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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

         

         

         “뭐—, 뭐머머머뭣?!”

         “어머나 무례해라. 음식에 침이 튀어요?”

         “이게—!! 이게 무슨 짓이야아아—!!?”

         

         

         이자벨은 달달달 떨리는 손으로 엘피헤라와 이반을 마구 손가락질했다.

         

         

         “지금 이게 대, 대, 대, 대체? 응응. 그래, 환각이구나. 에, 에, 에시디스 나, 나 한 대만 때려줘!”

         “진정해라.”

         “진정하게 생겼어요 지그음?! 저, 정신 나갔어? 아, 아저씨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아악!! 뭔데? 무슨, 뭔, 뭔데?”

         “사정이 있다.”

         

         

         거식증에 걸린 딸을 챙겨달라는 옛 친구의 유언과, 결과적으로 고아가 되어버리고 만 불쌍한 엘프 전쟁 난민(칼리온에선 전쟁이 터졌고, 엘피헤라는 피난을 왔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난민이다.)에게 끼니를 챙겨는 것뿐이다.

         

         직접 떠먹여주지 않으면 입에 물 말곤 아무것도 넣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는데 다른 방법도 없지 않은가.

         

         

         “유감. 유감이네요! 유-감! 아하하!”

         

         

         엘피헤라는 어딘선가 부채를 꺼내 확 펼치며 고압적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악역영애의 표본이라서, 유진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너, 너, 너어—.”

         “퇴행성 질환이 왔어, 이자벨. 조금 진정하고—.”

         “진! 정! 을! 못 하게 하잖아!”

         

         

         이자벨 내면의 선한 이자벨이 공황장애에 빠지고, 다크 이자벨은 유아퇴행하기 시작했다. 즉, 연립-이자벨 정권은 국정 포기를 선언한 상황이다.

         

         암흑요리사라고 큰소리 쳐놓고 한다는 짓이 고작 ‘방학동안 열심히 준비한 고추장으로 사로잡기’. 그러니까, 그냥 요리를 열심히, 아주 많이, 그리고 아주 오래 한 것이 전부.

         

         이것이 그 대가였나. 금도를 넘지 못한 어중간한 모략책동은 결국 갈피 없이 허물어지는 법이다.

         

         아아, 내 각오가 부족했던가.

         하긴, 비상시국엔 비상한 수단이 필요한 법인데.

         

         일단 저 귀쟁이한텐 비상을 먹일 필요가 있을 것 같고.

         

         

         “형님, 이자벨 눈이 돌아갔는데요?”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에시디스 눈도 돌아갔는데요?”

         

         

         이반은 광기에 잠식된 용사 파티를 훑어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충 다 먹었나?”

         “예? 어, 뭘 더 먹을 분위기는 아니지 않나요?”

         “그럼 치우고 회의를 하지. 식사 중에 하기에 적합한 이야기는 아니니, 차라리 잘 되었다.”

         “저 한 입만 더 먹게요! 아아!”

         “넌 마력으로 영양을 보충해라. 엘피헤라.”

         

         

         이반은 엘피헤라의 입을 다시 꾹 눌러 다물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피헤라는 으븝, 하며 혀를 찼다.

         

         

         “따라와라.”

         

         

        *

         

         

         “잠시 역사 얘길 해보지.”

         

         

         이반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전지에 슥슥 글씨를 써내려가며 말했다.

         

         테이블에 대충 둘러 앉은 이자벨과 에시디스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이반과 엘피헤라를 마구 힐끔거리고 있었다.

         

         어차피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이반은 신경 쓰지 않고 메모를 마쳤다.

         

         

        -태산의 투모르

        -사룡의 아비디타스

        -해악의 페르니치

         

         

         “십년 전에 용사 파티가 죽인 두 명의 칠용장과, 4년 전에 죽은 아비디타스까지. 칠용장은 총 셋이 죽었다.”

         

         

         제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엔 이성을 되찾을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들의 이야기였고, 가볍게 흘려 넘기기 어려운 역사였으니.

         

         간신히 침착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 남은 칠용장은 총 넷.”

         

         

        -군림자, 타나시모르

        -장막의 라메릭스

        -대균열의 올레가

        -황금의 네키논

         

         

         “이들 중에 위치가 확실히 알려진 자는 북부 마족령 너머에서 전쟁 시절부터 단 한번도 움직이지 않은 올레가 뿐이다.”

         

         

         이 정보는 민간인이 접할 수 없는 군사 기밀에 속했다. 세간에선 칠용장 대부분이 죽거나, 스스로 자멸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 단 하나의 칠용장이 두 개의 나라를 짓밟았다. 용사 파티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칠용장에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그 시절을 지나 마왕까지 쓰러트린 이후에도, 칠용장 대부분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정보가 공표된다면 민간의 혼란을 걷잡을 수 없을 테니.

