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5

     황금마차, 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황금으로 칠해진 마차는 아니다.

      

     겉에 칠해진 색은 가시성을 위해 황금색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칠했을 뿐, 실제로는 황갈색에 가까운 염료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딘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빛나고 있다.

     마도형광등이 설치되어 있어, 마도필라멘트 안에 마나가 흐를 때마다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는 빛을 뿌리고 있으니까.

     단순히 빛나기 때문에 빛이 나는 가?

     아니다.

     아이페리아의 상징인 깃발을 걸고 있다거나, 왕국과 제국이 서로 교차하듯 국기를 걸고 오기 때문이 아니다.

     [아, 아아.]

     목소리가 울린다.

     왕국 사람들은 처음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의….]

     마도음성 증폭기를 통해서 캠프 전역에 퍼지는 여인의 목소리는 잠시 흠칫한 것처럼 말문이 막혔으나.

     [회장이며, 오로솔 아카데미 교외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렘버리 캠프의 자금출자자 대표를 맡고 있으며…. 으음, 여러분에게는 이렇게 소개하는 게 빠르겠네요. 하늘을 봐주시겠어요?]

     곧 자신의 이런저런 신분을 밝히더니, 곧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저건….”

     “영상마법?”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마력의 장벽.

     장막처럼 일렁이는 마나의 흐름은 어떤 이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기 시작했고, 곧 그 정체를 알아차린 일부 제국인들은 입을 떡 벌렸다.

     “저 분은…!”

     “아스타시아 황녀?!”

     “가 아니야!”

     마도화상을 통해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여인은 아스타시아와 닮았으나, 아스타시아 황녀는 아니었다.

     

     외모도 모습도 너무나도 닮았지만, 그보다는 좀 더 몸의 선이 얇은 것 같은 여인.

     동시에 약간은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듯한 느낌.

     “아, 맞다.”

     다들, 소개를 들어놓고 잊어버렸다.

     “너무 똑같아서, 착각했어.”

     [제국의 황후, 에르윈이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황후의 등장.

     도대체 왜 제국의 황후가 다른 곳도 아니고 렘버리 캠프에, 그것도 저런 거대한 정체불명의 황금으로 빛나는 배를 끌고 온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렇게 될지는 몰랐는데, 음, 뭔가 상황이 복잡하게 된 것 같기는 하지만….]

     에르윈 황후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자신의 얼굴로 향해 들었다.

     […카스테라랑 딸기우유를 좀 가져왔는데, 먹을래요?]

     “우오와아아ㅡㅡㅡ!!”

     학생들 중 일부가, 자신들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 * *

     [잠시 뒤, 황금마차 1호기. 기함 아이페리아의 함장 전용 응접실.]

     며칠 전.

     정확히는 렘버리 캠프를 진행하기 훨씬 전.

     “발자크 자작이 음식 준비를 기적과도 같은 확률로 잘 한다고 하더라도, 자작가에서 준비하는 대량조리 음식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나는 렘버리 캠프에서 어떻게든 발자크 자작을 망가뜨리기 위해,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했다.

     “어른들은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지만, 아직 성인이 되지 않는 학생들은 식사의 은원을 생각보다 길게 기억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 렘버리 캠프에서 학생들은 식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크게 가지게 되었고요.”

     “얼마나?”

     “모 귀족가문의 자제는 부모에게 이야기하여, 발자크 자작을 고발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고 하더군요. 배탈까지 나서 고생도 하고, 공용 화장실에서 굴욕 아닌 굴욕을 겪었으니.”

     “아하하….”

     에르윈 황후가 겸연쩍은 미소로 웃으며 볼을 긁적인다.

     “하루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아니요. 최적의 타이밍으로 맞춰오셨습니다. 정말 기적같은 타이밍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일부러 타이밍 맞췄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음모론자들이나 그런 소리를 지껄이겠지요. 렘버리 캠프 전체에 불이 갑작스레 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으며, 그 시간에 딱 맞게 ‘제국에서 출발한’ 황금마차가 도착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음모론자들은 그걸 정설이라고 믿을 것 같은데.”

