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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5

        

       부라쿠민.

         

       그 단어가 어느 기자의 입에서 나오자 모두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고 말았다.

       수많은 기자가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 부라쿠민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던 기자는 당황하며 헛기침했다.

         

       [ 크흠, 큼! ]

       [ 그거 금지어인 거 모르나? ]

       [ 기사에는 그거 쓰지 말라고. 우리까지 도매금으로 얽혀서 욕먹기 싫으니까. ]

       [ 심정은 알겠는데…. 쯧. ]

       [ 그런 단어는 왜 쓰나. ]

         

       부라쿠민(部落民).

       일본에서 차별받았던 이들.

         

       다른 나라의 천민에 해당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주로 도축업이나 사형집행, 가죽 가공 등의…. 소위 말하는 ‘잔인하고 더러운’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불교의 색채가 강했던 일본에서 ‘살생’을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차별의 대상이 충분했으며, 이러한 풍조가 오랜 세월에 거쳐서 굳혀졌다. 거기다가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차별과 탄압, 괴롭힘을 받으며 살아온 이들은 그러한 차별을 피해서 서로가 뭉치며 부락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이렇게 이룬 부락이 대를 이어가면서 굳어짐에 따라 ‘부락민(部落民)’, 일본어로 ‘부라쿠민’이라는 단어는 곧 차별당해도 되는 천민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 차별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공식적으로는 신분제가 타파된 지가 한참이었지만, ‘부라쿠민’의 잔향은 그대로 남아 그 후손들에게 짐을 지워주었다. 부라쿠민 후손들의 신분이 적힌 일종의 ‘블랙리스트’는 힘 있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돌며 그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녹아들 수 없게 만들었으며, 오랜 세월 굳어진 ‘천민’의 이미지는 일반 사람들의 뇌리에도 강하게 틀어박혀서 그들을 차별해도 되는 사람, 괴롭혀도 되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배척하게 했다.

         

       그나마 최근에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서 부라쿠민이라는 단어 자체를 쓸 수 없게 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차별을 할 수 없게 법으로 못을 박았기에 차별은 줄어든 상태였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핏줄 때문에 차별을 받고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한 부라쿠민들이 범죄 쪽이나 야쿠자 쪽으로 빠져들며 세력을 이뤘기에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남을 깔보고는 싶지만, 그것이 칼침을 맞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고. 거 그냥 나온 말인데 민감하기는….]

         

       기자는 툴툴거리면서도 빠르게 사과했다.

         

       기자들이 잔뜩 몰려있는 장소에서 금지어를 내뱉은 것은 분명히 그의 잘못이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내뱉은 멸시의 표현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무인이라는 존재는 명예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무인의 명예를 부라쿠민과 비교하며 깎아내렸다?

         

       앙심을 품은 무인에게 보복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특히나 도장이 실시간으로 망해가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 말조심합시다. 이 도장 망하면 당신 밤길 걷다가 반으로 쪼개질 수도 있어. ]

       [ 기자라는 양반이 말이야, 혓바닥을 조심해야지. 쯧쯧쯧. ]

         

       기자들은 혀를 차면서 망언을 내뱉은 기자와 선을 그었다.

       그리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이리저리 퍼져서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는 척을 한다고 해도 그 일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특히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더더욱.

         

       “부, 라, 쿠, 민…!”

         

       빠드득.

