마땅함으로 가득 차서 따갑고,

   

   아카데미에서 보여주었다는 그 대단한 실력을 구경해보자는 1왕자의 어투는 무척 공격적이었던데다가,

   

   이 근방에 나를 응원하거나 걱정해주는 이 하나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자리에 앉아 종이를 펼친 순간 나는 그 모든 긴장감을 지워버렸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하나의 던전이었기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략해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과거 모니터 너머에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공략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던 그 던전 말이다.

   

   종이의 맨 위 쪽에는 공략을 해야 하는 던전의 이름과 던전을 공략하는 이들의 구성이 적혀 있었다.

   

   어디보자.

   

   B급 모험가 수준의 전위인 검사.

   

   전투는 잘하지만 함정해제가 서툰 도적.

   

   화력이 강한 대신 제약이 큰 마법사.

   

   힐밖에 쓸 줄 모르는 성직자.

   

   파티 구성 자체는 정석적이지만 그 속은 쓰레기네.

   

   주력이 되는 캐릭터는 잘 키웠지만 나머지는 그냥 끼워 맞춘 거잖아.

   

   이런 식으로 구성한 후에 파티 평가해 달라고 게시판에 올리면 야짤이라고 정지 먹을 것 같은데.

   

   착용한 장비도 허술하고 들고 온 소지품도 쓸모없는 게 한 가득.

   

   와. 이거 진짜 뉴비인데?!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플레이는 뉴비 그 자체잖아!

   

   이봐요! 노점주인 분! 미성년자한테 이런 거 보여줘도 되는 겁니까?!

   

   잡혀가고 싶어요?!

   

   트롤처럼 생긴 아저씨가 찾아와서는 이놈. 하면서 당신을 살아 있었던 것으로 만들지도 모른다고요!

   

   흐아아. 진정하자.

   

   던전이 어딘 지부터 봐야지.

   

   야한 뉴비가 뉴비다운 곳을 공략하는 거라면 그건 그냥 평범한 거잖아.

   

   어디보자. 나라에 의해 규정된 던전의 이름은.

   

   <검은 거미가 사는 동굴>

   

   큰일났네.

   

   내가 아니라 저 노점상이.

   

   저 사람 무조건 철컹철컹이야.

   

   지금 당장 수갑 채워 넣고 감옥에 보내야 해.

   

   아니 어떻게 이런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한테 음란물을 보여줄 수가 있지?

   

   바바리맨도 이런 짓은 안 저지른다고!

   

   죄질이 너무 심각하잖아!

   

   어떤 멍청이가 이 파티 구성으로 이 던전을 공략하냐!

   

   잘 들어!

   

   이 던전 공략할 때의 정석은 탱커. 함정발견 및 감지를 최대치까지 올린 도적. 탄창이 충분한 화염 마법사. 거기에 다재다능한 성직자야!

   

   공격을 얼마 버티지도 못할 검사랑 유리대포인 마법사. 왜 사는지 모를 단검 도적. 힐 원툴 성직자 따위는 필요 없다고!

   

   따지고 보니까 이 파티 전체가 쓰레기네!?

   

   키야아. 던전 공략 들어갈 때 던전 정보도 안 읽어보고 왔나봐!

   

   <조건이 까다롭군. 이 따위 인원으로 어떻게 던전을 공략하란 말인가.>

   

   할배는 문구를 읽자마자 헛소리를 한다며 일축했다.

   

   여러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할배지만 이 모의 던전 공략에 한해서는 무척이나 서툴렀다.

   

   수도 없이 많은 던전을 박살낸 할배가 왜 이런데 서투냐고?

   

   그야 할배 본인이 사기캐릭이니까.

   

   어중간한 던전은 혼자서 박살낼 수 있고 위험한 곳에는 용사 파티에 속할 만큼 쟁쟁한 인원이 함께 가던 그다.

   

   무능한 멍청이로 가득한 파티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여아야. 그대는 알 것 같으냐?>

   ‘당연하죠.’

   

   허나 나는 다르다.

   

   치트공략부터 원캐릭 맨몸 맨손 저주 제약 플레이까지 해보았던 나는 그 어떤 파티를 내 앞에 가져오더라도 공략법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뉴비 파티?

