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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

        벽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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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교가 앞선 전쟁에서 악명을 떨친 이유 중 하나이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공포의 상징.

        ​

        오래전, 마교의 총군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그 물건은 화약과 철 쪼가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합해 현대의 수류탄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폭발을 만들어내는 물건.

        ​

        그렇기에, 마교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앞선 두 번의 정마전쟁에서 우위를 잡곤 했다.

        ​

        도검이 주류인 정파로서는 벽력탄을 막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으니까. 1차 정마대전때 사천당문을 정파로 끌어들인 것도 벽력탄의 탓이 컸다.

        ​

        허나 벽력탄이라고 해서 만능일 수는 없으니.

        ​

        당장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진형을 펼쳐 벽력탄의 범위에서 벗어난 맘루크들이 그 증인이었다.

        ​

        ‘아쉽군.’

        ​

        몇 명이라도 피해를 입었으면 좀 더 수월해졌을 테지만, 아쉽게도 하늘은 윌리엄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윌리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검을 뽑아 들었다.

        ​

        “너희들과 싸우는 건 오랜만이군.”

        ​

        “기사와 다시 싸우는 일이 생길 줄은 우리도 예상 못 했네. 고작 한 명뿐이지만 말일세.”

        ​

        압둘인가.

        ​

        윌리엄은 오랜만에 만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파르스의 부관이자 오른팔.

        ​

        뿜어내는 기세에서 절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느낀 윌리엄은 목경에게 말했다.

        ​

        “조심해라. 저놈들은 전쟁터에서 구르고 구른 정예병들이니.”

        ​

        “예, 은공.”

        ​

        정예병.

        ​

        전쟁터조차 오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예병이 가지는 무게감은 아주 무거웠으니.

        ​

        작정하고 이슬람 왕국들이 돈을 퍼부어 키운 맘루크들은 괴물 중의 괴물들이었다. 

        ​

        기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선이 다시 밀려날 정도로. 그렇기에 기사들은 그 누구보다 맘루크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었다.

        ​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맘루크뿐이고, 실제로 그들은 창칼을 부딪치며 싸우곤 했으니까.

        ​

        “저놈들이 탄 말을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사람의 다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검을 맞댈 생각은 절대 하지 마. 저놈들의 검강은…극한의 절삭력을 가진다. 같은 검강끼리 부딪혀도 잘려 나간다.”

        ​

        극한의 예기(銳氣).

        ​

        곡도를 주로 사용하는 이슬람 전사들이 추구하는 길.

        ​

        그 예기는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

        기사들처럼 작정하고 공격보다 방어에 투자하는 특이한 부류가 아닌 이상 그들과 검을 맞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으니.

        ​

        ‘그런 맘루크가 스물…’

        ​

        저 중에 마스터는 얼마나 될 것인가.

        ​

        압둘은 확실하지만, 다른 맘루크의 경지는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 

        ​

        ‘여유롭게 알아볼 시간 따위는 없다.’

        ​

        뒤에는 마교요, 앞에는 맘루크.

        ​

        절체절명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

        윌리엄은 검을 고쳐쥐고 땅을 박찼다.

        ​

        전질보.

        ​

        벽력삼보라는 상승 보법의 묘리가 섞인 그것은 더 이상 전질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강맹한 움직임으로 윌리엄의 몸을 쏘아냈다.

        ​

        “잔재주를 배웠구나!”

        ​

        “잔재주인지 아닌지는 대봐야 알겠지.”

        ​

        그의 목표는 압둘. 일단 이 중에서 제일 강할 압둘을 잡아두는 것이었다. 

        ​

        가능하면 다른 맘루크도.

        ​

        여기서 맘루크들을 상대해본 것이 그뿐이었기에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그것밖에 없었다. 

        ​

        “압둘!”

        ​

        “말 없는 기사와 싸움이라.”

        ​

        압둘의 발이 말의 배를 차자, 말이 투레질하며 땅을 박찼다. 사람이 박찬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박력과 진동.

