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4

        어느새 두 개의 아이디어가 지나갔다.

        이제 남아 있는 아이디어는 단 하나.

        그리고 그것까지 하고 나면, 오늘의 방송도 끝나겠지.

       

        ‘어쩐지 오늘 방송은 빨리 끝나는 느낌인데?’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우리는 마지막이 될 아이디어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영복! 비키니! 젭알!!!]

       

        “…….”

       

        “…….”

       

        – 엌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용자닼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넌 나가랔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 용기는 가상했닼ㅋㅋㅋㅋㅋ

       

        ‘ㅋㅋㅋ’로 가득 차기 시작한 채팅창을 잠시 옆으로 치워 놓고, 나는 조용히 창을 닫았다.

        그리고 은밀하게 매니저들에게 지시했다.

        이거 쓴 아이, 한 달 밴 하거라.

       

        – 넵!

       

        매니저의 대답과 함께 나는 고민에 들어갔다.

        사실상 마지막 아이디어가 날아갔으니, 남은 부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추첨으로 아이디어를 뽑으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먼저 아이디어를 모집할 때 거의 1시간가량을 사용했던 것을 생각해 보자.

        현재 남은 시간이 약 1시간 40분가량인데, 남은 시간 안에 새롭게 한 명을 뽑아서 콘텐츠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새롭게 뽑은 아이디어도 이번과 마찬가지라면?

       

        ‘어쩐다…….’

       

        방송이 끝나기까진 너무 긴 시간이고, 새롭게 무언가를 해 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무엇으로 이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였다.

       

        “어머. 그럼 차라리 제 옷이라도 입어보실래요?”

       

        “음?”

       

        – 응?

        – ???

        – 어?

        – 오히려 좋아?

        – 아하!

        – 그러고 보니 디자이너셨지!

       

        청류의 제안에 두 눈이 번쩍이는 기분이었다.

        그래. 옷을 굳이 시청자들의 요구대로만 입으란 법이 있던가?

        ……생각해 보니 이번 콘텐츠가 그런 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시청자들 중 한 명이, 굳이 내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해 버렸고, 그 때문에 시간이 붕 떠버린 상황.

        그러니 나 역시 ‘그런 법’을 꼭 지킬 이유는 없겠다고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서, 그냥 조금 삐진 척을 하겠다는 소리다.

       

        – 오히려 좋음!

        – 와아ㅏㅏㅏㅏ

        – 이계 옷은 어떠려나?

        – 궁금궁금.

        – 이계의 패션을 보여주세요!

        – 와아ㅏㅏㅏㅏ!!

       

        “흠.”

       

        게다가 시청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 마지막은 이런 방식으로 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그럼 그렇게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청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안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노파심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청류야. 기능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외형만 보고 고르거라.”

       

        “……알겠습니다.”

       

        대답 직전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는데? 청류야?

        어느새 집어 들었던 ‘미스릴 천’을 다시 놓아두는 청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폭주하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            *            *

       

       

        잠시 후.

        청류는 이전까진 빠르게 옷을 만들어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무려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리고서야 옷을 완성해 냈다.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옷과, 남의 아이디어를 그저 모방하는 것의 차이일까?

       

        “여기 있답니다!”

       

        “호오.”

       

        – 드레스네?

        – 유럽식인가?

        – 기모노 느낌도 살짝 남.

        – 오호

        – 특이하다면 특이하네.

        – 왕.

       

        청류가 만들어 온 복장은…… 요리로 비유하자면 ‘전골’이었다.

       

        “이쪽 차원의 복장 특징을 합친 것이냐?”

       

        “네! 어떠세요?”

       

        내가 이쪽 차원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당연히 게이트에 따라온 나의 수하들 역시 지구의 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비록 나만큼 자유롭게 접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그럭저럭 접할 수 있는 정도라고 할까?

        당연히 청류 역시 지구의 의복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을 테고, 그렇게 얻어낸 인간들의 의복 문화를 하나로 합친 의복을 연구한 모양이었다.

       

        나는 청류가 만들어 낸 의복을 살폈다.

        혹시나 이 아이가 이 의복에 다른 것을 첨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의미다.

       

        일반적으로 ‘의복’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사용한다.

        하나는 ‘체온 유지’, 다른 하나는 ‘신체 보호’다.

        지성체들은 거기에 ‘부끄러움’이라는 이유를 추가하고는 하지만, 사실 그것은 앞의 두 가지 이유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몸을 가리게 된 것이고, 생식기는 생물에게 ‘급소’에 해당하는 부분이니 당연히 ‘신체 보호’의 이유로서도 가리는 것이 맞다.

        그게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된 것이지.

       

        아무튼, 그렇다 보니 당연히 내 수하들 중에서도 의복을 제작하는 이들은 저 두 가지 이유를 가장 중요시한다.

        물론 필요에 따라 ‘치장’이라는 부분에 치중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체온 유지’와 ‘신체 보호’를 완료한 이후에나 고려되는 사항이다.

        그리고 청류나 레이첼 정도 되는 뛰어난 재봉사들은, 옷을 만들 때 특수한 주술이나 마법을 걸 수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 ‘주술’의 유무다.

       

        ‘……딱히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는군.’

