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5

        

         두들겨 패다가, 역으로 얻어맞고.

         시원하게 잘만 따다가도, 아차! 해서 뼈아프게 잃고.

         

         그런 일련의 인생 극장 롤러코스터를 요 몇 시간 동안… 미친,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대? 하여간 온갖 난전을 겪으면서 배운 게 있다면 별다른 물건이 아니다.

         

         바로 카드에서 강한 패를 완성시키는 건 운이지만 결국 승패를 가르는 건 그걸 들고가는 플레이어의 역량이라는 것. 요 오프라인 커뮤니티 포커 또한 ‘운빨좆망겜’이라는 카테고리에 싸잡히는 건 분명할지언정 실력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하는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뭐, 여기까지는 아까 첫 게임에 더 강한 패를 들고도 내가 쫄아서 죽었을 때 배운 거랑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단순한 판단력과 게임 센스 이슈라고도 말할 수 있으니까.

         

         “레이즈. 700만으로 올리겠습니다.”

         “……굉장히 침착하구먼. 큰 돈 만지는 게 꽤나 익숙허이?”

         “기왕 이런 판에 끼게 된 거.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일 뿐이죠.”

         

         드르륵…!

         

         문제는 탄약을 넉넉하게 보급받은 매서운 기세의 남자, 존이 되시겠다.

         

         저저저, 7과 5의 투 페어로 또 천만짜리 판을 긁어가는 솜씨 좀 보라. 만약 내가 처음부터 칩을 잔뜩 들고 놀러 온 손님이었다면, 무슨 작업 당하는 줄 알았을 정도로 날뛰는 폼이 예사롭지 않으시네.

         

         미묘하게 약한 핸드로도, 고작해야 상대보다 반 발자국 앞선 족보로 아슬아슬한 차이를 유지하며 매번 승리한다면 그건 얼마나 능력이 좋고 천운이 따라줘야 하는 기예(技藝; 기술과 예술을 어우름)라는 말인가?

         

         아니, 진짜로.

         아무리 흐름을 탔어도 그렇지 너무 잘 나가는 거 아니야? 나도 이렇게는 연달아 못 이겼는데….

         한 번 딸 때 크게 따서 칩 보유량은 무난하게 늘었지만, 외려 순수하게 라운드 숫자로만 따지자면 자잘하게 잃은 판이 더 많다고요!

         

         “……저 둘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기는 한데. 슬슬 한 번쯤은 연승을 확 꺾어 놓고 싶은데 말이지.”

         

         – ……. –

         

         벌써 4판? 5판? 하여간 연속으로 라운드 톱을 뺏긴 상황이다.

         그리고 대전 게임에서 남이 연승을 했다는 건, 누군가는 연패를 처박았다는 암울한 소리와 동일.

         

         게다가 자본 격차로 찍어 누르는 것도 승률이 사 오십은 받쳐줘야 가능한 법인데.

         지금 저 기세와 8천만까지 부풀어오른 시드 머니를 다시 털어버리려면 1, 2억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변태들이 정색하고 플레이하는 와중이라… 나도 한입하고 싶다는 욕심이 약간… 흠흠.

         

         보통 사람이라면-일반인이라면 애당초 이만큼 따지도 못했겠지만- 진작 손 털고 일어났음 시점이거늘. 꿋꿋이 남아서 더 큰 그림을… 더 대단한 이득을 실현하겠단 포부를 밝히는 인간의 신경줄은 대체 뭘로 만들어진 노릇인지.

         

         …그렇다고 또 마냥 도박 중독자라고 폄훼하기엔 충분히 이성적으로 게임을 굴리고 있어서 얕볼 수도 없는데 이게 참 더럽게 골 때리는 경우네.

         

         “쓰읍.”

         

         한번만. 딱 한번만 삐끗하라는 마음을 담아 침을 꼴깍 삼켰다.

         

         여태까지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진짜 존나 나쁜 핸드를 받은 탓에 일방적으로 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 내가 미숙해서 심리전이나 수읽기 싸움에 졌거나, 막판 커뮤니티 카드에 억까를 당해서 힘들었던 거지.

         

         ……호오오옥시 방금 내 ‘억까’라는 단어 선택에 대해 ‘엥? 억지에 당한 게 아니라 안일하게 대처한 거 아님?’ 같은 입바른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은 당장 이 앞으로 나와 주길 바란다. 아주 그냥 이 망할 포커로 묵사발을 내줄 테니까…!

