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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4

   EP.204

     

   “시인 씨가 왔다고?”

   “시인 씨인데 시인 씨가 아니래.”

   “그게 뭔 헛소리야.”

   “다른 세계에서 온 시인 씨라더군.”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웅성웅성-

     

   건물에 처음 입성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네. 아는 얼굴들도 은근히 있는 것 같고.”

   “그럴지도 모르지. 대부분이 처음부터 시인 씨를 따라온 사람들이니까.”

     

   박조철의 말에 나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살피는 몇몇 얼굴을 확인했다.

     

   스카이 게임즈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과 튜토리얼이 시작됐을 당시 면접을 보러 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하나 같이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원판이 바뀐 것은 아니다 보니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평행세계라……”

     

   사실 지금 상황이 완전히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차원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신기한 일이었는데 난데없이 평행세계가 있고 그곳에 또 다른 내가 있다니…… 그런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야. 다들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이윽고 빌딩의 최고층까지 나를 이끈 박조철이 굳게 닫혀 있던 나무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최고층이라고는 하나 이 상층부가 모종의 공격으로 박살 난 탓에 최고층이 될 수밖에 없었던 듯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끼익-

     

   “진짜였네요……”

   “좀 닮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은데?”

     

   문이 열리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며 놀랍다는 듯 탄성을 내뱉는다.

     

   하지만 방 안에 열 명쯤 되는 인원이 있었으나 그중에 내가 정말 알 만한 얼굴은 남궁천호가 전부였다.

     

   ‘평행세계라고 전부 다 같은 건 아닌가 보네.’

     

   내가 인사도 할 겸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서 일어난 한 남자가 유심히 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박조철 당신은 이게 김시인의 도플갱어가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직접 싸워 봤으니 알아. 월광검법은 가짜 따위가 쉽게 흉내 낼 만한 무공이 아니거든.”

     

   한국인인지 의심이 될 만한 불그스름한 산발 머리.

   걸걸한 목소리부터 시작해 단단한 근육으로 각이 잡혀 있는 그의 모습은 대충 봐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으래…? 흠. 내가 당신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직접 보지 못하면 믿을 수가 없어서. 성좌 놈들한테 속은 전적이 너무 많다 보니 의심이 잘 가시지 않는단 말이지.”

     

   붉은 머리의 말에 남궁천호를 포함해 그곳에 있는 모두가 얕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 또한 이곳으로 오며 그 ‘도플갱어’라는 성좌들의 인형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 좀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 다른 세계에서 왔건 미래에서 왔건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지. 정말 중요한 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것. 박조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틀린 말은 아니군. 근데 너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것 같은데.”

     

   “그게 뭐지?”

   “여기 있는 ‘김시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 성좌가 보낸 인형이든 뭐든 간에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화가 통한 김시인은 처음이야. 충분히 대화를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박조철의 말에 붉은 머리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굳이 반박을 하지 않은 채 입을 닫는다.

   생긴 것만 봐서는 뇌도 근육으로 가득한 놈인가 싶었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

     

   그들과 대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우리가 다른 시간선을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았던 탓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김시인의 화신이라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

     

   이 빌딩에 있는 수백의 사람들은 모두 김시인이 성좌가 되었을 때, 그를 따르기로 마음먹은 화신들이었다.

     

   이곳의 김시인은 탑을 오르기 위해 차근차근 자신의 층에 도전했다.

   나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혼자만의 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화신들의 도움을 받아 다 함께 탑을 오르던 사람이라는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성좌와의 전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 이 상황까지 치달은 것이다.

     

   “근데 그게 다야?”

   “응?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아니…… 좀 웃긴 말이지만 성좌랑 전쟁을 한 건 그렇다 쳐도 그 결과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말이야.”

     

   만약 내가 어떤 성좌와 싸우게 되었고 그가 나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상대 성좌의 목숨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 세상의 김시인은 ‘봉인’을 당한 상태.

   이유를 불문하고 그런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압도할 만한 힘이 있어야 어느 정도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 있는 김시인은 다른 성좌들에 비해 약한 편인가?”

