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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5

       “……제가 제 생각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황제 폐하도 폐하의 생각을 말씀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글쎄, 그 말에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다.”

        

       내 질문에 황제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어쩌면 네가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

        

       그 말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지, 아니다.

        

       할 말 있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 황제잖아. 그 거대한 땅덩어리의 정점에 선 사람이잖아. 원작에서는 전 세계를 자기 발밑에 놓고 자기 아래 평등한 세상으로 만들겠다고 했던 패기 넘치던 인간이잖아.

        

       그런데 자기 딸이 자기한테 말 한마디 안 해줬다고 자기도 입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건 속이 너무 좁은 거 아닌가? 황제의 아이들도 진짜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그리고 본인 주장에 따르면 진짜 자식들이라고 하더라도—아버지이기 이전에 황제잖아. 애초에 다들 그 사실을 모르기도 하고.

        

       “음.”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황제는 그런 내 무표정에서 불만의 편린을 읽어낸 것 같았다. 하긴, 앨리스만큼이나 나를 오래 봤고, 눈썰미만 따지자면 앨리스보다 더 뛰어날 테니 내 표정을 알아보는 것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만.

        

       “피차 입을 열면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을 테니, 우선 서로 정보를 하나씩 교환해보자꾸나. 내가 먼저 질문해도 되겠느냐?”

        

       내가 안 된다고 해도 먼저 물어볼 거면서.

        

       내가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조금 짓궂은 얼굴로 씩 웃었다.

        

       내가 그 표정을 보고 불길함을 느끼기도 전에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차에 그 많은 짐을 실은 이유가 무엇이냐?”

        

       “무슨 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가 직접 숨긴 그 짐들 말이다. 황녀가 간다는 것을 이용해서 제국 기사 중 일부의 협조를 받아 무기를 잔뜩 챙겼더구나. 그중에는 사람한테 쓰기에는 조금 과한 물건도 있었지.”

        

       잘 정돈된 금빛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황제는 관심 가득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뭐야, 무기라도 챙긴 거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앨리스가 기겁했다.

        

       “…….”

        

       내가 그 시선을 살짝 피하자, 앨리스는 더욱 기겁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다른 나라에 오면서 허가받지 않은 무기를 챙겼다고? 기사들이 쓸 무기랑 우리가 실전에서 쓸 무기 말고 더 챙겼다는 소리야? 샤를로트한테 초대받아서 왔으면서?”

        

       어…….

        

       음, 그게 그렇게 되나?

        

       “벨부르 왕국을 향해서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벨부르 땅에 그렇게 많은 무기를 가지고 와놓고 말이냐?”

        

       “……대체 얼마나 많은 무기를 가지고 왔길래 그러는 거죠?”

        

       이야기를 듣던 앨리스가 황제에게 물었다.

        

       내가 그 대답을 저지하기도 전에 황제는 이미 시원하게 그 답을 들려주었다.

        

       “일반 화약을 사용하는 탄으로도 코끼리 머리뼈를 시원하게 박살 낼 수 있는 총기의 총열을 굳이 특수한 제련 방식으로 제련한 특제 총열로 바꾼 거대한 소총과, 그 소총에서 쓸 것으로 보이는 마르마로스 탄. 아마 필요하다면 건물 벽에 쏴서 커다란 구멍 정도는 뚫을 수 있을 거다.”

        

       앨리스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그리고 다소 특이하게 생긴 갑옷도 있었지. 얼핏 보면 잭 체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더 기계적인 장치가 달려있었다. 솔직히 방어용으로 쓰기에는 스프링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너무 복잡하게 달려있더군. 마력석이나 마르마로스를 장착하는 곳도 있고.”

        

       아무리 탄두로 쓰이는 마르마로스가 파괴력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커다란 마르마로스를 통째로 날리기 위한 장약도 무시 못 할 수준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당연히, 그 총기를 들고 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걸 들고 뛰어다녀야 하고.

        

       그래서 나는 비는 시간에 혼자 브라우닝을 찾아가 문의했다. 몸에 스프링이나 톱니바퀴를 달아 어느 정도 힘을 분산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냐고.