         

         “흠흠…! 따로 휴게를 원하시는 플레이어 분 계십니까? ……없으시다면 곧바로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겠습니다.”

         

         “예이.”

         “크허, 흠흠!!”

         

         헛기침과 함께 잔이 비워지고, 주문을 받은 스태프가 바쁘게 병을 가져온다.

         

         아무래도 목이 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서인지 음료 소비량이 격하게 늘었지만 역시나 그게 도박을 늦출 이유는 되지 못했는지 이의 제기는 없었기에.

         

         이번 게임의 운명을 담은 카드는 또 다시 뒤섞이고… 각자의 주인 앞에 다소곳이 안착했으니.

         아, 핸드를 열어보기 전에 이건 미리 부탁해 놔야지.

         

         “……저 아저씨가 설마 딴짓 비슷한 걸 하나 안 하나 힐끔힐끔 감시해 봐.”

         

         – 부정 행위를 고려하시는 겁니까? –

         

         “글쎄…….”

         

         제로의 질문에도 뒷말을 흐렸다. 아직은 공연한 의심에 불과하지만… 일단 조심해서 나쁜 건 없으니.

         

         나한테 있는 강한 행운이라는 게 착각이 아니라 진짜라면 숫제 초능력이나 다를 것 없는 무형의 힘인데, 그걸 뛰어넘으려면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보는 게 맞지 않나? 응?? 절대 연달아 져서 화난 건 아니고. 순수한 논리적 고찰에 의거한 결과라고 적극 주장하겠다.

         

         그러니까, 이 타이밍에 이런 프리미엄 핸드가 굴러들어온 건 딱 시험해보기 좋은 기회가 아닐까?

         

         “에이스에… 킹.”

         

         남의 손아귀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을 땐 세상 억울해 보이던 AK 대기 패를 내가 쥐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심지어 마침 베팅 순서도 프리 플랍에서는 내가 일순위다.

         다르게 보면 강한 핸드를 이용해 무책임하게 크게 질러 놓고, 이어지는 단계에서는 나머지 사람들의 벳을 보고 전략을 짤 수 있다는 말씀.

         

         옛날에 전설적인 도박사로 이름 높았던 사람의 어록 중에 이런 게 있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진정한 흐름을 느끼기 어렵다고. 여기서 목숨은 진짜 모가지를 뜻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잃고 싶지 않을 만큼의 거액을 뜻한다.

         

         “아나스타샤님, 먼저 베팅 액수를 말해 주셔야…….”

         

         따다닥!

         

         혹시라도 내가 순서를 혼동했을라,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려던 딜러의 말이 박스를 연달아 안착한 블랙 칩 세 장을 보자마자 얼른 끊어졌다.

         

         그냥 헛되게 시간 끈 게 아니라 한 방에 3천만을 태울까 말까 고민했다는 아름답고도 명확한 사유가 있는데 감히 누가 불만을 드러낼려고.

         

         “……콜.”

         “음…… 저도 받겠습니다.”

         “흐응…? 그래, 뭐. 초장부터 이 정도는 해야 할지도. 받아.”

         “그렇지, 그렇지. 끝을 보겠다는 손님이 계신데 반드시 가야지. 나도 받겠네!”

         

         물론 숫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내 행위에 좋다고 올라타는 이 인간들도 제정신은 아니다. 걱정이나 불안 대신 재밌겠다는 미소 띤 것 좀 보라지.

         

         그래도 이번 라운드가 장렬한 승부처가 될 거라는 공통된 예감에 모두가 편승해준 건 고맙다.

         이렇게 1.5억짜리 판이 깔린 상황에서, 뭔가 필승의 수단이나 비책이 있다면 무조건 쓰고 싶을 거다. 놓치면 평생 배 아플지도 모르는 기회인데 그냥 외면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최선을 다해서 참여하면서 이길 각을 보다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스톱! 대강 이런 자세로 임할 예정이 되겠다.

         

         “플랍 커뮤니티 카드. 오픈하겠습니다.”

         

         ……촤락!

         

         자, 긴장되는 순간이다.

         기껏 강한 스타팅 핸드를 쥐었는데, 여기서 갑자기 낮은 숫자의 페어나 트리플이 나와버리면 그냥 천재지변이니까.

         

         아까처럼 강력한 키커 카드로 활용될 방안도 있지만, 그냥 상대가 강력한 족보를 완성해버리면 거기까지 갈 수도 없기도 하고.

         

         그러니 조금만 강하게 깔리면 된다. 아주 조금마안…!