   

   쉽지.

   

   너무 쉬워.

   

   펜을 들고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천장에 거미줄로 뒤덮인 알 두 개가 보인다면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겠네.

   

   지도를 머릿속에서 그리며 몬스터의 출현 위치와 함정이 있는 위치를 체크한다.

   

   최단 루트가 있긴 하지만 그러려면 한 번 전투를 해야 하는데.

   

   으음. 아냐. 다른 루트를 고르자.

   

   이 따위 파티로 전투에 들어가는 순간 몬스터를 잡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 거야.

   

   거기에다 전투를 겪을 때마다 보스 공략하는 시간도 늘어날 테니. 좀 우회하더라도 전투를 피하는 루트를 고르는 게 나아.

   

   쉬지 않고서 펜을 움직이지만 진행속도가 그리 빠르진 않다.

   

   모든 일에 판단 근거를 적고 있었으니까.

   

   이는 던전학 수업을 들으며 생긴 버릇이다.

   

   거기서 처음 모의 던전 공략을 할 때 게임 공략 쓸 때처럼 ‘이렇게해서 이렇게 됩니다. 참 쉽죠?’ 라고 써서 제출했거든?

   

   그러니까 던전학 교수가 나를 따로 불러내더라. 말이 되냐면서.

   

   그래서 그 사람이 지적하는 걸 하나하나 반박해줬지. 내가 왜 거기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해서.

   

   당연하게도 그 반박에는 허접이니 멍청이니 좆밥이니 꼰대니 대가리가 굳었니 하는 비하어가 가득했고.

   

   처음에는 기세등등하던 던전한 교수였지만 마지막에 갔을 즈음에는 도저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내가 제출한 것만 빤히 바라보고 있더라.

   

   그리고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다음부터는 판단 근거까지 모두 써놓으라고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 결정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서.

   

   듣고 보니 그녀의 말이 옳다 싶었다. 썩은물의 생각을 게임 속 인물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그래서 그 뒤부터는 판단근거를 나열하려고 노력했지. 그래봐야 교수한테 따로 불려가는 건 똑같았지만.

   

   그런 일을 수도 없이 반복하다보니 이젠 이 판단근거의 나열이 버릇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예전에 공략을 쓸 때 이만큼 자세하게 썼으면 뉴비가 조금이라도 더 늘었으려나?

   

   아니 그럴 리는 없겠네. 내 공략은 뉴비가 볼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대의 공략 서술은 볼 때마다 경이롭군. 멍청한 용사 대신 그대가 우리 파티를 이끌었다면 그 수많은 고생을 무마할 수 있었을 텐데.>

   

   할배의 칭찬을 흘려들으며 공략을 서술하다보니 어느새 파티가 보스룸에 진입했다.

   

   그 때까지 한 번의 전투도 성립하지 않았기에 파티는 만전의 상태였다. 자. 이제 우리 유리대포 마법사가 활약할 차례다.

   

   “끝냈다.”

   

   마무리를 지어 놓고 펜을 놓으려던 순간 목소리가 들려와 고갤 들었다.

   

   1왕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벌써?!

   

   이거 썩은물한테나 쉬운거지 게임 속 인물 입장에서는 난제라고 해도 무방한 수준인데?!

   

   깜짝 놀란 나는 펜을 내려놓고 한 가운데의 환상을 살폈다.

   

   파티 구성은 같지만 던전 구성쪽이 많이 다르네. 보더라도 따라할 수 없도록 신경을 쓴 건가.

   

   1왕자가 내놓은 답은 최선이자 정석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에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그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을 고르는 방식.

   

   던전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공략해야 할 때 어찌하면 좋은 가에 대해 현실에서 보여주는 것만 같은 모습.

   

   거기에 더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위험한 수를 두는 과감함까지.

   

   그를 구경하던 나는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대단하네. 노점상이 웃는 것 좀 봐.

   

   자기가 내놓은 것보다 더 정확한 정답지를 보고 있는 심정은 어떠려나.

   

   그렇지만 저 정도로는 날 이길 수 없어. 히키코모리 왕자님.

   

   박수와 감탄사가 1왕자를 향해 쏟아질 때에 자리에서 일어서 노점상에게 다가섰다.

