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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3

    <203 – 골인 없는 결승점>

     

    즈앙은 생각했다.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은 하나만이 아니다.

    골라인은 같지만 들어가는 과정은 천차만별.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많은 교관들이 숲 곳곳에 숨어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리가 없다.

    암살자로서 기척에 민감한 그녀는 출제자의 의도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카데미에 들어와 사귀게 된 동업자 친구의 사고방식을 떠올렸다.

     

    ‘오크노디라면 이럴 때 어떻게 판단했을까?’

     

    상상속의 오크노디가 해맑게 웃으며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

     

    하고 싶은대로라…

    후후. 암살자에게 리미트를 풀고 자유롭게 즐기라니.

    쫓겨나잖아, 아카데미에서.

    그런 짓을 해버리면.

    그래도 덕분에 참고는 되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때마침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나무 밑을 지나가는 2학년 선배들.

     

    “확실한 정보 맞아?”

    “그렇다니깐. 분명 이 근처에 1학년 상급반 학생이 하나 있다고 떴어. 상급반 명찰만 얻으면 이 망할 시험에서 즉시 통과할 수 있다고!”

    “약속은 지키는 거지?”

    “그래. 명찰은 내가 가지고 통과하고, 대신 그동안 모은 포인트는 너한테 준다. 그런 거래잖아.”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선배들의 머리 위로 두 팔을 벌리며 낙하하는 즈앙.

     

    “기습!?”

    “당했, 컥!”

     

    손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쓰러진 선배들.

    그 뒷덜미를 들어 수풀 속으로 당기는 즈앙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백 명까지 앞으로 아흔 여덟.’

     

    가볍게 100명만 탈락시켜보자.

    즐길마음으로 가득한 즈앙의 암살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싱의 경우는 즈앙보다 더욱 악질적이었다.

    그는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굳이 숨거나, 피하거나, 눈치를 보거나.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덤비는 족족 전부 베어버리면 그만이니까.

    <교장의 가르침> 강의에서는 그 오크노디조차도 정면승부에서는 부담을 느끼고 그를 피해 다닐 정도였다.

    마주칠 일이 없어서 직접 검을 맞대본 적은 없지만 용사 이슈타르가 아니라면 1학년 중에 근접전을 붙을 적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에게는 갈증으로 다가왔다.

     

    ‘검이 무뎌지는군.’

     

    피를 보지 않는 검은 예기를 잃는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검은 과감해지지 못한다.

     

    복수를 위해 힘을 얻고자 찾아온 아카데미.

    강해지기는커녕 약해져서야 본말전도다.

     

    “대박이네. 1학년이 아직도 이런 곳을 어슬렁거리다니. 빨리 포기하고 기숙사에라도 돌아가고 싶나?”

    “선배 생각하는 후배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기회를 주마. 명찰을 내놔. 그러면 곱게 보내주마.”

    “큭큭. 싫으면 덤벼보던가. 물론 우리는 1대3이지만. 1학년을 상대로 비겁하게 셋이서 합공할 거지만. 더러운 재능충을 짓밟는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안 느낄 거지만!”

     

    시원할 정도로 쓰레기스러운 선배들.

    그들의 등장은 싱에게도 반가웠다.

     

    “그런가? 가져가라.”

     

    싱은 망설임 없이 명찰을 뜯어 허공으로 던졌다.

    높이 떠오른 명찰에 당황하며 시선이 올라간 2학년 세 사람.

    아차하며 눈이 내려왔을 때, 싱의 검에 베인 2학년 한 명이 쓰러졌다.

    눈과 함께 발이 뒤로 움직인 학생은 일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이어지는 연격을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눈과 발, 그리고 손이 모두 움직인 학생은 방패를 들어 검을 받아냈다.

     

    따아앙!!

     

    “!!!”

     

    방패를 타고 전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타격.

    발차기에 걷어차인 방패가 공중으로 들어올려지는 짧은 순간, 발목에서 피가 흐르고 손목에서 힘이 빠지며 복부와 가슴에 세 겹의 검상이 생겼다.

     

    파바박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기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2학년.

    그것은 고통이 아닌 1년의 노력으로도 좁힐 수 없는 압도적인 재능차이에 절망한 눈물이었다.