        

       ……내 말을 들은 브라우닝은 신이 난 표정으로 창고로 들어가더니 그 ‘외골격’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마력석으로 끓이는 물을 바탕으로 증기를 만들어내 팔과 다리의 힘을 보조하는 형태라나. 거기에 무슨 유압 구조니 스프링이니 하는 것들이 잔뜩 달려있었고. 끓는 물이 들어있는 통이 등에 달리지만 화상을 입을 일은 없다고 들었다. 실제로 짧게 테스트 해봤는데, 뜨거움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물이 들어가는 곳도 카멜 백 정도의 크기라고 그렇게 걸리적거리지 않았고.

        

       어딘가 고장 날 구석이 엄청나게 많이 보이는 장비였지만, 원래 이런 세계관에서 그런 장비는 신기하게도 잘 작동하는 법이다. 그래서 일단은 들고 왔다.

        

       “그 갑옷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 외의 다른 총탄들을 보면 네가 벌일 일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볼 수는 있지. 각종 폭탄과 마르마로스를 아낌없이 사용한 총탄들을 보면 혼자 전쟁이라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더구나.”

        

       앨리스가 내 쪽을 휙 돌아보았다.

        

       내가 휘파람 부는 방법만 알았다면 나는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며 휘파람이라도 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걸 ‘벨부르 왕국’에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냐? 네가 그 장비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단을 미리 생각해두었다고 여겨도 되겠느냐?”

        

       “…….”

        

       그건 아니지만.

        

       황제의 시선과 앨리스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고, 심지어 데미안마저 나한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세 시선에 담긴 공통적인 감정은 ‘궁금증’이었다.

        

       “딸의 사생활에 너무 관심이 많으신 것은 아니신지요.”

        

       “네가 10대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을 따져야 할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뜻이냐?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십 대 소녀는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정도의 무기를 해외여행에 가지고 가지는 않는다.”

        

       황제의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심지어 앨리스마저 그 황제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은 부녀였는데.

        

       결국 그 세 사람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면서 말했다.

        

       “벨부르 왕국 안이라고 하더라도, 벨부르의 영토 취급이 아닌 곳들이 있지요.”

        

       “대사관을 말하는 건가?”

        

       “비슷합니다. 저는 루테티아에 있는 성 라티나 성당을 털어보려고 했습니다.”

        

       “…….”

        

       내 대답에 방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앨리스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길게 내쉬었다. 그 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앨리스는—

        

       —그대로 내 멱살을 잡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저는, 그저,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었, 습니다.”

        

       내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드는 앨리스 때문에 대답이 토막토막 나왔다.

        

       “정보수집!? 정보오수지이이입!?”

        

       “앨리스, 진정해라.”

        

       내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는 앨리스를 황제가 진정시켰다.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우리 모두 곤란해지지 않겠느냐?”

        

       “…….”

        

       황제의 말에, 앨리스는 겨우 내 멱살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여전히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미리 말을 해줄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앨리스가 나를 따라오겠다고 할지도 몰랐다. 아니면 말리려고 하거나. 지금 이 반응을 보면 후자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고.

        

       “……저는 대답을 해드렸으니, 이번엔 폐하께서 대답하실 순서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황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그렇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아라. 대답할 수 있는 것이면 대답해주도록 하마.”

        

       황제가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대체 뭐가 있냐고 되물어보고 싶었지만, 애초에 나도 전부 다 털어놓은 것은 아니다. 황제도 그걸 알고 있을 거고.

        

       그래서, 나는 그냥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폐하께서 여기 계시는 이유는, 역시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까?”

        

       내 말에 앨리스의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저쯤 되면 턱이 빠진 것이 아닌가 궁금할 정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 당장 자기 아버지한테 달려들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니까.

        

       “아니다.”

        

       황제는 딱 잘라 대답했다.

        

       “확실한 겁니까? 세계대전을 일으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가 그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나를 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세계대전을 일으키겠느냐? 솔직히 말해서, 네가 제국 군사 기밀을 전부 털고 다녔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네게 아무리 숨기고 작전을 진행하려고 해도 너는 분명히 알아냈겠지. 그리고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살아서 너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느냐?”

        

       “…….”

        

       그건…… 그렇지.

        

       “물론 한때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내 아래 모든 것을 평정한다면’ 세상이 조금 평화로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그게 가능할지 아닐지는 둘째치더라도, 10년 정도 전의 나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전에 들었던 말이랑은 조금 다른 내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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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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