   

   ‘여기요.’

   “자. 이 허접한 노점에 과분한 답지야. 감사하면서 받도록 해. 콧수염.”

   

   “그럼 확인해보겠습니다.”

   

   내 답지를 받아간 노점상은 조금도 기대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다른 관중들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1왕자가 완벽한 정답을 보여주었는데 어찌 그 다음이 기대가 되겠는가.

   

   그 어떤 답이 나오더라도 1왕자의 하위호완일텐데.

   

   다들 이 지루한 확인이 끝나고 1왕자가 건방진 귀족 영애를 참교육하는 걸 보고 싶다 생각하지 않을까?

   

   허나 그 심드렁한 분위기는 환상이 시작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왜 마물을 만나지 않는 거지?”

   “함정이 있는 위치는 어떻게 다 파악하고 있는 거야.”

   

   1왕자의 공략법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썩은물인 나를 감탄시켰을 만큼.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체스판에 선 병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지를 개척해나가는 일 말이다.

   

   내 방식은 다르다.

   

   1왕자가 체스판에 선 뛰어난 말이라면 난 그 체스판을 위에서 바라보며 말을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미지를 개척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애초에 내게 미지 따위는 존재치 않는데.

   

   환상 속의 파티는 마물과 싸우지 않는다.

   

   함정의 앞에서 고난을 겪지도 않는다.

   

   그저 내달릴 뿐이다.

   

   계속해서.

   

   마라톤을 하듯이.

   

   아래로.

   

   또 다시 아래로.

   

   길을 찾는 과정도 함정을 해체하는 과정도 마물과의 전투도 뭣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던전의 보스룸에 도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그렇게 모든 전력을 온존한 나의 파티가 던전에 진입한다.

   

   이 던전의 보스는 던전에 진입하고서 10초가 지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이 때 출현하는 위치는 고정. 여러 귀찮은 패턴은 사용하지 않지.

   

   이게 무슨 소리냐

   

   10초 뒤에 샌드백이 자기 좀 때려 달라며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어떤 소모도 없이 보스룸에 들어선 마법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스에게 쏟아 붓는다.

   

   그에 따라 보스가 실에서 추락하며 그로기 상태에 걸리고 그를 파티원 전원이 협공.

   

   위협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던 보스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벌레마냥 박살이 나고 말았다.

   

   공략이 끝남에 따라 환상이 사라졌지만 박수도 감탄도 터져 나오지 않는다.

   

   노점상도.

   

   관중도.

   

   심지어 1왕자도.

   

   모두가 멍하니 환상이 있던 자리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적막 속에서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며 노점상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제가 이겼죠?’

   “멍청한 콧수염. 자. 말해. 내가 이겼다고.”

   

   최초에 대결을 정할 때 1왕자는 분명 이렇게 규정을 내렸다.

   

   둘 중 하나만 노점을 통과한다면 그 쪽이 승리.

   

   혹시나 둘 다 노점을 통과한다면 파티가 던전을 공략하는 속도를 가지고 승리를 정하자고.

   

   봐. 아무리 봐도 히키코모리 왕자님보다는 내가 빠른 것 같지 않냐?

   

   서로의 승패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노점상은 입을 여는 대신 1왕자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의 입으로 1왕자의 패배를 이야기하는 게 두려운 것일까.

   

   노점상의 망설임에 비례하여 군중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진다.

   

   당혹에 빠져 있던 이들이 하나 둘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으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이봐. 노점상.”

   

   그 때였다. 꽤나 길었던 침묵을 깨고 1왕자가 목소리를 냈다.

   

   “…예!?”

   “이 답지. 봐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내놓은 답지를 휙휙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비약이 너무 심하군. 도박의 연속이야.”

   

   비약이 아니라 모든 걸 알고 있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인데요.

   

   알지도 모르면서 억까하지 마시죠?

   

   그거 가지고 따지려는 거라면 어디 덤벼 보시지.

   

   고인물의 자존심을 가지고 하나 하나 반박해 줄 테니까.

   

   자! 할 말 있으면 어디 해 봐!

   

   “내가 졌군.”

   

   [퀘스트 클리어!]

   [축제의 학살자가 되는 데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어?

   

   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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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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