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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예테린푸르크의 재단사들은 기본적으로 할로윈 복장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들은 괴물 단원들의 신체적 특징을 면밀하게 살핀 후, 그들에게 어울리는 디자인들을 추천해주었다.

         

       유라크네가 선택한 복장은 ‘하얀 마녀’였다. ‘검은 과부’를 연기해봤으니 이번에는 정반대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그것의 외형은 이름 그대로였다.

       하얀 마법사용 로브를 걸치고 머리에는 어깨까지 덮을 정도로 넓은 챙의 하얀 고깔모자를 썼다. 거기에 안경까지 더해지니 도서관에 박혀 오랫동안 햇빛을 못 본 학자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유라크네는 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평소의 그녀는 수다 떠는 것과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시골 여자였다.

         

       그녀는 그런 자신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때때로 지적이고 차분해 보이게 꾸며보고 싶었다.

       하얀 마녀 복장은 그런 그녀의 바람에 딱 알맞았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 옷을 입은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옷가게 측은 분명 디자인한 대로 옷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옷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

         

       유라크네는 숨을 천천히 내쉬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미처 허리를 다 펴기도 전에 등 뒤에서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팔을 뻗어 그것을 확인하려는 순간, 이번에는 앞섬을 잠갔던 단추가 터져 나왔다.

         

       단추는 벽에 맞고 튕겨 나와 방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녀는 거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가슴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돌아서서 뒤도 확인했다.

       그쪽은 더 심각했다.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로브가 찢어져 맨살이 다 보였다.

         

       이게 바로 문제였다.

       옷이 그녀에게 너무 작았다.

       분명 펑퍼짐해야 할 로브가 이브닝드레스처럼 딱 달라붙어 그녀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유라크네는 재단사를 원망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몸의 치수를 잰 것은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치수를 직접 쟀다. 아무래도 모두 앞에서 가슴둘레 따위를 드러내기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녀 나름대로 정확하게 잰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뭔가 실수가 벌어진 듯했다.

         

       내일 아침에 재단사가 다시 찾아와 단원들의 몸에 맞게 옷을 조정해준다고 했다.

       유라크네는 이 꼴로 사람들 앞에 설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그녀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단장님의 마법.

       한 번 본 옷은 체형에 맞게 자유자재로 입혔다 벗겼다 할 수 있는 능력.

       그걸로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되도록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남사스러운 꼴을 다른 단원들에게 보일 수 없었다.

         

       ‘그럼 단장님에겐 보여도 괜찮은 건가?’

         

       그녀는 루즈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단장님은 새로 얻은 능력을 시험하다가 그녀의 옷을 홀라당 벗겨버리고 말았다.

         

       단장님은 그것을 실수라고 말했다.

       실실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유라크네는 그의 몸에 걸린 저주를 알고 있었다.

         

       언제나 웃을 수밖에 없는 저주.

       서커스단에서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오직 미소만 지을 수 있었다.

         

       이런 꼴로 당당하게 그분의 침소를 찾을 수 있는 것도 그분이라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아도 놀라지 않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알몸을 보고도 표정에 변화 하나 없다니.

       저주인 걸 알고 있어도 왠지 괘씸했다.

         

       그때, 단장님은 속마음은 사실 어땠을까.

       당황했을까 아니면……흥분했을까.

         

       그래도 몸매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 가꾸어 왔다고 자부하는 그녀였다. 피부 역시 젊은 애들에게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봤지만, 자신보다 가슴이 큰 사람은 없었다.

         

       아, 한 명.

       우몬을 제외하고는.

         

       예전에는 지금만큼 몸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격지심에 차 있었다. 다른 평범한 몸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그것 때문에 남편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었다. 그의 사랑에 감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의 진심에 대해 의심했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소꿉친구에 대한 측은지심에 불과할 거라고 여겼다.

         

       남편은 사려 깊으면서도 끈기 있는 사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우울증을 겪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자신의 옆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켜주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자기혐오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는데…….

       그의 미소만 있었으면 됐는데…….

         

       그는 자신에게 더 큰 것을 안겨주기 위해 떠났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원더스타인의 방 앞에 도착했다. 그녀는 복도에 놓인 거울을 통해 차림새를 한 번 더 점검했다.

       너무 서두른 탓일까. 옷은 아까보다 더 벌어져 있었다.

         

       그나마 등과 허리 쪽에 있는 팔들 덕분에 옷이 완전히 흘러내리는 사태는 막았다. 그러나 가슴의 옆면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이대로 들어가도 괜찮을까.

         

       거울에 비친 자신이 갑자기 한심해 보였다.

       이 야심한 시각에 이렇게나 몸을 다 드러내고 방을 찾는 건 대놓고 유혹하겠다는 거 아닌가.

       단장님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까.

         

       하필 오는 길에 남편 생각을 해 버린 것도 마음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렇게 문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데, 계단 위에서 콧노래가 들렸다.

       익숙한 곡조와 소리.

       그것은 스벤의 것이었다.

         

       유라크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입 싼 영감탱이가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나올지 눈앞이 선했다. 몇 주는 두고두고 놀려먹을 것이다.

         

       콧노래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가 1층으로 내려오기까지는 불과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쾅.

         

       원더스타인이 별빛 가루를 입에 털어놓은 것도 마침 그 순간이었다.

