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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204화. 쉽지 않은 일 ( 7 )

       

       

       

       

       

       건들건들.

       

       책상에 발을 올린 밤의 일족은 얼핏 보기에는 불량스러웠으나, 어딘가 미묘하게 허술하고 어설퍼 보였다.

       마치 평소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사람처럼 말이다.

       

       “어, 음.”

       “…도대체 그게 뭐죠?”

       “나도 몰라. 약의 일종인 것 같기는 한데. 아니면 술인가?”

       

       술이라고 하기에는 눈앞의 일족에게 취한 기미는 없었다.

       

       셀리나는 텅 비어버린 물병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내용물을 어찌나 깔끔하게 마셨는지, 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대체 이 물병에 들어있던 것이 뭐길래 밤의 일족이 저토록 과감해지는 걸까?

       

       “뭐가 됐든 좋은 일이네요. 지금이라면 흡혈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흐흐흐흐흡혈! 하, 할 수 있고 말고요! 우, 우우우우리는… 자랑스러운! 밤의 귀, 귀족이니까! 이, 일어나라, 밤의 자식들이여!”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밤의 일족이 우렁차게 외치더니, 뭐인지 모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적당히 흥겨운 박자에 맞춰 손을 가슴 높이에서 빙빙 돌리고, 허리는 저질스럽게 앞뒤로 꿀렁거린다.

       세상에서 제일 멋지게 춤을 주고 있는 자신에게 한껏 취한 표정이 가관이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고의 흐름. 

       셀리나와 이스칼이 벙찐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 하하. 그냥 빨리 피 먹이죠.”

       “그래, 그러자. 그런데 누구 피를 먹여?”

       “어… 셀리나 피를 먹여야죠?”

       

       화악ㅡ

       

       셀리나의 뺨에 불이 난 듯 붉어졌다. 처녀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부끄러웠다.

       

       “나, 나가! 여기서 나가서 문밖에 서 있어! 아니지. 집 밖으로 나가!”

       “우와아악!”

       “내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들어올 생각하지 말고!”

       

       영문도 모르고 떠밀리듯 쫓겨난 이스칼이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집 밖으로 내몰렸다.

       

       영락없이 집에서 쫓겨난 유부남의 모습. 이를 본 지나가는 주민들이 피식 웃으며 한 마디씩 던지고 지나갔다.

       

       “끌끌. 보아하니 새댁한테 뭔가 잘못한 모양이구만?”

       “총각이 생긴 건 힘 좋게 생겼는데, 밤에는 영 아닌가 봐? 홀홀.”

       “젊은이, 거 미안하다고 좀 빌고 밤에 별구경 좀 시켜주면 거의 다 해결되니까 잘 좀 해보게. 어? 내가 그렇게 살아왔어.”

       “이 영감이 못 하는 말이 없어!”

       

       “하하. 예, 어르신들. 감사합니다.”

       

       머쓱하게 뒤통수만 긁은 이스칼이 문 앞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중간중간 야릇한 비명이 들릴 듯 말 듯 희미했지만, 이스칼은 그때마다 방패에 스스로 머리를 박으며 번뇌를 지우려 노력했다.

       

       끼이익…

       

       이윽고 낡은 문이 힘없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어딘가 뺨이 붉게 달아오른 셀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으… 하아… 드, 들어와요…”

       “어, 으음.”

       

       땀에 흠뻑 젖어 목에 달라붙은 머리카락과 묘한 열기를 품은 숨소리.

       살짝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와 목에 뚜렷한 두 개의 점.

       

       이것들은 이스칼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었다.

       

       꿀꺽.

       

       불현듯 솟아나는 사내의 기운.

       지금 사내의 자질을 보인다면, 빼도 박도 못하게 변태로 확정이다.

       

       ‘참아! 참아야 한다 이스칼!’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되뇌었다. 사회적 위신을 위해서라도 참아야 했다.

       

       셀리나는 그런 이스칼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땀을 닦으며 방문을 열었다.

       

       “휴ㅡ 일단 흡혈은 안전하게 끝났어요. 병 안에 들어있던 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효과는 진짜예요. 눈도 못 마주치던 사람이 이제는 제대로 흡혈도 하더라니까? 그만 먹으라는 말도 잘 듣고.”

       “그렇ㅡ 윽?!”

       

       스륵.

       

       셀리나의 부드러운 꼬리가 이스칼의 손목을 스륵 휘감았다.

       

       태연한 셀리나의 반응을 봐서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히, 히힛. 위, 위대한 밤의 일족의… 무ㅡ 무궁한 영광을 위, 위하여…! 쩝쩝.”

       

       허공을 바라보며 헛소리를 뱉는 밤의 일족은 취객처럼 시끄럽게 떠들며 소리 질렀다.

       거기에 아까 먹은 처녀의 피가 어지간히 맛있었는지, 연신 입맛을 다셨다.

       

       “이거 괜찮은 거요? 좀 취한 것 같은데.”

