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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 핏물 찰랑거리는 것 좀 봐. 와, 이거 발목까지 닿는 거 아냐? ]

       [ 발목까지는 아닌데…. 복사뼈까지는 닿는 것 같은데? ]

       [ 뭘 얼마나 죽이면 피가 이렇게 고이냐? ]

         

       건물의 모습은 끔찍했다.

       ‘도축장’이라는 표현조차도 모자람이 있을 정도로.

         

       동물들은 칼질에 난도질이라도 된 것인지 잘게 토막이 나거나 칼자국에 난자가 되어 걸레짝이 된 채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그 시체에서 나온 핏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의 이곳저곳에는 굵직한 갈고리가 있었는데, 그 갈고리에서 일부러 피를 뽑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크게 상처 자국을 낸 동물의 사체가 매달려서 피를 줄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떨어지는 피는 갈고리 아래에 있는 이상한 사람 모양의 조각상 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폭포를 맞으며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기괴하게 생긴 조각상은 눈을 감고 다리를 모은 채 핏물을 머리부터 받아내며 그렇게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껏 피를 몸에 적시고 나면 가끔 푸른빛으로 작게 발광하기도 하였다.

         

       [ 우와, 진짜 대단하네. ]

       [ 뭐 이상한 종교 단체라도 얽혀있나? ]

       [ 종교는 무슨. 이거 누가 봐도 주술 아냐? ]

         

       누가 봐도, 정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은 누가 봐도 수상한 주술 의식을 치르는 것 같이 보였다.

       

       “아, 아니야. 주술이 아니야!”

         

       미치시게는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해명하기 위해서인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넘어서서 그들의 귀에 닿기를, 자신이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하지만 그의 맞은편에 있는 검사는 명백한 비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보세요, 내가 댁 변명할 수 있게 내버려 뒀겠어? 백날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당신은 아무 소리도 저쪽에 보낼 수가 없어.”

         

       그는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에서 20cm 떨어진 허공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그러자 마력으로 이루어진 역장이 흔들거리며 잠깐 존재감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모습을 숨겼다.

         

       “내가 이 역장 안 풀어주면 당신이 보내는 소리는 절대 저기에 닿지를 못해. 물론 저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당신 귀에 잘 박히겠지만 말이야.”

       “풀어주시오!”

         

       미치시게는 검사의 말에 눈을 불같은 시선으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검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내가 왜?”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무슨 나한테 뭐 맡겨놨어? 아니면 나랑 무슨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야? 나 참.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거 보고 내 아내가 앞에 앉아있나 싶었네. 하하하하!”

         

       검사는 조롱하는 말투로 한참을 말하더니, 터질 듯이 붉어진 얼굴로 이를 꽉 물고 있는 미치시게의 앞으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냥 입 닥치고 보기나 해.”

         

       일방통행의 영상통화.

       한 방향의 소통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면 인터넷 방송이나 다름이 없는 영상통화였다.

         

       하지만 미치시게는 그런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소통조차도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몸.

       그리고 설령 달갑지 않더라도, 눈앞에 있는 검사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크윽.”

         

       영상 속의 기자들은 ‘도축장’의 모습을 보며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한껏 문 앞까지 다가갔음에도 피와 고기, 그리고 어둠이 가득한 안쪽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것인지 밖에서 연신 플래시만 터뜨리고 있었고, 그 앞에서 진성은 기자들보고 어서 오라는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도 잠시.

       기자들에게 있어서 특종이라는 것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특종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편집장에게, 사장에게 신나게 혼이 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생리적인 거부감을 어떻게든 억누르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하나둘 창고의 문을 열어 피가 넘치는 공간으로, 피비린내가 어둠에 스며든 공간을 향해 발을 디뎠고, 밖의 모습을 찍고 있는 일부 기자들을 제외하곤 모두 창고에 발을 디뎠다.

         

       그들은 ‘특종’을 위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도 기분이 나쁜지 ‘으~’, ‘으아.’ 같은 탄성을 내뱉으며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그들이 창고에 발을 디디면 찰랑거리는 핏물이 복사뼈 위치까지 차올랐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묘하게 찰랑거리면서도 끈적거리는 핏물이 이곳저곳에 튀며 바지에 핏자국을 남겼다.

