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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엘메스트 영지는 아직 대청소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아직 여왕의 그림자를 전부 걷어내지 못했다.

       

       여왕에게 홀린 사제들은 사건 이후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으나, 악신쨩의 실수로 인해 그들이 다시 한번 모일 구심점을 제공하고야 말았다.

       

       자신들이 따르고 섬기던 여왕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는 성수, 그 존재에. 이것만 있다면 여왕의 부활도 꿈이 아니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여왕 부활을 목표로 액체를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여왕에게 새로운 육신을 준비하기 위해 산 제물들을 끌어모았고. 

       

       이런 상황에서 얼굴흉터 선배와 눈물점 게이가 엘메스트 영지에 도착했다.

       

       “의뢰 내용은 엘메스트 여신교 건물에 살고 있는 남매의 신변을 보호하라.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약간 굶은 티가 나는 걸 빼면 멀쩡한 모습이었어요. 다행이었죠.”

       

       얼굴흉터 선배는 소년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일행에 합류시켰다. 이런 비쩍 마른 소년을 타락 사제들이 노릴 이유는 하나도 없으니, 이대로 자리를 옮겨 시간을 때우면 되겠다고 여길 즈음.

       

       “딱 마주쳤지 뭐예요.”

       

       신전으로부터 여왕 정보를 회수하려던 타락 사제들과 조우하고야 만다.

       

       타락 사제들은 목격자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들의 계획이 외부로 흘러 나가서는 안 됐으니까.

       

       상황은 상당히 나빴다. 타락 사제들 무리를 이끄는 자는 우화급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위험성이 높다.

       

       또한 신변 보호 대상자가 둘이나 있다. 싸우다가 소년이 죽기라도 하면 본말전도다.

       

       따라서, 우화를 아직 못 찍은 눈물점 게이와 얼굴흉터 선배로서는 정면승부가 어렵다고 판단, 현장을 어떻게든 이탈. 그리고 은닉과 도주를 중심으로 신변 보호를 이어오고 있었다.

       

       베테랑인 두 사람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탈압박을 시도했다. 매일 거점을 바꾸고, 때때로 신분을 위장하고, 돈을 이용해서 추적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타락 사제의 거세지는 압박에, 눈물점 게이와 소년은 자진해서 미끼가 되었다고 한다. 얼굴흉터 선배가 남는 편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작은 여관방 안에 새근새근 자고 있는 소년의 누나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얼굴흉터 선배.

       

       선배는 콧잔등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로레이의 빙의』를 써서 위치는 파악해 뒀어요. 지하 시설이던데, 흑마법사든 누구든 켕기는 게 있는 놈들은 꼭 지하에 굴을 파 둔다니까요⋯⋯.”

       

       “좋아, 다들 연장 챙깁시다. 얼른 가죠? 저녁은 돌아와서 먹게.”

       

       나는 손을 탁탁 털면서 일어났다.

       

       악신쨩은 모두가 방에서 나가자 가장 뒤늦게 따라 나오면서, 소년의 누나에게 손을 턱 얹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여왕의 쐐기를 슉 빨아들였다.

       

       우리들은 못 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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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 마법은 편리하다. 겉모습을 사제처럼 덧씌워 꾸미고, 인식 저해를 걸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나른해지는 패턴을 그리고, 약간의 최면에, 사운드 이펙트를 살짝 주는 것만으로도 잠입은 쉽다.

       

       봐라. 타락한 사제들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고 있지 않은가.

       

       “환상 학파 마법사들이 다들 그렇게 쓸 줄 알았다면, 진작에 자색 마탑이 독보적 1등이지 않았겠습니까. 미마.”

       

       “이 세상에 마법-컴퓨터만 나오면 된다. 정보화 시대가 오는 그 순간 자탑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야.”

       

       “정말로 그렇게 될까 두렵습니다만⋯⋯.”

