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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흐….”

         

       정신을 쥐어짜 내는 끔찍한 시간이 끝났고, 미치시게는 터덜터덜 축 처진 몸을 간신히 이끌며 돌아갔다.

         

       본래라면 그가 가르치는 무인들이 차를 이끌고 와서 그를 마중해줬겠지만….

         

       “흐흐흐흐.”

         

       야태도아랑류의 도장이 풍비박산이 나버린 지금, 그렇게 해주는 무인은 없었다.

         

       아니, 해줄 수도 없으리라.

         

       “흐흐….”

         

       첫날에 무력을 휘두르려 했던 무인들은 경찰에게 잡혀갔다.

       전기 찜질을 받은 상태로 끌려가서 철저한 구속 상태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으리라.

         

       ‘도축장’의 존재를 알고 있던 무인들은 음양사가 끌고 갔다.

       아마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캐내려 할 것이며, 도축장에서 행해지던 주술에 대한 정보와 그 주술로 행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알기 위해서 그들을 끔찍하게 고문을 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운 좋게 잡혀가지 않은 무인들은 기자와 성난 국민을 피해서 멀리 도망을 쳤을 것이다.

       기자들이 흙발로 집까지 쳐들어와서 먹고 자는 모습을 찍으며 사람의 신경을 긁는 질문을 내뱉고, 성난 국민이 온갖 낙서와 욕설을 내뱉으며 거주지의 주변에 빼곡히 자리 잡은 모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그래.

       야태도아랑류는.

       그가 평생을 가꾸어왔던 장소는.

         

       “망했어, 모두 망했다고….”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미치시게는 흔들리는 영혼을 간신히 붙잡으며 비척비척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 마침내 익숙했던 곳이자, 지금은 폐허나 다름없이 변해버린 자신의 도장에 도착했다.

         

       “내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은 생명력과 활력이 넘치는 평소의 도장이 아닌, 귀신이나 살법한 살풍경한 모습을 보이는 흉가였다. 사람은 죄다 빠져나가서 소름이 끼치는 침묵을 품고 있었고, 기자와 경찰, 검사, 음양사, 구경꾼 등의 수많은 승냥이 떼로 인해 곳곳이 손상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이 곳곳에 적혀 있었고,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모조리 박살이 나거나 뜯겨 있었다. 게다가 방화라도 하려고 했는지 탄 자국이 곳곳에 보였고, 들어와서 무슨 행패를 부린 것인지 곳곳이 부서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진짜 흉가라도 된 것처럼 맘대로 들어와 놓은 것인지 술병과 먹다 남은 음식이 널려있기도 했으며, 취객의 것으로 보이는 토사물과 오물이 곳곳에 널려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를 조롱하려고 하는 듯 목을 매단 동물 인형이 곳곳에 실내장식처럼 있었으며, 야태도아랑류의 역사가 담긴 수많은 물건은 죄다 박살이 나 있기까지 했다.

         

       『 무인인가, 준 테러리스트 집단인가! 야태도아랑류의 비밀은?! 』

       『 야태도아랑류는 시작부터 잘못된 존재였다! 』

       『 야쿠자와의 어둠의 관계, 과연 소문의 그 집단은 범죄조직의 양지를 위한 껍데기일 뿐이었나?! 』

       『 모 교수 曰”야태도아랑류의 뿌리, 실은 도축업에 종사하던 부라쿠민에서 갈라졌을 가능성 커.” 』

         

       게다가 박살이 난 물건의 위쪽에는 야태도아랑류를 한껏 조롱하는 신문이 붙여져 있었다.

         

       너희의 수준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저딴 것 대신에 이런 조롱이나 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야. 아니라고….”

         

       미치시게는 그 신문의 내용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부라쿠민이라니…! 아니라고!”

         

       콰앙!

         

       그는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신문이 붙여진 벽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그러자 마나가 담긴 주먹이 벽을 그대로 부숴버렸고, 신문 역시 갈기갈기 찢겼다.

         

       “감히! 감히! 하찮은 토인 놈들에게서 힘을 빼앗아 온, 위대한 전쟁 영웅이자 무사 가문 출신의 무인이 우리의 뿌리인데! 감히 부라쿠민이라고-!”

         

       쾅!

       콰앙!

         

       그는 그것으로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욕설이 적힌 벽은 마나를 담은 손톱으로 찢어버리듯 갈랐고, 곳곳에 널린 오물과 쓰레기는 마나를 채찍처럼 움직여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마나를 폭발시켜 죄다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미치시게는 그렇게 한참을 날뛰고서야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것을 멈추었다.

