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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5

       

       

       

       

       

       아직 데보라와 같은 방을 쓰는 건 조금 어색한 탓에, 레키온은 혼자 작은 방 하나를 사용하게 되었다. 

       

       “후우….”

       

       방에 들어온 레키온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

       

       불을 끄러 일어나는 대신 팔로 눈을 가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레키온은 중얼거렸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 커트 소대장님도 말씀하셨잖아.”

       

       -우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용사님은 살아남은 이들의 감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데보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며 자책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 다 맞는 말이야.’

       

       레키온은 지금껏 사람들을, 제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수련을 게을리한 적도 없었고, 제국민의 안전을 위한 임무라면 기사단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쳐내거나 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던 사이비교 놈들을 처단하여 잠재적인 큰 위협을 제거해 왔고, 최근에는 레온과 실비아, 아르를 만나 그들이 마왕의 추종자라는 사실을 알고 토벌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레키온은 알고 있었다. 

       

       용사 레키온은 결국 몸이 하나이고, 레키온이 누군가를 구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를 구하는 걸 포기한다는 뜻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레키온은 지금까지 항상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리고 그게 맞는 거라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그 생각 자체는 여전히 틀린 생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얼마 전 자이언트 앤트가 마을을 습격하고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엄마아아…. 훌쩍. 엄마아아아아….

       -할머니이…. 엄마가…. 흐으윽….

       -우리 마을은 안전하다구 그랬잖아요…. 흐윽….

       -에고….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읎었는데, 우짜다가 이런 끔찍한 일이….

       

       가족을 잃은 이들의 통곡 소리는 유난히도 레키온의 가슴에 꽂혔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조금만 더 감각을 곤두세우고…. 조금 더 빨리 대처할 수 있었더라면…. 아니…. 내가 애초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레키온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몸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땐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면서 걸어야지.”

       

       생각이 많아질 때는 억지로라도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 줄 필요가 있다.

       

       밖에 나가서 걷는다고 고민이 다 풀리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기분 전환은 되지 않겠는가. 

       

       이제는 정식으로 연인이 된 데보라에게 고민을 좀 털어놓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부담 주고 싶지 않아.’

       

       데보라도 지금 마왕과의 전투를 앞두고 여러 모로 신경 쓰고 있는 게 많을 거다. 

       

       레키온은 조용히 숙소 밖으로 나와서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텃밭 특유의 흙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축 처졌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사실상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잡념을 비우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걸 느꼈다. 

       

       ‘이제 돌아갈까. 아냐, 조금만 더 걷자.’

       

       이대로 다시 숙소로 돌아가면 또 좋지 않은 생각이 들 것 같아, 레키온은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어쩌면 이렇게 계속해서 걷다가 날이 새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서 취침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은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십 분만 더 걷자. 아니, 이십 분만….’

       

       저벅, 저벅.

       

       그렇게 텃밭 근처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레키온 님?”

       “삼쵼!”

       

       땅만 보며 걷던 레키온에게 다가와 말을 건 건, 레온과 그 품에 안겨 있는 말랑콩떡 아르였다. 

       

       “레온 님? 아르도…. 무슨 일이니?”

       

       아르는 짧뚱한 다리, 통통한 발로 레온의 팔을 디디고 선 채 레키온을 올려다 보았다. 

       

       “삼쵼이 혼자 나와서 막 걷구만 있어서 걱정돼서 나왔어여.”

       “하하, 걱정이라니. 나는 괜찮단다.”

       

       하지만 아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여. 삼쵼 며칠 전부터 표정 안 조았어여. 지금은 더 더 안 조아여. 완젼 흙빛이에여.”

       “그, 그래? 그 정도니?”

       

       나름 걸으면서 생각을 비우고 있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보는 입장에선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넹. 삼쵼, 고민 이쓰면 아르한테 말해 바여. 아르 입 이마안큼 무거우니깐 걱정 안 해두 대여.”

       

       아르가 팔을 활짝 펴 보인 뒤 양손으로 자신의 뭉툭한 입을 텁, 하고 닫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바바여! 역시 고민 이짜나여. 고민은 말하는 것만으로두 풀릴 수 있다구 해써여. 아르한테 털어놔 바여, 삼쵼.”

       

       아르의 말에 레키온은 잠시 고민했다. 

       

       ‘내가 말을 한들 아르가 내가 하는 말을, 이 복잡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레키온은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괜찮을지도 몰라. 나에겐 어쩌면 그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니까.’

        

       레온도 같이 듣고 있기는 하지만, 아르를 안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여기에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 보자고 한 건 아르인 모양.

       

       레키온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아까 했던 생각들을 그대로 아르에게 들려 주었다. 

       

       아르는 귀를 쫑긋 세운 채 진지하게 레키온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 즉,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아니 옳지는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커트 브륀도 레키온에게 ‘감사에 더 귀를 기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용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저희 마을은 이대로 저 무지막지한 마물들에게 완전히 폐허가 됐을 겁니다.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용사님 덕분에….