       

       그러면 바로 마법 사이버펑크 되는 거지. 메가코프 자탑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완성이다. 미디어 사업부터 빅브라더 계획까지 완벽하다.

       

       유나가 신-왕이 되어서 온 지구를 다스리는 상상을 하고 있자니, 악신쨩이 옆에서 허벅지를 툭 쳤다. 얘는 손부터 나가는 게 아주 버릇이 들었다.

       

       “그게 되겠냐?”

       

       “뭐, 또 왜. 연산력만 충분하면 자탑이 먹지 않겠냐?”

       

       “너 다른 마법사들이랑 싸워본 적 없지.”

       

       “⋯⋯⋯⋯.”

       

       그렇긴 하지.

       

       수상하리만치 다른 마탑의 마법사와는 트러블이 없었다. 아카데미 교수인 그 느끼한 양반도 친해져서 싸울 일 없고, 셀비어는 나랑 급이 안 맞고.

       

       아카데미의 유명인, 청탑의 우화 마법사 백설도 간접적으로 보았을 뿐이다. 직접 손속을 겨루어 본 적은 없다.

       

       “너, 지옥불 한 대 맞으면 엉엉 울걸. 환상 마법은 방어가 아니라 회피니까, 맞았을 때 피해를 감소시킬 수단도 없고. 너는 비늘도 없으니까 아마 순식간에 타서 잿더미가 되겠지.”

       

       묘하게 감정이 실린 말이라서,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경험담이니?”

       

       “⋯⋯⋯⋯.”

       

       지옥불이 많이 아팠나 보구나.

       

       환상 마법이 광역기에 대해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건, 확실히 치명적이다. 환상 마법에는 물리력이 없으니까.

       

       내가 애를 써서 만들어 낸 홀로그램도 다소의 물리력이 있다 뿐이지, 금색 마탑이 세운 강철 벽과 비교하면 당연히 약할 것이다.

       

       상대방을 단번에 지배하지 못하면 뒤진다는 결론만이 남는다.

       

       물리력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게 나 하나뿐은 아니었으리라. 자탑의 긴긴 역사 중에 누군가는 환상의 실체화라는 과제에 매달렸겠지. 어쩌면 아주 필사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결과가 유나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게 그녀에게 끔찍하리만치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는 것도.

       

       쓱쓱. 유나의 정수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

       

       유나는 깜짝 놀라서 나를 올려다봤다. 쓰다듬어 주는 건 좋은데 왜? 라는 표정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댔다.

       

       우리는 우선 감옥으로 이동했다. 인질 구출이 먼저다. 

       

       얘네들은 산제물의 건강 관리에 크게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감옥의 환경은 상당히 열악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공간이다. 말라붙은 핏자국도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감옥에는 둘뿐이었다. 쪼그마한 소년 하나와 눈물점 게이 하나. 

       

       나는 감시 중인 사제의 목덜미를 주물러 깊이 잠재운 뒤에, 일행을 뒤덮은 환상 마법을 풀고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반갑게 인사했다.

       

       “간만에 뵙네요, 눈물점 게이.”

       

       “⋯⋯⋯⋯?”

       

       눈물점 게이는 내 말을 잠깐 곱씹은 뒤에, 목덜미에 핏대가 솟았다. 그리고 살짝 울분이 담긴 목소리로 항변했다.

       

       “우화에 도달한 괴물이 있는데, 제가 뭐 어떻게 안 잡히고 배기겠습니까? 고객님. 이건, 2성 인력을 이런 일에 투입한 의뢰주가 잘못한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우화 안 찍고도 우화 이겨지던데.”

       

       “⋯⋯사람이 변하지를 않으셨군요.”

       

       내가 잔뜩 꼽을 주는 사이, 악신쨩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뭐랄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양심의 가책에 몸이 굳은 것 같은 느낌이다.

       

       소년이 꼬질꼬질하고 앙상한 게 불쌍해 보이는 비주얼이긴 했다.