        압둘의 몸이 순식간에 가속하더니, 윌리엄에게 접근했다.

        ​

        그리고 윌리엄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 

        ​

        윌리엄은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오러블레이드를 슬쩍 보곤 무릎을 꿇었다.

        ​

        말을 타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회피.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간 검은 소름이 끼치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

        ‘빈틈…이라고 하기엔 말이 너무 건장하군.’

        ​

        말조차 오러를 다루는 것.

        ​

        그게 정예기병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이니.

        ​

        윌리엄은 자신을 향해 오러가 담긴 앞발을 휘두르는 압둘의 말을 확인하곤 혀를 찼다.

        ​

        ‘아래는 말발굽, 위는 오러블레이드. 여전히 골치 아프군.’

        ​

        곡도는 그렇게까지 길지 않다. 

        ​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

        오러든 오러 블레이드든 길게 늘여 길이를 보충하면 그만일진대.

        ​

        어느 한쪽에 정신이 팔리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가는 죽음의 이지선다. 허나 윌리엄에겐 무림인들과의 친선비무보다 이쪽이 더 익숙한 것이었다.

        ​

        사람이 끊임없이 갈려 나가는 성전에서 이런 일은 흔했으니까.

        ​

        윌리엄은 보법을 펼쳐 뒤로 물러나 오랜만의 환영 인사에 쓴웃음을 지었다.

        ​

        “피가 끓는 걸 보니 나도 아직 이쪽 사람이구만.”

        ​

        “전쟁터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는 전쟁터에서 나오지 못하는 법일세.”

        ​

        “너희들처럼?”

        ​

        “전쟁을 위해 키워지고 길러졌으니, 전쟁을 찾아 떠도는 것 또한 알라께서 부여한 운명이지 않겠나.”

        ​

        “서쪽에서 계속 놀지 그랬나.”

        ​

        “아쉽게도 고향은 가증스러운 침략자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지. 우리는 그곳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었네.”

        ​

        “너희도 도망쳐 온 건가.”

        ​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런 셈이지.”

        ​

        ‘…아직까진 잘 싸우고 있는 듯한데.’

        ​

        무려 초절정고수만 다섯이니 못 싸울 리가 없지만, 문제는 맘루크들 전원이 전투에 참여한 게 아니라는 점이 그의 신경을 거슬렀다.

        ​

        한 사람당 세 명.

        ​

        압둘의 뒤에 네 명.

        ​

        세 명씩이어도, 맘루크들은 경지의 모자람에도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상태였다.

        ​

        “말을 탄 놈들이 뭐 이리 날랜 건지!”

        ​

        “기이할 정도의 기마술이오!”

        ​

        “은공이 왜 거듭 경고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

        변칙적인 움직임. 

        ​

        검을 들다가도,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활을 쏘는 기이한 전술.

        ​

        철저하게 지켜지는 진형.

        ​

        삼면에서 파고드는 공격 탓에 별동대도 쉽사리 반격하지 못했다.

        ​

        멀쩡한 상태도 아니고, 지친 상태에서 무리하면 손해를 입는 것은 이쪽이 될 것이므로.

        ​

        그런 식으로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 닥칠 터.

        ​

        ‘시간이 더 끌리면 위험하다.’

        ​

        “이대로 순순히 잡히는 게 어떤가? 포로 대우는 잘해줄 자신이 있다네.”

        ​

        “댁 상관을 생각하면 그것만큼 끔찍한 말이 없는데.”

        ​

        ‘미치광이 밑에서 포로노릇 하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데.’

        ​

        ‘타개할 방법이 필요해.’

        ​

        벽력탄이 더 있었다면 윌리엄의 얼굴에 생긴 주름이 하나는 줄었겠지만, 아쉽게도 벽력탄은 모두 사용한 상태. 그러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방법?

        ​

        윌리엄의 머리에 번뜩이는 발상이 스쳐 지나갔다.