     

   그래서 나는 순수한 목적으로 물었다.

     

   딱히 시비를 걸려거나 상대를 농락할 목적이 아닌, 정보의 수집을 위해 내던진 진지한 질문.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김시인의 화신’들은 마음 한구석이 긁힌 모양이었다.

     

   “이 새끼가…!”

   “이래도 성좌들이 보낸 도플갱어가 아니라고?”

   “박조철 씨! 당신 정확히 알아본 거 맞습니까?”

   “김시인은 강해! 어딜 가짜 따위가 쳐들어와서 망발을 지껄여!”

     

   흥분한 사람들을 박조철이 급하게 달래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상황. 하지만 내 말의 의도를 이해한 남궁천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고 나는 시끄러워진 장내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쳐들어온 게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네?”

     

   “시인 씨…… 아니, 당신은 당신 스스로가 얼마나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남궁천호의 물음에 나는 내가 가진 힘에 대해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다른 성좌들에 비해 압도적인 능력치.

   힘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부족한 것은 없었고 웬만해서는 같은 층을 관리하는 다른 성좌들보다 강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꽤 강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사실 저희도 저희의 성좌인 김시인 씨가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능력치는 물론이고 그분이 가진 천월신공을 직접 보게 된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문제라면 그런 생각을 다른 성좌들도 모두 하고 있었다는 것.

     

   11층에 도달했을 당시 ‘장막 뒤의 감시자’와 이야기를 하며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자네에게 호의를 가지는 성좌들도 있긴 하네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성좌들도 적지는 않네.」

     

   과거 튜토리얼에서부터 시작해 ‘김시인’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에게 위기를 가져다준 성좌들.

   언젠가 자신보다 강해져 그들의 격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그들이 김시인의 성장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시인 씨는 15층을 어렵지 않게 클리어했었습니다. 항상 필요 이상의 시련에 맞섰던 사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죠.”

     

   15층의 성좌는 김시인에게 적의를 가진 성좌 중 하나였다.

   그는 김시인에게 임무를 제시하지 않았고 김시인은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 그와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시인 씨가 15층을 관리하던 성좌의 숨통을 끊고 다음 층으로 가는 포탈을 기다리던 그 순간……”

     

   김시인을 두려워한 성좌들은 그가 더 이상 탑을 오르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단합을 결정했다.

     

   김시인이 있던 15층에 포탈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층과 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때를 노려 16층을 관리하던 십수 명의 성좌들이 이곳으로 습격을 감행한 것이다.

     

   “포탈이 열리며 성좌들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그들 하나하나의 힘이 너무 강해 시인 씨나 몇몇 전투인원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투의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포탈을 통과해 다음 층으로 가는 상황만 생각했지, 적들이 포탈을 타고 나타나 그들을 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뭐…… 결과는 이렇습니다. 그 학살의 현장에서 시인 씨는 놈들의 손에 봉인됐고 우리는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죠.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급자족도 되지 않아 코인 상점에 있는 기초적인 식량과 물로 배를 채울 뿐.”

     

   희망이 없는 세상과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

     

   “짜증나는 이야기군요……”

     

   성좌들이 김시인을 살해하지 않고 봉인한 이유가 화신들의 절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튜토리얼에서부터 플레이어들을 한낱 오락거리로 여겼듯 김시인의 화신들을 보며 그들의 발악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언젠가 탑을 오르며 우리의 목숨을 가지고 논 성좌들을 만나면 그들의 숨통을 끊어 주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의 김시인은 그것을 실패했고 어쩌면 나는 복수를 위한 두 번째 기회를 얻은 상황인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성좌들의 손에 봉인된 이 세계의 김시인을 구하고 성좌들에게 제대로 엿을 먹이는 것.

     

   탑이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나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일지도 몰랐고 아직은 파악되지 못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김시인이 봉인된 장소가 어딥니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김시인의 존재란 꺼져가는 희망에 마지막 남은 불씨였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나를 견제하기 위해 단합한 성좌들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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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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