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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네르와 침대에서 일정한 휴식을 취하고 나는 눈을 뜬다.

     

    오늘도 해야할 일이 많았다.

     

     

    나는 내 품에서 조용히 잠들어있는 네르를 내려다보았다.

     

    얼마만에 이렇게 함께한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또한, 너무 뒤늦게 그녀를 받아들였나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만큼 함께 나누는 침상이 따스했다.

     

     

    시엔과는 또 다른 내 마음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네르의 머리 아래에서 조심스레 팔을 빼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어 침상을 벗어났다.

     

     

    -툭.

     

    “…어디가…?”

     

    하지만 네르는 그런 내 인기척에 금방 깨어났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랬다.

     

     

    나는 네르에게 답했다.

     

    “이제 일하러 가야지.”

     

    “…조금만 더 있다가…가면 안돼…?”

     

    “…”

     

    나는 입술을 꾹 다물다 네르의 볼을 쓸어주었다.

     

    약해진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는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일어나야하는 순간이었기에 내가 말했다.

     

    “다시 또 올게.”

     

    “…”

     

    그 말을 듣고서야 네르도 나를 놓아주었다.

     

     

    거실로 나서니 이미 라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한잔 마시며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린 듯 했다.

     

     

    “잘 주무셨나요?”

     

    라안이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리고…네르가 일어났습니다.”

     

    -드르륵!

     

    “…”

     

    라안은 그 말에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듯, 빠른 몸짓으로 방 안으로 향한다.

     

     

    나는 라안의 뒷모습을 보다 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했다.

     

     

    ****

     

     

    “그게 정말인가요?”

     

    네르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아르윈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일어났어.”

     

    “…다행이네요. 그렇게 걱정하셨는데.”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넓은 밭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씨앗도 전부 밭에 심은 상태였다.

     

    앞으로는 잡초를 뽑거나 물을 주는 관리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다릴 일만 남아있었다.

     

     

    “고마워.”

     

    내가 그 밭을 보며 새삼 아르윈에게 감사를 전했다.

     

    어느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면서 생긴 변화였다.

     

     

    아르윈 덕에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농사일을 기본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 모든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쪼그려 앉아 나는 흙을 한번 훑었다.

     

    아르윈도 그런 내 곁에 앉아 몸을 붙인다.

     

    거리감이 가까웠지만, 별 의도는 없었을거라 생각했다.

     

    “천만에요. 이제야 시작인걸요.”

     

     

    그녀 말대로 이제야 시작이긴 했다.

     

    아직도 해야할 일이 끝없이 남아있었다.

     

    씨앗만 심는다고 모든게 끝나는게 아니었으니.

     

     

    하지만 어쩌면 그 이후의 일은 더 이상 아르윈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일지도 몰랐다.

     

    농사일만큼, 내 머릿속에 상주하고 있던 문제가 있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르윈을 바라보았다.

     

    “…아르윈.”

     

    그리고는 잠시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

     

    바로 옆에서 나를 마주한 아르윈의 표정이 점차 진지해져갔다.

     

    그녀는 근거리에서 내 눈을 바라보다…입술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이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아.”

     

    “……………………”

     

     

    아르윈이 그 말에 한참을 굳어있다,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앞으로의 일들은 우리가 해결해볼게. 많은 도움이 됐어. 농기구부터, 사소한 기법까지. 네가 없었으면 이 모든걸 이루지 못했을 거야.”

     

     

    아르윈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눈이 이리저리 방황했다.

     

     

    “…도, 돌아가라고요?”

     

    “그래.”

     

    “아…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그녀가 필요없어서 이 말을 꺼낸게 아니었다.

     

    사냥이 끝나 버려지는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에게 내가 답한다.

     

     

    “마왕의 오른팔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

     

    “….후퇴를 하든, 또 다른 선택을 내리든…곧 전투가 터져날 거야. 스탁핀은 이제 안전하지 않아.”

     

    “…”

     

    “그러니까 먼저 셀레브리엔 사람들을 데리고 피신해. 너희가 할 일은 이제 끝난 듯 해.”

     

     

    아르윈은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내 진심을 확인이라도 하는것마냥, 내 눈을 깊이 바라보았다.

     

    미세히 벌려진 입이 이 현실을 믿지 못하는 듯 보였다.

     

     

    “….또…”

     

    “…?”

     

    “….이…별이라고요…?”

     

     

    나는 그 말의 어감이 이상하게 들려왔다.

     

     

    “이별이 부자연스러운게 아니잖아. 크룬드의 문제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이별을 했을텐데.”

     

    “…”

     

     

    아르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얕은 호흡을 이어가는 그녀가 앞을 바라본다.

     

     

    “….왜 네르는…”

     

    “뭐?”

     

    “…………..”

     

     

    한참을 고뇌하던 아르윈이 내 팔을 붙잡는다.

     

    “…아직 도와드릴게요. 도와드릴 수 있어요.”

     

    “…농사 일이라면 이제-”

     

    “그게 아니라…저, 정보를 드릴게요.”

     

    “…정보?”

     

    “실프리엔 언니가 그러는것처럼…여기저기서 정보를…크룬드에 관련된 이야기라던지…”

     

    “…”

     

    “게, 게다가 왕가에서 당신을 차출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제가 있어야 그 제안도 쳐낼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한 순간에 내릴 선택은 아니었다.

     

    결국 생각을 좀 해본다면 그녀도 떠나는게 옳다는 걸 느낄지도 몰랐다.

