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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뭐, 루테티아의 거리 전부가 우리의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루테티아 자체는 벨부르의 영토였고, 당연히 제국인이 가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만한 공간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와 함께 있는 샤를로트의 것도 아니다. 왕도 자체는 국왕의 직할령이어도, 벨부르 왕국도 자본주의의 바람을 피하지는 못했으니까.

        

       누군가는 그 직할령의 땅을 사서 자기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거리 자체는 누군가의 것도 아닌 공공 구역이었고, 당연히 사진을 찍는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었다.

        

       현대 대한민국이라면 카메라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니 일부러 조금 돌아가거나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지만, 벨부르는 아직 카메라라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게 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가다가 사진 구석에 사람 한두 명 정도가 찍혀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사진 구석에 찍힌 사람의 얼굴이 내 눈에 익은 것은 완전히 이상한 일이었다.

        

       “…….”

        

       게다가 내 눈에만 익은 것도 아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엘리스도 아는 얼굴이었다.

        

       “이거 데미안 아니야?”

        

       앨리스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름을 머릿속에서 곧장 꺼냈다.

        

       “마지막으로 본 게 2년 전이기는 하지만…… 이거 데미안 맞는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앨리스는 클레어가 우리 몫으로 준 사진을 손에 쥐고 팔랑거리면서 말했다.

        

       “제가 보기에도 맞는 것 같습니다.”

        

       데미안 팬그리폰.

        

       황제의 아이 중에서도 가장 들켜서는 안 되는 곳에 파견되는 캐릭터였다. 원작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역할을 하지는 않고, 그냥 황제와 싸우러 가는 길에서 수문장 역할을 할 뿐이긴 했지만.

        

       다만 주인공 일행에 속한 전형적인 미소년, 미청년 풍의 두 남자 캐릭터를 제외하면 몇 안 되는 중성적인 디자인의 캐릭터라서 꽤 인기가 있었다.

        

       20세기 초라는 배경 때문인지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자 캐릭터들은 어깨가 딱 벌어진 남성적인 형태의 디자인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심지어 레오, 제이크는 머리카락이 여자 캐릭터만큼 길지 않지만, 데미안은 등까지 내려오는 장발이었다.

        

       거기에 전투 중에는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변장하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나오기까지 해서, 너무 대놓고 여성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만든 것은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던 캐릭터다.

        

       “그런데 그 데미안이 왜 여기 있는데?”

        

       그러게.

        

       데미안은 원작에선 법국에 가 있었을 텐데.

        

       앨리스야 데미안이 어디로 파견되었는지 몰랐고, 나도 원작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법국이 루테티아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까운 것도 아니다. 사실 거리로만 따지면 루테티아와 제도의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이 법국이었다.

        

       그렇다면 법국에 있다가 국경을 넘어 루테티아까지 왔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여기 있었다는 걸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앨리스가 물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샤를로트는 아카데미의 루테티아 방문을 여름방학 때부터 준비했던 모양이니까. 정보를 빼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언제쯤 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굳이 사진 구석에 찍히는 것으로 자기 정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잖아. 그냥 지나가는 사람처럼 찍혀서 얼굴이 살짝 흔들려 보이긴 했지만, 나나 앨리스 모두 알아볼 정도로 데미안이라는 특징이 잘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코트 깃을 세워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쓰고 있는 중절모와 코트 깃 사이로 보이는 눈 주변의 모습은 분명히 데미안의 모습 그 자체였다.

        

       “만나고 싶으면 그냥 우리를 만나러 오면 되는 거 아니야? 우리가 데미안이랑 원수진 사이도 아니고. 필요하다면 대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앨리스와 데미안이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애초에 평소에 부딪힐만한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혹시 실수인가? 우리를 보고 있다가 어쩌다가 카메라 시야에 들어와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접점이 거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데미안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데미안이라면 카메라의 존재 정도는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고, 카메라에 달린 렌즈를 보고 어느 정도 거리에 들어가야 사진에 찍힐지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우리한테 찾아오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으로? 굳이?”