       

       괜히 필요도 없는 코 묻은 돈을 빼앗지 않고 그대로 뒀으면, 심통부리지 말고 그냥 소년의 누나를 고쳐줬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부족한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겸, 악신쨩의 등을 툭 쳐서 떠밀었다.

       

       “⋯⋯야!”

       

       “아, 얼른 얘기 나눠. 우리 여왕의 잔당들 얼른 쓸어버리고, 용사 축제 놀러 가야 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쫄아붙어 있어.”

       

       “자기 일 아니라고 아주⋯⋯!”

       

       그렇게 씩씩대다가는, 자기도 스스로 미적대는 꼴이 부끄러웠는지. 성큼성큼 감옥의 쇠창살로 다가가서 얼굴을 붙였다.

       

       “⋯⋯야. 나 약속 지켰다.”

       

       “⋯⋯고마워. 열심히, 매일 밤 기도했는데. 이번에는 여신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셨나 봐. 저기, 그러면 누나는 나을 수 있는 거지⋯⋯?”

       

       “어. 여기 있는 미친 마법사가 깔끔하게 고쳐 줬다고. 이제 너만 사지 멀쩡하게 나오면 돼. 나와.”

       

       “다, 다행이다⋯⋯.”

       

       소년은 웃었다. 그 웃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고생이 보답받은 것이 무척이나 기쁜 모양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우리들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붉은 눈. 옆에 끼고 있는 여자 둘. 그걸로 악신쨩에게 들었던 팩트 기반 음해를 떠올린 모양이다.

       

       악신쨩이 마법의 실험대가 됐다든가, 몸 이곳저곳을 희롱당했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소년은 확실히 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마법사님이, 그. 자색 마탑주님의 수제자라는⋯⋯.”

       

       “어, 그게 나야. 왜?”

       

       “⋯⋯⋯⋯.”

       

       망설이고 있다.

       

       딱히 마법을 쓰지 않아도, 집중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내게 ‘악신쨩을 괴롭히지 말아주세요’라고 부탁할까  고민하는 거겠지.

       

       그런 부탁을 했다가, 만약에 분노한 내가 누나에게 저주를 걸기라도 하면⋯⋯ 이런 느낌의 불안과 함께.

       

       나는 쭈그려 앉아서 소년과 시선의 높이를 맞추고 음흉하게 웃었다. 매니악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변태 마법사마냥.

       

       “맞아. 나는 그랬어.”

       

       “네?”

       

       “네가 생각하는 게 다 맞다고. 오늘 밤에도 악신쨩은 내 마법 실험에 사용될 예정이지. 그래서, 나한테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니?”

       

       “⋯⋯⋯⋯.”

       

       너와 네 가족을 구한 악신쨩을 위해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너는. 

       

       “야, 하지 마!”

       

       “으악.”

       

       악신쨩이 쭈그려 앉는 나를 발로 뻥 찼다. 그만 놀리라는 것 같다. 나는 일부러 과장된 리액션으로 철푸덕 쓰러졌다.

       

       “『용린』.”

       

       으드드드득. 끼이이이이-!

       

       악신쨩의 양팔이 검은 비늘로 덮인다. 그리고 그녀는 쇠창살을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었다. 듣기 괴로운 소리와 함께 창살이 휘어 틈새가 벌어진다.

       

       “나와.”

       

       “아, 응⋯⋯.”

       

       소년은 엉거주춤 감옥으로부터 나왔다. 감옥 안쪽에 홀로 남은 눈물점 게이는, 자신이 통과하기에는 제법 비좁아 보이는 창살 틈새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군가 감옥 문을 열어달라는 듯 시선을 보냈으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유나는 도와주려고 했지만, 쇠창살을 벌릴 수단이 승화 말고는 없었다).

       

       결국 비좁은 틈을 낑낑대면서 기어 나와야 했다.

       

       “자, 그러면⋯⋯ 핑발레즈야, 얘네 데리고 선배 쪽으로 합류해 줘. 나랑 마탑주님, 그리고 악신쨩은 여기를 싹 지우고 나갈 테니까.”