       -용사님이 없었다면 저희는….

       

       “정말 내가 아니었다면. 내가 없었다면, 과연 저 사람들은 죽었을까?”

       

       그 말을 하는 레키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하무트교 지부를 토벌하러 황실 기사단까지 동원해서 쳐들어가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하무트교도 시간을 끌 이유가 없고, 마물을 폭주시켜 마을을 습격하게 만들지 않았겠지.”

       

       레키온은 아르의 똘망한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가, 저 사람들에게 과연 감사 인사를 들을 자격이 있는 걸까?”

       

       차라리 저들이 용사 레키온을 탓했더라면.

       

       왜 이렇게 늦게 와서 자신들의 가족을 죽게 두었느냐고 달려와서 손가락질이라도 했다면.

       

       그랬더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그들의 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듣는 건 견디기가 어려웠다.

       

       “물론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어.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고, 나쁜 건 이런 일을 벌인 마왕 세력이라는 걸. 하지만 그걸 아는데도, 자꾸만 내 탓을 하게 돼.”

       

       머리로 아는 것과 그걸 직접 적용하는 것 사이에는 까마득한 차이가 있었다. 

       

       특히 이런 감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레키온은 아르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아르가 이렇게 전부 들어 주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네. 고마워, 아르야. 내가 방금 한 이야기는 쓸데없이 무겁기만 하니까, 그냥 삼촌이 술 취해 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렴.”

       

       그렇게 말하고 레키온은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후 레키온이 아르의 머리에서 손을 떼려 할 때.

       

       아르는 손을 뻗어 레키온의 손을 잡았다. 

       

       “삼쵼.”

       “응?”

       

       아르는 똑바로 레키온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르는여, 아르가 알에 있을 때부터 하무트교한테 노려지구 있었대여. 레온두 도망치다가 아르를 우연히 발견하구 가치 도망쳐 다니면서 지내게 된 거구여.”

       

       별안간 과거 이야기라니?

       하지만 아르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 보였기에, 레키온은 아르의 이야기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듣기로 했다.

       

       “레온이랑 아르는여, 아무것두 가진 거 업시 함께 살아남으려구 모든지 했어여. 강해지려구 했구, 돈두 벌었어여. 그러면서 하무트교한테 안 잡히려구 계속 도망 다녔어여.”

       

       아르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하무트교는 레온이랑 아르 못 찾아서, 막 찾으려구 혈안이 대서 사람들을 해치구 못살게 굴었어여. 삼쵼.”

       “응?”

       “구럼 이러케 하무트교가 사람들 해치구 다닌 것두 도망친 아르 잘못이에여?”

       

       그 말에 레키온이 놀라서 즉답했다. 

       

       “아니, 아니지! 우리 아르가 도망친 게 왜 잘못이야? 당연히 아르를 잡으려고 애꿎은 사람들을 해친 하무트교 잘못이지!”

       

       레키온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문득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거에여! 아르는 체선을 다해써여. 레온이랑 착한 일두 마니 했어여. 하무트교가 나쁜 짓을 하는 거는 하무트교가 나빠서지, 아르가 나빠서가 아니자나여. 그러니깐….”

       

       아르는 레키온의 손가락을 꼬옥 쥐며 말했다. 

       

       “삼쵼두 그런 생각 하지 마여. 그냥 납쁜 마왕 봉인하는 것만 생각하면 대여. 삼쵼은 용사자나여! 아르는 삼쵼 믿어여. 그리구 아르도 삼쵼 도와줄 거구여. 구러니까 힘 내여.”

       “아르야….”

       

       레키온은 아르의 손을 살며시 마주 잡았다.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후에 드디어 미소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아르야. 덕분에 생각이 좀 정리가 되네.”

       

       더불어 마음에 꽉 얹혔던 무언가가 내려가는 것 같았다. 

       

       데보라처럼 직언을 한 것도, 커트 브륀처럼 멋진 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레키온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 아르의 말이 더 와 닿았다.

       

       덩치가 커도 여전히 아이 같은 귀여운 아르에게 이렇게 진심을 깊이 적시는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삼쵼, 우러여? 아르가 모 잘못 말한 건 아니져?”

       

       레키온은 그제서야 자신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키온은 얼른 눈물을 닦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럼. 삼촌 이제 아주 멀쩡해졌어. 그리고, 이게 다 우리 아르 덕분이지. 우리 귀여운 복덩이 아르!”

       

       그리고 말랑한 아르를 덥썩 안아 들더니, 품에 꽈악 껴안았다. 

       

       “아휴, 우리 아르! 진짜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마음씨도 착한 아이가 다 있다니! 진짜 보물이야, 보물!”

       “쀼, 쀼우! 삼쵼, 숨 막혀여…!”

       

       레키온의 걱정과 한숨, 그리고 정처 없는 발걸음을 머금고 있던 작은 텃밭 길.

       

       그 길은 이제 레키온의 웃음 소리와 아르의 작은 비명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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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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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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