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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솔직히 말하도록 하마. 너의 그 ‘총명함’을 알고 난 뒤에도—”

        

       황제의 시선이 아주 잠깐 데미안 쪽을 향했다. 아무래도 황제는 내 능력에 대해서 다른 이들한테 말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안 그랬으면 저렇게 돌려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한동안은 전쟁을 준비하긴 했다. 네 눈을 속이고 전쟁을 하거나, 네가 나의 야망에 대해서 알아주기를 바랐던 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런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것은 네 취향이 아닌 것 같더구나.”

        

       그 말을 하면서 황제가 지은 미소는…… 쓴웃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네가 왜 그렇게 전쟁을 싫어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네게 제국에 대한 애국심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내 뒤를 이어 황제가 되면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갈까 봐? 아니면 네 소중한 자매가 전쟁에 휘말리게 될까 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게는 애국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너는 너 나름대로 제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제국의 앞날에 대해서 내가 물어볼 때마다 조언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부패한 귀족을 보고 분노하지도 않았겠지.”

        

       어…….

        

       아니, 나는 괜히 숨기고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하게 관심을 끌 것 같아서 그냥 협조하고 있었던 건데. 게다가 부패한 귀족을 보고 분노한 것도 그놈들이 그야말로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적당히 뇌물이나 먹고 자기 이익만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면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황제가 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보다는 네 옆에 있는 네 자매가 황제가 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였지. 내 눈에 그 행동은 단순히 킹메이커가 되고 싶은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너는 네 자매가 진심으로 황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아 보였어. 그게 네 자매의 능력에 대한 신뢰이건, 아니면 네가 네 자매가 가진 그 어떤 것도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이건, 결과는 같겠지.”

        

       앨리스의 시선이 다시 내 쪽을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멱살을 잡고 싶어 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아까의 그 시선보다 조금 더 불편해서, 나는 다시 앨리스의 시선을 피했다.

        

       조금 더 정확히는, 황제를 똑바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너는 사람을 쏘는데 거리낌이 없다. 단, 네 총을 맞는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평범한 제국 국민을 전쟁에 몰아넣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 기계를 연기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너는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볼 수 있을 만큼 총명하지.”

        

       황제는 다시 한번 웃었다.

        

       그 미소는…… 뭐랄까. 이상하게 저 황제가 지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종류의 미소였다.

        

       위험하다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황제는 짓지 않을만한, 그런 미소.

        

       마치 대견한 딸을 보는 것 같은 미소.

        

       “그래서,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네가 원하는 제국상을 그려보았다. 이건 내 나름대로 네게 건네는 도전장이기도 했지. 세계 최강의 대국이자,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위대한 제국을, 네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우는 것. 그게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목표였다.”

        

       어…….

        

       라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내 인내력이 성장했다는 증거이리라.

        

       잘했다, 나. 그 정도로 대단한 인내력을 기르다니.

        

       ……아니, 전혀 성장하지 않았잖아!

        

       괜히 원작만 신경 쓰다가 지금 망하게 생겼다고!

        

       지금까지 계속 황제가 전쟁을 준비 중이라고 생각했다. 제국은 결국 악의 대제국이 될 거고, 그래서 히로인 중 몇 명은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반드시 죽게 될 거고, 나는 그걸 막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애초에 그 전제가 잘못되었다면?

        

       제국은 악의 제국이 될 일이 없고, 황제는 이상하게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버렸고, 세계대전이 아예 일어나지 않아버린다면?

        

       아니, 뭐,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주인공 일행 중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목표를 이룬 셈이니까.

        

       문제는, 그렇기에 미래가 완벽하게 틀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던 ‘틀어짐’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심하게.

        

       그것도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답은…… 찾으셨습니까?”

        

       “거의.”

        

       나의 질문에, 황제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완벽하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던 세계정복 계획보다는 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다만, ‘가능성’으로 따지자면 이쪽이 리스크가 더 적다. 이상적인 결론을 내기에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렇기에 실패하더라도 확실하게 긍정적인 결론을 내고 실패할 수 있지. 전부 네 덕분에 내놓을 수 있었던 답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생각한다.”

        

       “…….”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물었다.

