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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짧으면서 긴 휴식 시간이었다.

         

       나와 문보라가 서로의 손을 잡고 쪽잠에 들었던 것도 잠시.

         

       어느새 마지막 경기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 전방을 바라보았다.

         

       흩날리는 자줏빛 머리카락과 함께 몸에 두른 아름다운 보석들이 빛을 내었다.

         

       무희 문보라.

         

       그녀는 다른 무희들과 함께 오로지 나만을 위한 승리의 춤을 추었다.

         

       그녀의 마음이, 감정이 절로 내 몸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문보라가 무희의 춤을 펼칩니다.]

       [전투 동안 근력, 속도, 내구가 일시적으로 5 상승합니다.]

         

       곧, 춤이 끝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문보라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힘내요.”

         

       입 모양을 통한 힘찬 응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다짐하였다.

         

       *

         

       -쿵-! 쿵-! 쿵-!

       -와아아아아아!!!!!!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북소리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촤르륵-!

         

       경기장 위로 올라섰다.

       마찬가지로 반대쪽 철장이 위로 올라가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이곳 <전사자들의 축제>의 마지막 보스이자, 우두머리가 그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등장한 것은 나와 별 나이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 장발의 미남자.

         

       그는 나를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참 오랜만의 도전자네.”

         

       환히 이빨을 드리우며 웃는다.

         

       흔히 쾌남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호감 상의 남자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환도로 추측되는 두 개의 쌍둥이 쌍검이 묶여 있었다.

         

       사내는 쾌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보스라는 것을 증명하듯 확연한 혼백을 이룬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죽은 영령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백이었다.

         

       ‘…드디어 나왔나.’

         

       <위대한 전사> ‘호르만’.

         

       지도관들 사이에서 흔히 ‘호 형님’.

         

       또는 ‘유’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지도관 분쇄기 중 하나였다.

         

       대부분 지도관은 편의상 ‘유’라고 불렀다.

         

       “싸우기 딱 좋은 날씨네.”

         

       걸어 나온 그는,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아내로 추측되는 세 명의 여자의 엉덩이와 가슴을 떡 반죽 만지듯 주물렀다.

         

       “……”

         

       크흠.

         

       절로 민망한 상황이지만, 나와 문보라 말고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환과 기가 동침을 요구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사상이 이곳에 진하게 깔려있었다.

         

       강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강한 남자는 여자를 고르며, 자신의 씨를 남긴다.

         

       대충, 옛 전사들이 가질 법한 사상이었다.

         

       곧, 유는 아내들을 물러서게 하였다.

       그리곤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멋진 싸움이겠구나…!’ 하는 결의처럼 보이지만…

         

       이곳을 수십 번은 깨 본, 난 잘 알고 있었다.

         

       ‘대충 상대할 생각인가 보네.’

         

       그는 조금도 진지하게 임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이것이 유의 특수 기믹 중 하나였다.

         

       그의 진심을 끌어내는 것 또한 지도관의 역량이며.

         

       현재 나에게 닥친 가장 큰 난관이었다.

         

       “반갑다. 소년. 편하게 유라고 부르면 된다.”

       “…반갑습니다. 유세하라고 합니다.”

       “좋아, 좋아. 뭐 남자끼리 주저리주저리 대화하는 것도 재미없는 법이지.”

         

       스르릉-!

         

       그는 쌍검을 뽑아, 한 자루는 똑바로 다른 한 자루는 역수로 쥐었다.

         

       한 발 앞으로 내밀었다.

         

       두 개의 검이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전사니까 서로 대화는 이걸로 하자고 좋지?”

       “좋습니다.”

         

       미묘한 침묵.

       직후, 나와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

         

         

       <전사자들의 축제>의 메인 루트는 크게 5가지다.

         

       근력을 상징하는 강(强).

       속도를 상징하는 쾌(快).

       기예를 상징하는 환(幻).

