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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

         

         

         연합의 뭇 국가들 중 가장 첩보 활동에 능한 국가를 추리자면 크게 ‘대내첩보의 크라실로프’와 ‘대외첩보의 칼리온’으로 꼽힌다.

         

         둘 모두 각각 방구석여포와 관음증환자로 짧게 동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가에 한정 짓지 않고, ‘조직’으로 범위를 넓혀 보자면 놀랍게도 칼리온보다 국경선에 자유롭고 크라실로프보다 내밀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직이 있다.

         

         교회.

         

         연합 왕국의 모든 국가들은 하나의 종교로 묶여 있으며, 교국의 사제들은 교황이 임명한다. 임명, 발령, 사면권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제에겐 국경이 없다.

         

         거기에 ‘고해성사’라는 시스템상, 사제들은 교인의 가장 내밀한 고민과 치부를 들을 수 있다. 당연히 발설금지가 교회법으로 단단히 얽혀 있지만, 실수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당연히 사제도 사람이므로 가끔 말실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몇몇 사제들은 ‘너무 자주 말실수를 하는’ 것으로 의심을 받곤 한다. 즉, 우방국 고정간첩이란 뜻이다.

         

         이러한 사정을 모두 고려한다면, 이 시대에 가장 많은 첩보원을 거느린 조직은 곧 교회이며, 가장 강한 정보력을 쥔 것도 교회이고, 따라서.

         

         

         “내 작고 소중한 상태창아….”

         

         

         프리첸카야, 성 얀스크 대학 신학부에 오고 가는 모든 신학도들은 예비 첩보원이란 뜻이며.

         

         

         “대체 누가 스파이니… 말해다오….”

         

         

         그 첩보원을 걸러내야 하는 유진은 얼굴을 감싸쥐고 끙끙거릴 수밖에 없었다.

         

         성녀의 계획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이었으므로.

         

         지금 이 시점, 신학과가 신성력 상실 사태에 실신하고 말았으므로 유진은 멍하니 교정에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유진아 뭐해?”

         “한탄, 기도, 염탐.”

         “신실해서 보기 좋다 야. 할 거 없으면 같이 도강이나 들으러 가자.”

         “도강?”

         “엔리케 교수님 수업인데 인기가 많아서 수강신청을 못했어. 마족의 생태 기억해?”

         “그거 형님이 오티만 하고 통째로 짼 수업 아니야?”

         “그걸 이제 엔리케 교수님이 맡아 하신대. 수강 인원 상관없이 들어도 된다던데 같이 갈래? 그거 끝나고 이자벨네 저녁 먹으러 가자.”

         “그건 못 참지.”

         

         

         김치찌개는 중대 사유다. 형님이 괜히 눈이 돌아간 게 아니니까.

         

         유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엔리케의 수업은 재밌으니까, 뭐 괜찮겠거니 하고서는.

         

         

        *

         

         

         엔리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 능하다. 이는 절멸부대(전멸함)이 증명할 수 있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배워간 녀석 중 실패한 학생이 없다는 점에서 그녀의 교수법은 칭송 받을만하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기품 있고, 재밌는, 젊은(논란의 여지가 있다.) 여교수의 수업이 인기 없긴 쉽지 않다. 심지어 그 교수가 용사 파티 출신이라면 더욱이.

         

         이반을 포함한 몇몇 이들이 쉽게 깨닫지 못하는 지점이지만, 엔리케는 역사서에 남은 영웅 중 하나였으니. 지금도 용사 파티의 동상을 보면 그녀를 잔뜩 미화한 동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번주엔 고블린이었나?”

         “고블린이랑 오크. 확실히 지난 학기 수업보단 나아.”

         

         

         마족의 약점 : 목이 떨어지면 죽는다. 라고 가르치던 괴인의 수업보단 훨씬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교외의 숲에 모여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곧, 교탁에 엔리케가 나타났다.

         

         

         “반가워, 학생들! 날도 쨍하니 좋고, 딱 술래잡기 하기 좋은 시간이지? 오늘은 실습이야. 다들 편하게 입고 오라고 했는데… 남학생들은 말을 듣지 않네!”

         

         

         있는 힘껏 꾸미고 온 몇몇 학생들을 무시하고, 엔리케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뭐어, 후회해도 몰라. 이번 실습은 타우르스 처치야. 틸레스 학생이라면 잘 들어두는 게 좋아. 타우르스는 동부전선 주력 마족이고, 그쪽에선 여전히 소규모 침공이 빈발하고 있거든.”

         

         

         틸레스 학생들과 용사 파티는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타우르스를 상대할 때 뭘 해야 하느냐. 이건 솔직히 정답이 하나긴 해. 멀리서 죽인다. 근접전이 붙으면 타우르스의 돌격은 기사의 기창돌격과 비슷한 위력을 보이거든. 기마에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보행 상태에선 접촉을 금하고 있지.”

