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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레키온의 상태는 기적적으로 다음날부터 돌아왔다.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멍하니 마차에서 창밖을 내다본다든지, 아르의 각종 귀여움 모먼트에도 큰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든지, 웃긴 농담에도 억지로 뒤늦게 반응하는 느낌이었지만.

       

       “아유, 우리 아르는 어쩜 저렇게 복스럽게 잘 먹을까? 아르야, 이것도 맛있는데 한번 먹어 보렴.”

       

       오늘은 아침부터 상쾌한 얼굴로 나타나서 아침을 먹는 아르를 보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데보라는 그런 레키온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잘 해결된 것 같네.”

       

       데보라도 티를 많이 안 냈을 뿐, 레키온의 멘탈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이제는 좀 안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다행이네. 이제 완전히 괜찮아진 것 같아서.’

       

       어젯밤에 아르와 대화한 걸로 이렇게 다 풀릴 줄은 나도 몰랐는데….

       

       ‘역시 우리 아르라니까.’

       

       나도 갑자기 어제 아르가 하무트교에게 쫓겼던 이야기를 했을 때에는 살짝 어리둥절했었다. 

       

       -구럼 이러케 하무트교가 사람들 해치구 다닌 것두 도망친 아르 잘못이에여?

       

       ‘그런데 아르가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갈 줄이야.’

       

       아르가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잡혔다면, 아마 내가 바냐스 마을 습격에서 죽고 깨어나지 못한 「레키온 사가」의 원작 스토리대로 흘러갔을 거고.

       

       하무트교는 ‘용을 깨울 자’를 성공적으로 죽였으므로 마왕 바할라크가 용사와 싸우는 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레키온이 수명을 다했을 때 나타나서 페룬 대륙에 더 큰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당장 하무트교가 우릴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서 사람들을 막 납치하고, 죽이고, 지부에 끌고 가서 착취를 당하거나 생명력을 흡수당하는 일은 없었겠지.’

       

       그럼 그런 일이 벌어진 게 다 아르랑 나 때문인가?

       

       흔히 말하는 ‘너희만 희생했으면…!’이 되면 모든 게 괜찮고 잘 풀렸을까?

       

       아르가 대륙을 구할 최후의 은룡의 후손이라는 걸 차치하고라도, 이 사태는 하무트교 놈들이 나쁜 거지 절대 우리가 나쁜 게 아니다. 

       

       레키온도 마찬가지.

       

       자신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나쁜 건 하무트교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이 내린 선택, 즉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직접 보고, 소를 희생했음에도 감사 인사를 받는 데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머리론 알아도 직접 겪는 건 언제나 다른 법이지.’

       

       제삼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니까. 

       

       ‘대를 위해 소를 내 손으로 희생시킨다라…. 이런 딜레마를 뭐라고 하더라. 그래, 트롤리 딜레마라고 했었지.’

       

       트롤리 딜레마. 또는 광차 문제라고 불리는 이 딜레마는, 꽤나 유명한 문제로 이를 모티브로 삼아 만든 게임까지도 출시된 바 있다.

       그 게임은 아마 지금도 토종 PC게임 플랫폼, 숯처럼 쉬지 않고 오래 타오르는 힘과 열정으로 게임 문화를 부흥시키겠다는 의미에서 만든 ‘숯힘’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 숯힘에 아직 사 놓고 하지도 않은 트리플 A급 콘솔 게임이 한가득인데.

       그걸 플레이도 다 못 하고 왔네.

       

       이럴 줄 알았으면 뉴튜브 에디션으로라도 훑고 올걸.

       

       여튼.

       

       트롤리 딜레마는 굉장히 간단한 문제다.

       

       제동 장치가 고장난 기차의 선로 위에서 기차가 오는지 모르고 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 5명이 있다.

       

       당신에게는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스위치가 있지만, 반대쪽 선로에도 인부 1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선로를 바꾸면 5명 대신 1명이 죽고, 바꾸지 않으면 5명이 그대로 죽는다. 

       

       당신은 선로를 바꿀 것인가?

       

       ‘통계적으로 보면 이 문제에서 많은 사람이 선로를 바꾸는 걸 선택했지.’

       

       서 있는 1명이 자신의 가족이거나 하는 조건이 붙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사람들은 바꾸는 걸 더 많이 선택한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문제를 바꾸면 선택은 아예 달라져.’

       

       선로 위에서 5명의 인부가 작업하고 있는 건 같지만, 이번엔 스위치가 없고 대신 선로 옆의 다리를 걸어가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당신이 그 1명을 밀어서 선로 위로 떨어뜨린다면, 기차를 그 1명을 치고 5명의 인부까지 도착하기 전에 제동할 수 있다.

       

       당신은 다리 위의 사람을 밀겠는가? 

       

       내가 내린 선택으로 1명을 희생해 5명을 구한다는 건 똑같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사람들의 선택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전자에서 선로를 바꾼다가 거의 90퍼센트에 육박했지만, 사람을 민다고 대답한 사람은 1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는 조사도 있었다고 했다. 

       

       ‘이 문제를 알고 있는 나조차도 심리적으로 고민이 되는 걸 보면…. 참 사람의 마음이란 게 복잡미묘하단 말이지.’

       

       레키온의 경우를 여기 대입해 보자면, 그동안 레키온은 선로를 바꾸는 선택으로 5명을 살려 왔고.