         

       부라쿠민과 비교당하며 명예가 시궁창에 떨어져 버린 무인 집단, 야태도아랑류의 당주 미치시게는 부서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갈았다. 그리곤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머쓱하게 서 있는 기자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서는 살기가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말한 ‘밤길에 혼자 걷다가 몸이 반으로 쪼개질 수도 있다.’라는 경고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짙고 날카로운 살기가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미치시게의 살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 여기 보십시오! ]

       [ 여기 제단이 있는데요? ]

       [ 이거 제단 맞지? 케이지로 가려져서 잘 안 보였네. ]

       [ 우와, 미친. 그림도 있는데? 이렇게 본격적이라고? ]

       [ 이거 무슨 그림입니까? 신관님은 아십니까? ]

       [ 네. 알고 있습니다. 이건 마오리 신화와 관련된 그림 같은데…. 아, Whiro-te-tipua같군요. ]

       [ 히-이로 테? 뭐라구요? ]

       [ 휘로라고도 불리는 신입니다. 지하세계에 거주하는 악이자 어둠의 신이지요. 사악한 힘과 질병을 사용할 수 있으며, 죽은 사람의 몸을 먹어서 그 힘을 불린다고 합니다. ]

         

       그가 케이지 사이에 숨겨두었던 제단이 발견되었다.

       게다가 발견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제단의 정체까지 여우 가면을 쓴 신관이 속속들이 해설했다.

         

       “아니….”

         

       미치시게는 기자에게 보내는 살의마저 잊은 채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신관을 바라보았다.

         

       “저걸 어떻게….”

         

       제단이 있고, 어둠의 신 휘로의 그림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단은 일부러 제대로 알아볼 수 없도록 상징을 죄다 빼버리고 동물을 도축할 때 쓰는 작업대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으며, 그림은 피로 여러 번 덧칠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비틀리고 망가져서 그냥 기하학적인 그림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그걸 보고 어떻게 바로 ‘이것은 마오리 신화에서 나오는 어둠의 신입니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흠. 이 작업대를 좀 뜯어주시겠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역시 이 안에 수작을 부려놓은 듯하군요. 온갖 식물의 뿌리와 까맣게 썩어가는 뼈. 거기다가 강령술사나 쓸법한 주물들이 가득 차 있군요. 지하세계의 상징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듯합니다. ]

       [ 잠, 잠시만요! 신관님! 이거 사람 뼈 아닙니까? ]

       [ 네? 네. 누가 봐도 사람 머리뼈네요. ]

       [ 이런 미친! 사람 뼈를 집어넣어서 만든 제단이라고?! ]

         

       신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제단을 뜯어보라고 말했고, 그 덕분에 야태도아랑류가 맨 처음 제단을 만들 때 넣었던 물건들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독성을 가진 식물의 뿌리.

       전후 일본 곳곳에 넘쳐났던 암시장을 돌아다니며 모았던 강령술사의 주물.

       그리고, 비밀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묻어버리기 위해서 죽였던 인부들의 해골.

         

       [ 인신공양! 인신공양이다! ]

       [ 무인이 인신공양으로 힘을 기르고 있었다! ]

       [ 법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주술을, 아니. 그냥 주술도 아니고 인신공양을 하고 있었다고?! 이거 미친 새끼들 아니야?! ]

       [ 괜히 높으신 분들이 합심해서 때리는 게 아니었구먼! ]

       [ 비국민! 비국민 놈들이다! ]

       [ 역겨운 비국민 새끼들! ]

         

       기자들은 하나같이 소리높여 외쳤다.

         

       이 무인들은, 이 미치광이 집단은 비국민 집단이라고.

       일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우리와 같은 일본인이 아닌, 배척해야만 하는 적이라고!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면서 미치시게는 절망했다.

         

       모든 것이 들통났기에.

       야태도아랑류가 시현류에서 갈라져서 나올 때부터 몰래 만들어왔던 시설이 만천하에 드러났기에.

       음양사와 정부의 눈을 피해 비윤리적인 주술을 행하며 마나를 불리고, 힘을 길러왔던 그 모든 사실이 들통이 나버렸기에.

         

       그렇기에 미치시게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아, 이제야 요리하기가 좀 편해졌네.”

         

       검사는 스마트폰을 내리고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버린 미치시게를 바라보았다.

         

       이뤄왔던 모든 것이 박살 나는 절망 때문에 자포자기한 미치시게를, 자신이 정보를 뽑아내기 딱 좋게 되어버린 ‘범죄자’를 말이다.