         

         – …♡J, ♠K, ♣A로 에이스 하이 투 페어십니다. 그리고 미스터 존은 시선 처리가 꽤나 난잡하신 타입이군요. 태도는 침착하나, 모두의 얼굴을 간헐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

         

         ‘예쓰! 나이스!!’

         

         앞니로 혀를 살짝 깨물어 정위치를 탈출하려는 입꼬리를 고정,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쾌재를 내질렀다.

         

         어어? 여태 막 플러쉬 무승부니, 풀 하우스 동률 같은 무지막지한 족보로 승부를 가렸었는데 겨우 투 페어로 안심할 수 있냐고? 그럼 할 수 있고 말고.

         

         이 홀덤이란 녀석은 결국 판수가 쌓이는 확률 게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서 잘 와닿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라운드는 원 페어나 투 페어 간의 혈투로 막을 내렸었다.

         

         턴과 리버에서 나올 카드가 스트레이트 위험성이 높은 게 아닌 이상, 뭣하면 여기서 올인을 박아서 상대보고 다 꺼지라-폴드하라- 윽박지르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타이밍에 에이스 투 페어는 정말 든든하다.

         

         ……좋아. 만일 누가 먼저 달려버리면 기다리고 있다가 이대로 잡아먹어야겠다.

         

         능력 검증이라는 숭고한 목적은 어따 내다버리고 그런 잔머리나 쓰고 앉았냐는 지적은 이따가 저 칩 무더기를 얻고 나서 받을게요? 네, 적어도 지갑이 두둑하면 욕을 먹어도 덜 거슬릴 테니 양해바랍니다….

         

         ““…….””

         

         ‘……풉!’

         

         아, 나라는 개인의 즐거움과는 별개로 웃긴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늘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입밖으로 꺼내는 어조 때문에 감추고 싶은 내면 심리가 읽힐라 돌연 다 같이 벙어리가 되어버린 게 피차 비슷하게 긴장했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약간 좋을지도.

         

         살짝 부담되는 액수에 자존심 문제까지 더해지니, 진짜 자선 사업으로 치부하고 넘길 게 아니라면 마냥 취미나 놀이라고 점잔 빼고 있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래, 이제야 좀 비슷한 위치에서 벌이는 승부 같네. 다 함께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버리니까 아주 짜릿하죠? 아유, 편하게 게임하세요 편하게.

         

         “……쯧.”

         

         달그락, 달그락.

         조용히 칩 부딪히는 소리가, 플라스틱이 테이블에 긁히는 소음만이 귀를 간지럽히다가… 이윽고 박스에 검은 원반이 하나 둘 떨어져 내렸다.

         

         각자 블랙 칩 한 개, 천만 크레딧씩. 도합 2억까지 불어난 팟은 이제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자력으로는 멈출 수 없는 자연재해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네 번째 공통 카드, 턴 카드가 공개되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무승부의 가망성도 서서히 흩어졌으니.

         

         “……다이아의 잭.”

         

         우리 직원 분이 얼마나 열심히 섞으셨는지 테이블에 깔린 친구들의 문양이 다 달라서 벌써 막판 플러쉬 역전을 배제할 수는 있었지만.

         전원이 패 완성에 활용할 수 있는 잭 페어가 나한테 얼마나 득이 될지, 아니면 실이 될지는 굳이 제로에게서 확률을 안내받지 않았다.

         

         어차피 내릴 수 없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몸이라면. 행선지가 어두운 터널이라한들, 확정적으로 여기저기가 박살 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게 멈출 때까지는 달라붙어 있어야 하지 않겠어?

         

         탁, 탁, 타닥!

         

         그렇게 막히는 정적 속에서 블랙 칩 5장이 더 추가되었다. 대충 테이블에 올라와 있던 칩의 절반 가량이 박스 안에 묶인 건 과연 진풍경이었다.

         승자 독식이라는 도박의 무게감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면 아마 이런 게 아닐까?

         

         “………리버. 오픈하겠습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조급함과 차라리 결판이 안 나길 바라는 두근거림이 공존하는 가운데, 마지막 변수가 불확실의 세계로부터 뽑아져 현실로 내려앉았다.

         아닌가. 공개된 이상 더는 변수가 아니니, 종이 뒷면이 숨기고 있던 신비로움을 완전히 벗겨냈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 아샤님의 핸드 ♡K, ♡A에. 최종 커뮤니티 카드 ♡J, ♠K, ♣A, ◇J, ◇K로 킹 하이 풀 하우스가 완성되셨습니다. ……또한 방금 입가와 눈매가 떨리신 걸 다른 플레이어들이 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으흐흠!”