       어제 먹은 것의 몇십 배나 되는 분량의 가루를 한꺼번에 마시고 말았다.

         

         

       [고유 특성 ‘웃는 남자’가 해제됩니다.]

         

         

       메시지가 뜸과 동시에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기침을 토했다. 일부가 기관지로 들어간 탓이었다.

         

       “으……쿨럭, 쿨럭!”

       “다, 단장님, 괜찮으세요?”

         

       그녀는 놀라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두 걸음을 앞두고 그녀는 딱 멈춰 서고 말았따.

         

       그만큼 그녀가 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여유만만한 미소를 잃지 않던 그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하아, 이거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은데.”

         

       원더스타인은 한 차례 숨을 내쉬고는 그녀를 돌아봤다.

         

       “놀랐잖아요. 갑자기 무슨 일인가요?”

         

       그의 얼굴에 원망스러움이 떠올랐다. 항상 웃는 기운이 섞여 있던 목소리에도 투덜거리는 기색이 가득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처음 봤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웃고 있지……않으시네요?”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눈을 깜빡거리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아! 어, 그, 그건……잠시만요…….”

         

       유라크네는 멍청히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는 근처에 있는 거울을 찾아 허둥거렸다. 그의 행동에서 평소의 침착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표정을 확인한 그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어, 하하, 그, 그러니까, 좀 사정이 있는데…….”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떠듬떠듬 말을 하면서도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유라크네는 자신의 상식이 붕괴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이렇게까지 평정심을 잃은 것은 처음 봤다.

         

       그러나 왠지 싫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그의 모습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게…….”

         

       원더스타인은 이제 상황이 조금 정리가 되는지 침착하게 자신이 하고 있던 실험에 대해 설명했다.

         

       “아, 그렇게 된 것였군요. 그럼 이제 단장님의 저주가 완전히 풀린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한정된 시간 동안만 그래요.”

         

       원더스타인은 말을 하면서도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이 자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원더스타인을 연기하는 건 쉬웠다.

       웃는 남자가 있으니 대충 말만 던져도 알아서 웃는 낯에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섞여 평소의 그처럼 보일 수 있었다.

       언어의 사회적인 면은 부담을 덜어놓고 언제나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상황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계속해서 생각해야 했다.

       게임에서 늘 자동 사냥만 하다가 갑자기 수동 조작을 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마주 앉아 있는 상대가 그를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녀와 직접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의 복장 때문이었다.

       민감한 부위만 간신히 가린 풍만한 가슴이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었고, 다리 사이의 물건에 힘이 들어갔다.

         

       이 세계로 넘어와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여성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품을지언정 성적인 욕구는 느끼지는 않았다.

       육체가 항상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흥분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것은 성욕에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6개월 만에 겪는 그것이 상당히 낯설었다.

         

       유라크네는 그의 상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그의 눈빛, 표정, 동작이 너무나도 쉽게 읽혔다.

         

       자신이 슬쩍 가슴을 보일 때마다 그가 크게 당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그의 모든 것이 하나하나 너무 귀여웠다.

       항상 자신만만한 태도로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던 남자가 마치 어린 소년처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과 달리 수줍은 그의 태도는 이전에는 없었던 반전 매력으로 다가왔다.

         

       유라크네는 입술을 할짝거렸다.

       지금까지 그녀는 그와 편한 거리를 유지했었다. 의심하고 집착하는 게 상대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편한 사이가 되고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 천천히 다가가려 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철옹성에 가까운 원더스타인의 평정심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기회가 왔다.

       한 번은 남자를 쟁취해본 여자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움직일 때라고.

         

       그녀는 그가 앉아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단장님.”

         

       그녀는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원더스타인은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피부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날것의 살냄새가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제 옷 어때요?”

         

       그녀는 앞섬으로 손가락을 넣어 슬쩍 튕겼다.

       그녀의 젖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을 따라 원더스타인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자, 잘 어울리시는데요…….”

       “풋, 이렇게 찢어져서 가슴이 다 드러나는데요?”

         

       그녀는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

       그녀의 입술이 요염한 곡선을 그렸다.

         

       그 고혹함에 원더스타인은 이성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그의 입이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러면 좋은 것 아닌가요?”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그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저 그게 아니라, 제 말은…….”

         

       그가 자신이 던진 말을 수습하려는 그때, 그녀가 움직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

       그곳에서 여섯 개의 팔이 솟아났다.

         

       그녀의 등에 달린 두 팔은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녀의 허리에 달린 두 팔은 그의 몸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정상적인 두 팔은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유, 유라 씨?”

       “가만히 있으세요.”

         

       그녀의 말에 그의 몸이 굳어졌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그의 목을 간질였다.

         

       “갑자기 무슨……흐읍.”

         

       그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숨이 막혔다.

       그녀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부드럽고 미끈거리고 뜨거운 것이 그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윙 님, 500코인 후원! 아직 초반부 읽고 계시는데 벌써 후원을 해주시다니..언젠가 이 글을 보실 날을 기대합니다.

    -몽디 님, 60코인 후원! 재차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은 글로, 후원금은 일러스트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19금 파트 쓰겠다고 생각했느데
    빌드업과 감정선 잡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네요.
    처음 써보는 장면이라 분량에 감이 안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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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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