     

     

    나는 아르윈에게 제안했다.

     

    “일단 생각해봐. 실프리엔님이랑도 이야기해보고. 그 이후에 결정을 내리고 이야기해줘.”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서 흙을 털어내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알았지?”

     

    “…”

     

    아르윈은 대답하지 않았다.

     

     

    ****

     

     

    네르를 보살피고자 집에 돌아오니, 라안을 비롯한 여러 간병인이 네르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이 몇 늘어나 나는 되려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다들 이곳에 모인걸까.

     

     

    “무슨 일입니까?”

     

    내가 들어서며 묻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라안이 대표로 내게 말한다.

     

    “…이 고집불통이 말을 안들어먹어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예?”

     

    라안은 이내 일어서며 내게 흰 천을 하나 건네왔다.

     

    “라이커 공이 떠나고 네르의 몸에서 잠시 열이 올랐는데…그 덕에 땀을 좀 흘렸습니다.”

     

    “…열이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몸이 건강해지며 나타난 신호겠죠. 그보다, 그 땀을 닦아주려 했는데…네르는 당신이 아니면 안되겠다더군요.”

     

     

    나는 사람들의 틈 사이로 보이는 네르를 보았다.

     

    그녀는 제 옷자락을 꽉 쥔채, 몸을 돌리고 있었다.

     

    “…”

     

    동시에 라안이 나머지 간병인들에게 고갯짓을 보냈다.

     

    그들은 라안의 신호에 하나둘 방을 떠나기 시작했다.

     

     

    “청결은 건강에 중요하다는 걸 알고 계실겁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라안조차 내게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마치 이제는 네르에게 질린듯한 말투이기도 했다.

     

     

    너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을 나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쿵.

     

    이내 문이 닫혔다.

     

    우리 둘만이 방안에 남는다.

     

    “…진짜야?”

     

    내가 네르에게 물었다.

     

    네르는 몸을 돌린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약간의 답답함을 담아 그녀에게 따졌다.

     

    “…네르. 건강해지는게 우선이잖아. 상대를 고르고 있을 여유가 어디있-”

     

    “-내가 라안 언니한테…괴롭힘 당한거 알잖아.”

     

    네르는 아침보다 건강해진 목소리로 내게 말해왔다.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 속에 숨은 슬픔도 고개를 내밀었다.

     

     

    “…”

     

    “블랙우드…사람들도… 나를 손가락질했고.”

     

    “…”

     

    “…그런 사람들한테 내 몸을 어떻게 보여줘. 나는 영지에서도… 내가 믿는 사용인들에게만 부탁을 해오며 살아왔어.”

     

     

    나는 할말을 찾다 말했다.

     

    “…이해하지만, 건강을 위해-”

     

    “-네가 있잖아.”

     

    “…”

     

    “…한때…내 남편이었던 네가.”

     

     

    나는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의미 없는 다툼은 결국 포기했다.

     

    나는 천천히 네르에게 다가갔다.

     

     

    옆에 있던 물바가지에 천을 한번 적시고, 천을 돌려 물을 짜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말한다.

     

     

    “이쪽 봐.”

     

    “…”

     

    네르는 그제야 몸을 빙글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울었던건지 눈가가 붉다.

     

    이제와보면 시엔보다 네르가 눈물이 더 많은것만 같았다.

     

     

    나는 의자를 끌어와 그녀 옆에 앉았다.

     

    동시에 그녀의 체취가 풍겨왔다.

     

    땀을 흘렸으니 그 체취가 더 짙어진 듯 했다.

     

    “…”

     

    이상하리만치 향기로웠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다, 천을 천천히 가져다댔다.

     

     

    “시작할게.”

     

     

    나는 그녀의 눈부터 닦아내주었다.

     

    눈물자국 같은 것들도 일단을 훑어낸다.

     

     

    네르의 쫑긋한 귀가 움찔댄다.

     

    내 손길을 손쉽게 받아들인다.

     

     

    첫날밤,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잘때마다 우리 사이에 베개를 두던 그녀는 이제 없었다.

     

     

    나는 그녀의 이마와 볼, 목과 쇄골을 부드럽게 닦아내주었다.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행위였다.

     

     

    네르는 그 모든 일이 이어지는 동안에 나의 눈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힘없는 눈이 흔들림 없이 나를 주시했다.

     

    내 모든 행위를 기억속에 담는것만 같았다.

     

     

    “…사랑해.”

     

    “…”

     

    네르의 뜬금없는 고백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너무나도.”

     

     

    한명만 사랑한다는 종족.

     

    그 무거운 마음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말의 무게를 나는 이제야 깨닫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잠시 바라봐주고, 다시 몸을 닦아내는걸 이어갔다.

     

     

    보이는 곳을 다 닦아내고 나니, 이제는 몸을 닦아내줄 차례였다.

     

     

    네르도 이어질 행위를 알고 있는 듯 했다.

     

    부끄러운 듯, 긴장되는 듯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나는 그녀의 옷자락을 쥐며 말했다.

     

    “벗길게.”

     

    “…”

     

    그 말에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머뭇대며 눈을 계속해서 깜빡인다.

     

    거부감이었다기보다는, 망설임 같았다.

     

    네르는 그렇게 한참이나 침묵했다.

     

     

    그녀를 보다 내가 물었다.

     

    “하지 말-”

     

    -턱.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쥐어짜 고개를 젓는다.

     

     

    심호흡을 하던 그녀가 말했다.

     

    “…벗겨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상의를 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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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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