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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어, 그러니까…….”

        

       원래 생각하고 있던 말들이 있었는데, 인제 와서는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끝난 이후가 자꾸 생각나서 말하는 데 영 집중이 되지 않았으니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머리 안이 새하얗게 변한 기분이다.

        

       그래도, 일단은 지금 눈앞의 일을 제대로 끝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안 그러면 정말로 끝이 없으니까.

        

       내 눈앞에는, 붉은 옷을 입은 학생 무리가 있었다. 뭐, 학생이라는 걸 알고 봐서 그렇지, 아니라면 그냥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부른 사람들이다.

        

       이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일로 나의 그룹에 포함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생각하고 있겠지. 물론 그중에서도 내 이름을 대면서 패악질을 부리는 애들이 있다면 적당히 잘라내야 하겠지만, 일단 지금 당장은 이 아이들은 ‘내 편’이다.

        

       아직 우리가 십 대인 이상은 학교 안에서 유세 부리는 것 정도밖에는 할 수 없겠지만, 만약 이 아이들이 성적을 제대로 유지하고 개인의 능력을 키워서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후로도 계속 상부상조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거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해 목을 가다듬고,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조금 복잡한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다.

        

       “여기 모인 분들은, 전부 내 초대장을 받고 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제가 여러분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직접 초대장을 줘서 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초대장을 받은’ 경우도 있을 테니까.”

        

       나는 아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그러니, 그 초대장은 기왕이면 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신분증처럼 들고 다니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나중에 내 파티에 왔던 사람이라고 증명할 수단 정도는 될 테니까요. 이번 일로 얼굴 팔려서 곤란해지는 애들도 있을 텐데, 그 초대장을 들고 나한테 찾아오면 최대한 도움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적어도 금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도움은 줄 수 있다. 선을 넘지 않는 정도라면, 나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예사라와 친하게 지내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 만약 예사라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게 내가 ‘예사라’라는 이름에 붙일 말이었다.

        

       내 말이 어떤 뜻인지는 다들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얼굴을 살짝 굳힌 채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고,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이름은 다 외울 수 없지만, 얼굴은 최대한 외워보려고 노력하며, 나는 그 사람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럼, 이만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은 가도 좋습니다. 여러분께서 해주실 일은 끝났으니까요. 옷은 여러분께서 갈아입으셨던 장소에 그대로 있습니다. 입었던 옷은 반납해 주시고, 이만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오늘 여기 와서 겪은 기억들이 모두 오랫동안 기억될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혹시 이 중에서 유진 그룹의 높으신 분들에게 줄을 대는 데 성공한 사람이 있을까? 기껏해야 아직 고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으니, 그 정도 기대까지는 하지 않지만…….

        

       혹시 모르지. 저 ‘붉은 옷’들이 어쩌면 효과가 있었을지도.

        

       물론 저 옷을 입었다고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아직은 착각일 뿐이긴 하지만.

        

       “그럼, 마지막으로 뭔가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 분?”

        

       높은 확률로 다른 학년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렇게 끝까지 존댓말로 물었다.

        

       다들 주위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진짜로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이런 분위기에서 나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질문이 조금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대로 방으로 돌아가기가 무서웠기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도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그러면, 이제 이만 해산—”

        

       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려는데, 그제야 누군가가 주춤주춤 손을 들었다.

        

       내 시선이 그 손으로 향하자, 내 시선을 따라 주변 사람들이 그 아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모르는 아이였다. 아마 다른 누군가에게 추가로 간 초대장을 받고 온 애겠지.

        

       옆에서 그 애를 보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애는 내가 얼굴을 본 적 있는 애였다. 아마 그 애의 초대를 받고 온 모양이다.

        

       “질문 있으신가요?”

        

       교복 차림이 아니라, 나와 학년이 같은지 다른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기에, 일단은 존댓말로 물었다.

        

       “아, 네, 저…….”

        

       내가 바로 대답해줄 줄은 몰랐다는 듯, 그 아이는 잠깐 우물쭈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시선이 점점 더 집중되어갔다.

        

       “그, 조금 개인적인 질문인데…….”