         

         

         흥미진진하게 엔리케의 설명을 듣던 이자벨은 그 부분에서 잠시 고민했다. 아저씨는 그냥 서서 다 회쳤다고 들었는데. 하면서.

         

         

         “가장 훌륭한 처치법은, 단독 행동하는 타우르스를 조우했을 때 급습하는 거야. 그러니 숲을 골랐지. 숲은 숨어서 기습하기 좋은 환경이거든. 지난 수업에 대충 숲에서 은밀행동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지? 오늘은 그걸 평가하는 겸 해서 한번 실습을 해보자.”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고급 수트를 입고 향수까지 뿌린 남학생이 치명적인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거기. 그… 미안, 학기초라 애들 이름을 다 못 외워서. 질문 있니?”

         “뒥스 백작가의 뤼넨입니다. 교수님!”

         “그래 그래, 뤼넨 드 뒥스. 질문은?”

         “타우르스를 기습하는 것을 실습하신다는 뜻은… 이 숲에 타우르스가 있다는 의미인가요?”

         “내가 아무리 위대한 엔리케라고 해도 프리첸카야에 붙어 있는 숲에 마족을 풀어 놓을 수는 없지. 대신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을 구했어.”

         

         

         오.

         

         이쯤에서 이자벨과 에시디스가 황급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설마.

         

         

         “자, 박수! 모르는 사람 있나?”

         

         

         저벅.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제법 따듯해진 봄날씨의 대기 온도가 약 50도 가량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 전원은 팔뚝에 치솟은 소름을 쓸어내리며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평범한 침엽수의 그림자에서, 장신의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

         “어어…?”

         

         

         이반 페트로비치는 그림자에서 벗어나 교탁 앞에 섰다. 그는 음울한 눈으로 모여 앉은 학생들을 한차례 훑었다.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 그가 모르는 얼굴이라면 1학년생이란 뜻이다. 그는 모든 학부생의 인적사항을 암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싸늘한 침묵 속에서, 이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머.”

         “큽…?! 푸흡…!!”

         

         

         이자벨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귀엽잖아, 저 아저씨. 젠장. 어쩔 수 없나…? 저건 유혹인 거 아닌가?

         

         다크-이자벨이 된 그녀는 황급히 저녁 만찬에 수면제를 추가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비롯한 각족 약물은 암흑 요리사의 비법 소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 소리가 들리면, 도망쳐라. 타우르스는 오직 전투 직전에만 하울링을 하며, 숲 속에서 타우르스의 하울링이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 건 그것이 널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반은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타우르스는 시각이 둔하지만 청각과 후각이 인간보다 뛰어나다. 청각은 가청영역 아래에서 약 3배, 후각의 경우 약 5배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지. 그러니, 타우르스를 상대할 때 급습하기 위해선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최대한 주위에 체취를 감출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 숲에서 체취를 어떻게 감추죠…?”

         “좋은 질문이군.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좋은 질문이란 단어가 널 죽이겠다 정도로 들린 탓에, 무심코 질문을 했던 여학생이 목을 움츠리며 떨었다.

         

         

         “진흙에 몸을 담궈라. 아니면 물 속에서 최대한 오래 대기해라. 하지만 물 속에 오래 있다면 저체온증의 위험이 있고, 물 밖에서 수분이 증발할 때 체취가 강해져 노출될 위험이 있으니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가장 추천되는 것은 피다.”

         “…피…요?”

         “무엇이든 상관없으니 숨고자 하는 지역 근방에 피를 발라둬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타우르스는 육식동물이고, 생식을 즐기기 때문에 혈향에 쉽게 흥분하니까. 그 뒤에 포식하는 데 정신이 팔린 타우르스를 급습하면 일이 수월해질 게다.”

         

         

         이반은 학생들을 훑으며 말을 마쳤다.

         

         

         “5분 후부터 추적을 시작하겠다. 일반적인 타우르스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추고 추적과 전투에 임할 테니, 습격을 시도할 때 과도하게 겁을 내진 말아라. 타우르스가 반응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공격은 맞아 주겠다.”

         

         

         그러니까, 타우르스쯤 되는 마물에게 유효타가 날 공격을 맨몸으로 받아낼 자신이 있다는 뜻인데.

         

         이반의 얼굴을 보고 겁을 먹지 않은 학생들은 헛웃음을 지으며 피식 거렸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은 적어도 귀족들이며, 귀족들은 마력을 사용할 줄 안다. 대학에 진학할 수준의 성인이라면 더욱 능숙하며, 타국과 교류하는 장소에 파견될 정도의 귀족이라면 더욱 실력이 뛰어나기 마련이다.

