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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비룡을 운용함에 있어 가장 좋은 점은 하늘을 초고속으로 날아다니기에, 사건 해결에 가장 필요한 ‘1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것.

     사아아.

     하늘에 비가 내린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른 하늘이었던, 타들어가는 열차의 재가 뒤덮고 있던 회색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열차가 타들어가는 것에 대한 누군가의 눈물이 내리는 걸까?

     

     아니다.

     마법이다.

     윈체스터 대공이 자신의 비룡을 데리고 전속력으로 모르가니아 공작령까지 날아가, 대공가에 전속으로 일하고 있던 마법사를 데리고 와서 마법을 쓰게 만든 것이다.

     “상급 마법사가 일으키는 기적과도 같은 마법이라.”

     마법사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니, 수백 명을 태우고 온 열차와 역에 붙은 화마가 금방 씻겨져 내려간다.

     “이거, 마법이죠?”

     “예, 아스타시아. 열차에 불덩어리를 떨어뜨린 마법사가 쓴 것과 똑같은 마법입니다. 그 자는 불을 떨어뜨렸고, 지금은 물이 떨어지는 거죠.”

     “…엄청나네요.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폭우를.”

     그야말로, 엄청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상급 마법사만 하더라도 이 정도인데, 마스터급 마법사가 나온다면 어떤 기적을 일으킬까요?”

     “글쎄요. 적어도 하늘에서 돌덩이를 소환한 다음, 지브롤터 협곡 하나는 가볍게 무너뜨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

     “마스터도 수준이 있으니. 그나마 마법사인 마스터가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죠. 그런 자가 있었다면, 렘버리 캠프에 전설 속 메테오 마법이 떨어졌을테니까.”

     떨어지는 것은 메테오 대신 빗방울.

     

     심지어 그 폭우가 렘버리 캠프 전역에 내리는 것도 아니고, 렘버리 역 근처 불씨가 피어오른 곳만 집중적으로 내리고 있다.

     ‘이러니까 발전이 없지.’

     노스트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자칫 잘못하면 렘버리 역 뿐만 아니라 저기 학생들이 펼쳐놓은 텐트까지 불꽃이 옮겨붙어, 렘부르 군터 자작령 전체가 불꽃에 휩싸이게 될 거대한 불꽃이었다.

     그런 불꽃이 마법사가 지팡이를 ‘딸칵’한 번 하는 걸로 잠재울 수 있다.

     이런 마법의 기적이 있기에, 제국은 마법의 축복을 받지 못했어도 마법의 효과를 내기 위해 마도공학을 연구하고 개발한 것일 터.

     ‘실제로 저거랑 비슷한 효과를 내는 방법이 연구되기도 했지.’

     막대한 물을 저장한 비행선을 하늘에 띄운 다음, 불이 난 지역에 그대로 투하하여 화마를 잠재운다.

     

     지금처럼 계속 비를 쏟아내는 방식까지는 아니겠지만, 계속 물을 들이붓고 하면 불씨는 언젠가 꺼지게 되리라.

     

     ‘아스타시아가 그런 생각 자주 했는데.’

     제국의 마도공학이 일상생활에 좀 더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군사적인 부분이라거나 전쟁공학적인 부분 말고, 삶의 편리함을 가져오는 부분은 없을까.

     우리는 때때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는 했다.

     지금도 어느정도는 마찬가지지만.

     “아. 슬슬 그만두려나봐요.”

     펄럭, 펄럭.

     검은 비룡이 내려온다.

     비룡이 착지하기 전, 먼저 비룡에서 뛰어내린 이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한쪽 무릎을 꿇으며 착지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윈체스터 대공.”

     “다친 곳은 없나?”

     “예. 전혀요.”

     심각하게 굳은 윈체스터 대공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재산상의 피해는 있었으나, 누구도 죽지 않았으니까요. 아, 저희는.”

     아스타시아가 잠시 딸꾹질까지 하며 내 뒤로 숨었고, 나는 지팡이를 앞으로 두드리며 대공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자들의 시신은 여기 널브러진 게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지금 불에 타들어가는 바람에 정체를 파악한다거나 조사를 한다거나 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세인트 지오, 이 미친 자가 드디어 실성을 했군.”