        ​

        ‘무림인이니 다들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겠지!’

        ​

        “선배들! 최대한 화려한! 화려한 검초를 펼쳐십시오!”

        ​

        “알았네!”

       

        “하하하! 내 칠성검무를 색목인들에게 보여줄 때가 됐군!”

        ​

        무림의 검법이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 

        ​

        그것은 화려함에 있었다.

        ​

        핏물 속에서 태어난 기사와 맘루크의 검과 다르게, 실전성을 조금 버리더라도 이상을 담는 것.

        ​

        도인은 도를.

        ​

        스님은 열반을.

        ​

        무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무(務)를.

        ​

        중원인들의 성향과 더불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화려함으로 승화되었으니.

        ​

        “이건…!”

        ​

        “갑자기 꽃잎이라니…!”

        ​

        매화만리(梅花萬離).

        ​

        중원인들이 보았다면 모두가 넋을 잃고 보았을, 매화이십사수검법의 스물네 번째 초식.

        ​

        검이 지나가는 곳에 매화가 피어난다는, 화려함의 극치.

        ​

        백자기의 검에서 꽃잎이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

        검이 꽃잎을 뿜어낸다는, 난생처음 보는 화려한 검술에 맘루크들의 기세가 주춤했다. 

        ​

        ‘냄새까지…’

        ​

        제대로 된 꽃조차 없는 말라붙은 산맥에 휘몰아치는 매화향이 맘루크와 말들의 코를 사정없이 자극한다. 그들의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

        맘루크들이야 얼굴을 찡그리는 선에서 그쳤지만, 말들은 아니었다.

        ​

        갑작스럽게 지독한 매화향이 코를 찔렀으니까. 그 냄새를 맡은 말들이 주춤댔다.

        ​

        그리고 그들이 내준 실낱같은 빈틈은 초절정고수들에게 있어서는 값진 물건이었다.

        ​

        백자기를 따라 화려한 초식을 펼쳐 그들의 코와 눈을 어지럽힌 별동대원들의 검이 맘루크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

        맘루크들은 예상외의 사태에도 기민하게 반응했지만, 전과는 다르게 아예 피해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

        “라흐만!”

        ​

        무림 고수들의 검에 베인 맘루크들이 쓰러졌다. 

        ​

        치명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대로 놔두면 상처가 곯아 죽으리라.

        ​

        예상치 못한 반격에 피해를 본 맘루크들의 눈이 스산해졌다.

        ​

        “동쪽 사람들은 신기한 검을 쓰는군.”

        ​

        “더 신기한 것도 많이 남았는데.”

        ​

        “한 번 통했다고 너무 기고만장 한 게 아닌가?”

        ​

        “글쎄. 일단 너부터 걱정하지 그러냐.”

        ​

        윌리엄은 다시 한번 압둘에게 달려들었다. 

        ​

        전질보.

        ​

        그저 우직하고 빠르기만 한 보법.

        ​

        압둘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는 네 명의 맘루크와 함께 그를 맞이했다. 

        ​

        빈틈없는 진형, 완벽한 컨디션.

        ​

        윌리엄의 무모한 돌진 정도는 쉽게 받아낼 수 있으리라.

        ​

        하지만 윌리엄이 아무런 생각 없이 땅을 박찰 리가 없었다.

        ​

        ‘저건!’

        ​

        윌리엄의 품에서 튀어나온 목함.

        ​

        그리고 윌리엄은 손가락 두 개를 튕겨 불꽃을 만들어냈다.

        ​

        삼매진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조잡한, 그저 오러를 단단하게 뭉쳐 마찰열로 만들어낸 불꽃. 불꽃은 이내 목함에 옮겨붙더니, 천천히 목함을 태우기 시작했다.

        ​

        ‘마인들이 썼던 그 기술인가!’

        ​

        그 목함의 모습에 압둘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설마!”