         

         즉, 제 영지 내에서 어느정도 경륜 있는 기사나 마법사 따위는 손쉽게 이겨왔던 이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란 말을 숫하게 듣고 자랐던 인재들이다.

         

         재능 있는 귀족가의 청년들은 반드시 오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엔리케 본인이 하는 것도 아니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무명의 교수, 그것도 저렇게 허름한 교수 따위가 감히 저런 소리를 한다면 웃을 수 밖에.

         

         그들을 한차례 훑어본 이반은, 품 속에서 회중 시계를 꺼냈다.

         

         

         “시작하겠다. 흩어지도록.”

         “자자, 뭉쳐 있는 건 좋은데, 뭉칠수록 더 눈에 잘 띄는 거 알지? 전략적으로 고려해서 팀을 짜고 움직여. 2시간 줄게!”

         “그냥 도망치기만 해도 되나요?”

         “그래도 되긴 하는데, 이 수업 이름 안 까먹었지? 마물의 생태야. 대처법을 시험하는 거니까 그럼 감점 사유야. 적어도 공격 한 번은 넣어봐. 실패해도 가산점이니까.”

         

         

         엔리케는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학생들이 일제히 흩어지고, 어느새 교탁엔 엔리케와 이반만 남아 있었다.

         

         

         “와줘서 고마워. 솔직히 이렇게 시원하게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교육은 중요하니까.”

         

         

         용사 파티는 아직 배울 것이 많고, 그 외의 학생들 또한 교육 수준을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언젠가 회고했듯이, 지금은 난세니까. 연합 왕국이 분열될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순간에, 마족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들은 언제든 소중한 법이다.

         

         이반의 말에 엔리케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도 좀 바깥 공기도 쐬고, 사람도 만나고 하면 좋잖아.”

         

         

         이 녀석은 혼자 놔두면 할 일 없을 때 무기 점검이나 하고, 방첩사령부에 틀어박혀서 첩보망 점검이나 첩보자료 확인 같은 일에 몰두할 것이 분명했다.

         

         사람이 그렇게 삭막하게 살아선 안 된다. 기왕이면 젊은 애들과 어울리며 좀, 활기도 얻고. 활력이란 건 전염성이 강하니까. 벌써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진 것 같지 않은가.

         

         엔리케의 말에 이반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회중시계를 품 안에 넣었다. 어차피 시간은 초 단위로 셀 수 있으니, 사실 시계는 그저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꺼낸 것에 불과했다.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고?”

         “걱정 마라. 정말 일반적인 타우르스를 가정하고 행동할 테니까.”

         “애들이 좀 짓궂어도 참아.”

         “걱정이 과하군.”

         

         

         이반은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는 숲길을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엔리케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역시 저 녀석 내 과라니까.

         

         애들 가르칠 때 즐거워하니까.

         

         

        *

         

         

         “야, 온다.”

         “쉿, 조용. 준비해.”

         

         

         뤼넨은 장검을 꽉 쥐고 몸을 낮췄다. 몇몇 학생들과 함께, 그는 침엽수림의 울창한 관목 곳곳에 은신해 있었다.

         

         이 녀석들과 호흡을 맞춘 것도 오래된 일이다. 뒥스 백작가는 대영지였으며, 백작가 휘하의 남작가 중에서도 그의 또래가 많았으므로.

         

         이곳의 소남작들은 훗날 그가 ‘파벌’이란 것을 만들 때 요긴하게 쓰일 동량들이다. 영지 내에서도 함께 쏘다니며 온갖 ‘재밌는’ 일들을 하고 다니던 오랜 친구들이었다.

         

         마법사와 기사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조합이다. 다섯 명의 학생들은 급습을 준비하며 각자 무기를 움켜쥐고 침을 삼켰다.

         

         곧,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땅을 울리는 듯 강하게 내려 찍고 걸어오는 탓에 눈치채지 못하기도 어려웠다.

         

         

         “향수 냄새는 쉽게 노출된다. 주의하도록.”

         

         

         낮은 목소리가 저 멀리서 울렸다. 아직 훌쩍 남은 거리, 더군다나 울창한 수풀로 가려진 시야 속에서도 정확하게 그들을 향해서.

         

         그리고 곧, 무뚝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음머.”

         

         

         타우르스는 적을 발견했을 때에만 하울링을 한다.

         

         

        *

         

         

        -으아아아아악—!!

        -죽어어어—!! 죽어어엇—!!

         

         

         “가까운데? 가볼까?”

         “아니, 에시. 우린 지금 딱 좋은 위치에 있어.”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오오오!!!

        -내, 내가 누군 줄 알—!! 으아아악!!