       “어, 아마도? 피가 좀 충격적으로 맛있었나 봐. 5호 님도 흡혈할 때는 참기 어려워하더라.”

       “그 정도로? 그러면 아까 흡혈 할 때 위험할 수도 있었던 거 아닙니까! 왜 나를 내보낸 겁니까!”

       “어? 나, 나는 그냥 괜찮을 줄 알고…”

       “다음부터 이런 일 있으면 혼자 하지 말고, 꼭 제 옆에서 하십쇼. 지켜줄 수가 없으니까.”

       “아아아알겠어…”

       “이번에는 운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왜 이렇게 부주의하게ㅡ”

       “알았다구! 미, 미안해.”

       

       셀리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고개를 들면 파들거리며 솟구친 입꼬리가 이스칼에게 보일 것 같았으니까.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여서 표정을 가렸다.

       

       “이봐요, 내 말 들립니까? 아직도 피를 계속 먹고 싶어요?”

       

       이스칼이 밤의 일족 눈앞에 손을 휘휘 흔들었다.

       

       어쩌면 처녀의 피를 잊지 못하고, 계속 피를 탐하는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자제심이 강하고 사회적인 5호도 순간 흡혈의 충동을 이기지 못했으니까.

       

       “히힛… 아, 아ㅡ?”

       

       허공을 응시하며 웃음을 흘리던 밤의 일족이 돌연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고개를 툭 떨궜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이스칼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방패를 꽉 움켜쥐면서, 셀리나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흐잇! 자, 자기 지금 무, 무슨!”

       “아. 으에에… 흐에엑…”

       

       고개를 떨군 밤의 일족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미약하게 바람 빠지는 숨소리도 들려왔다.

       구멍 난 주머니에 바람을 넣는 듯, 부질없고 힘없는 소리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이 사람 기절한 거 아니야?”

       

       기절한 것은 아니었다.

       앉은 채로 거의 반죽음이 되었을 뿐.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물을 끼얹은 것처럼, 모든 의욕과 에너지가 순식간에 꺼진 것이다.

       

       “흐이에… 으어어ㅡ 히, 힘들어…”

       

       숨소리도 그렇고, 몰골도 그렇고 멀쩡한 이의 것은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십 년은 더 늙은 모양새.

       

       눈 밑으로 그림자가 굉장히 진하게 내려왔고, 영혼 빠지는 숨소리는 그녀가 완전히 탈진했음을 보여줬다.

       갑자기 이렇게 쓰러진다고? 멀쩡하게 잘 웃고 떠들다가?

       

       누가 봐도 아까 마신 음료의 부작용이었다.

       

       “이거… 아까 그 병에 든 액체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러게. 순간 각성제 같은 효과가 있는 모양이네? 효과가 끝나서 반작용이 온 것 같아.”

       “밤의 일족을 순간이나마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만들 정도의 각성 효과라니…”

       

       실로 무시무시한 효과.

       일반인이 먹는다면 각성 효과에 한 달 밤을 꼬박 새울지도 모른다.

       

       “셀리나, 잠깐 팔 좀.”

       

       스윽.

       

       이스칼이 밤의 일족에게 셀리나의 팔을 내밀었다. 행여나 처녀의 피를 중독적으로 탐할지도 모르는 상황. 이런 것은 확실하게 확인해야 했다.

       

       “흐히이이… 무, 무리이…! 으엑, 우에엑!”

       

       여전히 신체접촉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헛구역질까지 했다. 이 정도면 흡혈에 대한 중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휘익.

       

       돌연 셀리나의 머리 위로 몇 개의 물병이 나타났다.

       아까처럼 머리에 부딪히는 각도로 떨어지는 물병들.

       

       “핫!”

       

       허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이스칼이 잽싸게 반응하며 모든 병들을 한 손으로 잡아냈다.

       

       “이건…”

       

       파랗고 하얀 표면에 그려진 붉은 황소.

       일전의 그 물약이다.

       

       이것들에서 느껴지는 의도는 명확하다.

       

       ‘정녕 신께서 뜻하시는구나.’

       

       이스칼이 셀리나를 바라봤다. 신께서 셀리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시니,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그녀를 도와야 했다.

       

       “셀리나. 늦은 저녁이기는 한데, 아직 시간 좀 있습니까? 같이 좀 어울려 주셨으면 하는데.”

       “에, 뭐… 아직 좀 있기는 한데.”

       

       셀리나가 애꿎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빙 꼬며 수줍게 대답했다.

       이 눈치 없는 사람이 오늘 진도를 어디까지 나갈 작정인 걸까?

       

       ‘오, 오늘 속옷 진짜 못생긴 거 입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날에ㅡ!’

       

       “그러면 가장 가까운 밤의 일족부터 시작합시다.”

       “예? 아니, 뭘 시작해? 어? 잠까ㅡ!”

       

       이스칼에게 끌려다니던 셀리나가 집무실에 돌아왔을 때는, 늦은 한밤중이었다.