         

         연합 왕국의 모든 지도자들은 기꺼이 칠용장에 대한 정보를 감췄다. 어차피 용사 파티가 살아있는 이상 그 자들은 결코 마족령 아래로 침범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신이라 믿는 자들은 결코 자신의 영속성을 걸고 도박을 하지 않는 법이다. 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연합 왕국에 있는 이상, 마왕이란 구심점이 없는 칠용장들은 결코 손을 잡지 않는다.

         

         그 말을 거꾸로 뒤집어 말하자면.

         

         

         “이젠 놈들이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뜻과 같다.”

         

         

         이반의 시선에 좌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쇠와 화약의 냄새가 풍기는 듯한, 독하고 건조한 전조의 악취가 단어의 행간에서 짙게 풍겼다.

         

         지금의 평화는 얇은 얼음장 위를 거니는 것과 같다.

         

         

         “막시밀리앙은 사라졌고, 질 베르와 베올그린은 죽었으며, 에이나르는 드로안을 떠날 수 없다. 파트리시아가 신성력을 잃었으니, 엔리케를 제외하면 즉시 전력에 해당하는 전대 용사 파티는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엔리케조차도 칠용장을 홀로 대적할 수는 없다. 그녀의 특기 분야는 직접 교전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이는 곧, 이제 연합 왕국엔 더 이상 칠용장을 직접 상대하 막아낼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뜻과 같다.

         

         그리고.

         

         

         “유진. 이어서 설명해라.”

         “신성력이 사라지기 직전, 주께서 마지막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그걸 계시라고 해도 좋을까. 유진은 여전히 자신의 상태창을 섣불리 신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악의, 광기, 또는 유희. 그런 감정들만 선연히 느껴지며, 마치 이 모든 상황이 놀이에 불과하다는 듯 조롱하는 말투까지.

         

         뭐가 ‘서비스 종료’란 말이냐. 퀘스트는 또 어떻고.

         

         자신들이 만들어둔 시스템 속의 병정들을 바라보는 거대한 놀이판이란 뜻이다. 주사위를 굴리고 말을 옮기는 고전적인 테이블탑 게임처럼.

         

         그러나 그들을 신이라 부르는 것보다 더 적합한 설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올릴 수 없었으므로.

         

         

         “몇 주 전, 제가 받은 계시에 대해 성녀님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이반 씨가 깨어나지 못하던 때요. 성녀님께서 계시를 해석하시기를….”

         

         

         교리 전쟁이란 것이 일어나, 파트리시아가 위험에 빠지고.

         별이 된 전사들이란 계시 속에서, 에이나르가 위기에 봉착하고.

         대몰락의 서곡이라는 계시에선 엔리케가.

         샛별의 화신이라는 계시에서 막시밀리앙이.

         

         

         “즉, 주께선 모든 선대의 죽음… 또는 그에 준하는 위기를 암시하고 계셨습니다. 실례되는 이야기이지만, 에타크리히 대공과 그리켄코스 공께서 전사하시기 전에도 이처럼 예지를 주셨으므로….”

         “앞으로 일어날, 피할 수 없는 일이란 뜻인가요?”

         “예,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에시디스는 침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 모두가 이 자리 모든 일행들의 부모다. 단지 ‘칠용장에 대항하는 억제력’이 아니라, 부모들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니 일행은 공포와 절망감이 뒤섞인 질척한 감정 속에서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지금껏 예언이 빗나간 적이 없었으므로.

         

         

         “고개를 들어라.”

         

         

         이반은 테이블을 무겁게 두드렸다. 모두의 시선을 모은 후,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파트리시아와 의견이 다르니. 아직 절망하긴 이르다.”

         “예…? 형, 형님. 하지만…?”

         “성녀에겐 성녀의 방법이 있듯이, 내겐 내 방법이 있다. 유진. 퀘스트, 그러니까 예언을 대하는 방식이 반드시 자기실현적일 필요가 있나?”

         

         

         이반의 말에 유진은 움찔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퀘스트는 단지 결과와 목적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수많은 부가 목표들과 보조 목표들을 동시에 제안해 퀘스트의 방향성을 일러주었을 뿐.

         

         퀘스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예언이 아니다. ‘달성 가능한 시나리오’에 가까운 녀석이다.

         

         반드시 일어나고야 마는 미래가 아니라… 닥쳐올 재난의 가능성에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이반과 처음 조우했을 때, 이반을 처치하고 생존하라는 퀘스트를 받은 적 있다. 그리고 그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퀘스트가 홀로 취소되기까지 했었다.

