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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5

       라고 생각한 것은 제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어째서인지, 손아름을 데리고 들어가자 하늘이와 수아의 표정이 살짝 굳은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고백받은 이상 이제 ‘여자니까’나 ‘친구니까’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여자를 데리고 놀면 그 자체로 ‘고백받아놓고 다른 여자한테 치근덕거림’이 되어버리니까.

        

       아니, 그런데 내가 남자랑 논다고 질투 안 할 것도 아니잖아. 이쪽 세상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사귀는 게 훨씬 보편적이니까.

        

       아니, 이쪽의 연애 감정은 어떻게 따라잡으려고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남자랑 친하게 지내도 문제, 여자랑 친하게 지내도 문제라면 대체 어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지, 애초에 이건 그저 나의 변명일 뿐이다.

        

       세 여자한테 고백받아놓고 새로운 여자를 들이니까 문제인 거지. 하다못해 그 고백을 확실하게 거절했으면 또 몰라.

        

       거절하기 전에 전부 도망가버리긴 했지만, 뭐 아무튼간에.

        

       이렇게 생각하니 또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전부 사라 탓인가?

        

       사라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일어난 일들인가? 혹시 모르지. 사라가 그렇게 예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굴러가지 않았을지도.

        

       그런데 그렇게 돌고 돌아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사라는 예쁘게 태어났다. 예쁘게 태어났다는 건 이미 사라의 친어머니나 아버지도 그만큼 잘생기고 아름다웠을 거라는 거고. 결과적으로 사라는 예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돌고 돌아 원점이다.

        

       그렇게 내심 한숨을 쉬고 있는데, 똑똑, 하고 누군가가 문을 노크했다.

        

       선물을 나눠주고 있던 양혜인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걸까?

        

       “내가 나가볼게!”

        

       그렇게 외치고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더니,

        

       “생일 축하 합니다!”

        

       소희가 케이크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소희가 들고 있는 케이크는 파티 때 본 화려한 케이크는 아니었지만, 아마도 소희가 직접 만들기라도 한 듯 조금은 삐뚤빼뚤하게 ‘Happy Birthday to You!’라고 쓰여있었다.

        

       가운데는 커다란 초가 하나 꽂혀있었고, 그 위에는 작게 불이 켜져 있었다.

        

       밖에서부터 불을 켜고 왔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 와아…….”

        

       내가 조금은 힘 빠진 환호를 하며 옆으로 비켜주자, 소희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들고 와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오, 아름이도 있었네. 안녕.”

        

       “아, 안녕…….”

        

       참 다행스럽게도, 소희는 아름이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딱히 경쟁상대로 보지는 않는 모양이다.

        

       “자, 자, 다들 이쪽으로 와. 사라 소원 빌어야지.”

        

       “어, 어어…….”

        

       “그, 그래…….”

        

       소희의 거리낌 없는 말에, 하늘이와 수아도 조금은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탁자 근처로 쭈뼛거리며 모여들었다. 당연히 손아름도 마찬가지였다.

        

       “아, 참, 맞다 맞다.”

        

       소희는 손뼉을 짝 치며 그렇게 외치더니, 얼른 방문 근처로 달려가 방의 불을 꺼버렸다.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렇게 되니 광원이라고 할 만한 곳은 케이크 위에 꽂힌 초 하나뿐이었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촛불이 위태롭게 출렁거렸다.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는 주황빛 불이 은근히 분위기 있었다.

        

       “생일- 축- 하- 합니- 다—”

        

       불이 꺼지자마자, 소희가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생일- 축- 하- 합니- 다—”

        

       그 소리에 맞춰서, 우리는 다소 어안이 벙벙한 채로 소희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생일인 나도 똑같이.

        

       “사랑하는—”

        

       까지 부르고 나서야, 나는 사실 이 생일이 사라의 생일을 위한 파티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사라의—”

        

       그러니까, 뭐, 내가 따로 생일 축하 노래를 멈출 이유는 없었다.

        

       “생일 축하 합니다!”

        

       그리고 다 같이 박수.

        

       처음에는 다소 뜬금없이 시작된 노래였지만,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다들 한 마음으로 합창하고 있었다.

        

       박수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나는 초를 불었다.

        

       방 안이 그대로 암흑에 휩싸였다.

        

       그리고 순간 나의 볼에, 부드러운 것이 한 번 붙었다가 떨어졌다.

        

       방의 불이 다시 켜진 뒤에도, 나는 그 입술이 누구의 입술이었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

        

       그래도 파티 와중에 아무것도 안 먹은 것은 아니라, 이 나름대로 커다란 케이크를 우리 힘만으로 완전히 다 처리할 수는 없었다.

        

       사실 파티 전에 이미 제대로 식사를 했고, 그 이후에 파티 도중에 먹은 것도 거의 케이크 종류였으니 물릴 만도 했다.

        

       초보자가 만들었다기에는 잘 만들어진 케이크였고, 나름대로 맛도 좋았지만.

        

       “이거, 너가 만든 거야?”