       

       “아아아악! 이 눈치 없는 고자가 진짜!”

       

       밤의 일족에게 하도 피를 빨려서 살짝 어지러울 지경이다.

       

       

       

       

       

       *****

       

       

       

       

       

       《용맹한 황소 비약 : 한 모금만 마셔도 밤을 새울 수 있는 고농축 에너지 비약.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샘솟겠지만, 그 대가는 미래의 자신이 감당할 것이다. 》

       

       《*주의* 일반 주민에게 사용하지 말 것.》

       

       “이야, 약빨 죽이네.”

       

       직빵이다, 직빵.

       

       잡다하게 쌓인 아이템 사이에서 발견한 익숙한 디자인.

       혹시나 해서 한 병 떨구고 《반짝이는 안내 벌레》로 유도했는데, 약빨이 제대로 먹혔다.

       

       한 병을 통째로 비운 밤의 일족이 거의 일반 주민에 가깝게 움직이는 것 아닌가.

       

       – “위, 위대한ㅡ 밤의 일족을… 위, 위하여…!”

       – “흐읏, 하으으읏…! 조, 조금만 사, 살살…! 아흐읏!”

       

       띠링ㅡ!

       

       《밤의 일족, 바토리의 반영구적 상태 이상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렇게 피해 다니던 흡혈까지 원큐로 해결.

       그야말로 완벽한 플레이다. 

       

       원인 파악, 해결책 도출, 문제 해결.

       이게 바로 업무로 다져진 사회인의 짬 아니겠는가?

       

       삐익ㅡ!

       

       《’용맹한 황소 비약’의 효과가 끝났습니다!》

       

       – “히이… 우, 우이익… 피, 피곤… 해…”

       

       비약은 생각보다 지속시간이 많이 짧았다.

       

       약빨이 떨어짐과 동시에 건전지 끊어진 장난감 로봇처럼 쓰러진 밤의 일족. 상태가 굉장히 나빠 보인다.

       

       – “우으에에… 자, 자자자잘래애…”

       

       ‘앗. 밤의 일족이 망가져 버렸다.’

       

       별로 오래 쓰지도 못했는데.

       

       경고문에서 일반인에게 쓰지 말라고 한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밤의 일족 정도면 제법 강한 편인데, 한 병 통째로 비우고 후폭풍으로 이렇게 골골거린다니.

       

       일반 주민이 마신다면 기절 수준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며칠 밤을 꼬박 쓰러지지 않을까.

       

       “설마 이걸 눈앞에서 봤는데 직접 먹지는 않겠지.”

       

       이스칼이랑 셀리나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띠링ㅡ!

       

       띠링ㅡ!

       

       띠링ㅡ!

       

       남아있는 ‘용맹한 황소 비약’을 있는 대로 끌어와서 셀리나 위에 떨궜다. 개수가 살짝 부족하기는 한데, 이 정도면 거의 다 해결한 셈이다.

       

       “…이제 뭐 하지?”

       

       흡혈 문제도 해결했는데, 그래서 이제 뭐 하면서 놀지.

       

       ‘망겜이라 할 게 없네.’

       

       결국 할 일이라고는 ‘세계 탐험 모드’에서 주민들 구경이나 하는 것. 그나마 그래픽이 좋아져서 구경할 맛이 난다는 게 위안이다.

       

       “이야. 이거 그래픽 좋다? 요즘 모바일 게임은 거의 뭐, 컴퓨터 게임 수준이네.”

       “그쵸? 요즘 나오는 폰 게임은 거의 다 이렇더라고요.”

       “이거, 이 버튼은 뭐 하는 거냐?”

       “아, 이거는 스킬인데ㅡ”

       

       ‘…어?’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와 자연스럽게 떠들다가, 문뜩 깨달았다.

       

       지금.

       

       내가.

       

       누구랑 대화하는 거지?

       

       꽈악ㅡ

       

       두툼하고 거친 손이 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마치 먹잇감을 낚아채는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

       “응? 박 주임, 내가 묻잖아. 이 버튼, 뭐 하는 거냐니까?”

       “아, 아아… 스, 스킬 버, 버튼인데요…”

       “이야, 이게 스킬 나가는 거야? 어?”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고개를 돌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또 두렵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사방을 헤매다가 문득 핸드폰 상단의 시계를 향했다.

       

       ‘4, 40분이나 지났구나…’

       

       조졌다.

       

       부장님이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는데, 앞으로 조심해.”

       “네, 네엡…”

       “내가 너 아끼는 거 알지?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하자 우리.”

       “넵…”

       

       …앞으로는 더 잘 숨어서 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에너지 드링크… 작가는 카페인을 먹으면 허접♡ 존나 약해♡ 고작 이 정도 카페인으로 잠도 못 자는 거야?♡ 이런 식으로 능욕당하는 몸이라 에너지 드링크도 먹어 본 적이 없지만…!!
    밤의 일족들은 조금 더 심한 허접♡인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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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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