        ​

        전후 상황을 따져 윌리엄이 직전에 던진 벽력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압둘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

        지근거리에서 벽력탄이 터지면 아무리 맘루크들이라도 몸이 성할 리가 없으니까.

        ​

        그건 윌리엄도 마찬가지겠지만, 윌리엄은 기사였다.

        ​

        튼튼한 것으로는 둘째가면 서러운.

        ​

        윌리엄은 작정하고 몸을 보호하면 찰과상으로 끝날지언정, 이슬람의 전사들은 그렇지 않으리라.

        ​

        특히 귀중하디 귀중한 자원인 말은 더.

        ​

        순식간에 맘루크들의 진형이 넓어지고, 윌리엄의 손에 쥐여진 목함이 압둘을 향해 던져졌다.

        ​

        “이랴!”

        ​

        위기를 감지한 압둘의 말이 뒤로 급하게 물러나고, 목표를 잃은 목함이 바닥에 떨어져 내용물을 드러냈다.

        ​

        ‘…벽력탄이 아니라니!’

        ​

        예상치 못한 임기응변.

        ​

        압둘이 바닥에 떨어진 벽곡단에 당혹스러움을 드러냈을 때, 윌리엄의 몸이 맘루크들에게 짓쳐 들었다.

        ​

        말이고 뭐고 들이박은 무식한 돌격.

        ​

        하지만 전보다도 더 빠른.

        ​

        ‘뭐 이리 빠른…!’

        ​

        기사시절에는 없었던 움직임.

        ​

        극단적으로 속도와 위력을 추구한 보법이 윌리엄의 몸을 하나의 포탄으로 만들어냈다.

        ​

        아무리 말이라도 그 정도 속도로 들이받는 적을 쉽게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결국 윌리엄의 몸이 말의 다리를 전부 부러트리고 난 다음에야, 맘루크는 가까스로 말에서 뛰어내려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그리고 그 순간,

        ​

        “말 없는 기마병은…”

        ​

        “젠장!”

        ​

        맘루크의 검에서 날카로운 오러가 뿜어져 나와 윌리엄을 향해 휘둘러졌다. 전력을 담은 오러.

        ​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리 절삭력을 올렸다고 한들 오러로 오러블레이드를 벨 수는 없는 법이다.

        ​

        “우선 하나.”

        ​

        그의 검에 산맥에 또 하나의 시체가 생겨났다.

        ​

        “이쪽은 둘일세. 자네 좀 더 정진해야겠구먼.”

        ​

        “하하! 이쪽도 둘이오!”

        ​

        “…은공, 하나입니다.”

        ​

        “더 다치기 전에 빠지지 그래?”

        ​

        윌리엄은 어깨를 으쓱이며 압둘을 노려보았다.

        ​

        ‘약아빠진 녀석.’

        ​

        압둘은 한숨을 쉬며 외쳤다.

        ​

        “부상자들을 수습해라!”

        ​

        “길도 비켜주지?”

        ​

        “네 놈에게 또 한 번 골탕을 먹는군.”

        ​

        “잔말 말고.”

        ​

        “허나 이번에는 피해 가지 못할 것이다.”

        ​

        압둘의 경고.

        ​

        윌리엄은 그의 경고에 코웃음 쳤다.

        ​

        “그렇게 말한 놈들치고 내 창에 꿰이지 않은 녀석이 없었는데.”

        ​

        “압둘 님…!”

        ​

        “길을 열어라!”

        ​

        부상자를 수습한 맘루크들이 옆으로 갈라졌다.

        ​

        “그럼 다음엔…”

        ​

        “전장에서 보도록 하지. 그 전에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압둘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산맥 너머로 사라졌다. 

        ​

        그리고, 그들과 교대하듯이 마교의 마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흐흐흐…! 지친 정파 놈들이로구나!”

        ​

        직전의 싸움에서 도망쳤던 독마와 염마, 그리고 마인들과 심상치 않은 고수들.

        ​

        그들이 별동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

        그렇게, 쫒고 쫒기는 추격전이 다시 한번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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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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