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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5

   EP.205

     

   성좌는 신이 아니다.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은 가끔 이것을 망각하고는 한다.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존재들.

   거대한 세력을 거느리며 세계를 관리하는 그들을 보면 자연스레 신과 흡사한 초월자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탑을 오르며 사람들은 깨닫는다.

   성좌들은 결코 무적도, 불사불멸의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물론 성좌가 가지는 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허나 14층에서 만난 남궁학 같은 강자들은 상대가 제아무리 성좌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김시인의 화신들.

   그들 중에 이 세상의 천하오대검수 따위는 없었다.

     

   “……혼자 가겠다고? 왜?”

   “그냥 겁먹은 게 눈에 보여서.”

     

   15층에 있는 봉인된 김시인의 화신들은 성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김시인을 봉인한 십수 명의 적에 대한 공포.

     

   물론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레 겁을 먹어서야 도움은커녕 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힘은 물론이요, 이곳에는 죽기 직전까지 적의 손가락 마디 하나라도 뜯어가겠다는 독기나 투지를 가진 자가 없었다.

     

   “김시인… 내가 내 이름을 삼인칭으로 부르니까 기분이 영 이상하네. 아무튼, 봉인된 장소가 경복궁이라고?”

   “그렇긴 하다만…… 정말 괜찮겠나? 우리도 싸울 줄은 알아.”

     

   “대신 싸울 의지가 없지. 내가 사람들을 방패 삼아서 싸울 성격은 못돼서 차라리 혼자가 편해.”

     

   나의 말에 박조철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경복궁이라…… 악취미네 이 새끼들.”

     

   김시인이 봉인된 장소를 처음 들었을 때, 웃기지도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구할 수 있으면 구해 보라는 식의 봉인. 애초에 이곳에 있는 화신들이 김시인을 구할 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 그런 장소를 선정한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게다가 더욱 어이가 없는 사실은 실제로 화신들 중 그 누구도 김시인을 구하기 위해 경복궁을 찾아가 본 전적이 없다는 것.

     

   “가관이네 아주.”

     

   화신들은 공포로 인해 완전히 고장이 났고 성좌들은 그런 사람들의 공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위치가 다른 어디도 아닌 탑이 있던 자리라는 것도 한몫하는 상황.

     

   게다가 화신들을 놀리려는 목적인지 성좌들이 주기적으로 보내는 김시인의 도플갱어들도 화신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스윽.

     

   나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투쟁은커녕 저항의 의지를 완전히 빼앗긴 사람들.

   탑을 오르며 힘이 강해졌다고 모두가 마음까지 단단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이건 좀 과했다.

     

   “여기 김시인은 좀 많이 외로웠겠네.”

   “……응? 방금 뭐라고?”

     

   이제 보니 김시인에게 진짜 동료라 부를 만한 사람은 이곳에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라면 여기 있는 박조철과 빨간 머리 남자 정도? 한가민과 서세영은 보이지도 않았고 남궁천호는 김시인과 특별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여기가 스카이 게임즈 본사였다는 것도 충격인데.”

     

   건물이 너무 많이 훼손된 탓에 뒤늦게 빌딩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같은 시간선을 달렸지만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변화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더 거대한 공포가 똬리를 틀어 그들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고 이 세상의 나는 봉인된 채로 누군가의 짐이 되었다.

     

   “성좌들이 노리는 게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건가……”

     

   모두가 죽을 뻔했던 장소. 나조차도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데 비교적 최근에 리더를 잃은 화신들이 오죽할까 싶었다.

     

   마치 처음으로 되돌아온 기분이다.

   다른 세상의 나라고는 하지만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경복궁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가는 길에 적들이 지천에 깔렸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비슷한 기분이다.

     

   “그래도 그때랑 지금은 많이 다르지.”

     

   과거에는 위협을 피해 도망만 치던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위협들을 모조리 박살 낼 힘이 있다.

   성좌들에게 목숨을 빼앗길까 두려워 입을 다물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니 뭔가 이상한데.’

     

   성좌들은 김시인이 탑을 올라 자신들의 세상을 침범하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힘을 합쳐 15층으로 내려와 그를 막았다.

     

   거기에서 생기는 의문이 하나 있었고 나는 혼잣말을 하듯 박조철에게 물음을 던졌다.

     

   “성좌들이 왜 김시인을 죽이지 않고 번거롭게 봉인시켰을까? 주기적으로 도플갱어를 보내는 것도 그렇고 말이지.”

   “……이 세계의 화신들에게 경고하게 아닐까? 괜히 저항할 생각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살라고.”