         

       “허억- 허억…!”

         

       그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고, 마비되는 목덜미를 어떻게든 풀기 위해 주물렀다. 그리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아까 전 떠올렸던 의문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대체 뭐가 문제였길래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돈?”

         

       야태도아랑류는 돈이 필요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냥 자연에서 기를 퍼먹으면 되는 다른 작자들과는 다르게, ‘마나’를 효율적으로 쌓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나 전후 시절처럼 대충 사람을 잡아다가 바치면 되는 옛날과는 다르게 오직 동물만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으며, 그 동물을 바치는 것조차도 주변의 눈을 피해서 바쳐야만 했다. 그렇기에 눈을 피하고자 동물을 사 오는 대신 기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조사가 들어오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지하에 축사를 만들고 효율적으로 동물을 길러서 주기적으로 마나를 흡수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하는 데에는 돈이 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막대한 양의 돈이 말이다.

         

       동물을 기르기 위한 사료를 살 돈, 시설을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돈, 피와 고기를 들키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장비와 약품을 구매하기 위한 돈, 도장을 운영할 때 쓰는 돈.

         

       돈.

       돈.

       돈!

         

       모든 것이 돈이고, 비용이었다.

         

       그렇기에 야태도아랑류는 다른 유파들과는 다르게 꽤 탐욕스럽고 세속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권력자에게 접근해서 호위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경호회사에 적극적으로 무인을 꽂아 넣었다. 게다가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와 기회로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어 들며 돈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마나의 효율을 늘려서 돈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주술에 손을 댔고, 대동아전쟁 당시 폴리네시아에서 활동했던 조상이 가져온 주술 의식을 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 몇몇이 고통받거나 죽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런 것이 아니던가.

       누군가가 희생하면, 그 희생을 토대로 수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사는 것.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면 그것을 양분으로 삼아 수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단 말인가.

         

       모두가 하는 일이다.

       세상 모두가, 모든 인간이 하는 일이다.

         

       그냥 그런 일을 그 역시 행했을 뿐이다.

         

       “억울하다.”

         

       게다가 마냥 패악질을 부린 것도 아니다.

         

       그 증거로 야태도아랑류는 훌륭하게 지역에 녹아들지 않았던가.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무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람들을 도왔고, 돈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 만큼 지역 주민들이 외부의 폭력배들에게 고통받는 것을 가만 두고 보지 않았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무인들을 보내 마을을 순찰하게 만들어 화재가 일어나는 것을 막거나 강도를 잡는 등의 사회 공헌도 훌륭하게 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야태도아랑류는 모두에게 녹아들었고, 모두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그런데!

         

       “억울해!”

         

       억울하다.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억울하다.

       심장이 갈래갈래 찢기고, 온몸의 혈관이 터져나갈 정도로 억울하다!

       원한이 몸에 사무치는 것 같고, 뇌가 마비되어 쪼개지는 것 같은 원망이 감돈다!

         

       미치시게는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고 저릿해져 오는 손발을 한껏 움직여도 눈물은 고장 난 수도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짜디짠 눈물의 맛이 입술의 틈새로 파고들어 혀 위에서 감돌았다.

         

       그리고 그 끊임없이 유입되는 눈물의 짠맛에 혀가 마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그는 결국 들끓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네. 전화 받았습니다. ]

         

       이 상황을 만든 원흉 중 한 명.

         

       타이시로 사범에게로.

         

       “대체!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딴!”

         

       그는 사범이 전화를 받자마자 자기 몸 안에서 감도는 화산같이 폭발하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부었다.

         

       “내가 죽을죄를 진 것인가? 대체 무슨 원한이 있다고 나에게 이런 짓을 행하는 것인가! 자네에게는 무인으로서, 아니!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분파에의 최소한의 존중조차 없는 것인가!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하지만 그 뜨거운 감정을 받아내는 사범의 반응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 하아….]

         

       북극의 얼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무감정했으며, 분노에 대응하듯 꿈틀대는 것이 아닌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만이 있었다.

         

       [ 정말, 모르셔서 묻습니까? ]

       “그래! 모른다! 내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나!”

       [ …일단 묻겠습니다. 대체 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재산? 부정하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모두 다 하는 건데! 모두가 다 하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방법인데 그게 왜 부정하다는 거야! 나는 그냥 모두가 다 하는 방법을 똑같이 따라 했을 뿐이야!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는 것은 병신이니까! 나는 병신이 아니었고, 돈을 모으고 싶었으니까!”