         

         표정을 훔쳐볼 테면 마음껏 보라고 외치려다가 아직 베팅이 한 차례 남았다는 걸 기억하고 지옥의 웃음 참기 모드에 돌입했다.

         

         이걸로 Q, 10을 가진 사람이 느닷없는 스트레이트로 덤벼들어도 잡아 먹힐 위험마저 소멸.

         흥분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이전에. 지금껏 어렴풋하게 작동하던 내 직감이, 이게 어느 상대보다, 현 테이블에서 가장 강력한 패라며 맹렬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우선… 최초로 실험을 하자고 마음먹었던 순간부터 여러 가설을 세우긴 했었다.

         

         ‘실제로 행운이란 게 있다면 언제나 작용하는가?’ 같은 측정하기 어려운 질문부터, 혹시 총량이 정해진 연료통에서 재화를 꺼내 쓰는 개념인지, 그냥 이걸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한 게 실수는 아닌지.

         

         하지만 바로 조금 전 정수리부터 가슴까지 내리친 전류와 확신은 얄팍한 허상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런 같지도 않은 노름판에서 깨닫는 게 웃기긴 해도 드디어 약간이나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지났던 무수한 위기와 갈림길에서 내가 살아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일종의 직관(直觀; 감관의 작용으로 외계에 대한 지식을 얻음)이라는 것을.

         

         과할 정도로 외부의 자극에 민감했던 육체가 어쩐지 통각만은 참아줄 만한 수준으로 느끼던 이유가 딴 게 아니다.

         주어진 재료가 모두 자리에 모였을 때, 본능적으로 올바른 길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도의 손길. 굳은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채찍질.

         

         그렇기에 붙여진 능력치의 명칭이 행운(幸運; 행복한 운세).

         게임에서는 좋은 이벤트 결과값을 얻도록 무언의 보정을 해주고, 치명상을 입힐 확률을 높여주던 태생적인 강함의 수치라니… 존나게 무섭네.

         

         어쩌면 맨 처음에 앉아서 가지고 놀던 슬롯 머신도 정말 노후화되어서 부품 점검 비스무리한 게 필요한 녀석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에나마 최고의 비밀 연구원들이라도. 이런 걸 과학적으로 구현해서 사람한테 심을 수가 있는 거야…?’

         

         고뇌를 이어 나가려다 머리를 좌우로 털었다.

         

         …십, 차원 이동의 살아있는 증거물이 난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에 칼로리를 태우는 건지. 그건 일단은 차려진 밥상부터 맛있게 먹은 후에, 집에 돌아가서 샤워라도 하며 편안하게 따져보다가 잠들 주제다.

         

         “올인…!!”

         

         “”!!””

         

         주로 오른쪽 두 명에게서 숨 들이켜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500만, 1000만, 1500만… 하여간 앞선 사람들이 야금야금 간 보면서 레이즈를 진행하던 박스에 내 남은 칩을 모조리 밀어 넣고는 보란듯이 손을 탁탁 털어줬다.

         

         자, 아까 쫄리면 죽으라는 말을 이중에서 누가 하셨더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돌려주겠다.

         하룻밤의 불장난은 몰라도, 이제 막 밤이 깊어지는 시간대에 충전한 돈을 다 털리면 누구라도 기분이 별로겠죠? 이해합니다. 하고 말고요!  

         

         ……그러니까 전 이만 슬슬 따고 일어나보겠습니다?

         

         “…에잉. 뭐, 저 친구만 끌고 간다면 아가씨가 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으으음~♪ 난 사실 지금 저 두 명 표정만 봐도 만족스럽기도 하고?”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꼐, 베팅 순서를 지키지 않은 폴드가 이루어졌다. 플레잉 룰이나 게임 매너와는 어긋나지만 상관없다는 것처럼 핸드들이 내려놔 진다.

         

         규칙이라는 것도 세세하게 따질 사람이 있을 때나 쓸모 있는 법이긴 하지.

         좌중의 모든 관심은 유일하게 패를 던지지 않은 채 버티고 존에게 쏠렸으니, 그가 침묵하는 부분에 대해서 시시콜콜 따질 게 없긴 했다.

         

         중요한 건… 포악한 여유가 흐르는 나에게 이번 라운드에서 맞서느냐, 혹은 남은 칩이라도 보전해서 도망가느냐의 결단.

         

         “………올인.”