        

       그러게.

        

       “……그 대답을 들으려면 우리가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죠.”

        

       나는 사진을 들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

        

       카메라에 찍힌 데미안의 모습만으로 우리가 어떻게 그를 찾아갈 수 있을까.

        

       일단 나와 앨리스는 우리가 사진을 찍은 장소까지 나왔다. 그리고 사진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여서 우리가 사진을 찍은 각도를 정확하게 맞춰 섰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미 밤에 가까운 시간이었기에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야 했기에 조금 어색한 자세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알아차린 것은 있었다.

        

       데미안의 몸이 향하고 있는 방향.

        

       사진 속의 데미안은 우리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어느 방향으로 향해 걷고 있었다. 당연히 사진에 찍힌 다른 친구들은 그의 정체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으리라. 애초에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 몸의 방향은 사진 속에 있는 유일한 단서이기도 했다.

        

       데미안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 쪽으로 대충 돌아서자, 우리 눈에 가게 하나가 들어왔다.

        

       허름한 가게였다. 애초에 장사도 하지 않는지, 유리창은 나무 판자로 막혀 있었다. 폐허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사람이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다는 분위기 때문에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가게 바로 근처에 가로등이 고장 난 채라서 그 가게만 어두침침한 것이 그 분위기를 더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그것만으로 저 안에서 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나와 앨리스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뒤를 따라 나온 사람은 없다. 낮에는 샤를로트가 기사들을 물렸기에 따라다니는 사람이 없었고, 지금은 우리가 몰래 나왔으니까. 주로 내가 앨리스를 이끄는 형태로.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조심스럽게 행동했기에 누가 우리 뒤를 따라오지는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마침 거리에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우리는 재빠르게 그 문 닫은 가게까지 가서 그대로 문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문손잡이는 너무 쉽게 돌아갔다.

        

       “문을 잠그도록.”

        

       어두침침한 가게로 들어가자마자 가게 안쪽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그런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순간 앨리스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

        

       나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잠갔다.

        

       그러자 그 안쪽에 있던 램프에 작게 불이 들어왔다.

        

       워낙 어두운 곳이었기에, 그 작은 불빛으로도 가게 구석에 의자를 하나 가져다 두고 앉아있는 풍채 좋은 남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버지?’

        

       앨리스의 입에서 다시 한번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집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내 딸들을 만나니 감회가 남다르군. 반갑다고 해도 좋은 정도야.”

        

       “아니, 아버지께서 왜 여기에 계시는 거죠?”

        

       앨리스는 평소에 황제 앞에서 보이던 예의도 차리지 못한 채 다소 높은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버리고 말았다.

        

       “너무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좋지 않을 거다. 저렇게 보여도 창문과 나무판자가 꽤 얇은 편이니까. 안에서 소리를 지른다면 분명 바깥까지 새어 나가겠지.”

        

       그 말에, 앨리스는 할 말이라도 잃었다는 듯 입을 뻐끔뻐끔 움직였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너는 뭔가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은 표정이군.”

        

       황제의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오면서 말했다.

        

       “예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앨리스가 먼저 놀라지 않았거나, 아예 나 혼자 여기 왔으면 나도 모르게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하고 물어볼 뻔했다.

        

       앨리스가 대신 놀라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시간을 몇 번 정도 되돌릴 뻔했으니까.

        

       나는 시선을 돌려보았다.

        

       빛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얼굴이 하얗고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얼굴은 꽤 중성적인 인상의 미남이었지만, 그 하얀 피부색이나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어딘가 조금 음침해 보였다. 아마 날이 밝았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으리라.

        

       예전에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도 조금 음침한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개발사는 거기서 이름을 따오기라도 한 모양이다.

        

       “굳이 해외까지 직접 와 계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뒤늦게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나대로 준비 중인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고 하는 일이 있듯이 말이다.”

        

       아니,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런 쪼잔한 대답을 하면 어쩌자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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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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