     “…….”

     “네게 암살자를 보낼 자가 누가 더 있다고.”

     나는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윈체스터 대공은 이미 범인을 정확하게 특정하고 있었다.

     “근거는 있습니까?”

     “지금 세인트 지오를 두둔하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일국의 군왕을 상대로 ‘암살 위협’을 말하셨으니, 심증만으로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저 단순히 이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밖에 없다.

     그렇게 단정을 하면 안 된다.

     “특히 세인트 지오를 대함에 있어, 우리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막말로 몰래 입 속에 숨겨둔 독극물을 먹고 자결이라도 한다면, 우리는 나리아 공주가 20살이 될 때까지 매일매일이 렘버리 캠프보다도 더 심한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

     “진정하시죠, 대공. 저라고 저기 널브러진 시체들처럼 만들어버리고 싶지 않겠습니까?”

     세인트/지오/노스/트럼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던 건 회귀 이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변함이 없었다.

     과거와 현재, 회귀 전후로 모두 내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다.

     “이 세상에서 그 자를 가장 증오하는 사람은 제 아버지겠지만, 그 다음으로 증오하는 사람은 저일 겁니다.”

     “너….”

     “아직은…그래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혹시 모르잖습니까. 변경백 가문의 자식과 제국의 황녀를 향해 자기 휘하 기사단을 보내서 암살하려고 한 미친 자가 지금보다 더 미친 짓을 할 수도 있으니.”

     가령.

     “혹시 모르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수호하는 노스트럼의 의지조차도 ‘아, 이 후손은 진짜 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국노가 되어버린다면.”

     지브롤터 변경백이 제국의 편이 되었던 것처럼.

     왕국의 어느 특정 누군가가 갑자기 돌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나라를 팔아먹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냐?”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말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일이라고.

     “그나저나, 오늘따라 유독 바람이 거칠군요. 마법사가 달려와서 역의 화마는 잠재웠지만, 이거 불씨가 어디까지 날아갈지.”

     “잠깐만. 그레이, 너….”

     “당하면 갚아줘야하지 않겠습니까. 마침, ‘도착’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나는 캠프 쪽을 가리켰다.

     “원래 불이라는 게 남은 불씨까지 모조리 꺼뜨리지 않으면 바람타고 다시 살아나는 게 불씨 아니겠습니까.”

     “…진심으로 하자는 건가?”

     “예. 어차피 저들도 제국 암살자들의 탓으로 돌릴 거 아닙니까.”

     이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씨가 바람을 타고 흘러가 캠프에 옮겨붙었다.”

     “…수습할 방법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당장 불부터 끄러 가라고 말했을 것이야.”

     “저도 대공께 미리 언질을 드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휘ㅡㅡㅡ잉.

     쏟아지는 폭우 속.

     화마가 잦아드는 가운데, 바람이 불며 불탄 잿더미가 캠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미치고 환장하겠군.”

     

     자작령의 성 안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발자크 자작은 수염이 덜덜 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작령에서 아주 그냥 살인과 방화를 제대로 저질러주셨어.”

     “…….”

     발자크 자작의 앞,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눈을 감고 있다.

     “후작. 말씀해보시오.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일인가?”

     “어떻게 되기는. 제국의 암살자가 테러를 했다. 단지 그 뿐이오.”

     제로스 후작은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테러를 했다? 그 뿐?”

     “제국 황제에게는 사생아가 널려있지. 그 사생아들이 일탈을 했을 뿐이오.”

     “하…!”

     “황녀가 없으면 황위 계승권자도 없어지는 법. 황녀가 없다면 그레이 지브롤터가 국서라는 명목으로 황태자의 자리에 오를 일도 없는 법. 간단한 이치 아닌가?”

     “아스타시아 황녀가 사라진다면 황제는 자신의 다른 딸을 그레이 지브롤터에게 주려고 할텐데?”

     “아스타시아 황녀든 그레이 지브롤터든, 어느 쪽이든 서로 한 쪽이 죽으면 영영 죽어버리는 자들이지.”

     “하. 그걸 어떻게 단정하시오? 무슨 근거로?”

     “…근거를 말하는 것조차 귀찮은 일이군.”