         

         와르르!

         보유한 칩이 나보다 약간 더 적었기에 존 또한 마찬가지로 두 손을 앞으로 밀어 산을 무너트렸다.

         

         강을 어떻게든 건넜다기보단, 물줄기 한복판에서 두 발이 묶인 채로 심판을 기다리는 형국이나 다름없었다. …아, 이래서 리버 다음 단계가 쇼다운(Showdown; 최후의 결전)인 거구나.

         

         그래… 뭐, 스릴만큼이나 낭만도 넘치는 건 좋다.

         다 좋은데…… 어째서 존의 무감각한 같은 눈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확 올라오는 걸까?

         

         “…아직도.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고?”

         

         – 단순히 시선 처리가 불온한 걸로 죄를 물으시겠다면 당장이라도 제압하겠습니다만. –

         

         “……뭠마?”

         

         다짜고짜 깡패 짓을 제안하는 바보한테 눈을 한 번 치켜 떠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증거만 있었다면 물론 그랬겠지만. 심증만 가진 채 무턱대고 저질렀다가 가드들이 달려오면 나는 그 부끄러움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으니까.

         

         “플레이어 아나스타샤, K 하이 풀 하우스입니다. 이어서 플레이어 존은….”

         

         그리고 K 풀 하우스를 들고 진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저 수상한 도박사가 무슨 자신감으로 맞대결에 응했는지 궁금해할지언정 비관적인 생각부터 하고 있냐고?

         

         그야… 내가 베팅 결정을 번복한 것도 아닐진대 남자의 패 공개 직전에 말도 안 되는 오싹함이 역류해온 탓에 도저히 견뎌 내기가 힘들어서 그랬다.

         

         틀리지 않은 선택을 내렸어도 전부 막다른 통로로 이어지는 건 반칙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떤 사악한 마술(Witchcraft)이 작용했길래 나에게 이런 감각 교란을 선사했는지도 엄청 궁금하다.

         

         탁! 하고, 공중으로 번쩍 치솟았던 손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테이블에다 카드 두 장을 내동댕이쳤다.

         

         “…플레이어 존, 스페이드 잭과 클로버 잭의 핸드로 최종 포지션은 J 포 카드.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어.”

         “……후우!”

         

         뭐야, 왜, 우째서. 아니, 진짜 다 잃었네?

         필터 없이 각종 의문문이 뇌리에 맴돌았으나 입으로 나온 건 짧은 탄식이 전부였다.

         

         고려하지 못한 불의의 일격에 맞아서 역전패라니.

         더럽게 이상하다. 그야 최초부터 잭 페어를 쥔 채 내 공격적인 자세에 긴가민가 하면서 베팅을 따라왔을 수도 있겠지만, 승리한 후 존의 반응이 이치에 맞질 않는다.

         

         그의 잭 포 카드가 완성된 건 한참전인 턴 단계. 그렇다면 저런 안도의 한숨보다는 4억을 넘어가는 기적적인 승리에 대한 얼떨떨함이나 어떤 식의 환희를 표하는 게 맞지 않나?

         

         다행이라고 느꼈다면 족보를 완성한 시기에 속으로 삼키고 넘어갔을 텐데, 다 끝난 이제 와서 땀을 닦아내는 이유가 뭘까.

         

         ……감추는 게 있었는데 무사히 넘어갔기 때문에?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인생 역전, 이런 극적인 순간에도 지극히 냉정한.

         흡사 유리 구슬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존의 눈동자를 보고, 그간 너무 순진하게 게임에 몰입하느라 배제했던 가능성을 뒤늦게나마 떠올렸다.

         

         아무리 일상적인 사이버웨어 보조는 공공연하게 허용이라 해도. 댁, 씨발 설마. 지금 의안 같은 거 끼고 카드 치러 온 건 아니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누군가가 항상 따기만 한다면, 그는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테이블 상황은 007 카지노 로얄의 오마쥬입니다!
    원래는 J 포 카드 대기를 블러프라 생각한 본드가 빌런에게 달려들었다가 패가망신(…)하는 장면인데, 이번엔 주인공이 대신 당하는 걸로.

    그리고 장면 실황을 하다가 게임 파트가 늘어진 점 죄송합니다!
    아샤의 작은 실험이 될 예정이었는데 제 욕심과 느린 손이 그만 이런 사고를…! 대단원이 순식간에 벌어질 예정이라 더 아찔하네요.

    Glacia샤샤 님의 11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밑장빼기… 보다 더 독한 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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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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