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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6

     렘버리 캠프, 3일차.

     간밤에 혹시나 마도자동선을 향한 테러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암살자들도 마도자동선의 객실에서 잠든 학생들까지 건드릴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끄오오오ㅡㅡㅡ!”

     새벽부터 마도자동선 밖으로 나온 학생들이 기지개를 켜며 기뻐한다.

     

     영양밸런스는 무너졌지만 달고 맛있는 빵과 우유로 저녁을 먹고, 객실마다 비치되어있는 간식을 먹고, 아카데미 기숙사 만큼이나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심지어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역체감이 장난 아닐 거야.’

     오로솔 아카데미의 인기는 나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건 대륙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사람들이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어 그들과 안면을 트기 위함이라는 제 1의 목적도 있으나, 일부 사람들에게는 ‘제국식 문화생활’이라는 요소가 가장 큰 메리트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그랬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집에 돌아가보니, 도저히 지내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겨울에는 기숙사 잔류 희망 의사를 비친 학생들이 무려 60%나 되었고, 아마 올해는 거의 80%가 기숙사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아카데미의 생활 환경이 이 마도자동선이라고 한다면, 지브롤터 백작령을 제외한 다른 모든 도시의 생활환경은 저기 텐트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까.

     몇몇 학생들은 진지하게 마도자동선을 구매하여 별장으로 활용하되, 집에서 가족들도 자동선에서의 생활환경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게 해주고 싶겠지.

     그러면 이제 제국 문화가 왕국 전체로 퍼져나가는 셈이다.

     특히 이번에 신입생들도 많이 들어왔고, 그들이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 편하게 생활하다가 렘버리 캠프를 통해 극한 상황을 느껴봤으니, 제국의 주거문화가 왕국 전체로 퍼지는 건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남은 것은 렘버리 캠프의 지속.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교수들과 교관들의 의견이 분분해진 가운데-

     쏴아아아ㅡㅡㅡㅡ

     하늘에서,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뿌린 비가 아닌, 자연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

     “참 적절한 타이밍이군.”

     창을 통해 텐트를 펼쳐놓은 구역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쏟아지는 폭우.

     바닥에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하는 흙탕물.

     그리고 그에 대한 그 어떤 대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렘부르 군터 자작령.

     “하루 공쳤네.”

     우천취소.

     렘버리 캠프 사흘째 프로그램은 전면 취소되어, 학생들은 각자의 방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즐기게 되었다.

     하루 정도는 쉴 수 있지.

     학생들은 기뻐하지만, 그들은 그 이면에 있는 원인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챘다면, 오히려 더 불안해졌을 것이다.

     “하긴.”

     사흘째 교육이 취소된 건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우천을 대비한 우의가 모든 학생들의 인원수만큼 준비되어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닌.

     “황금여명이 다 튀었으니.”

     교관진의 일각인 황금여명 기사단이 전원 이탈해버렸기 때문이다.

    * * *

     [렘버리 캠프 3일째, 오전 11시 20분. 마도자동선 기함 내 회의실.]

     “이렇게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소, 황후. 만나서 반갑소.”

     “저도 저명하신 윈체스터 대공을 여기에서 이렇게 다시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회의실에 마주보고 앉은 윈체스터 대공과 에르윈 황후가 가볍게 덕담을 주고받는다.

     “올 것이라고 이야기는 미리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진짜로 이렇게 될 줄은.”

     “캠프가 불에 타지 않았어도 학생들은 마도자동선의 객실에서 여독을 풀었을 거예요. 그렇죠, 그레이 이사장?”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이 회의실에 앉아있는 나를 향했다.

     “렘버리 캠프 교관진으로 들어간 지브롤터령의 기사들을 통해 렘버리 캠프의 준비 상태에 대한 ‘현실’을 들을 수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어디까지 준비를 해야 하나 미리 계획할 수 있었죠.”

     “그 차이는 어느정도?”

     “발자크 자작이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나는 마도자동선에 실려 온 한 가지 자료를 두 사람의 앞에 내밀었다.

     “렘부르 군터 자작령에서 제출한 예산집행 계획서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현장 ‘감찰’을 통해 파악한 누락 사항이죠.”

     “참…지독하게도 해먹었군. 일부러 눈을 감아주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저지를 줄이야.”

     “어린 아이 앞에 사탕을 놔둔 거랑 같은 걸까요?”

     에르윈 황후의 말대로, 이번 렘버리 캠프의 비리 문제는 어린 아이의 눈과 손이 닿는 곳에 맛있는 사탕을 두고 떠난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어린 아이는 본능과 충동에 따라 사탕에 손을 뻗었을 것이며, ‘사탕을 지금 먹으면 안 돼’라는 어른의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껍질을 벗기고 사탕을 홀라당 먹어치울 것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현금을 남들 보이는 곳에 둔 것과 다를 바가 없죠.”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발자크 자작은 어린 아이가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결국 자의로 비리를 저질렀으니.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로 계획하고 있는가?”

     “그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선택에 달렸지요. 귀족에 대한 처우 문제는 옥새로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국왕의 서명이 필요한 부분 아닙니까.”

     발자크 자작은 사실상 끝났다.

     남은 것은 그의 처벌 수위를 정하는 일 뿐이나, 아마도 실제로 처벌을 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한 번 봐줍시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서명을 하기를 거부한다면, 발자크 자작은 살아남는 거죠.”

     “…….”

     “그리고 우리의 위대한 국왕 전하는 발자크 자작에게 받은…또한, 받을 소정의 선물을 기대할 겁니다. 살려준 값이죠.”

     “그거, 렘버리 캠프 예산 아닌가.”