       지금 마을에서 습격 당한 사람들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이 1명을 밀어서 5명을 구한 기분을 느끼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자이언트 앤트를 잡고 희생자의 가족에게 감사까지 받았으니….

       

       비유하자면 1명을 밀어서 1차 제동을 건 후, 선로 위에 뛰어들어 기차를 몸으로 막아 2차 제동을 걸어서 5명을 살린 다음, 그 5명에게 감사 인사를 받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좀 끔찍하긴 하네.’

       

       하지만.

       

       ‘레키온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지.’

       

       그건 바로, 애초에 레키온이 한 일은 선로를 바꾸거나 사람을 미는 것과 완전히 결이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레키온이 한 일은 굳이 따지자면 동시에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 여러 대가 각자 달리는데, 그중 어느 선로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선택과 비슷하다. 

       

       동시에 구할 수 없다면 그때 레키온이 판단해서 어느 한쪽을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구한 기준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든, 더 딱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든 그 선택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레키온에게 뭐라고 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레키온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계속해서 자진해 선로에 뛰어들고 있지 않은가. 

       

       진짜 나쁜 놈들은 기차의 브레이크를 고장내는 놈들이고, 하무트교를 비롯한 마왕 세력 놈들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트롤리 딜레마가 어쩌구, 선로 위의 사람이 어쩌구, 논리적으로 설명해 봤자 당시 레키온의 멘탈을 케어해 주기엔 역부족이었겠지.’

       

       그리고 그걸 우리 아르는 자신을 예로 들어서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내가 백 마디 하는 것보다 아르가 한마디 하는 게 효과가 좋다니까.’

       

       그리고 그건 아르가 정말 순수하게 레키온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레키온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진심으로 상대의 고민을 들어 주고, 같이 고민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으로 아르는 상대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 버렸다. 

       

       ‘이렇게 순수하고 섬세하고 귀여운 드래곤이라니.’

       

       나는 기분 좋은 뀨 소리를 내며 달달한 후식을 먹은 아르의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 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특한 아르의 뚠뚠한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뀨룩.”

       

       아르는 기분 좋은 듯 꼬리로 내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트림을 했다. 

       

       “그럼 출발해 봅시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힘차게 하무트교 지부를 향해 다시 진격했다. 

       

       마기의 영향을 받아 흉폭해진 마물들을 시원시원하게 처리하고 나아갔으며, 혹시라도 우리가 이미 지나간 마을에 추가적인 피해가 있을까 싶어 레키온은 전보를 보내 파메라 기사단 인원을 각 마을에 파견해 지키도록 명령했다. 

       

       “출발할 때 같이 가게 해 달라고, 도움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들 난리였으니 전보를 받자마자 금방 달려와 마을을 지켜 줄 겁니다.”

       

       후속 조치도 완료했고, 우리는 그렇게 며칠을 더 나아가 하무트교 마글라론 지부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정확히는 우리가 입수한 정보 상으로 있어야 할 곳 근처에 도착했고.

       지부는 아직 결계에 가려진 상태라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 지부가…?”

       “정말 외딴곳이기는 하네요.”

       “결계가 있는 모양이군요. 육안으로는 물론이고, 아무리 감각을 곤두세워도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결계라니….”

       “용사님은 결계가 느껴지십니까?”

       

       레키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서 희미한 마기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정확한 근원지를 찾기가 조금 힘들군요…. 그래도 이제 슬슬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니 조금만 더 가 보죠.”

       “역시 레키온 님이시군요.”

       

       황실 기사단은 레키온의 감각에 감탄했다. 

       

       그들 역시 오랜 경험, 그리고 체내의 마나를 다루는 수련과 수행을 거듭하며 감각이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지만, 하무트교가 작정하고 펼친 결계를 알아차리는 건 이 지근거리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아무것도 안 느껴지긴 해.’

       

       슬쩍 보아하니 실비아 씨도 긴가민가 하는 눈치고.

       

       아르는 느꼈으려나 싶어 내려다보려는 순간.

       

       “쀼, 쀼우.”

       “응? 왜 그래, 아르야?”

       

       품에 안겨 있는 아르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걸 본 나는 아르의 엉덩이를 한 번 더 받쳐 안으며 물었다. 

       

       아르는 레키온을 보며 말했다.

       

       “쀼우…!”

       

       아르는 ‘아냐. 레키온 삼쵼! 마기는 엄청 아까부터 이써써! 몰랐던 고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잠깐, 그렇다는 건….”

       

       나는 황급히 외쳤다. 

       

       “단장님! 어서 신성력으로 주변을 베어 주세요!”

       “레온 님…?”

       “저희는 이미 결계 안에 들어와 있어요! 어서요!”

       

       내 외침에 레키온과 데보라는 물론, 황실 기사단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쀼우!”

       

       하지만 레키온은 ‘삼쵼, 얼른!’이라고 외치는 아르의 목소리에 담긴 다급함을 느꼈는지, 곧바로 검에 신성력을 담았다.

       

       “하아아압!”

       

       그리고 레키온이 신성력이 압축된 검기를 사방으로 펼치자.

       

       쩌저적, 쩌적!

       쨍그랑!

       

       주변의 결계가 부서지고 걷어져 나감과 동시에.

       

       “케에에에에!”

       “쿠어어어어!”

       “캬르륵!”

       

       우리는 강한 마기를 주입 받아 검은 안광을 뿌려 대는 대형 마물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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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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