     

    “이런 거, 몇 년이 지나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삐이익.

    리타이어 버튼을 누른 2학년의 손목시계에서 붉은 빛이 떠올랐다.

    더 이상의 공격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경고표시다.

    멈추지 않고 검을 계속 겨누는 싱.

    근처에 주둔했던 교관의 시선도 사나워졌다

     

    “시시하군.”

     

    싱은 그의 심장에 겨누었던 검을 회수했다.

    싸운다면 차라리 저쪽이 훨씬 흥미롭겠어.

    교관을 도발하듯이 살기를 보이는 싱이었지만 상대는 학생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기척을 감추었다.

     

    “너무 시시해.”

     

    그의 칼은 아직 피에 굶주렸다.

     

     

    * *

     

     

    “부우. 치사해.”

    “…….”

    “즈앙이랑 싱이 둘이서만 잔뜩 즐기고 있대요.”

     

    마법시계에 떠오른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오크노디.

    교관은 그 행동이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보여서 그만 웃음을 흘릴 뻔하다가 이를 악물고 웃음을 꾹 참아내었다.

    교관의 프로의식마저 위협하는 사악한 오크노디는 고민에 빠졌다.

     

    ‘슬슬 위험하지 않나?’

     

    탑승물 구간에 간 학생들이 탑승물을 찾고 골라인에 들어가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

    싱과 즈앙을 기다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대로 잠자코 기다리다간 그녀의 순위가 밀린다.

     

    ‘종합점수가 중요하다고 정작 내 점수가 떨어지면 곤란하지!’

     

    그래서 결정했다.

    탑승물을 보관한 우리를 부수면서 겸사겸사 취했던 안배를 발동하자고.

     

    “스위치!”

     

    계열 – 공간마법

    발동 – 위치바꾸기

    전문화 – 사거리연장

     

    2써클 공간마법.

    두 물체의 위상을 서로 전환하는 위상전환마법은 보통 초보마법사들이 왼손에 감춘 돌멩이를 오른손에서 짜잔 하고 보여줄 때 사용한다.

    낮은 써클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지만 조금만 위치조절을 실수하면 손바닥에 돌멩이가 파고든 채로 등장하거나 피부가 같이 뜯겨져나갈 수도 있는 뜻밖의 부작용을 지닌 무시무시한 마법!

    게임 속에서는 부작용으로 일정확률마다 부상을 입거나 사기행각이 발각되어서 마을중앙광장에 매달리는 주원인이 되기도 하는 허접마법이다.

     

    파아앗!

     

    오크노디의 앞에 놓인 나뭇가지 하나가 번쩍이는 모습에 교관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심심해서 나뭇가지를 사탕으로 바꾸는 마법이라도 보여주려나본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나는 매년 학교축제에서 마법학부 학생들의 마법쇼도 본다고!’

     

    그래도 해볼 테면 해봐라.

    1학년의 재롱, 그 정성과 잠재력, 두 눈 뜨고 똑똑히 지켜봐주마!

    오크노디와는 전혀 무관한 교관 혼자만의 지 멋대로의 승부!

     

    빛이 잦아들자 결과가 나타났다.

    교관의 손에 들린 팝콘이 투두둑 땅에 떨어졌다.

     

    “얏호! 원트에 성공이닷!”

    “너, 너, 지금 바꾼 거, 그거 설마…!”

    “오. 교관님이라서 그런가? 바로 알아보시네요?”

     

    교관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결승선을 여기로 가져오면 어떡해!!”

     

    제 3구간 기승시험.

    탑승물에 탄 시험생들이 ‘골인’을 하는 조건.

    기록이 측정되는 요소인 결승선.

    검정과 하양이 알록달록 섞인 기다란 선이 나뭇가지와 교체되어 오크노디의 발치 앞에 나타났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결승선을 도둑질 하다니.

    그것도 교관이 보는 바로 눈앞에서!

    엄히 꾸중하려는 교관에게 오크노디가 볼따구에 바람을 넣고 ‘부우━ 나 삐졌음!’ 하는 포즈를 취하며 얄밉게 말했다.

     

    “마법으로 가져오지 말라는 말은 없었잖아요!”

     

    교관은 설마 싶어서 통신마법기기를 들고 시험관인 플라톤 교수에게 물었다.