       

        다행히 청류가 ‘외형만 보고 고르라’라는 내 말을 잘 들어 준 모양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일부러 낮은 품질로 만들어라’라고 들릴 수도 있었을 텐데, 오해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청류의 손길을 따라 탈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 오!

        – 와!

        – WA!

        – 캬!

        – 좋아용! 호호

        – 와오.

       

        “호오. 생각보다 가볍구나?”

       

        나는 몸을 돌릴 때마다 나풀나풀 펼쳐지는 드레스 자락을 만지며 감탄했다.

        겉으로 볼 때는 무게가 제법 나갈 것 같았는데, 뜻밖에 무게가 가벼웠다.

        주술도 걸려 있지 않은데 왜 그런가 싶어서 살펴보니, 지구에는 없는 재료가 사용되어 있었다.

        ……이러면 이해되지.

       

        – 이렇게 보니까 꽤 괜찮네?

        – 그냥 옷만 봤을 때는 짬뽕 같았는데.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

        – 와. 이걸 옷걸이가 살리네.

        – ㅋㅋㅋㅋㅋㅋㅋ

        – 예뻐요!

        – 우윳빛깔 라나님!!

       

        다행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특이한 것이, ‘옷 자체는 이상해 보였는데, 내가 입으니 괜찮아 보인다’라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간만에 인간과 생각이 일치한다는 부분에서 신기함을 느꼈다.

       

        그런 나와 시청자들의 의문에, 청류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답했다.

       

        “그야 당연하죠. 지금 주인님의 모습에 딱 어울리도록 디자인했거든요.”

       

        – 와!

        – 디자이너!

        – 이게 디자이너지!

        – 예술가 펀치! 예술 펀치!

        – 와! 눈나! 멋져요!

        – 캬!

        – 이게 걸크러시지!

        – 섹시해! 심장이 떨려!

       

        청류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시청자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열광에, 청류의 콧대가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음. 원래 저 아이가 칭찬하면 더욱 의욕적으로 변하던 아이였지.

       

        “자! 그리고 여기에 이 신발과 이 장식을 더하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옷만 입은 나에게 청류의 손질이 더해지기 시작한다.

        한쪽에 모여 있는 여러 장식들을 가져와 나에게 달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달았다가 다시 빼기도 하는 등.

        나는 순식간에 새로운 모습으로 분장 되기 시작했다.

       

        – 오!

        – 이런 또…

        – 와. 짬뽕 디자인이 저렇게도 된다고?

        – 우왕.

        – 저건 또 특이하네?

        – 어떻게 저런 생각하지?

       

        “좋아요! 아~주 좋아요!”

       

        “흠.”

       

        그렇게 치장이 끝난 나의 모습은, 예상보다 더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쪽 인간들의 미의식에 철저하게 맞춘 모습임과 동시에, 청류 개인의 미적 감각이 녹아든 형태.

        겉으로는 지구 의복 문화를 부분적으로 끼워 맞추었으나, 그 전체적인 형태는 특이한 조화를 추구하도록 되어 있는…….

        그냥 쉽게 말하겠다.

       

        “예쁘구나.”

       

        “에헤헤.”

       

        나의 칭찬에, 청류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착한 아이로다.

       

       

        *            *            *

       

       

        그렇게 오늘의 콘텐츠가 끝났다.

        중간에 한 번 콘텐츠가 어그러질 뻔하긴 했으나, 다행히 잘 수습되었다.

        즉, 사실상 조금의 사고 없이 콘텐츠가 끝난 것이다.

       

        ‘다행이군.’

       

        내 수하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것은 사실 도박이었다.

        나야 인간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니 괜찮지만, 내 수하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 수하들이 방송에 나와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면…….

       

        ‘내 아이들도 방송에 나왔는데, 수하들이라고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만…….’

       

        다만 내 아이들과 수하들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내 아이들은 내가 잘 알고 있고, 내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으며, 동시에 나와 같은 ‘드래곤’이다.

        즉, 아이들이 사고를 치더라도 내 선에서 정리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내 수하들 중엔 ‘드래곤’이 없다.

        다른 차원에서 ‘드래곤’이라고 불린 종족이 몇 있긴 한데, 종족적으로 보면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종족이다.

        즉, 내 수하들이 사고를 쳐도 내 선에서 정리되지 않을 확률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청류는 무사히 넘어갔구나.’

       

        어느새 방송에 익숙해졌는지, 카메라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청류의 모습이 보인다.

       

        ‘이전에 내 게이트에 인간들을 초대했을 때, 인간의 아이에게 옷을 선물했다지?’

       

        딱히 인간들에게 악감정을 가진 일도 없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게다가 평균적인 인간들과도 문제없이 어울릴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기에, 이번 시험적인 콘텐츠의 첫 주자로 알맞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런 내 판단은 적중했다.

       

        ‘제대로 된 기준이 세워지기 전까진, 청류와 비슷한 아이들을 데려와야겠구나.’

       

        시청자들과 두런두런 잡담하는 청류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제로…… 뭔 춤이요?”

       

        “…….”

       

        다만 이상한 것을 배우지 않게 조심시켜야 할 것 같다.

        나는 새로운 주의 사항을 머릿속에 적어두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챕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다음화는 다시 옛날 이야기로 돌아갈건데… 아마 새로운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좀 뻥뻥 터지는 걸로요.

    ㅎㅎ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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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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