         

         

         

        * * *

         

         

         

       검사는 집요했다.

       집요하고 악의가 가득했으며, 음험했다.

         

       그는 취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미치시게가 입을 쉽게 열도록 야태도아랑류를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고 악의 축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으며, 미치시게가 절망에 빠진 것을 보면서도 그 절망에서 벗어나게 시간을 주기는커녕 더더욱 절망에 빠지도록 끊임없이 그를 말로 괴롭혔다.

         

       “이봐. 당신이 몸을 담고 있는 유파는 끝났어. 아까 다 봤으니 알잖아? 저 많은 기자가 들이닥쳐서 당신네 무인들 다 제압하고, 당신네가 숨기려고 했던 저 인신공양 제단도 전부 찍어갔다고. 그게 기사로 나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응?”

       “인신공양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나는 동물만 바쳤어!”

       “동물만? 하하하하하하! 이거 웃기는 놈일세? 이봐 당주. 아니, 범죄자 새끼야. 그걸 누가 믿어? 응? 누가 믿냐고.”

       “나는! 동물만…!”

       “이 사람 웃기는 사람이네. 그래, 동물 사체만 있었으면 뭐 그 주장이 눈곱만큼이라도 설득력이 있기는 했겠는데 말이야. 당신 제단 뜯었더니 사람 해골이 나왔잖아, 사람 해골이. 왜. 그거 원숭이 해골이라고 주장하게? 누가 봐도 사람 해골이었잖아. 응?”

       “그건…!”

       “뭐 어디 무덤에서 도굴했다고 말하게? 뭐 그것도 좋지. 그런데 요새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한데다가 경찰들 실력이 엄청나게 좋아졌거든. 과학수사연구소에 있는 마법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증거품 보내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죄다 알아내서 보내준다니까? 그냥 담배꽁초 하나 보냈는데 범죄자 건강 상태까지 말해주는 거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

       “게다가 말이야. 음양사는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저 짓거리를 해놨는데, 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냐고.”

       “…”

       “그래, 입을 다무시겠다? 계속 다물고 있어 보시던가. 다음 실황 때 보자고.”

         

       그리고 때로는 말이 아니라 전에 그러했듯이 영상을 직접 보여주며 야태도아랑류가 몰락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도 하였다.

         

       “자, 보여? 음양사들이 들이닥치는 거. 이 사람들 집요한 거 당신도 알지?”

         

       음양사가 떼를 지어서 도장을 부수고 땅을 뒤엎어가며 주술의 흔적을 찾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면서 저희를 회유했습니다! 밤중에 몰래 침소에 들어와서 위협을 하는 것으로 채찍을 휘두르고, 잠시 눈을 감으면 거금을 얻을 수 있다면서 우리를 회유했어요! 저희는 어쩔 수 없이, 네! 어쩔 수 없이 그 비국민들의 손을, 아니!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 네? 증, 거요? 증…거는. 아! 그 사람들이 너무 신출귀몰하고 철저해서 그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네, 제가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

       [ 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요? 그, 그! 아, 그렇지! 너무 경황이 없어서! 너무 그때가 무서워서 제 기억이 조금 왜곡이 되었어요!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너무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기억이 봉인되는 거! 네, 제가 겪은 건 분명 그겁니다! ]

       [ 아무튼 그 야태도아랑류인가 뭔가 하는 무인들 탓입니다! 다 그 사람들 죄에요! ]

         

       사람들이 ‘아무튼 내가 비리를 저지른 것은 다 야태도아랑류 탓입니다.’라며 입을 모아 외치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미치시게는 그 잔인하기까지 한 괴롭힘에도 입을 꾹 다물었으며, 어서 범죄를 자백하라면서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는 검사의 말을 무시한 채 앵무새처럼 자신은 무죄라고,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쯧. 이봐, 잠깐 돌아가.”

         

       지옥 같았던 취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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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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