         

       게다가 그들을 더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은 바로 냄새.

         

       [ 아니 양도 양인데, 썩은 냄새가 나지를 않아. ]

       [ 그럼 이거 핏물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다고? ]

       [ 보통 이런 데는 특유의 냄새가 있거든. 게다가 조금만 오래되면 썩어서 냄새가 나고. 그런 것도 하나도 없잖아. ]

         

       비린내는 풍기지만 썩은 내는 풍기지 않은 핏물들.

       끔찍할 정도로 피가 널려있는 환경에 걸맞지 않은 ‘싱싱한’ 냄새가 상상 이상의 불쾌감을 주었다.

         

       [ 그러고 보니 썩은 냄새가 안 나고. 벌레도 없네? ]

       [ 창고가 별로 차갑거나 하지도 않은데 벌레도 없고 썩은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고? ]

       [ 이봐! 이 토막 난 시체 좀 봐봐. 보통 구더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어. 누가 보면 냉장고에서 갓 나온 녀석인 줄 알겠어. ]

       [ 으억! 근육이 아직도 살아있잖아! 만지니까 달라붙는 거 봐! 빌어먹을! ]

       [ 보존 마법인가? ]

       [ 보존 마법치고는 특유의 냄새도 없고 마력도 안 느껴지는데? ]

       [ 그럼 방금 도축했다는 건가? ]

         

       어느새 기자들은 불쾌감에 적응이라도 한 것인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불쾌감을 잊기 위해서 대화를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 아까 보니까 도축업자 같은 사람은 없던데. ]

       [ 야야, 도축업자면 시체가 저렇게 되어있겠냐? 아주 칼로 난도질을 한 것 같은데. ]

       [ 저거 그냥 칼을 시험하려고 가축 몸을 벤 거 아냐? ]

       [ 그런가? 잠깐만, 여기 돼지머리 있으니까 한 번 확인을 좀…. 어? 이거 가축 아닌 거 같은데. ]

       [ 뭐? 왜? ]

       [ 가축이면 관리할 때 사용하기 위한 태그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깨끗해. ]

       [ 접종한 자국도 없는데? ]

       [ 이거 야생동물이야? ]

       [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깔끔하게 관리가 되어있는데? 뭐지? ]

       [ 아냐, 이거 야생동물 아니야. 털도 깨끗하고, 피부도 깨끗하잖아. 칼에 베인 상처 외에는 흉터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거 축사에서 기른 것 같은데. ]

         

       기자들은 현장을 열심히 살펴보다가 든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축이라고 보기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고.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에도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동물이 뚝 떨어진 것처럼.

       혹은 누군가가 애완동물로 애지중지 기르던 것을 끌고 온 것처럼 말이다.

         

       [ 여러분. 그게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

         

       그렇게 기자들이 가축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들이 일제히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거기에 여우 가면을 쓴 신관이 있었다.

         

       [ 여기 그 해답이 있습니다. ]

         

       진성은 여우 가면을 쓴 채 한 손으로는 기자들에게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는 벽 안에 숨겨져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레버를 잡고 있었다.

         

       그것을 본 미치시게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안 돼-!”

       “아, 소리치지 말라니까. 소용없다고.”

       “안 돼! 당기지 마! 빌어먹을! 제기랄! 제기랄! 어떻게 찾아낸 거야! 제길!”

         

       발광에 가까운 애원.

         

       하지만 스마트폰의 주위에 쳐진 역장은 결코 소리를 전달하지 않았고, 미치시게의 분노에 찬 소원은 결국 허공에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그리고 진성은 그 누구의 항의도,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레버를 그대로 당겨버렸다.

         

       쿠구구궁-!

         

       레버를 당기자 스마트폰의 스피커가 울리며 육중한 소리를 발했다.