     

   그의 답변에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지. 내 말은 왜 자신들의 마력을 낭비하면서 굳이 화신들을 견제하냐는 거야. 그냥 다 쓸어버리면 끝나는 거잖아?”

   “……”

     

   내 말에 박조철이 입을 다문다. 언제고 생각은 해 본 적 있지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여겼던 의문.

     

   나의 말이 정론이었다. 코인으로 플레이어들을 가지고 놀며 사람들의 목숨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존재들이 굳이 힘을 낭비하며 그들을 견제한다?

     

   그저 유희로 화신들의 두려움을 구경하기에는 그 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다면 결론은……

     

   “혹시 그거 알아?”

   “뭘 말이지?”

     

   “성좌들이 자신의 세계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마력이 필요해.”

   “……”

     

   “게다가 성좌들은 아주아주 바쁘면서 동시에 이기적인 놈들이지.”

     

   성좌들도 결국에는 탑을 오르는 도전자들이었다.

   스스로의 수련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꾸준히 탑을 올라야 하는 존재들.

     

   다시 말해 놈들은 이곳에 머무르며 김시인의 봉인을 지키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인데 다른 놈이 탑을 오르는 동안 자신의 힘을 낭비해 가며 상대를 막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시인이 습격을 받았을 때 적이 얼마나 있었다고?”

     

   나의 물음에 박조철이 조용히 턱을 쓸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나마 성좌의 수라면…… 열은 넘었던 것 같군.”

   “열 명이라…… 나 하나 잡겠다고 꽤 많이 움직여 주셨네.”

     

   그중 한 놈쯤은 할 짓이 없어서 김시인의 봉인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이곳을 지키는 동안 다른 아홉이 다음 층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은 성좌로서 썩 즐거운 소식은 아니었다.

     

   ‘그럼 결론은.’

     

   성좌들이 만들어낸 공포는 허상이라는 것.

   현재 경복궁에서 김시인의 봉인을 지키는 성좌는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인 씨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성좌들도 성좌들이지만 놈들의 화신들도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어.”

     

   하지만 이 세계의 박조철은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는 화신. 이런 화신은 성좌의 발목을 잡을 뿐,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세계의 김시인은 좀 불쌍하네.”

     

   그래서 평행세계의 나를 위해 박조철을 살짝 긁어보기로 했다.

     

   “……그게 무슨 의미지?”

   “짐이 아주 무거웠겠어. 아주 세상을 다 짊어지고 꾸역꾸역 탑을 올랐을 걸 생각하니 아주 눈물이 앞을 가려.”

     

   나의 말에 박조철이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있던 세계의 박조철 씨도 나를 꽤 신뢰했거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인 씨가 해결해주지 않을까? 같은 막연한 믿음 같은 것도 있었고. 근데 지금 여기 사람들만큼은 아니야. 그 박조철 씨는 내가 없을 때, 자신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있었거든.”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박조철이 뜨끔하며 내 눈을 피한다.

   김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는 모양.

     

   “성좌와 화신의 관계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정말 그거면 충분해?

     

   이들은 경복궁에 김시인이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수동적인 선택만을 고수하던 사람들이 있었을 뿐.

     

   “나는 김시인을 구해 올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화신들이 변하지 않으면 이곳은 그대로겠지. 그 김시인이 나라면 녀석은 다시 탑을 오를 텐데 그때도 그 뒤를 졸졸 따라다는 걸로 충분하다면 나는 상관하지 않을게.”

   “……”

     

   박조철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진다.

     

   생각해 보면 단순한 결론이다.

   성좌는 화신들을 보호하고 화신들은 성좌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 것.

     

   물론 나는 탑을 혼자 오르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화신들을 두고 움직이는 중이긴 했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나 또한 그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나는……”

     

   박조철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짐을 한 사람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것을 나눠 들 힘이 있었음에도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살아왔으며 다른 화신들을 보면서도 자신이 모범이 되지 못해 그것을 언급할 자격이 없었다.

     

   “박조철.”

   “……”

     

   “지금 마음이 불편했다면 너도 경복궁까지 따라오도록 해. 그리고 그 빨간 머리도 데려오고.”

   “오지훈 말인가?”

     

   “그리고 남궁천호 씨도 데려오고.”

   “남궁천호? 그 사람은 또 왜……”

     

   “리더의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거든.”

   “……알겠다. 출입구에서 기다려. 금방 다녀올 테니.”

     

   잠시 자리를 비운 박조철은 금세 두 사람을 빌딩의 로비에 데려왔다.

     

   내가 한 행동이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이 다른 세상일지라도 나의 동료들이 말라죽어 가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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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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