        

       ……순간 긴장했다.

        

       아니, 뭐, 그래. 오늘 처음 보는 애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또 고백받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하렘 웹소설이라도 주인공이 페로몬을 뿜는다는 설정이 있지 않은 이상 길 가던 엑스트라가 갑자기 고백을 박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하루 세 번 연속으로, 그것도 별다른 시간차도 없이 고백받고 나면 좀 겁이 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질문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옆에 서 있던 아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어쩌면 그 질문이 내 심기를 건드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쪽으로 오세요.”

        

       내 말에,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소심해 보이는 애였다.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있고, 앞머리도 눈썹보다 아래까지 내려왔다. 머리카락 끝이 살짝 휘어있는 것을 보면 파티 도중에는 다른 헤어스타일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음침캐릭터 그 자체였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이 정도면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저…….”

        

       하지만 그 애는 내 앞까지 와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조금 답답했지만, 그래도 이 애 덕분에 시간을 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조마조마하게 계속 기다렸다.

        

       “그, 남는 음식이 있으면, 조금 가지고 가도 될까요?”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그 말이 주변에 들리기라도 했을까 무서운 듯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누가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남는 음식을……?”

        

       “네, 그, 부끄럽지만…….”

        

       그 애는 부끄러움을 겨우 참는 듯 한마디 한마디를 힘겹게 꺼냈다.

        

       “오늘 먹어본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동생들한테도 나눠주고 싶어서요.”

        

       “…….”

        

       그 말을 듣고,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 그랬지, 참.

        

       지금 나는 엄청나게 잘 사는, 아니, 그저 엄청나게 잘 산다고 표현하는 것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재산이 많았다. 사실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온 지는 이제 1년이 채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슬슬 이 돈 많은 삶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평소에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음식들을 제한 없이 먹는다. 심지어 다 먹지 못해 남기고 버리는 경우도 많았고. 생각해보면 소희나 하늘이도 여기서 처음으로 식사했을 때는 깜짝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지었었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양혜인 씨.”

        

       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양혜인을 부르자, 그 아이는 자기가 나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내가 하려고 한 말은 달랐다.

        

       “조금 있다가,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가실 때 선물을 하나씩 드리도록 하죠. 아직 내놓지 않은 음식들도 많죠?”

        

       “네, 충분합니다.”

        

       “……선물용 상자에 담아서, 붉은 옷을 입은 분들께 선물로 드리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뭐, 포장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할 것이다. 그사이에 받지 않고 가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적어도 부끄럽지 않게 받아 갔다는 명분만 있으면 되니까.

        

       “이러면 괜찮겠죠?”

        

       “……네, 네, 감사합니다…….”

        

       그 아이는 몇 번이나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뭘 이 정도로……라고 생각하면 실례겠지.

        

       차라리 이런 것을 미리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남은 음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선물을 따로 준비했을 테니까.

        

       아니, 생일 파티인데 주인공이 선물을 뿌리는 것도 조금 이상한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여기서는 내 말이 법이니까.

        

       *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다 마무리를 하고 수라장으로 걸어 들어가려던 차에—

        

       “사라야!”

        

       어떤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손아름이었다.

        

       이미 옷을 교복으로 갈아입은 손아름은, 나를 향해서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네고 있었다.

        

       “자, 생일 선물.”

        

       나는 반사적으로 상자를 받고, 손에 들린 상자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손아름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는 선물을 줄 타이밍이 나지 않아서. 대단한 건 아니지만, 받아줬으면 해.”

        

       “…….”

        

       나는 나를 향해서 씨익 웃어 보이는 손아름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

        

       어쩌면 이거.

        

       “왜, 왜 사람 얼굴을 그렇게 뚫어져라 봐?”

        

       말없이 자기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내가 조금 무서웠는지, 손아름이 조금 당황해서 물었다.

        

       “……아름아.”

        

       “어?”

        

       “파티 뒤풀이 하려는데, 올 생각 없어?”

        

       그래, 어쩌면 이거,

        

       수라장을 조금 더 뒤로 미룰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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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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