         

         즉, 대상자의 행위나 판단과 무관하며… 그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다.

         

         강렬한 충격에 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이반을 바라보았다. 이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부분의 문제는 원인을 제거하면 해결되는 법이지. 문제가 사태로 발전하기 전에, 우리는 선제적으로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을 제거할 것이다.”

         

         

         이반은 다시 테이블 위의 메모에 손을 얹었다.

         

         

         “연합 왕국에서, 선대 용사 파티에 죽음에 준하는 위기가 달리 무엇이 있겠나.”

         

         

         칠용장을 제외한다면 없다. 적어도 칠용장에 준하는 위협이 나타나야 했다.

         

         질 베르의 경우처럼 대처가 불가능한 대규모 급습도 가능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틸레스 내부에서 어떤 권력을 쥐지 못한 채 정쟁에 밀렸던 질 베르와는 달리, 남은 이들은 각국의 핵심이다.

         

         결코 홀로 대군을 맞설 이유가 없다. 그러니, 이 ‘모종의 위기’가 다가올 방식은 예측이 가능하다.

         

         용사 파티가 마왕을 처리한 방식. 즉, 암살이다.

         

         소수의 강자로 이루어진 종심 타격. 용사 파티를 암살하기 위해선 적어도 그 정도 수준에 걸맞는 상대가 나타나야 할 테니.

         

         칠용장 말고는 달리 없다.

         

         

         “올레가를 제외한 남은 셋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지. 그리고….”

         “남은 선대 용사 파티도 딱 셋이네요…?”

         “그래. 나는 이걸 우연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에이나르, 엔리케, 파트리시아. 남은 용사 파티는 그렇게 셋.

         타나시모르, 라메릭스, 네키논. 남은 칠용장도 그렇게 셋.

         

         세상이 악의를 품고 조율한 것처럼, 서로 꼭 맞는 데칼코마니처럼.

         

         이반과 함께 메모를 바라보는 용사 파티의 눈에 빛이 어렸다.

         

         

         “우리는 이제부터 이 셋을 선제적으로 타격해 제거할 것이다.”

         

         

         모든 칠용장이 죽고 난 후에 과연 누가 감히 용사 파티를 위협할 수 있을까.

         

         연합 왕국 내에선 그럴 수 있는 자가 없고, 마족령의 마족들은 전쟁을 벌일 최소한의 동력을 상실할 테니.

         

         그래, 이것 만이 항구적인 평화를 약속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능력의 부족함과 충분함을 떠나서, 가능성과 불가능함을 논하지 않고.

         

         다만 필요한 것은…. 그래, 각오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제부터 나는 칠용장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다. 유진, 너는 성녀의 계획에 붙어서 성녀를 도와라.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예, 형님.”

         “에시디스. 본국에 연락해 정황을 살펴라.”

         “네, 삼촌.”

         “이자벨.”

         “네.”

         

         

         이반은 잠시 말을 골랐다. 잠시 후, 그는 무겁게 말을 이었다.

         

         

         “마음을 다잡아라. 막시밀리앙의… 네 아버지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다.”

         “이미… 에타크리히 대공의 장례식에서 각오는 끝내 뒀어요.”

         

         

         막시밀리앙이 질 베르를 죽였다. 지금 그의 상태를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질 베르를 돕지 않았다는 점만은 확실했다.

         

         그러니, 이자벨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막스라면.”

         

         

         그 샛별 같은 사내라면….

         

         마왕과 칠용장의 저주를 홀로 감내하며 버텨온 그 사내라면. 십년이 지난 이 시간동안 끊임 없이 인내하던 그 사내라면.

         

         죽음 앞에서도 웃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읻다.

         

         다행이다.

         

         수많은 의인들의 시체를 쌓아 올린 평화 속에서도 그는 죽어간 이들이 아닌, 살아남은 이들을 향해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던 사내였다.

         

         홀로 모든 저주를 감내하면서도, 시시각각 영혼이 더렵혀지던 순간에도.

         

         이 고통을 나 홀로 겪게 되어서, 그래서 다행이다.

         

         웃으며 그리 말하던 사내다. 그러니, 훗날 다시 만났을 때 맞서야 한다면 그 사내는 반드시 그렇게 말하겠지.

         

         여기에서 멈춰서, 다행이다.

         

         자신의 죽음과 타락에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직 희망만을 품은 채로 그렇게.

         

         오랜 친구를 떠나 보낼 준비를 마쳤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후, 이자벨의 머리를 꾹 눌러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장하다.”