        

       “응. 선배가 많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아, 그래서 중간부터 소희가 보이지 않았구나. 어째 한참 안 보인다 싶었다.

        

       “고생했네. 맛있다.”

        

       “히히.”

        

       내 말에, 소희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그런 소희를, 손아름이 무척 신기한 동물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왜, 뭐, 왜. 불만 있어?”

        

       그 눈길을 알아차린 소희가 얼굴을 조금 붉히며 볼멘소리를 냈다.

        

       “아니, 그냥. 학교에서 보던 이미지랑 너무 많이 달라서.”

        

       그럴 만도 하다.

        

       나도 처음 소희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소희의 태도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뭐…… 그것도 다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바뀐 태도겠지만.

        

       ……그러면 소희는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을까.

        

       거슬러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소희가 나를 만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메이드 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였던 것 같은데…….

        

       수아는 자기가 하늘이보다 나를 먼저 좋아했다고 주장했고, 하늘이는 거의 첫 만남부터 좋아했다고 주장했으니, 이 세 명의 여자애들은 나를 엄청나게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뜻이다.

        

       칫.

        

       그때, 머릿속에서 그런 소리가 울렸다.

        

       ……이제야 일어났구나.

        

       …….

        

       하지만 그런 나의 말에도, 사라는 대답이 없었다. 아마 단단하게 삐친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사라도 꽤 오래전부터—

        

       와—악!!

        

       아, 깜짝이야.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사라의 고함에, 나는 진짜로 깜짝 놀라서 어깨를 움찔 떨었다. 다행히도 방 안의 다른 아이들도 각자 생각에 잠겨있어서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렇게 부끄럼 타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면 너는, 세 사람한테 다 키스 받아놓고 부끄럽지도 않아? 정조가 없잖아, 정조가.

        

       그사이에 내 기억을 읽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 첫 번째 키스— 그러니까, 하늘이가 한 키스는 사라가 버티지 못해서 당한 거일 텐데.

        

       …….

        

       그거 봐, 할 말 없잖아.

        

       누, 누가 뭐라고 했어!?

        

       뭐라고 하고 있으면서.

        

       그래도 사라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좀 놓였다.

        

       혼자 당하는 것 보다는 둘이서 당하는 게 조금 덜 당혹스러울 테니까.

        

       무, 무서운 소리 하지 마…….

        

       하지만 이게 현실인걸.

        

       “아, 사라야.”

        

       “응?”

        

       그렇게 조금 딴생각하며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소희가 나를 불렀다.

        

       “입에 크림 묻었다.”

        

       “아, 응.”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 입에 뭔가 묻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왼손에 들고 있던 접시 위에 올려두고 입을 닦으려는데,

        

       탁.

        

       소희가 그쪽 손을 잡았다.

        

       “어?”

        

       아마 이 목소리는, 나의 목에서만 올라온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별생각 없어 보였던 손아름도, 그리고 소희가 ‘뭔가 할 거’라는 것을 직감한 하늘이와 수아도. 한순간 벌어진 그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당연히, 그 사건의 당사자인 나도 마찬가지고.

        

       “아, 잠깐, 잠깐만! 소희야!”

        

       내가 그렇게 외쳐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희는 이미 내게로 바로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왼손에 들고 있는 케이크를 떨어뜨리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것뿐이었다.

        

       쨍그랑.

        

       뭐, 그런 소리가 들렸던 것을 보면, 일단 포크가 떨어지는 것은 막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다른 아이들이 한 박자 정도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희는 그대로 내 입술을—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훑었다’라고 하면 맞으려나.

        

       그렇다. 그래도 혓바닥으로 핥아버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입으로 크게 한 입 베어먹듯, 입술로 내 입술을 핥았다.

        

       살짝 틀어져서 마주한 두 얼굴.

        

       소희의 윗입술이, 나의 오른쪽 입술 끝에 닿는다.

        

       소희의 아랫입술은, 나의 왼쪽 입술 끝에 닿았다.

        

       그리고 그대로, 소희의 입술이 닫히면서 내 윗입술, 아랫입술에 묻어있는 케이크를 훑어갔다.

        

       소희의 열려있던 입술이 닫히는 것이, 나의 입술을 통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한순간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길게 느껴지던 그 순간이 끝나고, 소희가 천천히 얼굴을 뒤로 물렸다.

        

       소희의 입술에는 미처 다 먹지 못한 생크림이 묻어있었다.

        

       바로 직전에 내 입술과 소희의 입술이 닿았다는 선명한 증거였다.

        

       소희는 보란 듯이 혓바닥을 살짝 내밀어, 그 생크림을 핥아 입 안으로 넣었다.

        

       “아앗!”

        

       그리고 조금 뒤늦게, 세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공포에 떨면서 고개를 돌려보니, 하늘이, 수아, 그리고 손아름까지 벌떡 일어나 있었다. 그래도 손에 들고 있는 케이크를 떨어뜨리지 않은 것은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힛.”

        

       소희는 그 세 사람에게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였다.

        

       ……저, 소희야.

        

       기왕이면, 분위기 파악 좀 해주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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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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