       

       “전위가 없지 않습니까?”

       

       “마탑주님이 여기 있는데 뭘, 괜찮아. 게다가 여기 수준 우화따리라며?”

       

       “그러면, 예. 귀환하겠습니다만. 생채기라도 나지 마십시오. 그⋯⋯ 안 다치고 오면, 야한 농담을 해드리겠습니다.”

       

       안 다치고부터는 거의 쥐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으나, 나는 귀에 마법을 세 개쯤 걸고 녹음 마법까지 켠 뒤에 꼭꼭 씹어서 새겨들었다.

       

       이게 인생이지. 나는 핑발레즈가 걸어 준 마법의 주문에, 한껏 들뜬 기분으로 전진했다.

       

       “노히트 클리어 가자!”

       

       “⋯⋯호색한, 바보야 진짜!”

       

       유나가 조금 투덜거리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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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신전이라고 불러야 하겠다.

       

       서른 명 정도 들어갈 법한 공간에, 벽의 끝 쪽에는 발목 정도 높이의 단상이 있고. 그곳에는 온갖 금박으로 덕지덕지 꾸며 놓은 제단이.

       

       제단의 위에는 금으로 만든 접시가 있어, 액체화된 여신의 정보가 모여 있는 상태였다.

       

       사방에 놓인 촛불로 빛을 밝히고는 있으나, 햇볕 들어오지 않는 지하라서 충분하지 않다. 어둡다. 촛불이 일렁거릴 때마다 그림자는 모습을 바꾼다.

       

       열 명 정도의 사제들이 단상 아래에서 금접시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으며, 단상 위에는 이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말라깽이 대사제가 예배를 주관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여신께서 부활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입니다, 여러분.”

       

       그는 목이 무거울 정도로 치장된 제관을 썼으며, 몸에 덕지덕지 두른 것은 놀라울 정도로 세속적이다. 무엇 하나 금이 안 쓰인 곳이 없었다.

       

       금접시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사제들의 모습을 보니, 악신쨩을 놀리고 싶은 마음도 팍 식었다. 그토록 자신이 섬기는 것을 치장하고 싶었을까? 남들 보기에 우러러보도록?

       

       퍽이나 신성하구나.

       

       “쯧.”

       

       “츠읏.”

       

       나는 꼴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그런데 묘하게도, 같은 타이밍에 혀 차다가 실패한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고개를 돌리니 악신쨩이었다. 악신쨩도 동시에 울린 혀 차는 소리를 찾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나가 중얼거렸다.

       

       “⋯⋯둘이 되게 닮았네.”

       

       “아니에요.”

       

       “아니거든!”

       

       혀도 제대로 못 차고 손가락 튕기는 소리도 못 내는 애랑 어디가 닮았다고.

       

       그 소란에 우리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하나둘 이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말라깽이 대사제 또한 이쪽을 응시했다.

       

       눈을 마주한다. 그는 생각보다 눈빛이 똑바로 박혀 있었다. 이성이 흐려진 자의 눈이 아니다.

       

       “불청객이 오셨군요. 어쩐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그 금접시의 내용물을 회수해야겠어.”

       

       “여신님의 성물을 탐하다니, 불경하십니다.”

       

       “그건 여신의 물건이 아니야. 서큐버스 여왕의 잔재지. 모르고 있었던 거라면 지금이라도 두 손 들고 항복해. 그러면 정상참작은 해 주마.”

       

       대사제는 딱 잘라서 말했다.

       

       “압니다. 매일 밤 속삭이던 것은 그분이시며, 망가진 여신이 아니었지요.”

       

       “⋯⋯알고 계셨다? 그러니까, 여신 사칭범의 정체를 알고도 믿었다? 꿈속의 쾌락이 그토록 좋았나, 몽마를 여신이라며 섬길 정도로?”