        

       “그 답에 대해서 대답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황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기 계획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우선, 식민지는 순차적으로 독립할 것이다. 국경은 제국이 점령하기 이전의 국경대로 천천히 회복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땅에 들어선 근대 시설은 모두 그들의 것이 될 거고.”

        

       “……지금까지 제국이 그들에게서 얻던 이득이 사라지게 됩니다만.”

        

       “그럴까? 너는 그들이 독립한다고 해서 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절대로 못 하겠지. 한국이 미국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뜯어내는 행위에는 결국 끝이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들을 확실하게 키워내서 우리와 정당하게 거래하게 하는 쪽이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다. 그들은 독립하되, 우리의 연합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앞으로 몇 세기 동안 그들에게 발생할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주며 의존관계를 만들고, 절대로 깨지지 않을 동맹을 맺을 수 있겠지.”

        

       황제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보고 우리의 연합에 들어오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기꺼이 받을 것이다. 화폐는 제국의 것으로 통합하고, 병기 또한 제국의 것으로 통일하도록 유도한다. 그 땅이 우리 것은 아니게 되겠지만, 제국 없이 그들이 생존하기 어렵도록.”

        

       “……하지만 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폐하께서 수 세기 동안 살아있으셔야 할 텐데요.”

        

       “그렇다면 그럴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

        

       “폐하의 생각을 그대로 따를 수 있는 후계자를 만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나는 앨리스를 보았다.

        

       “아, 물론 앨리스도 그 후계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고.”

        

       “황제를 둘로 만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황제 자리에 오르는 인물이야 한 명뿐이겠지. 네가 원하는 대로 그 자리에는 앨리스가 오를 것이다.”

        

       황제는 내 당황한 표정을 읽었는지, 마치 프로 복싱 선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계속 설명했다.

        

       “나의 이 절대 황권을, 절대로 지지 않을 대상에게 나누어 양도할 것이다. 귀족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귀족을 극도로 혐오하면서도 절대로 귀족들이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할 이들에게.”

        

       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대체 누구한테……?”

        

       앨리스가 멍하니 물어보자, 황제는 씩 웃었다.

        

       “백성이다, 나의 딸이여.”

        

       황제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기 저 백성들에게, 나의 절대 황권을 물려줄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의회 권한의 강화. 투표권의 보편화.

        

       만약 귀족의 힘이 조금이라도 황제보다 강했다면 강렬한 반발에 부딪혔겠지만, 제국에 황제의 생각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다.

        

       모든 백성을 죽일 수는 없다.

        

       황제의 권한이 백성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그 힘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나누어진다는 뜻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상당히 다르다.

        

       백성을 모두 죽이기 전까지는 그 거대한 권력을 빼앗을 방법이 없다.

        

       제국 국민의 10퍼센트를 학살해도 나머지 90퍼센트는 여전히 그들의 손에 있을 테니까.

        

       “사실 이미 그럴 제도 자체는 모두 마련되어있지. 내가 할 일은 그저, 백성들에게 내 생각을 심는 것이다. 영생을 살지는 못하지만, 시간은 꽤 많이 남아있다. 30년이면 한 세대를 교육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

        

       “어떠냐, 나의 딸이여.”

        

       황제가 내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이면서 말했다.

        

       “이것이 내가 내놓은 대답이다. 네가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방법.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할 대답이 없었다.

        

       완벽한 계획은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계획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완벽한 체제도 없고, 완벽한 정치도 없다.

        

       내가 그런 쪽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독재는 나쁜 것이고, 일반적으로 제국은 악역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미디어를 접하고 자란 나다.

        

       공화국에서 살았고, 그런 나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다. 인간은 평등하며 권리는 모두에게 같게 돌아가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황제는 나의 성향을 아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내 귀에 들리는 황제의 말은, 그저 정의롭게만 들렸으니까.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엔레나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은 역시 제 글을 칭찬받을때입니다. 특히 평소에 별로 보지 않던 장르를 제 글을 통해 입문하셨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지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너무 마이너한 태그를 달아서 망하는 것이 아닌가 초조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제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분들이 선작해주신 소설이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독자 여러분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TS물을 구상했을 때도 이 소설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 했었는데, 여기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서 너무 행복합니다.

    다시 한 번, 후원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여러분도 저의 글을 읽으며 느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독자 여러분을 위해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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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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