         

       [ 문? ]

       [ 비밀 문이다! 비밀 문이야! 이거 찍어! 찍어야 해! 미친! 이런 미친! ]

       [ 이런 젠장! 신관 당신 최고야! 최고라고! 내 살다 살다 이런 걸 다 볼 줄이야! 하하하하! ]

       [ 이런 미친, 이거 진짜 대박인데? ]

       [ 특종이다 특종! 비밀 문이라니! ]

       [ 신관님! 이거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

       [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사용하신 겁니까? 아니면 모시는 신께서 알려주신 겁니까?! ]

       [ 이쪽에서 피 냄새 말고 다른 냄새도 나더군요. 그런데 벽만 있어서 한 번 살펴봤습니다. ]

       [ 이야 이 사람 코 좋네! 타고난 겁니까?! 아니면 모시는 신이 내려준 축복입니까? ]

         

       비밀 문.

       그것도 단순히 거주지나 은밀한 곳에 있는 곳이 아니라, ‘참상’이라는 표현을 써도 모자람이 없을 끔찍하고 잔혹한 도축장에 숨겨져 있는 비밀 문이다.

         

       기자들은 안에 무엇이 있을지 한껏 기대되는지 바닥에 가득 있는 핏물이 사방으로 튀는 것도 잊은 채 어서 들어가고 싶어서 발을 굴렀고, 기쁨에 몸을 주체할 수가 없는지 덜덜 떨기까지 했다.

         

       [ 들어갑시다! ]

       [ 아, 잠깐! 이 안에 뭐가 있을지 알고 그냥 들어가요. 여기 무슨 은신처에 있는 비밀 문도 아니고, 예비 살인마 새끼들이 난장판 만든 곳에 만들어진 비밀 문에요. 안에 함정 같은 거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

       [ 아 함정은 무슨 함정. 빨리 들어가서 찍읍시다. 다들 몸 근질거리잖아. ]

       [ 아냐. 가만 듣고 보니까 저 사람 말이 맞아. 함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뭐 비밀 유지를 위해서 안에 들어간 침입자 생매장하는 장치가 있을 수도 있잖아. 밖에 있는 사람 중 누가 비밀 안 들키려고 그 장치 누를 수도 있는 거고. ]

       [ 그럼 뭐 어쩌라고? ]

       [ 경찰 부르면 되잖아! 저 밖에 잔뜩 온 경찰들은 폼이야? ]

       [ 아, 그러면 되겠네. 아주 중무장하고 왔던데. ]

         

       하지만 기자들은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밖에 경찰을 불러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택했다.

       아무리 특종이 피할 수 없거나 감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 위험을 무릅쓸 필요까지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 흠. 이거 가관이군. ]

       [ 어우, 피비린내. ]

       [ 이런 곳에 비밀 문이 있으면 십중팔구는 안에 사람이 있던데….]

       [ 뭐? 사람? 안에 사람이 감금되어 있다고 한 겁니까?! ]

       [ 아, 그렇진 않습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

       [ 최악의 경우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저기 널려있는 토막 난 사체들 치우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걸 수도 있으니까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

         

       그렇게 불려온 경찰은 신중하게 통로로 발을 디뎠다.

       그들은 훈련받은 대로 경계하면서 천천히 넓은 통로를 이동했다.

         

       그리고 완만하게 경사가 진 길을 어느 정도 내려갔을까.

         

       마침내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 어….]

       [ 축사? ]

       [ 아니 무슨 지하에 이런 게 있어? ]

         

       비밀통로를 걸어간 끝에 나온 것은 지하에 만들어진 널찍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메운 수많은 가축이었다.

         

       소.

       돼지.

       사슴.

       개.

         

       꽤 넓은 지하 공간에서 이 네 종의 동물이 케이지에 쑤셔박힌 채 고통받고 있었다.

         

       [ 아니 무슨 밀수꾼 창고도 아니고….]

       [ 무슨 케이지를 천장까지 이렇게 쌓아 올렸어? ]

       [ 이게 다 몇 마리야. 못해도 수백 마리는 되겠는데…?]

       [ 아니 케이지가 많은 것도 많은 건데, 동물 몸이 케이지에 완전 가득 차 있잖아. 밀수꾼 새끼들도 이렇게는 안 해놓겠다. ]

         

       어느 기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이게 무인들 모인 도장이냐…. 부라쿠민(部落民) 집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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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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