       [ 차라리 병신이 나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강했으면 그만이지! 강했더라면, 약하지 않았더라면 잡아먹히기는커녕 잡아먹었을 테니까! 먹이가 되어서 수많은 사람을 살찌우는 고기가 아니라 동료가 되었을 테니까! 당한 사람이 약해서 먹이가 된 게 어떻게 내 잘못이란 말인가! 그건 그들이 약한 것이 잘못이고, 무능력함이 원수일 뿐이야!”

       [ 진심입니까? ]

       “하. 자연의 이치가 바로 그렇고 그런 것을, 왜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에게 물어! 약육강식!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고 점차 강해지는 것이 진리가 아닌가!”

         

       마나는 말한다.

         

       약한 것을 잡아먹고 살을 찌우라.

       강한 것을 죽이고 그 강함을 흡수하라.

         

       마나를 모아 더 강한 마나를 담고.

       강한 것을 죽여 더 드높은 강함을 추구하라.

         

       “그리고 말 잘했네! 내가 마냥 패악질을 부렸나? 내가 감히 넘봐서는 안 될 것을 욕심을 부린 것인가? 아니잖나!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어!”

       [ …진심이군요. ]

         

       스마트폰 너머의 사범은 감정을 억누르는 듯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통보하듯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 히라모토 미치시게 당주님. 카즈오 대사범님의 전언이 있습니다. ]

       “뭐?”

       [ 대사범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선을 넘었다. ]

         

       선을 넘었다.

         

       그 말에 울컥한 듯 미치시게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선? 그놈의 선! 선이라는 게 뭔데!”

       [ 선이라는 것은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미치시게 당주님은 그것을 훌륭하게 넘었습니다. 시현류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이유로 감싸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말입니다. ]

       “하, 하하하하!”

         

       콰앙!

       

       “선을 넘었다고? 그래서 지금 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유파 하나를, 무공 하나의 맥을 이렇게 끊어놓았다고?! 가지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뒤통수를 쳐서 명예를 똥통으로 처박고, 나에게 이렇게 모욕감을 주는 것이 너희가 할 짓이냐고—!!!”

         

       미치시게는 격노해서 벽을 때려 부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반응에 오히려 사범은 질려버린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 말이 통하지 않는군요. 마저 전하겠습니다. ]

         

       그리곤 얽히기 싫다는 듯 빠르게, 하지만 귀에 잘 박히도록 또박또박 말했다.

         

       [ 대사범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최소한 무사로 죽고 싶다면, 할복하라고. ]

       “뭐…?”

       [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

         

       뚝.

         

       통화는 그것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통화가 끊어졌음에도 사범이 남긴 마지막 말은 허공에 남은 것처럼 그의 머리에 울려 퍼졌고, 끊임없이 단어 하나를 반복하게 했다.

         

       할복(割腹).

         

       스스로 배를 갈라서 죽는 자진 방법이자, 무사가 ‘명예롭게’ 죽는 방법.

         

       “하.”

         

       그렇다.

       명예롭게 죽기 위한, 무사의 마지막 발악이며.

       생명을 바쳐 명예를 지키는 무사의 죽음이다.

         

       “하하하하! 나보고 죽으라고! 나보고 할복하라고!”

         

       그는 미친 듯이 웃으며 휘청이는 몸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이끄는 대로.

       야태도아랑류라는 한 유파를 흥하게 만들고, 지금에 와서는 만천하에 드러나며 쇠하게 만들었던 장소를 향해서.

         

       그렇게 그는 말라붙은 핏물 때문에 끈적하게 변해버린 바닥을 걸었고, 한때는 동물이 매달려있었을 빈 갈고리에 몸을 부딪치며 그렇게 휘청휘청 아래로 내려갔다.

         

       “할복, 할복하라고.”

         

       저벅.

       저벅.

         

       “흐, 흐흐흐. 그래. 나를 풀어준 것도 할복하라고 그런 거겠지. 이 잔인한 작자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인세의 마귀 새끼들…. 나보고 할복하라고.”

         

       저벅.

         

       “내가, 내가 죽을 것 같아? 내가 너희 뜻대로 죽을 것 같아? 할복이라니, 흐흐흐. 개 같은 소리…. 그런 거 지키는 무사가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 그는 한때는 동물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던 축사로 향했다.

         

       한때는 동물을 바쳤던.

       그리고 이제는 그가 바쳐질 공간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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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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