         

         

         “대체 삼촌은 뭘 하는 걸까?”

         “평소에 하던 거 하고 있겠지. 대충 따라할 수도 있을 거 같아.”

         “해봐! 뭔데?”

         “음. 적인가. 죽인다.”

         “큽…!! 푸흡!! 꺄하하하학!!!”

         

         

         에시디스는 곧장 엎어져서 바닥을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깔깔거리던 두 사람은 곧 헛기침을 하며 다시 몸을 도사렸다.

         

         

         “이번엔, 알겠지? 에시. 무조건 눕히는 거야.”

         “조, 조금 과감한 것 같기도… 한데.”

         “아냐, 아저씨가 ‘힘을 제한한다’고 했잖아. 그런 기회가 또 있을 거 같아? 이대로 포기할 거야? 그냥 여왕님한테 아저씨 넘겨줘?”

         “그럴 순 없지.”

         “일단 만나면 내가 나가서 바로 말할게. 그때 네가 뒤에서 치고, 시선이 흩어지면 내가 달려드는 걸로.”

         “좋아, 완벽해.”

         

         

        *

         

         

         “훌륭하군.”

         

         

         이반은 사슴피로 얼룩진 공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슴의 시체를 중심으로 핏물이 나무와 바닥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과연, 혈향을 따라 걸어오니 이런 모습이었다. 깔끔하고, 완벽한 함정이다. 타우르스라면 걸릴 수 밖에 없는.

         

         이반은 만족스럽게 공터 한 가운데로 나아갔다.

         

         

         “아저씨.”

         

         

         공터 너머에서 이자벨이 몸을 일으켰다. 나뭇잎이 몇 장 얹어진 머리를 대충 털어내고, 그녀는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칼을 뽑았다.

         

         

         “내기 하나 할까요?”

         “내기.”

         “내가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주기.”

         “왜 해야 하지.”

         “내가 지면 아저씨 합숙 훈련에 불만 없이 참가할 테니까. 필요하잖아요. 용사가 더 강해지는 거.”

         “타당하군.”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감점이다.

         

         

         “급습을 위해 함정을 파놓고 정작 몸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네겐 승산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군.”

         “그래요? 정말?”

         

         

         이자벨의 웃음과 함께, 이반의 시선이 빠르게 측면을 향했다.

         

         청각과 후각을 타우르스 수준으로 제한해둔 상태라, 살기가 닿기 직전까진 눈치채지 못했다. 확실히, 타우르스라면 이번 기습이 먹혔다.

         

         살기를 숨겼다면 더욱 확실하게. 이반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앙—!!

         

         

         “도끼를 써?!”

         “타우르스는 도끼를 쓸 줄 안다.”

         

         

         이반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 꽂히던 지휘봉이 도끼날에 가로 막혔다. 그는 최대한 기술을 자제하고, 오직 힘으로 에시디스를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과연, 완벽한 타이밍이다. 어느새 달려든 이자벨이 칼끝을 바로 세우며 그의 가슴을 노렸다. 마력까지 동원한 것을 본다면 흠잡을 구석이 없다.

         

         

        -카앙—!!

         

         “마력도 써?!”

         “타우르스는 마력을 쓸 줄 안다.”

         

         

         이반의 도끼가 이자벨의 칼날을 튕겨내며 반바퀴 돌아, 다시 내려 꽂히는 지휘봉을 걷어냈다. 그는 곧장 허리를 틀어 이자벨을 묵직하게 걷어찼다.

         

         

         “크흑—!!”

         

         

         이자벨이 공중에서 몸을 틀어 자세를 잡았다. 그녀가 바닥에 내려 앉자, 긴 머리칼이 사뿐히 가라앉았다.

         

         다시 벌어진 거리에서, 이반은 슬쩍 미소 지었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하면서.

         

         원래도 뛰어났던 아이들이다. 그 재능이 전대에 못지 않을 정도로. 실전을 겪으며 점점 더 예리해지고 있어서, 그것이 눈에 보여서.

         

         미숙한 용사 파티를 천천히 만들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또는 이들의 실력이 향상될수록, 이들의 생존성이 확보되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 더 이상 누군가가 죽을 필요는 없지.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참 만족스러워서. 이반은 슬쩍 웃으며 이자벨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머.”

         

         

         타우르스는 전투 직전에 하울링을 하니까.

         

         이자벨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자르기 애매해서 걍 붙였습니다!

    연참이라고 여겨주세요 2화 분량이니까! 으헤헤헤
    *
    제대로 된 댓글 확인을 되게 오래 못했습니다. 제가 곧 몰아서 할 계획인데, 그 사이에 질문이 있다면 편하게 해주세요!
    틸레스 편처럼 QnA를 한번 하겠습니다!
    *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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