       마력을 상징하는 기(氣).

         

       그리고…

         

       ‘내구를 상징하며, 적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승기를 굳히는 마지막 검의 방식.’

         

       바로 유(柔).

         

       부드럽고 치명적인 유검(柔劍)이자, 다가오는 그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간파하고 쳐내는 절검(絶劍)의 달인.

         

       부딪치고 격돌한다.

       아니, 정정한다.

         

       ‘이걸 격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의 검은 단순하고 수수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강, 쾌, 환, 기는 각자만의 특성이 강했다.

         

       본인의 강점을 바탕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방식의 검이었다.

         

       하지만 유는 달랐다.

         

       그는 상대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고, 본인이 서 있는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내세우는 검이 아닌, 받아치는 검이었다.

         

       여기에 불필요할 정도로 화려했으며 부드러웠다.

         

       마치 칼춤이라는 게 무예로 승화하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솔직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저리 동선 낭비가 심하고, 비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리 위협적일까.’

         

       필시 이것은…

       지금 그가 쌓아온 경지가 보여주는 힘이겠지.

         

       나는, 물 흐르듯 올라오는 유의 검을 간신히 회피하였다.

         

       턱선을 타고 미세하게 베인 틈을 따라 피가 흘렀다.

         

       고통이라는 직감과 위기라는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일까?

         

       ‘…보인다.’

         

       내 눈에 ‘유’가 서 있는 ‘계단’이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스르륵.

         

       강(强)과 쾌(快)를 기반으로 한 [패천검법]이 마치 무게를 잃은 종이조각처럼 그의 쌍검에 흩날려 힘을 잃었다.

         

       ‘닿지 않는다.’

         

       알고는 있었지만, 유의 검은 뚫기 어려웠다.

         

       말 그대로 유능제강(柔能制剛)의 극을 보여주는 검.

         

       장광혁 시험관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나의 힘과 속도는 그의 부드러움 앞에 모든 것을 잃어갔다.

         

       아마 유의 능력치는 나처럼 모든 게 골고루 올라간 밸런스 타입.

         

       거의 완전한 육각형을 자랑하고 있을 거다.

         

       여기에 전체적인 크기 또한 나보다 더 크겠지.

         

       유가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손에 들린 쌍검을 돌려 잡으며 겨누었다.

         

       “벌써 지쳤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시간의 흐름.

       점점 바뀌는 낮과 밤의 자각.

       턱선을 타고 바닥을 적시는 땀방울.

         

       싸움은 양상은 언제나 같았다.

         

       내가 휘두르는 살초(虛招)를 흩날리는 산들바람처럼 막아내는 유.

         

       [성자의 검]과 쌍검이 한참을 부딪치며 청명한 검명(劍鳴)을 일으켰다.

         

       나는 생각하였다.

         

       ‘마치, 달리기 같아.’

         

       그것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끝없는 레이스 코스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죽어라 달려나가도…

         

       언제나 그 앞에는 유가 여유롭게 웃으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형태 없는 바람을 손에 쥐는 것처럼 내 손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싸우는 것이 반복되던 때였다.

         

       유는 갑자기 손에 힘을 주며 나를 강하게 밀쳐냈다.

         

       “음……”

         

       나는 직감했다.

       이건 유가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벌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놀랐다.

         

       이곳 <전사자들의 축제>에도 태양과 달은 존재했다.

         

       경기장 한가득 빛이 나와서 어두워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

         

       어느새 태양은 청명한 보름달로 바뀌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간단했다.

         

       ‘…벌써 6시간이나 검을 나눈 건가.’

         

       시간이 이리 짧았나…

       순간이 이리 짧았나…

       허무함이 몰려왔다…

         

       나는 아직도 더 검을 휘두르고 싶은데…

       눈앞에 보인 저 드높은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그는 나에게 이만하자며, 끝을 고하고 있었다.

         

       “끄으응~후암.”