       

       “형제님. 제 신앙을 욕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올곧은 믿음으로 그녀를 섬기기로 다짐한 겁니다. 그분께서는 망가진 여신과는 달리, 위대한 뜻을 품고 계셨으니까요.”

       

       “여신이 망가졌다라.”

       

       내 되새김질을 들은 대사제의 표정이 비통하게 일그러졌다. 오랜 믿음이 배신당해, 그 무게가 고스란히 상처로 남은 것 같은 감정이다.

       

       탕, 탕, 탕!

       

       대사제는 제단을 연신 주먹으로 내리쳤다.

       

       “예. 여신은 망가졌습니다. 위대한 하늘의 뜻은, 모두가 우러러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자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신은 그러지 않았죠⋯⋯.”

       

       “흐음.”

       

       “그에 비하면, 그분은 어떻습니까? 그분은 여신의 자리 위에 우뚝 서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 숭고한 뜻은, 마음 바쳐 따르기에 충분했습니다.”

       

       여왕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핑발레즈에게 전해 듣기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느니 이야기했었지. 하지만 그렇게 거창한 말과는 달리⋯⋯.

       

       결국 여왕이 하는 짓이란, 사람을 잡아먹고 배를 불리는 반복 작업이었으며.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일이란, 전지전능한 윗자리에 올라서 남들을 가지고 놀고 싶다는 사악한 욕망이었다. 여신보다 추하면 추했지 나을 게 없는 목표다.

       

       저 대사제도 그 사실을 알 거다. 알면서도 믿었다. 왜냐하면 여신이 자기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나는 결론을 내렸다.

       

       “너는 그냥⋯⋯ 멋있는 걸 믿고 싶었던 거군. 누군가, 엄청 위대한 존재가 자기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거야.”

       

       “저런 녀석들은 장난감으로도 실격이야, 미마. 재미가 없거든.”

       

       인간 실격에 장난감도 실격이다. 폐기처분해주마.

       

       챠라라락!

       

       악신쨩이 양팔을 용린으로 덮으며 나서고, 나는 마법 영창을 준비했다. 유나도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때, 대사제가 엉뚱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망가진 여신을 믿습니다.”

       

       “⋯⋯⋯⋯?”

       

       무슨 개소리냐. 조금 전까지 실컷 여신을 욕해놓고는, 이제 와서?

       

       내가 어이가 없어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악신쨩은 긴장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리고 내게 주의를 주었다.

       

       “야, 미마. 저 녀석 뭘 좀 아네. 신성력을 쓸 거야.”

       

       “뭐? 아니, 뭐라고?”

       

       여신이 호구 등신도 아니고, 저렇게 앞담을 있는 대로 씨부렸는데 신성력을 내려주겠는가? 심지어 이단숭배에 온갖 나쁜 짓은 다 했다.

       

       내가 신이었으면 당장에 천벌부터 내렸을 텐데.

       

       파아아앗──!

       

       그러나, 대주교의 몸에서는 우스울 정도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승계우화(承繼羽化) – 『톱니바퀴 : 동결』.”

       

       “아니, 어?!”

       

       “왜, 왜 써지는데⋯⋯?!”

       

       나와 유나는 깜짝 놀라서 새된 소리를 냈다.

       

       대주교의 배후로부터, 푸르스름한 얼음이 나타나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찰칵거리는 톱니바퀴 소리도 들린다. 여신의 힘이다.

       

       이게 대체 무슨, 타락 성기사처럼 속은 것도 아니고. 여신이 싫어서 여왕으로 갈아탔다는 놈까지 신성력을 쓸 수 있다니?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하늘의 그물이 이렇게나 엉성해서야, 애초에 이만한 교세를 만들지도 못했을 거다. 그러니까 즉.

       

       2. 여신은 어떤 이유로든 간에 망가지고 있다. 입바른 말로 믿는다는 소리에도 신성력을 내려 줄 정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마이 프렌즈. 그러면 내일 또 뵙겠습니다.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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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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