     

    “학생 본인은 이렇게 주장하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시험관님… 예? 맞는 말이라고요? 그걸 했으니까 더 대단해? 아니, 자기 시험이 개판 났는데 웃고 있지 말라고요!”

     

    통신을 주고받던 교관이 화를 내다가 진이 빠져서는 귀에서 손을 떼었다.

     

    “뭐래요?”

    “시험속행이란다.”

    “거봐요. 되죠?”

     

    교관은 981기 학생들이 불쌍해졌다.

    아카데미를 다니는 내내 저 악마 같은 꼬맹이에게 시험마다 시달릴 미래가 훤히 보였다.

    결승선에 이동마법을 걸어서는 안 된다.

    이런 규칙은 없다.

    그건 애초에 이동마법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마법의 발동조건은 구조물을 완벽하게 해석해서 다른 위치에 전송하는 것.’

     

    해석과정에서 ‘완벽’한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읽기 어려운 마력술식을 심어놓고 해석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면 공간이동마법은 애초에 발동하질 않는다.

    교관인 자신도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엄두도 못낼 짓을 1학년이 덜컥 저질러버렸다.

    길거리 마술사와 다를 바 없는 허접마법사들과는 격이 다른 진짜 마법이다.

    플라톤 교수의 말도 맞았다.

    이건 저지른 쪽이 대단한 거다.

     

    ‘그래서 원래 결승선이 있을 자리에 간 학생들은? 걔들은 어떻게 되는데?’

     

    교관의 얼굴에 삐질삐질 땀이 맺혔다.

     

     

    * *

     

     

    스콜라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접었다.

     

    “저격을 하지 말라고요?”

    “어차피 오크노디는 한참이 지나야 골라인에 들어올 거예요. 그걸 기다렸다가 공격하느니 그냥 먼저 골라인을 통과하는 편이 이득이에요.”

     

    탑승물 저격의뢰를 맡겼던 성녀 유피가 의뢰를 접고 성적을 우선시하라는 충고를 하는 마당에 자기 성적을 버려가면서 골렘한테 활이나 쏠 이유가 없다.

    뛰어난 궁수는 기승에도 능하며 추격실력은 말해야 입만 아프다.

    간단히 자신의 탑승물을 찾아낸 스콜라는 골라인을 향해 전속으로 질주했다.

     

    “훗. 바보 같은 오크노디. 설마 워프화살로 수영도 하지 않고 강을 건넜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얼굴조차 한 번 보지 못하고 순위를 내어주는 굴욕을 겪게 해주마.

     

    [여기가 골인이야!]

    [후배들 힘내!]

    [중간고사 수고했습니다.]

    [기운을 북돋는 플라톤 교수님의 프로틴 수프는 우측 막사에서 받아갈 것.]

     

    생산학부 선배들의 푯말이 잔뜩 꽂혀있는 도착점.

    골라인을 통과한 스콜라는 내심 기대에 빠졌다.

     

    -쟤 누구야?

    -스콜라라는 1학년 학생이래.

    -우와, 쩐다. 엄청 상위권으로 들어왔어.

    -용사파티에 딱 어울리는데?

    -부럽다. 우리 파티에도 들어와달라고 하고 싶어.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선배들의 선망어린 시선!

     

    “저기, 1학년아.”

    “훗. 사인은 곤란합니다, 선배님.”

    “뭐래니? 너 아직 경주 안 끝났다고. 시험도 안 끝났는데 프로틴 수프 받으러 들어오면 안 돼.”

     

    스콜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안 먹을 겁니다. 먹을 생각도 없었고. 그 맛없는 수프는 두 번 다시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툴툴거리던 스콜라의 얼굴에 뭔가 이상한데? 싶은 감정이 떠올랐다.

     

    “저, 선배님? 방금 이상한 말을 하나 더 들은 것 같은데요. 아직 경주가 안 끝났다니요?”

    “기승구간의 완주는 출발선에서 골인선까지 달리는 것으로 측정된다. 교관님들한테 못 들었어?”

     

    방금 지나온 골인라인을 돌아본 스콜라.

     

    “이게 뭐야.”

     

    바닥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골라인은 어디가고 탑승물의 발에 짓밟힌 볼품없는 나뭇가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의문의 피해자 아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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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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