     “이미 저들은 학생들을 위해 돌아갈 예산을 자신들의 비자금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칙이라거나 상식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리를 저지르는 게 그렇죠. 나랏돈이 내 주머니로 들어온 이상, 그건 내 돈이지 나랏돈이 아니게 되거든요.”

     “나이는 제일 어린 친구가 제일 많은 비리를 저질렀을 것 같은 식으로 말을 하는군. 그래, 그레이 지브롤터 이사장. 앞으로의 계획은?”

     “발자크 자작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말라비틀어질 겁니다.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렘버리 캠프의 활동을 성토할 것이며, 자연히 발자크 자작에 손을 벌려놓았던 귀족들은 전부 손을 거둘것입니다.”

     발자크 자작과 함께 계속 가다가는 같은 부류로 엮일 수 있고, 그랬다가는 앞으로 1년 반이 채 남지 않은 다음 국왕에게 밉보일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리아 ‘여왕’을 상대로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여왕….”

     “이미, 기세는 기울었습니다. 학생들이 집에 가서 어른들에게 하는 말은 렘버리 캠프로 끝나겠지만, 어른들…귀족들의 판단은 다르겠죠.”

     그 누구도 차기 권력자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한 번 권력을 잡으면 최소한 수십 년은 왕좌에 앉아있을 사람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곧 죽어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포기하지 못하는 ‘물린 인간들’인데, 아무래도 지금 사라진 게 그냥 도망친 게 아닌 것 같다는 말이죠.”

     나는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아마도 숨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숨어있다?”

     “예. 오직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동시에 시선이 마주치고, 그 시선이 다시 나를 향한다.

     “그래도 정도가….”

     “원칙과 상식은 멸망했습니다. 저들의 사고는 당장 눈 앞의 분노부터 해결하자는 것 밖에 없으며, 자신들이 피해를 본 것부터 억울함을 해소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는 자들이죠.”

     이미 황금여명 기사들 여럿이 당했다.

     “에르윈 황후님. 이번 문제에 대하여, 제국에서는 직접적으로 개입할 생각이 있습니까?”

     “직접적이라는 거, 앞뒤로 둘 다 말하는 거니?”

     “예.”

     “…없을 거야. 아마도. 다시 연락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하면 이야기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로는’ 없어.”

     제국 그림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의외인데.’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림자의 자체적 폭주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는 아스타시아나 나를 죽이려고 기회다 싶어 들어올 줄 알았는데, 아직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건가?’

     황제의 사생아들은 분명히 나와 아스타시아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황제가 회귀 이전처럼 의도적으로 그들을 부추겨 내게 시련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 제국의 정치적 상황 자체가 사생아들이 나를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다음 황제가 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나야 좋지.’

     한 번에 몰아서 쓰레기를 처리해도 되지만, 쓰레기는 원래 생겼을 때 바로바로 처리하는 게 위생상 좋은 법.

     “황금여명은 저를 죽이려고 들 겁니다. 그러니 두 분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탁?”

     “예. 다른 거 없고, 이곳을 지켜주십시오.”

     나는 자동선의 바닥을 두드렸다.

     “제가 편하게 적을 상대할 수 있게. 다시는 암살이라거나 하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게.”

     “…….”

     “그리고 이왕이면, 발자크 자작에게도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 싶군요.”

     “기회?”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팡이를 가볍게 들었다.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구명줄을 스스로 걷어차버릴 수 있는 기회.”

     * * *

     잠시 뒤.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어 유감스럽습니다, 외조부님.”

     나는 ‘홀로’ 자작성을 찾아가, 발자크 렘부르 군터 자작을 찾아갔다.

     “음….”

     얼굴이 창백해진 그는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했다.

     제국의 유력 차기 계승자라는 ‘권력자’를 앞에 두고도, 제대로 아부를 한다거나 외조부라는 명칭으로부터 오는 혈연의 유대감을 이용하는 모습도 보이지 못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이도저도 아닌, 공적인 태도.

     누가 저기 자작성에 대대적으로 숨어서 칼 들고 노려보고 있는 것도 아닐텐데, 발자크 자작의 태도는 너무나도 어정쩡했다.

     “말을 한 필 빌렸으면 합니다. 튼튼한 녀석으로.”

     “말?”

     “예.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있거든요. 비밀리에. 혼자.”

     내 말에 발자크 자작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디로 갈 건가?”

     “당연히, 지브롤터 백작령으로 갑니다.”

     “…혼자간다고?”

     “예. 급한 일이니까요.”

     “도대체, 왜?”

     “다른 거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화를 잠재우기 위함이죠.”

     움찔.

     “그레이 지브롤터와 누아르 지브롤터를 향한 암살 시도. 이는 명백히 지브롤터를 향한 도전입니다. 당신의 외손자들을 죽이려 한 자들에 대하여 논의를 해야 하죠.”

     “그게….”

     “무엇보다, 제가 가서 말씀드리지 않으면 아버지가 길길이 날뛸 겁니다. 감히 지브롤터를 향해 칼을 겨눴다는 것 자체만으로.”

     “……!!”

     “상대는, 제국의 암살자니까요. 철저한 진상조사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나 검을 뽑아들고 여기까지 오신다고 하거나 막 그러는 걸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니.”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안심하십시오, 외조부. 제가 렘버리 캠프를 떠난다는 건 저희끼리만 아는 비밀인 겁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조심하게.”

     조심하라는 말이 이렇게 무덤덤하고 메마른 말이었던가.

     “금방, 말 한 마리를 내어오지.”

     “같이 가시죠. 바로 타고가도록 하겠습니다.”

     “…….”

     순간적으로 발자크 자작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지만, 나는 모른척하며 느긋하게 지팡이를 짚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님들 이거 킬칵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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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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