     “만일 그런 자가 있다면, 그런 의심병은 불치병이니 고쳐줄 생각을 일찌감치 접는 게 좋습니다. 다행히 적어도 여기 있는 학생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불타지 않은 초원의 바닥에 퍼질러 앉아, 황금마차에서 불출된 카스테라와 딸기우유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보십시오. 저들의 표정을. 합계 20탈러도 하지 않을 음식을 가지고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얼마나 못 먹은 건지, 내가 다 미안해질 지경인데.”

     “미안해하실 이유가 뭡니까? 예산을 주신 분이. 준비를 소홀히하고 잘못한 건 발자크 자작이죠.”

     “책임 소재가 오로솔 아카데미 담당자들에게로 확산되지 않을까?”

     “그 자들 또한 이번에 청소해야 할 쓰레기들이라 괜찮을 겁니다. 애초에 그들이 발자크 자작에게 뒷돈 받지 않고 관리 및 감시를 잘 했다면, 저렇게 학생들이 카스테라 한 덩어리에 눈물까지 흘리며 먹는 일은 없겠죠.”

     “눈물은 과장…어머, 진짜 우네?”

     “맛있어서 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마냥 이 지옥같은 곳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에 울컥한 걸 겁니다.”

     교관들에게 욕 먹어가면서 지은 텐트는 불타버렸지.

     집으로 돌아갈 열차도 전부 불타버렸지.

     그렇다고 렘부르 군터 자작령에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도 마땅찮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 감옥에 하룻밤 여럿이서 낑겨서 자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

     “발표는 황후께서 하시겠습니까? 테르시안 제국의 이름으로, 황금마차의 ‘객실’을 각 팀에 제공한다고.”

     “그렇게 하면 누가봐도 준비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느끼면 뭐 어떻습니까? 당장 이곳에서 제국 4성 호텔급 숙박시설을 체험하며 피로를 풀게 될 학생들은 오늘을, 그리고 렘버리 캠프가 끝날 때까지 이번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왕국의 무능.

     제국의 유능.

     

     명암이 대비되는 완벽한 배치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아이페리아에 입은 은혜를 마음의 빚으로 담아둘 것이다.

     그것이 제국을 향한 호감이나 충성까지 번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왕국쪽을 선택할 이들의 비율이 줄어들 게 사실.

     “이번 렘버리 캠프 자체가 노스트럼 왕국의 종합적 무능을 드러내고, 제국은 보험으로서 학생들의 최소한의 식생활을 보장하는 걸로 그 격차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예, 현실이라는 걸.”

     “왕국도 미리 준비하려고 했으면 이 정도는 준비할 수 있었을걸?”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겠죠?”

     나는 방 안을 가리켰다.

     “침대가 방마다 있어서 한 명씩 누울 수 있고, 온도 감지 및 발열 마법이 저장된 마석을 이용해 방 안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고, 무엇보다 방마다 따로 설치되어있는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로 몸을 씻을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에르윈 황후가 나를 향해 다가와 내 팔을 주먹으로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애초에 학생들을 위한 위문 용품 보급이라는 명목으로 ‘제국 여객선’을 끌고 오라고 한 건 너였잖아? 처음부터 하룻밤 재울 생각이었지?”

     “예. 그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될 줄은 몰랐지만.”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에르윈 황후가 학생들이 잠을 자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인 마도자동선을 이끌고 오기로.

     그 안의 식량창고에 온갖 제국산 음식들을 싣고 와, 그 어떤 음식과 비교해도 렘부르 군터 자작이 준비할 수 있는 음식들보다 훨씬 맛있고 건강하고 무엇보다 상하지 않은 신선한 음식을 배급하는 것또한 예정되어 있었다.

     단지 예정되어있지 않았던 것은 하나.

     

     “열차가 불에 타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람을 죽이겠다고 온 자들이 냅다 이 정도의 테러를 감행할 줄은 몰랐다.