         

         

         그에겐 익숙하더라도 그녀는 아니었을 테니. 저 각오를 다질 때 까지 얼마나 많은 날을 고통 속에서 보냈을까. 제 부모를 죽이기 위해서. 모든 이들이 동경하고, 그녀 자신도 존경하던 사내를 죽여야 한다는 것에서.

         

         그러니, 이반은 훌쩍이는 이자벨을 가만히 두드려주며 눈을 감았다.

         

         

         “장하구나.”

         

         

         적어도 정신의 영역에서, 용사 파티는 그 시절에 못지 않다.

         

         

        *

         

         

         고아원으로 돌아가는 길, 엘피헤라는 한참동안 말없이 이반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느새 프리첸카야 교외까지 나왔다. 저 멀리 익숙한 길을 지나 고아원의 담장이 보일 때쯤, 그녀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묵묵히 앞서는 이반을 향해,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반 씨.”

         

         

         희미한 가로등을 지나 어둑한 그림자에 멈춰서서, 이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요. 밥이 맛이 없어서, 열흘을 굶었어요.”

         “음.”

         

         

         엘피헤라는 가로등 아래에서 발치를 툭툭 차며 말을 이었다.

         

         

         “배가 고픈데, 입에 뭘 넣기만 하면 역겨워서요. 도저히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여물을 씹는 것보다… 차라리 모래와 분변을 섞어 먹는 느낌이라서요.”

         “그랬나.”

         “네. 그래서…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엘피헤라의 눈이 이반에게 향했다. 그녀는 그림자 아래에서 어둑하게 빛나는 푸른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내가 이 정도인데, 고작해야 마일스톤을 조금 만진 정도로 이 정도인데.”

         

         

         직접 그 존재에게 칼을 박아넣고 숨통을 끊어버린 저 사내는 어떨까.

         

         저 사내가 일어나면, 과연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그게 너무 슬퍼서. 칼리온의 멸망을… 엘프도 아닌 인간인 주제에 저 홀로 뛰어들어 목숨을 버려가며 온 몸을 산산조각내가며 처절하게 싸워서 얻은 승리의 결과가.

         

         그 결과가 고작해야 이런 것이라면. 어떤 보상도 없이, 다만 저주만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면.

         

         그 부조리가 너무 서글퍼서. 엘피헤라는 이반이 일어날 때까지 하염없이 흐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굶주린 엘프에겐 너무 가혹한 시간이었다. 실신하고, 일어나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스프를 떠 먹다가 고스란히 게워내고, 다시 흐느끼다 실신하는 몇 주를.

         

         

         “혼자 다 하려 하지 마요. 우리… 같이 싸우려고 모였잖아. 같이 세상을 구해보자고 모였잖아요.”

         “엘피헤라.”

         

         

         모두가 저주를 나눠 감당한다면, 그래. 부담은 조금 덜어질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저 절망에 빠진 이들이 넷 더 늘어나는 결과에 그친다.

         

         절망에는 역치가 있다. 한계효용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 어떤 비극도 죽음보다 더 끔찍할 수는 없다. 즉,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고통엔 명백히 한계가 있다.

         

         그러니 그 말은 곧, 아무리 많은 저주를 떠안아도 한 사람이 감당하는 편이, 모두가 나눠 고통 받는 것보단 명백히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이미 칠용장을 죽여 더러워진 영혼이라면, 그 위에 더께를 더 쌓는다 한들 크게 차이가 있겠는가.

         

         막시밀리앙조차도 그런 마음으로 칠용장을 죽였다. 그리고 만일 그 당시 용사 파티 중 누구든, 가장 먼저 칠용장을 죽여서 그 저주를 인지한 자라면 누구라도 같은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니까.

         

         그리고 그는 아비디타스를 죽였다. 이미 그의 영혼은 더럽혀졌고, 그는 그날 이후 근본적으로 망가져 있었다. 그러니까.

         

         

         “밤이 늦었다.”

         

         

         굳이 그런 말들을 설명하지 않고, 웃으며 그녀를 고아원 입구에 밀어 넣었다.

         

         

         “내일 아침 식사는 같이 하지.”

         

         

         엘피헤라는 그의 메마른 웃음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뒤를 돌았다.

         

         물기 젖은 흐느낌이 등 뒤에서 들렸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어제 휴재 죄송합니다!
    토요일에 보충하겠습니다…!!
    죄송함을 담아서 아주 꽉 눌러 담았습니다! 아주 든든해!
    *
    언젠가 칠용장을 설명할 때에, 칠죄종을 모티프 삼았다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200화가 넘은 지금에야 드디어 남은 칠용장을 모두 밝힐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몇몇 분들은 아마도 남은 인선에서, 남은 설정을 눈치 채셨을 수도 있습니다!!
    *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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