         

       유는 손으로 입을 가려 하품을 뱉었다.

         

       등을 돌렸다.

         

       “내가 졌다. 도전자여. 오랜만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같은 재능을 보아서 좋았다.”

       “……”

       “나가는 길은 무희들이 안내해 줄 거다. 무사히 나가도록.”

         

       유는 그 말만 내뱉은 채 천천히 걸어갔다.

         

       들고 있던 쌍검을 건네주지도, 별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쉽게 인정하는 패배.

         

       이것은 기본적인 <전사자들의 축제>의 결말이었다.

         

       대다수 지도관은 이대로 유의 말을 받아들여, 클리어를 인정하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쓰러트린 검사들의 검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얻는 능력치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대부분 여기서 만족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더 올라가야 해.’

         

       나의 눈에는 보였다.

       그 무엇보다 또렷하게 보였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흐릿했던 경지가…

       확연하게 도드라지는 이 순간을…

         

       어둠으로 가득 찬 장소.

         

       정체 모를 거대한 계단들이, 저 하늘 높이 층층이 쌓여 있다는 것을.

         

       내 밑으로도…

       내 위로도…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보인다.’

         

       저 멀리 위.

         

       위대한 전사 호르만.

         

       유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유보다도 더 높은 곳에 팽진아가 서 있었다.

         

       팽진아가 있는 곳은 필시, 정상에 가까운 자리였다.

         

       그럼에도 그녀보다도 더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 소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보았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정상에 가까운 위치.

         

       온몸에 여러 개의 칼을 주렁주렁 맨, 노인이 흉흉한 안광을 드리우고 있는 것을.

         

       ‘…나도 언젠가는 저 위에 도달하겠지.’

         

       그, 시기가 그리 멀지는 않을 거다.

         

       내가 가진 재능이라면…

         

       필시 몇 년 안에,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 만큼 강해질 거다.

         

       하지만 안된다.

         

       ‘…그래서는 너무 늦는다.’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 다짐했다.

       더 강해지겠다고.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징다람처럼 내가 예상 못 한 적이 나타나도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을.

         

       우리 애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지금 당장 필요했다.

         

       그걸 위해서는…

         

       더욱더 높이 날아올라야 했다.

         

       ‘후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크게 소리쳤다.

       나의 외침에 유가 멈추었다.

         

       “위대한 전사, 호르만이시여!”

       “…어라? 딱히 내 이름을 말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의 외침에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까지 부드러웠던 태도가 미묘하게 날카롭게 변했다.

         

       이미 알고 있던 거였기에 개의치 않았다.

         

       “저는 무너진 조각상에 전사의 예우를 마치고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

         

       유의 눈꼬리가 작게 움찔거렸다.

         

       “조각상에 새겨진 가장 정중앙의 여성.”

       “……”

       “그녀가 당신의 어머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대. 그냥 평범한 도전자는 아닌 모양이군? 무슨 속셈이지.”

       “속셈 따위 없습니다. 그저 많은 걸 알고 있을 뿐이며. 진정한 의미의 검을 나누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다입니다.”

       “……”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슬라슬라’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슬라임의 전시고’가 전량을 오픈합니다.]

         

       지지직-!

         

       나의 주변에 작은 번개가 휘몰아쳤다.

         

       어느새 내 주변에는 양손검, 동방 검, 곡도, 소검, 둔기.

         

       총 5개의 무기가 둥둥 떠다니며 빙글빙글 회전하였다.

         

       나는 그중에서 둔기.

       [칸의 미로]를 붙잡아 힘을 주었다.

         

       “저는 정당한 자격으로 당신에게 검을 겨누는 도전자입니다.”

         

       이리 저를 보낸다면 어머니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로 결말이 날 것입니다.

         

       “정녕, 그것을 원하시는 겁니까?”

       “……”

         

       나의 말에…

         

       유는 처음으로 진지한 눈빛을 보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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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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