     “아니야. 열차는 새로 만들면 되지. 내부 자재는 불타버려서 손실이 크지만, 열차의 프레임은 남아있잖아? 녹여서 이걸로 재활용하면 돼.”

     에르윈 회장은 마도자동선의 벽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애초에 이것도 제국의 여러 잡철을 녹여서 만든 거니까.”

     “화살촉이나, 검이라거나, 뭐 그런 것들?”

     “평화의 상징으로, 말이지. 반역자들에게서 검과 갑옷을 빼앗아 녹인 다음, 왕국과 제국 사이를 오가는 아주 특별한 여객선으로 재활용한다. 듣기는 참 좋은 소리긴 하지.”

     “실제로 그렇게만 이용된다면 더더욱 좋을 거고요.”

     슬슬, 학생들이 카스테라를 다 먹고 딸기우유를 빈 팩으로 만들 시간.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이왕 끼치는 거, 조금만 더 민폐를 끼치겠습니다.”

     “그건 나한테 하는 이야기야, 아니면 황제폐하께 하는 이야기야?”

     “둘 다, 라고 할 수 있겠죠.”

     나와 에르윈 회장은 서로의 귀를 슬쩍 바라봤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야? 테러도 그냥 테러 정도가 아닌 것 같던데.”

     “이 일은, 합스베르크 폐하에게는 비밀입니다.”

     “…어차피 알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가급적이면 당사자는 모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듣고 있겠지만.

     “테러범 말입니다. 어디에서 몰래 영웅들이라도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영웅을 키워?”

     “예.”

     이걸로, 조금은 긴장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닌가. 긴장하는 게 아니라 방심하게 하려면 다르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게 아니고서야, 무슨 배짱으로 이런 미친 짓을 벌인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건 좀 하소연을 하고 싶다.

     “폰이 다 잡아먹히고 나이트도 잃고 그러는데, 저들은 마치 자신들의 뒤에 안 쓰는 나이트와 룩이 수십 수백 개는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습니까.”

     어디 내가 모르는 곳에 지브롤터 백작급의 영웅을 수십 명 꿍쳐놓은 것도 아닐테고.

     “아무리 불리하면 체스 판 뒤집고 엎어버리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정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정도가.”

     열차가 불에 타지만 않았더라면.

     설령 열차 바로 앞에서 사람 좀 죽었다고 해도, 에르윈 황후가 없는 장소에서 아스타시아와 둘이 조용히 밤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무리 나라도 에르윈 황후가 있는 곳에서 아스타시아랑 같이 있기는 조금.’

     조금은, 짜증이 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깝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 * *

     “아마도, 진짜로 반역할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자신의 집무실 의자에 다리를 꼰 채 앉은 합스베르크 황제는 자신의 귀에 끼워넣은 마도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숨겨놓은 영웅? 그런 거 없어. 재능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숨겨진 영웅들은 많았지. 그리고 그들은 이미 제국으로 어느정도 넘어왔고.”

     어쩌면 영웅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이들.

     그들은 현재 ‘선별작업’을 거치고 있으나, 합스베르크 황제에게 있어 이것만은 분명했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힘이 있기에 깝치는 게 아니야. 현재에 미련이 없어. 부하들은…그냥 머저리들이지만. 후.”

     

     그레이가 짜증이 난 만큼, 합스베르크 또한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노스트럼, 노스트럼, 노스트럼…. 영웅만능주의만으로 살아가는 충성병자들….”

     합스베르크가 조용히, 한 손으로 수염을 쓸었다.

     “가만히 놔두면 계속 나의 다음을 괴롭히고 그럴텐데, 아예 쓸어버릴까. …아아, 그렇군. 이게 아버지가 생각했던 건가.”

     히죽.

     “나의 대에서 보이는 쓰레기들을 다음 대에서 불편하지 않게 제거한다. 음, 좋아. 역경을 이겨내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덜어주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합스베르크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대는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모두 청소해버려야지. 음.”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