     꽉 막힌 듯한 제로스 후작의 태도에 발자크 자작은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아니, 지금 미치고 팔짝 뛸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렇게 계속 있을 것이오?”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오. 이쪽에서는 이게 명분이거든.”

     “명분?”

     “제국 암살자가 오로솔 아카데미의 교육활동에 테러 행위를 가했다. 앞으로 어디서 누가 죽어나가든, 그건 전부 제국이 한 짓이오.”

     “설마….”

     “발자크 자작.”

     제로스 후작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가리켰다.

     “왕국에 있어, 왕명은 절대적이지.”

     “…….”

     “그리고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전부 반역으로 다스릴 수 있소.”

     “그건, 억지가 아닌가.”

     “억지를 부릴 수 있는 방법이 다 있지. 국왕 전하께서는 아직 ‘준비 중’이시지만.”

     제로스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제국과의 화합을 주장하고 제국의 문화가 이렇게 흘러들어온다고 해도, 지금까지 500년 동안 쌓인 제국을 향한 증오가 쉽사리 사라지는 건 아니지.”

     “…….”

     “그리고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런 제국의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이 꼭 제국의 문화가 될 필요는 없지 않겠소?”

     “……잠깐, 그거, 설마?”

     “제국의 것이 좋다고 느낄수록, 더욱더 제국의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

     제로스 후작은 창 밖을 가리켰다.

     “제국이 500년 동안 협곡을 넘어오지 못했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소. 그건 우리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했기 때문이었지.”

     “하….”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면, 노스트럼도 달라져야 하는 법. 그렇게, 그분께서 말씀하셨소.”

     “그러나, 그러기에는 힘이….”

     “힘이 없다? 전혀.”

     제로스 후작은 씩 입을 비틀며, 자신의 두 손을 부딪쳤다.

     “정말로, 우리에게 힘이 없을 거라고 생각-”

     화륵.

     

     “…저건 뭐요?”

     “…….”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불길이 치솟는 게 잠시 눈에 보였다.

     “저건….”

     “캠프에, 불이?!”

     화르르륵.

     자작성에서도 보일 정도로 번진 거대한 화마.

     열차를 불태웠던 그 불씨보다도 더 큰 불꽃이 렘버리 캠프를 순식간에 휩쓸기 시작했다.

     “제로스 후작!!”

     “…저건 우리가 한 게 아니오.”

     “그러면 뭐, 바람에 옮겨붙기라도 했단 말인가!”

     “…….”

     제로스 후작은 아무 말이 없었다.

     “뭐…누군가 캠프에서 연초라도 붙였나보지.”

     “크아아…!”

     “걱정하지 마시오, 발자크 자작. 숙영지가 불탔으면, 남은 건 뭐겠소.”

     “…철수?”

     “발자크 자작에게는 잘 된 일이지. 어차피 학생들 먹여살릴 식량도 지금 다 떨어진 상황 아니오?”

     “…….”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거겠지.”

     활활.

     

     

     * * *

     행군으로부터 돌아온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돌아갈 다리는 전부 불타버리고 말았다.

     실화(失火).

     원인은 모른다.

     학생들 그 누구도 열차와 함께 캠프가 타버린 상황에 대하여,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롤랜드 후작령 경계까지 수 시간 행군을 하고 다녀오니, 몸을 뉘일 장소와 집으로 돌아갈 열차가 전부 불타버렸다.

     “…이거, 우리 설마 아카데미까지 걸어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아….”

     기나긴 행군에 지친 아카데미 학생들이 좌절하고 절망할 때.

     뿌ㅡㅡㅡㅡㅡ우.

     어디선가, 뱃고동 같은 소리와 함께 지평선 너머에서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저건….”

     열차의 궤도가 아닌, 평지를 달려오는 거대한 무언가.

     “저, 저건 설마….”

     “제국의, 마도자동선…?”

     펄럭.

     선수에 노스트럼 왕국의 국기와 테르시안 제국의 국기가 X자로 교차하는 가운데, 그 사이에 또다른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숲의 나무와도 같은 형상.

     그 문장은 오로솔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익숙한 문장이었다.

     “…아이페리아?”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한, 강철의 황금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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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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